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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원호 가톨릭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보충성 원리는 시민의 자유 보장 및 인격 발현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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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원호 가톨릭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보충성 원리는 시민의 자유 보장 및 인격 발현 조건”
  • 박 철 기자
  • 승인 2020.01.08 15: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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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특집] ❸ 분권·자치 담보하는 보충성 원리 제기
채원호 가톨릭대학교 행정학과 교수가 발표를 하고 있다. / 사진=박 철 기자
채원호 가톨릭대학교 행정학과 교수가 발표를 하고 있다. / 사진=박 철 기자

20019년 12월 6일 개최된 한국도시행정학회 동계학술대회 제3회의 제16세션에서 채원호 교수는 ‘주민 참여와 직접민주주의 가능성’ 발표에서 보충성 원리를 분권·자치를 담보하는 원리로서 제시했다. 그리고 지면 한계상 본지에서는 발표문 중 직접민주주의 내용에 대해서는 게재하지 못했지만, 채원호 교수는 대의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를 절충한 혼합정체인 ‘액체성민주주의(위임민주주의)’도 제시했다. 즉 대의민주제 하에서는 유권자 의사를 개별 정책에 반영하기 어려우며, 현대 사회에서 전체 유권자가 정책결정에 직접 참여하기 어려운 제약 때문에 직접민주제도 현실성을 갖기 어렵다는 것이다. 액체성민주주의는 특정 정책에 관해서만 직접적으로 신뢰하는 자를 대리인(Delegate)으로 함으로써 자신의 투표권 위임을 인정한다. 그럼에도 기자는 참여민주주의, 숙의민주주의, 액체성민주주의 등을 담보하는 토대로서 채원호 교수가 제시한 ‘보충성 원리’가 한국 사회에서 제대로 작동되길 기대해 본다.   <편집자 주>

문재인 정부는 저출산·고령사회, 4차 산업혁명 등 새로운 환경에 직면해 새로운 국가 발전 전략으로 자치분권체제 확립을 지향하고 있다. 그러나 2018년 9월에 확정·발표된 자치분권 종합계획에 대해서는 비판적 여론이 적지 않다. 역대 정부 가운데 가장 적극적으로 분권과 군형발전을 국정의 전면에 내세워 추진했던 참여정부와 비교할 때, 몇몇 계획을 제외하면 내용상 큰 차별성을 찾아보기 어렵고 실행력 담보가 미흡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주민자치와 관련해서는 적지 않은 진전을 기대할 수 있을것 같다. 자치분권의 비전으로 ‘주민과 함께하는 정부’ ‘다양성이 꽃피는지역’ ‘새로움이 넘치는 사회’를 설정해 주민주권 구현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주민주권 구현을 담보하기 위해 ① 주민 참여권 보장 ② 숙의 기반의 주민 참여 방식 도입 ③ 주민자치회 대표성 제고 및 활성화 ④ 조례 제·개정의 주민직접발안 제도 도입 ⑤ 주민소환 및 주민감사 청구요건의 합리적 완화 ⑥ 주민투표 청구대상 확대 ⑦ 주민참여 예산 제도 확대라는 추진과제를 내세우고 있다.

이들 과제가 추진되면 주민 참여 기반의 직접민주주의 공간이 더욱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전술한 과제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추진 원칙 및 전략이 필요한데, 참여정부에서 3대 추진 원칙(선분권후보완 원칙, 보충성 원칙, 포괄성 원칙)과 전략을 제시한 것에 비하면, 현정부는 추진 과정에서의 원칙이나 철학이 결여돼 있는 것 같다. 본고에서는 1990년대 이후 세계적으로 분권·자치를 담보하는 원리로서 주목받고 있는 보충성의 원리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보충성 원리의 기원

보충성의 원리란 기본적으로 개인이나 기본적으로 개인이나 소규모 집단이 할 수 없는 것에 한해 정부가 개입한다는 사고방식이다. 이런 원리의 기저에는 ‘개인의 존엄’이 있으며, 국가나 정부는 개인에게 봉사하는 존재로 본다. 따라서 보충성 원리는 개인이나 개인으로 구성되는작은 집단(가족, 교회, 자원봉사그룹)의 자발성·주도성을 중시한다.

보충성 원리의 기원은 가톨릭의사회교설, 구체적으로는 1891년 5월 15일 교황 레오 13세의 회칙 ‘레룸 노바룸’(Rerun Novarum)에서 비롯한다. 이 회칙은 가톨릭교회가 사회 문제, 노동 문제에 관해 정식으로 언급한 최초의 것이다. 라틴어레롬 노바룸은 ‘새로운 사태에 관해’를 의미하며, ‘자본과 노동의 권리와 의미’라는 표제가 분어 있다. 레룸 노바룸은 정부가 모든 것을 통제해서는 안 되며, 그렇다고 개인에게 모든 것을 맡겨서도 안 되는 중도의 정부를 이상적인 것으로 봤다.

