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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_주민자치회 대해부 2탄-각 영역에서 고려해야 할 주요 요건들] 정부를 대신해 스스로를 돌보는 제3섹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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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_주민자치회 대해부 2탄-각 영역에서 고려해야 할 주요 요건들] 정부를 대신해 스스로를 돌보는 제3섹터
  • 전대욱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수석연구원, 안전행정부 지역공동체포럼 전문위원
  • 승인 2014.10.07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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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경제 영역 관점에서 바라본 주민자치회
주민이 지역사회 생태계를 조성할 수 있는 플랫폼 역할
전대욱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수석연구원, 안전행정부 지역공동체포럼 전문위원.
전대욱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수석연구원, 안전행정부 지역공동체포럼 전문위원.

국가재정이나 경제적으로 큰 위기가 닥쳤을 때, 부족한 재원을 지역공동체가 자조적으로 조달해 주민을 스스로 돌보는 사례 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쿠바의 사례다. 구 소련연방이 해체된 이후 미국에 의해 금수조치를 당해 무역규모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이었던 쿠바는 1980년대 후반부터 극심한 경제위기에 봉착한다. 경제는 곤두박질치고, 자동차는 거리에 방치되고, 석유를 많이 소모하는 모든 공장과 거대한 국영농장은 거의 정지상태가 됐다. 낮은 식량자급률로 인해 사람들은 식료품과 생필품을 구하느라 아비규환이 됐고, 도시는 쇠퇴해갔으며, 삶의 질은 경제와 함께 곤두박질쳤다. 그렇게 쿠바는 최빈국으로 전락했고, 점차 세계경제에서 잊혀져갔다.

경제위기의 해법, 지역공동체의 자조성
그로부터 약 20여년 후, 놀라운 반전이 일어났다. 2000년대에 이르러 쿠바는 UN으로부터 농업, 보건, 안전 등 몇 개의 분야에서 모범국가로 주목받게 됐다. 전 세계에서 가장 잘 산다는 인근의 경제대국 미국보다 영아사망률이 낮고, 기대수명이 높으며, 전국민이 대학교까지 무상교육을 받고, 석유를 쓰지 않는 유기농업의 선진국가로 쿠바를 지목했다.

가장 놀라운 것은 미국 남부의 카리브만 한가운데 허리케인이 가장 빈번한 섬나라에서 태풍으로 인한 사망자가 연평균 3명 정도에 불과했다는 사실이다. 2007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쿠바에서 불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미국 뉴올리온즈를 강타했을 때, 전 세계에서 가장 선진국이라는 미국조차 사망자가 수천명이 발생하고 이재민은 수십만명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이 숫자는 경이적이다.

경제가 파탄나고 국가는 국민을 위해 해줄 수 있었던 것이 거의 없던 이 쿠바에서 이런 기적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사람들은 먹을 것이 없었기에 우선 모든 국민이 자신의 집 근처에서 텃밭을 일궈야했고, 더욱이 비료나 농약을 쓸 수 없었기에 유기농, 혹은 자연농법(permaculture)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아울러 석유가 없었기에 대규모 플랜테이션으로 수출품을 생산하던 방식을 포기한 국영농장은 해체됐고, 지역 주민이 운영하는 협동조합 농장으로 바뀐 곳에서도 마찬가지로 유기농에 의해 식량작물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농부는 엔지니어보다 더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직업이 됐고, 마을공동체는 공동으로 도시농업을 경작하고, 공동으로 육아를 수행하며, 마을 내의 취약계층들에 대한 우선적인 돌봄을 담당한다. 또 허리케인이 다가오면 마을지도를 펼쳐놓고 마을에서 자연재해에 취약한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대피시키고, 허리케인이 물러나면 마을 주민이 공동으로 부서진 집을 수리한다. 결국, 이 반전의 핵심에는 지역공동체가 있다. 주민이 지역공동체를 통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돈이 있고 없고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각성시킨다.

