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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_주민자치회 대해부 2탄-각 영역에서 고려해야 할 주요 요건들] 대표성 확보 및 자치관리비 징수권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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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_주민자치회 대해부 2탄-각 영역에서 고려해야 할 주요 요건들] 대표성 확보 및 자치관리비 징수권 필요
  • 김찬동 서울연구원 연구위원
  • 승인 2014.10.06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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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영역 관점에서 바라본 주민자치회
주민자치는 생활정치로 행정관료제가 통제해선 안 돼
김찬동 서울연구원 연구위원.
김찬동 서울연구원 연구위원.

시대적 환경은 근린생활자치를 필요로 하고, 주민은 기존의 지방자치에 대해서 한계를 느끼면서 생활자치를 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이런 공감대를 표현하는 것이 바로 ‘보충성의 원리’다. 이것이 바로 ‘지방분권 및 지방행정체제개편에 관한 특별법’ 제27조를 통해 표현된 것이다.

즉, 풀뿌리자치의 활성화와 민주적 참여의식 고양을 위해 읍·면·동에 해당하는 행정구역의 주민으로 구성되는 주민자치회를 둘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안행부의 주민자치회 시범실시 표준조례(안)에서도 주민자치회 위원에 대해서 ‘주민을 대표하는 주민자치회의 구성원’이라고 해서 ‘대표성’을 명시하고 있다. 대표를 선출한다는 것은 정치의 가장 기본이다. ‘대표가 있는 곳에 세금있다’는 것도 근대 의회민주주의의 본질적인 원칙이다. 대표를 통해 정치를 하는 것이고, 대표를 통해 자치를 하는 것이다. 구성원의 대표를 선출하고, 이를 통해 다스리는 것이 자치다. 민주주의도 자치의 표현이다. 다시 말해 자치는 인류 공동체의 가장 본질적이고, 천부적인 주권의 표현이다. ‘대표성 원리’는 주민자치의 본질적인 요소다. 즉,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한국형 주민자치회’를 설치한다고 해도 이 본질적인 요소가 훼손된다면 이는 주민자치라고 하기 어렵다. 이점에서 한국적 상황에 부합하는 다양한 요소를 가미하더라도 빠져서는
안 되는 것은 바로 ‘주민자치의 본질을 가진 것’이어야 한다. 즉, 대표성의 원리를 갖고 있어야 한다.

이렇게 보면, 대의제 민주주의와 주민자치는 그 본질을 같이 한다. 즉, 자치의 본질에 해당하는 주민의 대표성을 확보한 주민자치회가 돼야 할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고, 한국형 주민자치회라고 하는 것이 이 본질적 요소를 배제한 상태에서 형식적 주민자치를 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렇게까지 깊숙한 토론과 의제화를 굳이 할 필요가 없다. 즉, 안전행정부가 추진하는 시범실시와 같은 협력형의 주민자치회를 하도록 그냥 그대로 두면 형식적 주민자치는 될지도 모른다. 그러면 실질적 주민자치와 형식적 주민자치의 괴리가 왜 생기는 것일까?

