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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_주민자치회 대해부 2탄-각 영역에서 고려해야 할 주요 요건들] 인문자치 없이는 생활자치도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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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_주민자치회 대해부 2탄-각 영역에서 고려해야 할 주요 요건들] 인문자치 없이는 생활자치도 불가능하다
  • 김석수 경북대 철학과 교수·본지 편집인
  • 승인 2014.10.06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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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철학 영역 관점에서 바라본 주민자치회
고독·우울 등 정신이 병든 한국사회는 행복할 수 없어
김석수 경북대 철학과 교수·본지 편집인.
김석수 경북대 철학과 교수·본지 편집인.

‘지방분권 및 지방행정체제 개편에 관한 특별법’ 제27조에 따르면 ‘주민자치회’는 ‘풀뿌리자치의 활성화와 민주적 참여의식 고양’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런 목표를 원만하게 수행하기 위해서는 주민자치회는 관주도가 아니라, 주민이 주체가 되는 자율성에 기초해 설립돼야 한다. 또 복잡한 이해관계가 존재하는 현대사회의 문제를 조율할 수 있는 전문성에 기초해서 마련돼야 한다. 뿐만 아니라, 주민자치회는 근린생활공동체의 차원을 넘어 지역사회 전체 차원에서 농어촌의 읍·면·동 공동체까지도 포괄하는 도농지역 전체 차원에서 공공성을 실현할 수 있도록 꾸려져야 한다.

주민자치회 시범 실시와 관련해 안행부는 주민자치회가 ‘생활자치’를 구현하고, 따라서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또 안행부는 이 자치회를 통해 각 지역들이 ‘자생적 역량’을 강화하고, 나아가 ‘마을공동체’ 및 ‘복지공동체’도 활성화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안행부는 이 자치회가 지방자치단체의 행정부서와 마을 주민 사이에서 빚어지는 갈등을 조율하는 역할도 함께 수행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안행부의 이와 같은 입장은 주민자치회가 제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당연히 이뤄져야 할 작업이다.

그러나 주민자치회가 생활자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정치권력, 행정권력, 경제권력과 같은 다양한 지배 권력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한다. 이와 같은 상황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밑으로부터 의견이 개진되고, 그것이 추진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주민자치회 위원을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위촉하도록 돼 있는 부분(제29조 ①항)도 주민의 민의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는 형태가 되도록 해야할 것이다.

그야말로 주민자치회는 주민과 지방자치단체의 행정부서를 매개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특히, 주민자치회는 지방자치단체의 행정부서가 전시성 행사나 외형적 성과 위주의 사업을 진행하는 것을 견제해야 하며, 아울러 이들 행사나 사업에 주민이 수동적이고 소비적인 존재로 전락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생활자치, 주민생활이 인문학적일 때 가능
참된 주민자치는 자율성과 연대성에 입각해 주민 스스로가 자신들의 지역을 다스릴 때 가능하다. 주민이 이해관계에 따라 지역 현안들에 참여하게 될 경우, 스스로를 타율적인 존재로 전락시키게 될 것이다. 주민의 참된 주체성 확립은 이해관계를 초월해 지역사회의 정의를 마련하는 일에 참여하려는 자율성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또 주민의 참된 주체성 확립은 서로의 권리만을 찾아가려는 정의추구의 문화를 넘어 서로 함께 슬픔과 기쁨을 나누는 연대성을 마련할 때 가능하다.

따라서 주민자치회 역시 이런 자율성과 연대성을 지향해야 하며, 이를 통해 도시와 시골 모두가 붕괴된 공동체를 넘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마을공동체, 복지공동체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특히, 주민자치회는 주민으로 하여금 부당한 정치·경제 권력체계가 생활세계를 식민화하는 것을 극복하고 생활자치를 제대로 실현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생활자치는 주민의 생활세계 자체가 인문학적일 때 가능하다. 주민이 시장논리에 포섭돼 서로를 사물화하는 과정에서는 생활자치가 불가능하다. 시장 중심으로 형성된 오늘날의 도시사회가 위기를 맞이하고 있는 것과 또 대도시 주변의 군소 도시나 농어촌 지역들이 자립 불가능한 지역이 돼가는 것도 서로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시장지배현상이 심화되면서 비롯된 것이다.

도시의 시장사회에 살고 있는 생활인들은 무한경쟁과 그로 인한 고립에 시달리고 있으며, 농어촌 지역의 생활인들은 무기력과 외로움에 시달리고 있다. 도시는 도시대로, 시골은 시골대로 고독하고 우울한 사회로 치닫고 있으며, 급기야는 자살사회로 이어지고 있기도 하다. 사회의 건강성 회복은 경쟁과 피로, 무기력과 고독에 시달리고 있는 사회를 사람 냄새가 나는 사회로 거듭 나게 하는 데 있다.

