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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글] 자치가 없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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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글] 자치가 없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
  • 전상직 한국자치학회 회장
  • 승인 2016.11.01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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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상직 한국자치학회 회장.
전상직 한국자치학회 회장.

자치의 가치

소크라테스의 말들을 풀어서 해석해 보면 ‘자치가 없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고 했고, 토마스 아퀴나스도 ‘인간의 행복을 성취하는 유일한 방식은 능동적으로 자신을 지휘하고 지배하는 것이다’고 했다. 직관적으로 생각해 봐도 ‘사람은 고유하게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자신의 삶을 지휘할 능력과 권위를 갖고 있다’는 명제는 거부할 수 없는 것이다. 자치는 중심적인 가치인 것이다. 자치에는 세 가지 요구조건이 있다.

첫째, 인식적 요구조건

사람이 자치를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행위를 결정하는데 필요한 자치적인 기준들을 깨닫고 있거나, 깨달을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 자치가 무엇인지 모르고는 자치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개인의 자치력’은 개인차원에서 자신의 행위가 의미하는 바를 시간적·공간적으로 인식해서 그것이 자치라는 덕목을 충족할 수 있는지를 충분히 인식하는 능력으로 자치의 필요조건이 된다. ‘마을의 자치력’은 마을차원에서 문제를 인식하고, 마을을 경영할 수 있는 결정을 만들어 내며, 유의미한 결과를 산출해 낼 수 있는 과정을 형성해내는 능력을 필요조건으로 한다.

그러나 누구든지 자치를 깨달아서 결정이나 행동의 준거로 삼기는 어렵다. 그럴 경우, 우리는 마을에 있는 문화·관습·규약들을 따르는 덕목을 갖고 있음으로써 자치에 대한 인식을 보완해 갈 수 있다.

둘째, 동기적 요구조건

‘동기’란 사람들로 하여금 특정 방향으로 행동하게 만드는 요소를 뜻한다. 어떤 행동을 유발시키고, 시간이 경과돼도 그 행동을 유지시키는 내적과정으로, 목표를 향해 나아가도록 하는 힘을 유발시키는 것을 동기화한다고 한다. 동기에는 내재적(內在的)·외재적(外在的) 동기가 있다. 내재적 동기는 외부의 보상과 상관없이 자치 그 자체가 보상인 동기로서 매우 자치적이다. 반면, 외재적 동기는 압력 보상 및 처벌과 같은 요인에 의해서 형성되는 동기로 비자치적이다.

개인이 자치를 하든, 마을이 자치를 하든, 자치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자치의 동기가 있어야 한다. 자치가 형성되는 필요한 만큼의 자치동기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개인이 복종이라는 형식으로 필요한 보상을 얻으려는 외재적인 동기보다는, 자신의 삶을 온전히 경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할 때, 내재적으로 자치의 동기가 형성된다.

마을의 자치는 주민들이 마을의 경영을 관료에게 맡기는 것보다, 스스로 경영하는 게 더 바람직하다고 인식하는 것에서 출발해 성공적인 마을경영의 체계를 구축하려는 의지가 주민들에게 충분하게 내재해 있을 때, 마을의 자치는 시작되고 이뤄지게 된다.

그러나 동기는 단일하게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복합적으로 형성되며 시간적으로도 연계를 가진다. 그러므로 외재적인 동기부여가 내재적인 동기로 전환 혹은 숙성되기도 하고, 소수의 내재적인 동기는 다수에게 외재적인 동기가 되기도 한다. 자치의 동기부여 시에는 직접적인 동기로 부여하는 하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면, 마을자치의 동기는 마을의 공공으로 부여돼야 한다. 마을의 공공이 주민의 자치를 유인해 낼 수 있도록 설계된다면, 그것이 바로 자치동기부여의 기획이 될 것이다.

셋째, 권위적인 요구조건

권위(權威)는 제도, 이념, 인격, 지위 등이 그 가치의 우위성을 공인시키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능력이나 위신을 뜻한다. 어느 개인이나 조직 또는 제도와 관념이 사회 속에서 일정한 역할을 담당하고, 그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널리 인정되는 영향력을 지닐 경우, 이 영향력을 권위라고 부른다. 권력(勸力)과 권위(權威)는 인간을 복종시키는 힘이자 위력이라는 의미에서 흔히 동의어로 사용되지만, 엄밀히 말하면 권위는 민주성을 획득한 권력이다.

다시 말하면, 권위는 권위자가 갖고 있는 가치의 우월성을 사람들이 믿도록 하는 능력이다. 개인이 권위를 가지려면, 사람들이 권위자가 제공하는 가치가 우월하다고 느낄 수 있는 가치를 권위자가 만들어야 한다. 권력은 제도나 법령에 의해 주어지지만, 권위는 스스로 만들지 않으면 안된다.

주민자치가 권위를 가지려면, 주민자치에 앞장서는 지도자들이 제공하는 가치가 마을의 주민들에게도 가치로 다가갈 수 있을 때, 비로소 주민들은 관치가 아닌 자치를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주민자치가 권력으로 행사되면 자치가 아니라 관치가 된다. 따라서 주민자치를 성공시킬 수 있는 권위는 정치도, 관치도, ·제도도 아닌 마을 속에서 자율적으로 형성되는 것이다. 그런 권위가 마을속에서 형성되도록 하는 기획이 어려우며, 주민자치정책의 어려움이 바로 여기에 있다.

주민자치의 충분조건

앞서서 우리는 주민자치의 필요조건을 매우 간략하게 살펴봤다. 이 세 가지 필요조건 중 어느 하나라도 충족되지 못하면 자치는 성립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 세 가지가 충족됐다고 해서 자치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자치의 충분조건은 앞서서 언급한 세 가지가 사회와 잘 결합될 때 비로소 자치의 충분조건이 이뤄진다.

자치는 요구조건으로 인식-동기-권위를 필요로 하지만, 필요조건으로는 해당 사회에 적합한 결합을 형성해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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