시장과 정부, 제3섹터로서의 주민자치
1970~80년대를 거치면서 영국 등 유럽지역의 경제는 불황을 겪는다. 소위 ‘유럽의 동맥경화증(Eurosclerosis)’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1970년대 두 차례의 석유파동을 거치면서 큰 타격을 입은 유럽에서는 낮은 성장률과 높은 실업률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시기 경제성장률이나 일자리창출 등을 꾸준히 유지하는 미국에 비해 유럽의 경제는 마치 동맥경화증에 걸린 것과 같았고, 미국과 일본, 신흥공업국 등의 산업경쟁력은 유럽지역의 산업공동화를 가속화시켰다.

당시 복지국가를 지향하던 유럽은 근본적인 산업경쟁력을 회복하기보다는 공공지출에 의한 경기부양을 시도하다가 재정위기를 초래하고 말았다. 1976년 스웨덴의 복지지출 억제정책이나 영국의 IMF 구제금융 등은 유럽의 국가재정 위기를 나타내주는 중요한 흐름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재정위기는 당연히 지방재정의 위기로 귀결되고, 지역 주민이 필요로하는 복지, 일자리, 안전, 환경 등의 다양한 공공서비스는 축소되거나 심지어는 중단되기도 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1980년대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영국 대처정부가 등장했다. 이 시기 영국정부는 공공지출을 줄이기 위해 정부 및 자치단체의 기능 일부를 지역 업체에 아웃소싱하기 시작했다.

이 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지역 업체들은 기존의 기업들이 아니었다. 공공부문을 대신할 새로운 지역기반 사회적 목적을 지닌 기업들이 필요했고, 그 과정에서 '커뮤니티 협동조합’과 ‘마을기업’이 최초로 등장했다. 기존의 취약계층을 돌보던 정부가 재정위기로 더이상 이를 수행할 수 없게 되자, 지역공동체가 스스로를 돌보면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모델을 1994년 호소우치 노부타카가 일본에 도입시켰다. 일본 역시 장기침체로 지방재정의 위기를 맞게 됐고, 정부서비스가 축소돼 대안이 필요했던 시기였다. 이후 마을만들기 등과 결합해 지역의 유휴자원 등을 활용, 비즈니스의 형태로 수익을 창출하면서 이웃을 챙기는 마을기업으로 정착하게 됐다.

이렇게 정부가 재정위기를 겪으면서, 정부를 대신해 스스로를 돌보는 지역공동체를 우리는 ‘제3섹터(third sector)’라고 칭한다. 원래 제3섹터는 사적이익을 추구하는 민간부문(private sector)도 공적이익을 추구하는 정부 부문(public sector)도 아닌, 공적이익과 사적이익의 양자를 동시에 추구하는 경제주체를 의미한다. 제3섹터는 전통적인 시민사회 영역, 민자유치를 통한 인프라의 건설, 사회적 기업 등 다양한 영역에서 공공의 목적을 위한 민간, 혹은 민관 거버넌스 방식의 경제주체를 총칭한다.

이는 시장경제에서 민간부문의 이기적인 속성으로 인해 발생하는 ‘시장의 실패’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나서지만 재정위기 등으로 제대로 이를 수행하지 못한 정부의 실패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등장한 개념이다.

여기서 시장의 실패라 함은 시장경제에서 민간부문은 사적이익을 위한 효율성만을 추구하기에 인구가 많지 않은 지역에서 높은 비용을 들여서 서비스를 제공하기 어렵고, 또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는 공공재와 같은 경우 무임승차 혹은 오남용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또 시장의 실패로 인해 정부는 공공지출을 통해 시장에서 제공되지 못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즉, 낙후지역이나 취약계층에 대한 서비스나 환경이나 의료와 같은 공공적인 성격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원래 정부의 중요한 역할 중의 하나다. 그러나 재정위기와 같은 상황에서는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며, 이를 정부의 실패라고 칭한다.