이 교설은 가톨릭교회의 기본적인 국가관이 되는데, 이는 다시 비오 11세(Pius XI)의 ‘콰드라게시모 안노, 사회경제 질서 제건안’(Quadragesimo Anno)(1931)에 의해 발전하게 된다. 이후 사회교설은 미국 사교단에 의한 성명 ‘만인을 위한 경제적 정의’(1985)에서 구체화하게 된다.

이와 같은 보충성 원리는 유럽지방자치헌장과 세계지방자치헌장에 반영돼 있다. 세계지방자치헌장은 유엔인간거주센터(UNCHS)와 도시·지자체세계조정협회(WACLAC)가 공동 작성해 1998년 5월에 제1차 초안으로 공포한 바 있다. 이 초안에는 인민의 의사는 시민으로부터 가장 가까운 지자체인 기초 지자체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실현할 수 있기 때문에 사무 배분에 있어서도 보충성 원리가 불가결한 원칙으로 제시돼있다.

보충성 원리의 양면성

보충성 원리는 동전의 양면처럼 ‘소극적 의미’와 ‘적극적 의미’를 동시에 내포한다. 소극적 의미는 국가에 의한 개인의 자율성 침해를 보호한다는 의미인 반면, 적극적 의미는 개인의 자율성 보호, 즉 인격의 자유로운 발현을 위해 국가가 적극적인 도움을 제공한다는 의미로서 상대적인 개념이다.

‘아래로부터 상향적 사회구조’를 내용으로 하는 보충성 원리의 기본사상은 인간 공동체를 일종의 피라미드로 이해한다. 중세의 사상가들이 생각하는 질서의 정당성은 위로부터 아래로 향한 하향식 권위의 질서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즉 그 정당성은 창조주 하느님으로부터 무수한 굴절 과정을 통해 가장에게까지 이르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대의 보충성 원칙은 개인에서 출발해 아래로부터 위로의 상향식 정당성을 근거함으로써 ‘자유의 우위’에 의해서 ‘권위의 우위’를 붕괴시켰다. 다시 말해 신(神) 중심적 질서체계가 인간 중심적 질서체계로 대치됐고, 초개인적 질서는 개인적 질서로 양극이 전도됐다. 사순절 교황교서는 보충성 원리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개인이 자기의 능력과 자기의 활동으로 이행할 수 있는 것을 그에게서 빼앗아서는 안 되고, 또 사회에 양도해서도 안 된다.”

이런 표현은 국가의 개인에 대한 간섭이 가능한 한 자체될 것을 내용으로 하는 ‘국가 활동의 제한 원리’라는 점에서 소극적 의미의 보충성 원칙이 된다. 여기서 개인 능력의 범위에 속하는 과제는 고유하며, 결코 타인(상위 공동체)에 의한 침해는 물론이고, 스스로의 포기도 불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보충성 원리에 의해 보호되는 자율성은 인간 존엄의 내용이 된다. 왜냐하면 자율적인 존재로서의 인간에게 자기과제의 이행은 의무인 동시에 권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자율성은 국가를 포함한 상위 공동체의 적극적 작용에 의해 보호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단지 소극적 자체에 의해 보호될 뿐이다. 이처럼 보충성 원칙의 소극적 내용은 국가 간섭의 자제를 통해 시민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한다는 점에서 자유국가 원리와 관련을 맺고 있다.

보충성 원리의 적극적 내용은 개인이 스스로 자기의 과제를 이행할 능력이 없을 경우에 국가가 보조와 간섭을 통해 그 기능 발현의 전제조건들을 충족시키기 위해 도움을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독일 사회민주당의 기본강령은 보충성 원칙의 적극적 내용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국가는 개인이 자유로운 자기책임과 사회적 의무 속에서 자기 스스로 발현할 수 있는 전제조건을 창출해야 할 것이다. 기본권은 국가에 대해 단지 개인의 자유만을 보장해서는 안 되고, 사회 형성적 권리로서 국가를 함께 근거 지워야 한다. 사회국가로서 국가는, 각자에게 자기책임의 자기결정을 가능케 하고, 또 자유로운 사회의 발전을 촉진시키기 위해, 국민을 위한 생존 배려를 해야 한다.”

이 말이 의미하는 바는 국가가 개인의 자유만을 보장하는데 그쳐서는 안 되고, 적극적으로 개인의 인격 발현의 전제조건을 구비해야 할 의무가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여기서의 적극성은 개인의 자율성 보호, 인격의 자유로운 발현을 위한 국가의 적극적인 도움을 의미한다. 즉 명확한 목적에 근거해 협력적으로 책임과 권한을 공유함을 말한다. 나아가 보충성 원칙의 적극적 내용은 사회의 역사성이나 현실 관련성을 잘 반영하고, 경험과학적으로 ‘현재의 것보다 더 좋은 것’을 추구한다는 측면에서 동적 원리로서의 내용을 내포한다.

