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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_주민자치회 대해부 2탄-각 영역에서 고려해야 할 주요 요건들] 국가의 ‘민주적 혁신’ 맥락에서 재설계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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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_주민자치회 대해부 2탄-각 영역에서 고려해야 할 주요 요건들] 국가의 ‘민주적 혁신’ 맥락에서 재설계 필요
  • 곽현근 대전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 승인 2014.10.06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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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민주주의와 주민자치회
정치원리와 실천방식 갖춘 모형 도출부터 다시 시작하자
곽현근 대전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곽현근 대전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주민자치회는 2010년 10월 제정된 ‘지방행정체제 개편에 관한 특별법(이하 ‘특별법’)’에 근거를 두고, ‘풀뿌리자치의 활성화와 민주적 참여의식 고양’을 위해 읍·면·동에 도입 예정 중인 주민자치조직을 말한다. 특별법 부칙 4조에 따라 2013년 3월 안전행정부는 시범실시계획을 수립하고, 전국 공모를 거쳐 당해 6월, 전국 31개 읍·면·동을 선정해 현재 시범사업을 진행 중에 있다.

하지만 주민자치회 취지에 대한 깊은 고민과 현장과의 소통과 공감대 형성을 위한 노력을 찾아볼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정책성공을 가늠할 인과적(因果的) 변수들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졸속 추진되면서 시범사업의 성공여부를 어떻게 판가름할지 많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또 시범사업 준비 및 추진과정에서 모형, 예산, 표준조례 등이 변경되거나 의사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음으로써 참여주민뿐만 아니라 담당공무원들도 큰 혼란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혼란의 이유로는 주민자치회 ‘제도’를 통해 달성하려는 가치에 대한 그림이 제대로 그려지지 않은 것도 큰 몫을 하고 있다. 제도란 사회구성원의 욕구충족, 또는 사회적 가치실현에 목적을 두고 지위, 역할, 규범, 절차 등의 조직화 노력을 통해 탄생한 비교적 안정적 사회적 체계나 과정을 의미한다. 이런 맥락에서 주민자치회가 제대로 설계되기 위해서는 ‘주민자치회를 통해 달성하려는 우리사회에 꼭 있어야 하는 바람직한 사회적질서(가치)는 무엇인가?’라는 규범적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주민자치회 규범적 담론은 재검토 돼야
이와 같은 주민자치회 목적은 단순히 사실적, 또는 기술적 판단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철학 또는 도덕적 추론을 필요로 하는 부분이다. 마찬가지로 주민자치회 참여주체, 대표(representation), 정부와의 관계, 참여유형, 책무성 등도 깊은 규범적 담론이 요구된다. 현재처럼 충분한 규범적 논리, 또는 철학 없이 정부 편의에 따라 프로젝트 방식의 일방적 제도화가 추진된다면, 주민자치회는 방향성을 잃고 표류할 가능성이 높다.

주민자치회의 규범적 담론의 시작은 현대 민주주의에 대한 검토에서 시작돼야 한다. 단순히 ‘풀뿌리자치의 활성화와 민주적 참여의식 고양’이라는 막연한 수사(修辭)가 아니라, 주민자치회를 통해 어떤 민주주의 철학을 구현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실제 주민자치를 바라보는 선진국의 제도적 관점은 지방행정체계의 보조차원에서 새로운 주민조직을 도입하고, 일부 사무기능을 재분배하는 식의 부수적·단편적 접근과는 거리가 멀다.

근본적으로 대의민주제 병폐를 치유하고, 추락하고 있는 정부신뢰와 정당성을 회복하며, 행정서비스의 효과성을 향상시키기 위한 종합처방의 관점에서 제도 실험을 강화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최근 선진국의 주민참여와 자치에 대한 논의는 대의민주제의 반성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의민주주의의 정당성 위기
대의민주주의는 정당이 내세우는 후보들의 경쟁과 선거를 통해 국민이 소수의 전문 정치인에게 정치적 의사결정을 위임하는 것을 의미한다. 대의민주제는 1인 1표라는 투표권을 통해 시민의 참여기회를 보장하고 보편적, 정치적 평등의 원칙을 구현한다. 선출직 정치인들에게 위임된 정당한 권한을 통해 내려진 결정은 전체 사회에 구속력을 갖고, 일정한 자격을 갖춘 전문가 집단인 관료들에 의해 집행이 이뤄진다. 선출직 정치인과 일반시민 사이의 ‘정치적 분업’에 기반을 둔 대의민주제는 분명 현대사회의 지배적 정치패러다임에도 불구하고, 선진국을 중심으로 다양한 비판에 직면해왔다.