앞서 말한 지역 주민이 조직한 협동조합이나 마을기업, 그리고 주민자치회는 전형적인 제3섹터라고 볼 수 있다. 지역 주민은 어쩌면 ‘사(私)’적인 영역에 가깝다고 볼 수 있지만 지역공동체의 주민자치는 ‘공(共)’적인 영역에 있으며, 이를 통해 지방자치단체나 정부와 같은 공적인 영역으로 연결시키는 ‘공공(公共)’의 목적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예컨대 일부에서 마을기업 등은 일부 사람들의 사적인 조직이므로 공적인 지원이 필요하냐는 비판을 들은 적이 있지만, 주민자치회나 마을기업, 사회적기업 등은 공적인 조직으로서 이런 공적인 지역사회의 집합이 바로 공공의 목적에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한국 상황 돌파구, 주민자치와 기업가 정신
전술한 내용들은 경제나 재정의 위기상황을 전제로 한 이야기다. 한국에서는 과연 이런 위기를 전제할 수 있는가? 많은 사람들은 위기라고 떠드는 것, 부정적인 뉘앙스의 이야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한국경제가 최근 몇십년간 걸어왔던 것처럼 빛나는 고도성장을 이어가야 하고, 그럴 것이라고 모두 생각한다.

필자도 그렇게 믿고 있지만, 한편 심각한 경제적 편중, 지역 간 격차, 고령화, 낮은 출산율과 실업, 높은 노동강도와 낮은 복지수준, 제조업의 국외이전, 그리고 최근의 안전사고와 사건들 등을 생각하면 객관적으로 이런 것이 위기가 아니면 무엇이 위기냐는 생각도 든다.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 지역 주민 개개인이 과연 행복한가 하는 점이다. 자살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라는 점은 현재 한국사회의 불안감과 주민안전망의 부재를 나타내주는 중요한 지표다. 과거 냉전시대의 남북 간 대립을 경험하면서 시장경제를 우리가 지켜야 하는 중요한 ‘체제’로 인식해 왔지만, 경제가 고도화되고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시장경제도 ‘실패’할 수 있다는 것과, 이를 보완하기 위한 정부조차도 실패하는 것을 이제 관찰한다. 시장이나 국가가 제공하지 못하는 그 안전망을 제공하는 제3의 존재가 필요하며, 앞선 사례에서 본 것처럼 이제 주민자치를 통한 지역공동체를 주목한다.

현재와 같은 어려움에서 지역공동체와 주민자치는 어떻게 돌파구가 될 수 있는가? 그것은 이미 시장경제 시스템에서 우리가 익히 봐왔던 혁신과 창조의 원리로 설명할 수 있다. 시장 시스템에서 새로운 돌파구는 창조적 파괴와 혁신에 의해 이뤄지며, 이를 달성하는 주체는 혁신적인 기업이다. 혁신적인 기업에는 언제나 뛰어난 리더가 있어 위험을 감수하고,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조직으로부터 경쟁원천을 창출하며 혁신을 주도한다. 이런 사람들을 ‘기업가’라고 부르고, 난관과 위험을 극복하고 새로운 것을 창출하려는 그 마인드를 ‘기업가 정신’이라고 부른다.

필자는 한국에서의 사회적 경제나 마을만들기, 그리고 주민자치에 있어서 늘 이런 기업가 정신을 강조해왔고, 특별히 이를 ‘사회적 기업가 정신’이라고 칭해왔다. 시장에서의 혁신적 기업의 유인은 독점이윤의 창출이라고 경제학에서는 이야기하지만, 주민자치의 관점에서 사회적 기업가 정신의 원천은 지역사회에서의 ‘사회적 가치’의 실현에 있다.