시민사회의 과거, 현재와 미래

근대 이후 세계 역사에서 보듯이 시민사회는 한 국가의 정치에서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절대왕정의 붕괴, 산업 자본주의 확대, 부르주아 세력의 부상 등으로 국가와 사회가 분화하는 과정을 겪었다. 이 과정에서 시민사회는 국가의 공적인 권위에 대항해 자율성을 갖는 영역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시민사회는 권위주의적인 정권과 독점 자본에 대한 대항 세력으로 나타나게 됐고, 민주화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시민사회 단체의 수가 중앙에 집중함으로써 지방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한계점도 있었으나.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한 사회운동은 한국 사회의 민주화와 경제 발전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과거의 시민사회가 정부, 기업과 분리돼 최소한의 상호작용 속에 섹터 내에서 활동했다면, 최근에는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 시장, 시민사회가 접축면을 늘려가며 협력 활동을 증대시키고 있다. 즉 섹터 간 교섭(교집합) 영역이 늘어나면서 전통적인 역할은 희미해지고 새로운 하이브리드 조직이 나타나고 있다. 섹터 간 상화작용의 결과 협업, 파트너십, 혁신의 새로운 모델이 탄생하기도 한다. 그런 사례로 ‘사회적가치를 구현하는 사업모델’이나 ‘시장 행위자로서의 시민사회’ 모델 등이 등장하고 있다.

향후의 시민단체 운동 모델은 정부, 시장, 시민사회 영역의 교섭(교집합)이 증가하면서 정부 혁신, 기업 혁신, 사회 혁신이 호응하고 선순환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역할 모형을 찾아야 할 것이다. 특히 향후 우리사회는 저출산·고령 사회의 영향으로 경제활동 인구가 급격하게 감소해 총부양률이 급격하게 높아질 것이다. 총부양률의 급격한 증가와 저성장으로 인한 재정절벽 현상 심화는 시민사회에도 영향을 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지역에서는 보충성 원리의 적용과 사회 혁신 생태계 조성을 통해 주민들이 서로 돕는 상생협력과 공동체 문화 복원이 필요하게 된다. 시민사회의 패러다임도 시민에서 공민(共民)으로 전환이 필요하다.

보충성 원리와 지역 공동체

1980년대 이후 복지국가 패러다임의 위기 속에 작은 정부론이 강조되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최근에는 정부재정 과부하 상황 속에서 영국, 일본 등에서 큰 사회 담론이 주목받고 있다. 작은 정부·큰사회 담론은 수직적 보충성 윈리(근린→ 기초→ 광역→ 중앙정부)와 수평적 보충성 원리(自助→ 互助→ 共助→ 公租)를 필연적으로 강조하게 된다.

그런데 보충성 원리를 담보하기 위해서는 참여 거버넌스가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다. 현대 사회에서 시민 참여는 다양한 이념적 스펙트럼과 대중적 기반을 갖고 있는 운동들에 대해 ‘차이’가 아닌 ‘동질성’ 내지 ‘보편성’을 부각시킨다. 그리고 그 동질성은 노동자들로서 혹은 농민이나 도시 빈민으로서의 개인이 아닌 진정한 시민의식을 가진 국민적 개인으로서 ‘공익’이라는 보편적 요구를 중심으로 활동한다는 의미에서의 동질성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현대 사회는 전체의 공공선보다는 오히려 개인이나 집단의 개성, 자율, 자기결정이라는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면서 공공선(公共善) 상실의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현재 한국에서 진화하고 있는 참여 거버넌스도 시민사회 자체의 균열로 인해 공공선 담보가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참여 거버넌스론자들은 정책으로부터 직접 이득을 얻는 고객으로서가 아니라 주권자인 시민의 정책 과정에 참여가 중요하다고 여긴다. 적극적인 시민 참여는 보수주의적 신공공관리론자에 의해서도 ‘국가기능의 민간 분담’이라는 장점 때문에 강조되지만, 이상주의적 진보주의자들에 의해서도 공동체의 재건과 관련해 강조된다. 이들은 공동체에 대한 헌신적 참여를 강조하고, 이를 위해 이타적인 도덕적 시민을 양성해야 한다는 공동체주의, 시민주의를 주장한다.

지방자치와 참여 문제를 논의할 때 주민 참여와 시민 참여 개념이 모두 쓰일 수 있으나, 엄밀히 말하면 주민 참여와 시민 참여는 준별할 수있는 개념이다. 물론 용어가 쓰이는 맥락에 따라서는 주민 참여와 시민참여가 거의 동일하게 사용되는 경우도 있으나, 이 글에서는 양자의 의미를 ‘표’와 같이 구분할 수 있다고 본다. 표에서 알 수 있듯이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은 주민이기도 하지만 시민으로서의 의미도 갖는다. 이와같이 이중적 의미를 갖는 주민은 지역 사회에서 공공성을 담보하는 적극적인 주체가 될 수 있다.

[표] 주민 참여와 시민 참여의 기본적 성격.
[표] 주민 참여와 시민 참여의 기본적 성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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