선진국의 대의민주제 비판은 ‘민주성결여’(democratic deficit) 개념으로 요약된다. 민주성결여는 시민과 정부제도 사이의 단절을 기술하기 위한 개념이다. 민주성결여의 원인을 살펴보면 첫째, 선거는 오직 선출직 공직자만을 책임지도록 만든다. 광범위한 다수의 공직자들은 선출직이 아닌 임명된 관료들이지만 이들이 시민에게 직접적으로 책임지는 일은 없다.

둘째, 몇 년에 한 번씩 치르는 선거는 다양한 의견과 평가의 가능성을 단 한 표로 결정하도록 강요함으로써 개별 공직자의 명확한 책임을 묻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셋째, 낮은 선거참여율은 정치인들로 하여금 시민전체 이익보다는 정치성향이 높은 특수이익집단에 유리한 정책을 선호하게 만든다. 그 밖에 정치와 시민사회의 철저한 분리, 공직자 행위에 대한 정보부족 등으로 정치인과 관료에 대한 ‘통제메커니즘’으로써 선거의 효과는 점점 약화되고 있다.

대의민주제의 민주성결여의 핵심은 엘리트중심의 정치와 행정이 주인-대리인 관계를 망각하고, 그들만의 게임에 몰두하면서 정치과정에 대한 시민의 좌절감과 국가기관에 대한 불신을 키워왔다는 것이다. 이런 정치적 소외와 불신은 정치적 무관심과 투표와 같은 전통적 형태의 정치참여 감소로 이어지면서 ‘축소된 민주주의’와 함께 국가정당성의 위기로까지 귀결된다.

오랜 세월을 두고 대의민주제가 정착한 정치선진국의 보편적 경험으로부터 도출된 민주성결여 현상은 우리사회에서 더 심각하고 왜곡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결과적으로 대의정부에 대한 불신의 폭도 그만큼 크다. 2014년 5월 OECD와 갤럽이 공동으로 조사·발표한 국가 간 비교에서 우리나라는 응답자의 24.8%만이 정부를 신뢰한다고 답하고 있다. 82.2%의 가장 높은 응답률을 보인 스위스와는 큰 격차가 날 뿐만 아니라, OECD 전체평균인 42.6%에도 한참 미달된다.

국가기관별 신뢰수준도 우리사회 왜곡된 단면을 보여준다. 2006년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국가기관들에 대한 신뢰를 10점 만점으로 측정한 결과, 국회 2.95점, 행정부 3.35점, 법원 4.29점으로 나타났다.
어떤 정부기관도 ‘보통’의 5점을 넘지 못할뿐더러 국회와 행정부의 경우 ‘생전 처음 본 낯선 사람’의 신뢰 점수인 4.0에도 미치지 못한다. 우리나라 국민은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낯선 시민보다도 자신을 대표하는 국회를 더 믿지 못한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이미 선진국을 중심으로 대의민주제의 민주성 결여를 치유하고,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을 갱신하기 위해서는 선거제도 등의 정치개혁만으로 부족하다는 결론 속에서 다양한 대안적 민주주의에 대한 담론이 형성돼왔다. 숙의민주주의, 결사체민주주의, 시장(고객)민주주의 등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관점들은 공통적으로 민주주의 갱신을 위해서는 시민의 투표행위 이상의 관여가 필요하다는데 동의하고, 시민참여 과정을 강화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런 대안적 민주주의 관점 중에서 주민자치회와 관련해 주목할 수 있는 것이 ‘결사체민주주의(associative democracy)’다.

결사체민주주의와 영국의 큰 사회 정책실험
특별법의 주민자치회는 이상적으로 주민이 자발적으로 조직한 결사체다. 주민자치회는 동네, 또는 마을과 같은 지역을 기반으로 주민참여 활성화와 공동체 회복을 이끌어내고, 지역문제 해결과 발전을 위한 주도자, 또는 파트너로서의 경험을 통해 주민의 사회적 책임의식을 배양하는 기능을 수행할 것으로 기대된다. 민주주의 보완을 위해 주민자치회 같은 자발적 결사체 중심의 시민참여와 자치를 강조하는 관점이 결사체민주주의다.

결사체민주주의는 시민사회에 존재하는 사회집단을 공적업무에 참여시킴으로써 민주주의의 범위를 공공서비스 제공에 관여하는 결사체들에게까지 확대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결사체민주주의의 대표학자 폴 허스트(Paul Hirst)에 따르면, 결사체민주주의의 핵심주장은 4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가능한 공적역할을 자치적 결사체에 위임한다. 둘째, 이런 노력이 국가의 과부하와 복잡화를 감소시키고, 대의정부의 효과적 작동에 기여한다. 셋째, 자치결사체가 국가와 기업부문의 위계적-기업적 조직의 권한을 대체하게 함으로써 이해당사자가 목소리를 낼 수 있고, 사회동의에 기초한 정부정책을 추진할 수 있다. 넷째, 결사체들이 건강, 교육, 복지 등 주요 공적기능을 담당할 수 있도록 공적인 재정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결사체민주주의 관점에서 결사체들은 정치적으로 세 가지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첫째, 대표기능으로서 자칫 소외될 수 있는 일반 시민의 이익과 공익적 요구가 결사체를 통해 대표될 수 있다. 또 결사체는 정부, 혹은 기득권의 권력남용을 감시, 비판, 견제는 기능을 담당하게 된다.