많은 분들이 주민자치위원을 하는 이유는 개인마다 다양하지만 개인의 재능을 지역공동체에 기여하고, 보다 잘 살고 행복한 지역사회를 만들겠다는 생각은 아마도 공통적일 것이다. 시장이나 국가가 해결하지 못하는 지역사회의 취약성을 주민자치를 통해 지역공동체가 스스로 해결하며, 이는 직면한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이런 지역사회를 혁신하는 리더로서의 사회적 기업가 정신의 출발점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시장경제 체제가 공산주의와 같은 계획경제보다 우월한 점은 바로 이 ‘혁신성’이다. 자유로운 시장활동 속에서 사람들의 자기조직화와 기업가 정신은 혁신을 유도한다. 마찬가지로 주민이 자유롭게 자치활동을 하면서 지역사회의 혁신을 유도할 수 있다. 시장경제 관점에서의 주민자치는 바로 이런 모습을 기대한다.

주민자치회의 향후 비전
최근 ‘생태계’와 ‘플랫폼’이란 용어를 많이 쓰고 있다. 특히,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로 ‘창조경제’를 중요한 정책기조로 제시하면서 이 용어가 유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 두 개념이 21세기적 사회경제 시스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개념이라는 점에 동의하려면 그 뜻을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첫째, 생태계는 다양한 이해당사자들로 구성된 복잡한 네트워크를 의미한다. 그 관계망 속에서 다양하고 독립적이며, 역량있는 개체들이 ‘협쟁(協爭: 협조와 경쟁, co-petition)’을 통해 전체 시스템이 융성하고 지속가능성이 높아진다. 자연생태계를 생각해보면 각자의 생존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건강한 생물체들이 먹이사슬이라는 복잡한 네트워크를 통해 경쟁을, 때로는 협조를 하는데, 결과적으로 생존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생물체들의 먹이사슬이 물질과 에너지를 순환시키고, 새로운 환경변화의 위협에 대응하며, 새로운 유전적 조합을 창출시키며 진화함으로써 생태계 전체가 지속가능하고 융성하게 된다.

사회생태계, 특히 시장경제 시스템 역시 이래야 한다는 것이다. 자연생태계처럼 포식종과 피식종의 적절한 세력의 밸런스는 물론, 다양한 종류의 개체들이 서로 협력하고 경쟁하면서 새로운 환경변화에 적절히 적응하고, 다양성이 융합되면서 새로운 창조력이 발현돼야 한다.

둘째, ‘플랫폼’은 이렇게 다양하고 건강한 개체들이 서로 경쟁이나 협력을 펼칠 수 있는 ‘장(場, sphere)’을 의미한다. 기차역을 의미하는 이 플랫폼은 기차를 타고 내리는 모든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한마디로 ‘마당’ 혹은 ‘아고라’와 같은 존재다. 이런 플랫폼은 창조경제에서 개개인의 역량과 창조성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게 한다. 플랫폼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만나서개인의 창조성을 쉽게 대중적으로 전파하고, 집단지성을 발휘하고, 조직학습이 이뤄지고, 협력이나 경쟁이 이뤄지는 생태계가 조성된다는 점에서 플랫폼을 조성하는 것은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과 함께 창조적인 시장경제를 만드는 핵심적 요인이다.

과거와 달리 국가경제도 한정된 자원을 선택과 집중을 통해 될법한 곳에 몰아주는 ‘육성’은 이제 더이상 요원하다. 대신 다양한 경제주체들이 생겨나고, 또 역량을 갖추고 있으므로 이렇게 플랫폼을 만들어서 그들의 개별적 역량을 사회 속에서 마음껏 발휘하도록 하는 정책으로 바뀌고 있다. 즉, 리더의 역할은 육성보다는 ‘지원’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주민자치회는 지역사회의 주민이 더 이상 세계경제나 대기업, 국가 등의 거대사회에 끌려 다니지 않고, 자신의 손으로 스스로의 인생을 만들 수 있도록 플랫폼으로서 기능하고, 이런 주민의 사회생태계를 조성하는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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