주민자치회에서도 정치현상 나타나
여기서 우리는 ‘정치의 관점’이라고 하면 어떤 것을 의미할까를 한번 생각해 보자. 정치는 통치와 지배를 의미하기도 한다. 칸트는 정치를 ‘법의 이성적 이념에 따라서 공법영역에서 그것을 실현을 도모하는 것’으로서 ‘만인의 통합된 의지에 의한 입법이 지배하는 공화제’라고 정의하고 있다. 좀 어렵게 정의한 것이지만, 정치의 개념에는 입법이 관련돼 있고, 공화제라고 하는 ‘다스림’의 체제를 언급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치의 개념을 굳이 국가의 권력획득이나 유지, 행사를 위한 투쟁이나 조정하는 것에 한정하는 것 같지는 않다. 인간의 집단생활 어느 곳에서나 실행되는 현상으로서 정치를 파악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즉, 국가현상설이 아니라 ‘집단현상설’로서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이해를 갖고 보면, 주민자치에서도 정치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또 정치를 ‘집단의 정책결정과정’이라고 정의하기도 하는데, 정책결정이란 어떤 목표를 선택하고 달성하는 방법이나 목표를 실현하는 일련의 과정을 의미한다. 주민자치회도 하나의 집단으로 본다면, 주민자치회에서도 정치가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이스턴(David Easton)은 정치를 ‘희소가치의 권위적 배분’이라고 하면서 ‘사회가치의 배분방식’이라고 한다. 그리고 라스웰(Harold Lasswell)도 정치를 누가 어떻게 무엇을 차지하느냐를 결정하는 규범이라고 한다. 주민자치회에서도 누가 자치를 하느냐, 어떻게 하느냐, 행정의 자치사무를 차지할 것인가가 제도설계에서 논의된다고 하면, 정치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규범이라고 하고 있으므로, 주민자치를 위한 규범을 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즉, 주민자치가 정치현상이라고 하면, 주민자치의 규범이 있어야 한다. 주민자치를 위한 규범의 제정이 필요하고, 이 규범에 따라서 자원을 배분하는 집행이 필요하다. 이처럼 규범을 정하고, 집행하는 것은 바로 ‘자치의 개념’이기도 하다. 자기입법과 자기통제를 ‘자치’의 핵심개념으로 보는데, 바로 주민자치는 정치이자 자치이기도 하다.

자치는 상호 견제와 균형 이뤄야
이렇게 정치의 개념을 자치의 개념과 연결돼는 것으로 파악할 때, ‘정치의 영역’ 관점에서 주민자치회라고 하는 것은 다분히 정치를 ‘자치와 구분되는 어떤 것’으로서 본다는 것이고, 여기서 어떤 것이란 바로 국회, 광역시·도의회, 기초시·군·구의회 등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제목이 의미하는 바는 주민자치회는 국회나 광역시·도의회, 기초시·군·구의회와 다른 어떤 것이라는 함의를 안고 있는 것이다. 즉 정치 영역은 권력을 갖고 있지만, 자치는 권력을 다뤄서는 안 된다고 하는 ‘탈권력’의 이미지를 자치에 덧씌우려는 의도가 들어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자치는 정치이기도 하다. 자치는 어느 집단에서나 나타나는 정치며, 집단의 정책결정과정이기도 한 것이다. 자치는 그 지역과 구역에서의 희소자원을 권위적으로 배분하는 공간이기도 한 것이다. 자치는 규범을 만들고, 그 규범을 실행하는 과정이기도 한 것이다. 자치는 당연히 공화정의 정체(polity)를 갖고, 권력이 분권돼서 상호견제와 균형을 이뤄야 한다.

이렇게 자치가 정치와 같은 개념이라는 인식으로 정리가 된다면, 굳이 주민자치회를 정치영역과 구분해 마치 주민자치는 세상권력과 세상정치로부터 구분돼 순진한 어린아이와 같은 세속욕심에서 구별된 것으로 인식해서는 안될 것이다. 당연히 주민자치회도 국회나 지방의회와 같이 대표성을 갖고, 그 구역에 한정된 것이기는 하지만, 자치조례를 제정할 수 있는 입법권을 갖고 있어야 하며, 그것을 집행할 수 있는 통제력을 갖고 있어야 할 것이다.