둘째, 공공정책관련 기능이다. 기본적으로 결사체 참여는 정책결정에 요구되는 신뢰할 만한 정보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정책형성 및 집행과정에서 정부의 짐을 덜어줄 수 있음을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공적역할의 결사체 위임은 시민결사체의 역량강화(empowerment)와 시민참여를 통한 시민덕성의 배양을 의미한다.

셋째, 결사체의 사회화기능으로서, 결사체 형성과 참여는 자발적으로 이익갈등을 조절하고 사회통합을 이끌어내는데 기여할 수 있다. 이런 시각을 대표하는 학자가 로버트 푸트남(Robert Putnam)이다. 그는 결사체참여가 사회적 협력, 사회적 신뢰를 증진시킬 뿐만 아니라, 좋은 정부의 버팀목이 되는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은 논리를 제시한다.

“사람들은 결사체에 참여하면서 대면적 상호작용을 통해 서로를 신뢰하는 법을 배운다. 신뢰와 호혜의 규범은 조밀하고 중첩된 네트워크를 통해 전체 사회로 확대된다. 이렇게 형성된 네크워크, 신뢰와 호혜의식은 시민으로 하여금 공유된 목적을 위한 집합적 행위를 가능하게 만든다. 사회적 신뢰를 통해 집합적 역량을 갖추게 된 시민은 자신들의 요구에 적절히 반응하는 역량 있는 정부를 기대하게 되고, 정부는 그런 기대에 부응하려고 노력한다. 결국, 결사체 참여를 통해 역량이 강화된 시민사회는 ‘좋은 정부’의 선순환 궤도를 형성하게 된다.”

결사체민주주의 관점은 2010년 집권한 영국의 보수당·자민당 연합정부의 ‘큰 사회(Great Society)’ 정책에 반영되고 있다. 큰 사회 정책은 정부실패와 시장실패의 대안으로 ‘사회’를 부각시킨다는 취지로 사회문제 해결의 주체를 국가에서 민간과 지역 주민으로 이전한다는 철학을 반영한다. 이를 위해 연합정부는 첫째, 주민조직을 포함한 시민사회단체에 공공서비스를 위탁한다. 둘째, 협동조합, 자선단체, 사회적 기업 등 제3섹터 시장을 육성한다. 셋째, 지역사회 주민이 지방행정에 실질적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기회를 넓힌다. 넷째, 정부의 행정정보를 민간에게 공개한다는 정책기조를 표방하고 있다.

"선진국의 주민참여와 자치에 대한 논의는 대의민주제의 반성에서 출발하고 있다"

실제 큰 사회를 만들기 위해 영국정부는 직접 5000여 명의 지역사회 지도자를 양성해 주민조직화를 이끌도록 지원하고 있다. 또 주민참여예산제의 적극적 추진을 통해 지방정부 예산에 미칠 수 있는 지역 주민의 영향력과 권한을 강화하고 있다.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 등 제3섹터 시장을 육성해 공공영역 서비스를 이양하는 것뿐만 아니라, 전철 및 마을버스 운영, 인터넷망 구축사업, 쓰레기수거 및 재활용 사업, 학교운영 등도 지역사회 주민조직 또는 민간에게 위임·위탁하는 다양한 사업들을 동시에 전개하고 있다.

민주적 혁신 관점의 주민자치회 제도화 모색
특별법을 제정하면서 우리나라 입법자들이 어떤 민주적 질서를 염두에 뒀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 이후의 정치적, 또는 학술적 논의에서도 주민자치회를 민주주의와 연계한 증거는 찾아볼 수 없다. 우리와는 달리 선진국에서는 주민자치회 같은 주민참여를 위한 제도적 논의가 대의민주제의 보완, 적극적 시민성 회복과 같은 국가의 ‘민주적 혁신’의 맥락에서 다뤄지고 있다.

결과적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정치철학적 논의가 제도설계의 중요한 초점이 되고, 무엇이 좀 더 바람직한 정치질서인지에 관한 숙의와 판단을 통해 주민조직에 대한 권한부여, 역량형성, 학습 등과 같은 다양한 수단들을 종합적으로 제도에 담으려는 노력을 확인할 수 있다.

현 시점에서 제대로 된 주민자치회 제도 실험을 위해서는 대한민국의 민주정치를 혁신한다는 백년대계의 관점에서 민주주의의 철저한 현대적 재해석을 통해 설득력 있는 정치원리와 실천방식을 갖춘 주민자치회 모형을 도출하는 작업부터 다시 시작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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