더군다나 한국 현대사회는 과도 교육사회다. 자녀들의 교육 때문에 가족이 찢어져 살고, 심지어 가족을 구성하는 것조차 부담스러워 포기하는 일도 잦아지고 있다. 특히, 수도권 외의 지역들은 교육이 정치·경제권력 체계와 더 밀접하게 관계를 맺게 되면서 점차 낙후된 지역으로 전락하고 있다.

인문학적 작업 통해 기억공동체 마련해야
이처럼 한국사회는 정신이 병들어가고 있는 사회다. 건강한 정신없이 건강한 몸이 가능하지 않듯, 공동체의 정신적 건강성회복 없이는 공동체의 진정한 행복도 가능하지 않다. 각 지역들이 생활자치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자신들의 지역에 자리하고 있는 과거적 자산을 불러내어 기억공동체를 재건해야 한다. 기억공동체를 재건하는 것은 단순히 과거로 돌아가는 것만으로 가능하지 않다. 기억공동체를 제대로 마련하는 것은 과거와의 만남을 통해서 지금의 우리를 서로 이해하는 길을 여는 것이자 우리의 우리다움, 이른바 개성 있는 공동체를 마련하는 것이다.

한국의 근대화는 아픈 기억을 지워오는 과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로 인해 우리의 공동체는 서로를 모르고 익명적으로 살아가는 ‘아바타적 공동체’에 쉽게 빨려 들어가고 있으며, 마침내 개성을 상실한 공동체가 돼가고 있다. 개성 있는 공동체는 과거적 자산을 지금 속에 재창조하는 공동체다. 정말이지 이런 공동체만이 자율적인 공동체가 될 수 있으며, 연대가 가능한 공동체가 될 수 있다. 아픈 기억을 불러내어 오늘의 삶과 미래의 삶 속에 새로운 생명력으로 일궈낼 수 있는 것은 인문학적 작업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이런 인문학적 작업을 통해서만 제대로 된 기억공동체를 마련할 수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오늘날 지방자치단체(이하지자체)들이 추진하고 있는 제반 자치 사업은 여전히 외형적인 모습 갖추기에 치중하는 면이 적지 않으며, 또 사업도 지자체의 행정부서가 중심이 돼 이뤄짐으로써 주민이 행사의 수동적 참여자나 소비자로 전락되는 경우도 많다. 그나마 인문학을 도입해 이뤄지는 인문학 마을만들기도 인문학자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마을의 주민이 직접 인문학적 사유를 하고, 인문학적 삶을 실천해 마을 자체를 인문학적 장소로 고양시키는 작업은 미흡하다.

아직도 지자체는 주민이 직접 마을의 과거적 자산을 이야기로 만들고, 인문학적 활동의 주체가 되는 길을 제대로 마련하고 있지 못하다. 우리의 주민자치는 삶 자체를 인문학적으로 고양시키고, 삶 속에 자리하고 있는 주민 스스로가 직접 인문학을 생산하고 누리는 주체가 되도록 하는 생활자치를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안행부가 추진하는 주민자치회는 이런 문제점을 개선하는 데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른바, 주민자치회는 인문자치를 통해 생활자치를 구현하는 데 기여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인문자치는 곧 생활자치로 향해야 한다
그런데 주민자치회가 이런 과제를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주민자치회를 구성할 때부터 이런 인문자치의 정신이 잘 반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물론, 지자체의 구성원들 상당수가 그동안 물질적 성장을 향해 달려왔기 때문에 인문정신을 제대로 길러내지도 못했고, 또 그런 여력을 갖지도 못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지차제가 인문자치를 제대로 일궈내기 위해서는 인문정신을 길러줄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다.