한국의 주민자치회가 겉돌고 있고, 공기가 빠져버린 풍선같이 맥없는 존재가 된 것은 자치의 본질에 ‘정치’가 있다는 것을 굳이 무시하려고 한데서 생기는 것이 아닐까? 그러다 보니, 정치와 지방자치의 정당성의 근원이 됐던 ‘투표’에 의한 대표성을 주민자치에는 제대로 구비하지 못하도록 하려 한데서 주민자치가 '형’해화돼버린 것은 아닐까? 다시 말해, 주민자치를 주민자치답게 하기 위해서는 대표성을 확보하게 해줘야 한다. 주민자치회가 국회와 광역지방의회, 기초지방의회와의 차이는 ‘규모’의 차이에 있는 것이지, 결코 정치의 내용에서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

주민자치회에 대해서도 주민으로 구성된 주민총회라든지 주민의 투표에 의해 정당하게 대표성을 가진 주민자치회 임원들이 돼야 한다. 주민자치회의 이사와 임원들은 주민으로부터의 대표성을 확보해야 한다. 그래야 동행정에 대해서 대표성을 갖고 통합형의 주민자치 모델을 구성하게 될 것이며, 필요하면 동행정을 자치구로 복귀시키고, 주민주도형의 주민자치모델도 실시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주민자치회가 대표성을 가질 때, 주민자치를 위해 주민세를 징수할 수 있을 것이고, 세대별로 주민세와 관할 구역에 대한 ‘자치관리비’를 징수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주민총회나 주민자치회의 이사들은 임원들의 자치성과를 평가해서 차기년도의 임원선출 시에는 교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주민자치회가 대표성을 갖고, 자치회비와 주민세를 갖고, 관할구역에 대한 ‘자치’를 제대로 할 수 있게 해야 실질적인 주민자치가 실시될 수 있을 것이다.

현대 대의제 민주주의는 위기
대의제 민주주의는 대표에 의한 통치다. 간접민주주의인 것이다. 그런데 현대 의회제 민주주의는 대표성에 실패하고 있다고 한다. 즉, 대표자들이 국민(주민)의 이익을 위해 일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일하거나, 국민(주민) 전체의 공익을 위해 일하기보다는 특정한 집단의 사익에 봉사하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즉, 대리인의 실패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그것이 바로 현대 대의제 민주주의, 의회제 민주주의의 위기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타난 것이 국민(주민)이 직접 정치를 하려고 하는 현상이다. 그것이 바로 직접민주주의다. 국민투표제도라든지, 주민발안제라든지, 주민소환제 등의 제도가 도입된 것은 바로 대의제 민주주의의 한계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들이다. 그 외에도 대의제 민주주의의 대안으로서 숙의민주주의, 참여민주주의 제도를 도입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공론조사, 주민참여예산제도, 정보공개, 주민배심원제 등은 대의제민주주의의 실패를 보완하기 위한 제도적 논의들이다.

그 외에도 국가실패에 대한 해결책으로서 민영화, 분권화의 제도개혁을 시도하기도 했다. 즉, 국가권력을 시장 영역이나 시민사회 영역에 분권화시킴으로써 시장의 자율적 조정기능이나, 시민사회의 자발적 참여기능을 활성화시키려는 개혁을 시도한 것이다. 또 이런 노력과 병행해서 새로운 하나의 노력이 바로 근린생활정치를 제도화하려는 노력이다. 근린생활권역에 자치권을 부여하고, 협력적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것이다.

미국의 대도시인 뉴욕에서도 커뮤니티 버로(community borough)를 설치한다든지, 커뮤니티 구역(community district), 근린의회(neighborhood council)를 설치한 것이다. 그래서 시정부의 예산편성권이나 지구단위계획에 대한 참여권한을 부여해 근린생활권역의 주민이 행정과정에 참여하고, 정책과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 것이다. 이를 통해 행정관료제는 보다 적은 비용으로 사회적 효율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정책집행의 저항도 적어지게 된다. 또 정책형성과정에 미리 근린생활권역의 현장에서 주민의 의견과 요구를 듣고, 반영하고, 소통하면서 행정의 합리성을 제고해 나간다.
필요하다고 하면, 근린생활권역에 자기결정과 자치책임을 질 수 있는 주민자치권을 부여함으로써, 주민이 스스로 ‘정치’를 경험하게 함으로써 민주주의의 학습이 된다. 또 자기 삶에 영향을 미치는 공간에 대한 자치를 통해 삶의 보람과 행복도 경험하게 되고, 능동적인 인간이 되며, 책임 있는 사람이 되고, 자치역량이 키워지는 것이다.

향약의 이상적인 원형 회복 필요
풀뿌리민주주의는 바로 주민자치가 살아있어야 한다. 주민자치회가 근린생활권역의 주민이 참여해 주민자치회의 이사들을 선출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에는 조선시대에 이미 향약(鄕約)이라고 하는 자치회가 있었다. 향약은 공동체를 결속시키고, 체제의 안정을 도모하는 기능을 했다. 가장 이상적인 향약은 1577년의 율곡 이이가 만든, 서원향약을 발전시킨 해주향약이다. 한국의 향약으로서 가장 완벽하다고 알려진 것이다. 향약은 조선초 훈구파들이 만든 경제소와 유향소라고 하는 기관들이 향촌사회에 대한 수탈과 비리로 얼룩지게 되자 사림파들이 경제소와 유향소를 철폐하고 만든 것이다. 향약은 중소지주층이 향촌의 지배질서를 새롭게 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다.

이황도 중국의 여씨향약을 도입해 조선의 실정에 맞게 향약을 만들기도 했다. 물론, 후대에 17세기 지방관들이 향약을 확산시키는 과정에서 면리제(面里制)에 편입시키면서 수령권 강화의 도구로 전락하기도 했고, 18세기 그 성격이 변모돼 하계와 상계가 대립하고 갈등하면서 향약으로서 ‘지역공동체의 주민자치’를 잃어버리기도 했다. 21세기 한국에서 새롭게 도입되는 주민자치회는 이렇게 좋은 주민자치의 전통이었던 향약의 이상적인 원형을 회복하는 제도가 됐으면 좋겠다. 소위 ‘한국형 주민자치회’는 이이의 향약의 좋은 전통을 현대적으로 새롭게 살리면서, 주민자치의 본질이라고 하는 ‘주민의 대표성’을 함유하고 있는 것이 됐으면 좋겠다.

주민자치는 비정당정치
한국형 주민자치회는 정치영역의 관점에서 볼 때 ‘작은 정치’다. 그러나 주민자치에는 정당이 개입하지 않는다. 즉 초당적(non-partisan)이다. 정당활동의 경험이 있었던 사람이라고 해도 정당을 표방해서는 안 된다. 생활정치를 하는 사람들이다. 다른 말로는 생활자치와 마을만들기, 그리고 마을공동체를 만들고 마을사업을 하는 사람들이다. 이를 위해 주민이 주민답게 살 수 있도록 마을강좌, 혹은 고전인문독서를 통해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법을 배우게 한다. 철학이 있는 마을, 도서관이 마을생활의 허브가 돼 주민이 즐겁게 모이고, 대화하고, 토론하고, 생각하는 공간이 있는 주민자치가 돼야 한다.

이 점에서는 정당이 정책대결을 벌이는 ‘정당정치’와는 구별돼야 한다. 주민자치는 ‘비정당정치’여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행정관료제가 주민자치를 통제해서는 안 된다. 행정관료제는 주민이 자치할 수 있도록 공간을 비우고, 주민자치의 공간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주민자치회들의 협의체나 연합체와 행정관료제가 만나서 행정과정에 대표성을 가진 주민을 참여시키는 협업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행정은 자치와 함께 공공성을 만들어가는 수레의 두 축이다. 자치와 행정은 상호견제하고, 균형을 이뤄야 한다. 정당정치는 행정을 통제하는 것이지, 자치를 통제하는 것이 아니다. 정당정치는 정책과정에 참여하는 것이지, 자치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 정당정치와 주민자치는 구별된다. 그러나 정치는 주민자치 현상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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