그렇지만 앞서 언급했듯, 인문학자 중심의 마을만들기는 진정한 의미에서 인문자치가 될 수 없다. 인문자치는 곧 생활자치로 향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인문학자의 도움을 받되 어디까지나 주민이 중심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제 우리의 주민도 인문학적 정신함양을 통해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그러므로 주민과 지자체는 주민자치회를 구성할 때, 지역의 산업이나 경제를 발전시키는 데에만 치중해서 산업현장의 전문가나 경제전문가만을 중심으로 구성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경제와 산업 중심의 주민자치회 구성은 시장의 지배로 인해 발생한 공동체의 위기를 제대로 극복할 수 없다. 또 주민과 지자체는 문화 사업에만 치중해 주민자치회를 문화전문가나 기획사만을 중심으로 구성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주민자치회가 이런 식으로 구성될 경우, 주민은 오늘날의 소비사회가 낳고 있는 문제점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주민자치회는 지자체의 축제 행사나 마을만들기 사업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 이른바 소비성 경향을 지니고 있는 문화 사업이나 행사를 견제해야 하며, 또 경제 이익단체들의 이윤 추구와 연루된 지차체의 문화 활동이나 문화산업에 대해서도 견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주민자치회는 마을을 또다시 소비와 생산이라는 시장의 메커니즘에 예속시킬 수 있는 제반 활동에 대해서 부단히 경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주민자치가 제대로 실현되기 위해서는 주민자치회의 구성에 있어서 주민 삶의 애환이나 기쁨을 진지하게 담아내는 인문학자나 인문적 활동의 전문가가 반드시 포함돼야 할 것이다. 사실 그동안 한국사회의 강단 인문학은 제도 안에서만 작동했으며, 우리의 생활세계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 이는 인문학자의 잘못이기도 하고, 우리 생활인들의 잘못이기도 했다.

"공동체 구성원들의 건강한 정신없이는 그 어떤 사회도 행복할 수 없다"

우리의 인문학자들은 우리의 생활세계를 학문적 작업으로 제대로 승화시키지 못했으며, 우리의 생활인들은 인문학적 고민을 우리의 삶 속에서 제대로 길러내지 못했다. 우리에게는 인문학도 삶도 모두 불행이었다. 인문학은 삶이 없으니 공허함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으며, 삶은 인문학이 없으니 가벼울 수밖에 없었다. 인문학과 삶의 만남, 이른바 생활인문학의 확립은 우리의 삶과 인문학이 나아갈 길이다.

경북 칠곡의 인문도시 사업의 희망 사례
그동안 한국사회는 조국근대화 프로그램 아래 경제적 성장과 국방력의 강화에 치중해왔다. 이로 인해 한국사회는 반인문적 사회가 될 수밖에 없었으며, 공동체는 정신적 빈곤과 질병상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런 상태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이제 우리는 인문정신을 길러내야 한다. 가족, 학교, 사회 전반에 인문정신이 제대로 뿌리를 내릴 때, 우리의 공동체도 경제적으로 잘사는 차원을 넘어 정신적으로 성숙한 상태로 될 수 있다.

경상북도 칠곡군에서 추진하고 있는 인문도시 사업은 우리의 이런 희망을 잘 보여주고 있다. 칠곡군의 인문학 마을만들기와 인문도시 조성 사업은 한국의 공동체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잘 보여주고 있다. 칠곡군의 마을 주민은 마을 속에 자리하고 있는 전통적 자산을 복원하고, 나아가 주민 자신이 과거와 지금의 삶 속에서 경험한 내용을 인문적으로 재구성하는 작업을 충실히 수행해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칠곡군은 전문 인문학자를 불러 지역의 현안들을 인문학적으로 고뇌하고 극복하는 방안들을 모색했다. 게다가 칠곡군은 공정여행 프로그램, 전통 인문자산에 대한 체험 프로그램 등을 통해 경제자치, 교육자치를 실현해오고 있다. 칠곡이 이런 성공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마을자치를 전문가 집단이나 특정 지도자에 의해서 수행하기보다는 주민 스스로가 능동적으로 수행했기 때문이다.

물론, 시골 주민의 역량 부족이나 관심 결여 부분은 공무원이나 인문학자들이 보조적으로 돕는 방식을 통해 메워오고 있다. 이처럼 칠곡군은 주민과 공무원, 그리고 인문학자가 함께 위원회를 구성해 마을자치와 관련된 제반 활동을 바로 이 위원회에서 결정하면서 진행해오고 있다. 따라서 이 위원회는 주민과 행정부서를 잘 매개하는 역할을 수행해오고 있다. 칠곡군의 생활자치 사업의 성공은 사업의 방법과 내용을 인문학에서 찾고, 그 추진 주체를 지자체의 행정부서가 아니라 주민으로 설정했기 때문이다.

이상에서 보았듯이 행안부가 추진하는 주민자치위원회도 성공적으로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칠곡군의 경우처럼 주민 자신이 자치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또 현대 도시사회의 총체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소홀히 해온 인문학자의 위원회 참여를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

지자체가 인문정신을 갖추지 못할 때는 결코, 현대 시장중심의 공동체가 안고 있는 문제, 특히, 우리 사회와 같은 과도경쟁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 이른바 고독과 우울의 사회를 극복할 수 없을 것이다. 공동체 구성원들의 건강한 정신없이는 그 어떤 사회도 행복할 수 없다. 지자체는 인문자치 없이는 생활자치도 불가능함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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