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1-06-17 13:25 (목)
대기업과 맞서는 지역 주민들의 자세 ‘에린브로코비치’‘다크워터스’
상태바
대기업과 맞서는 지역 주민들의 자세 ‘에린브로코비치’‘다크워터스’
  • 윤성은 영화평론가
  • 승인 2021.05.06 17: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마을, 사람들 그리고 영화
Town in Movie

많은 영화의 배경이 ‘마을’이다. 영화 주인공들의 삶의 터전 역시 그들이 사는 마을이고 동네이기 때문이다. 스크린 속 인물들은 배경이 되는 마을, 그리고 이웃들과 때로 갈등하고 협력하며 여러 이야기들을 만들어나간다. 그 이야기의 결말은 해피엔딩이 되기도 하고 비극으로 치닫기도 한다. 앞으로 ‘마을, 사람들 그리고 영화’에서는 마을과 사람들의 케미스트리, 그들 사이의 교감과 성장, 변화를 다른 작품들을 소개한다. 그 속에서 주민자치의 바람직한 방향, 때로 반면교사의 깨달음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편집자 주

* 영화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1992, ‘에린 브로코비치’(줄리아 로버츠)에드 마스리’(앨버트 피니)의 법률 사무실에서 서류를 정리하다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을 발견하고 조사에 나선다. 전력 및 가스 사업을 하는 회사, PG&E와 힝클리에 사는 도나 젠슨이 주고받은 부동산 관련 서류에 왜 진료기록이 끼어 있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법에 관해서도, 의학이나 화학에 대해서도 무지했던 에린이 대기업을 상대로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소송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작은 관심과 호기심 때문이었다.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에린 브로코비치’(Erin Brockovich,1999)는 영화가 만들어지기 불과 몇 년 전 미국에서 있었던 실화를 에린 브로코비치의 시점에서 풀어나간 작품이다. 두 번의 이혼 끝에 빚더미 위에서 세 아이를 혼자 돌봐야 했던 그녀의 성공 스토리는 영화의 소재로 충분히 매력적이다. 교통사고 때문에 우연히 연을 맺게 된 에드와의 우정, 에린의 베이비시터를 자청해온 옆 집 남자와의 사랑도 드라마틱하다. 그러나 소송에서 승리한 것은 에린과 에드 뿐만이 아니다. 당시 힝클리에 살았던 수백 명의 주민들이 의견을 모았고 거액의 보상금을 받았다. 같은 사건을 그들 중 한 사람의 시점으로 재구성해보면 어떨까.

 

몇 년 전 실화를 주인공 시점에서 풀어나간 에린 브로코비치

90년대 초, PG&E는 힝클리 주민들에게 그들이 이 지역에서 공장을 운영하며 크롬이라는 화학물질을 사용했고 물이 오염됐으나 인체에는 무해하다고 안심시키며 의료비를 지원한다. 도나 젠슨의 가족도 그 수혜자 중 하나다. 부부가 오랫동안 아팠기 때문에 이들은 대기업의 진료비 부담이 고맙기만 하다. 그런데 PG&E가 내놓지도 않은 도나의 집을 사고 싶다는 제안을 해오자 도나는 에드 마스리 법률 사무소에 자문을 구하고 거기서 파견 나온 에린에게 그간의 일들을 모두 설명한다.

얼마 후, 에린이 PG&E가 독성이 강한 크롬을 사용했다는 사실을 알려오자 도나는 그제서야 이것이 단순 부동산 문제가 아님을 깨닫는다. 도나는 의사들까지 PG&E에 매수되었다는 말을 듣고 당장 달려 나가 딸들을 마당 풀장에서 꺼내온다. 그 동안 PG&E가 선심 쓰듯 했던 일들에 대한 배신감, 속았다는 자괴감, 가족들의 건강에 대한 염려가 한꺼번에 도나를 덮친다.

이후, 도나는 유독성 크롬에 관해 마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시작한다. 도나의 앞집에 살다가 PG&E에 집을 팔고 떠났던 톰과 맨디 부부도 그녀의 말을 듣고 에린을 찾아간 사람들이다. 그들은 힝클리에 살 때 가축이 병들어 죽고 맨디가 다섯 번이나 유산한 일들이 오염된 물과 무관하지 않을 거라 추측하고 증거 사진들을 내놓는다. 이 부부의 용기는 향후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사건에 합류하는 계기가 된다.

 

몇 사람의 용기가 더 많은 사람들의 합류 이끌어내

 

만약 도나가 자기 가족들의 재산이나 건강만 생각했다면 마을에 알리는 대신 PG&E로부터 더 큰 돈을 챙겼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도나는 크롬으로 피해를 입은 주민들 모두가 함께 보상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에린과 에드에게 협조할 수 있도록 중개인의 역할을 한다. 에린에게 PG&E에서 일하는 사람을 소개함으로써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 것도 그녀다. 도나의 가족이 PG&G로부터 받은 5백만 달러는 주민들의 건강을 지킨 대가로 결코 과하지 않은 금액이다.

도나의 첫 번째 미덕은 무엇보다 법률사무소 사람들과 달리 변호사도 아니고 옷차림이나 말투도 점잖지 못한 에린을 편견 없이 받아들이고 믿어주었다는 점일 것이다. 순수한 힝클리 주민들도 대개 변호사 보다 에린을 편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재판 과정이 늘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다. 일례로, 파멜라는 초동 조사를 하러 온 에린을 문전박대 한다. 자신과 아이들이 오래 아팠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에린이 하는 일이 무의미하며 법률 사무소는 돈 밖에 모른다고 무안을 준다.

차차 마음을 열기는 하지만 에드 측이 PG&E와 주민들을 중재하는 전략을 쓰자 그녀는 바로 신문에 변호사를 새로 뽑자는 기사를 써서 주민들을 선동한다. 보상금에 대해서는 파멜라 뿐 아니라 많은 이들이 민감해 할 수밖에 없었는데 일부는 자신이 더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일부는 중재에 반대하면서 재판은 무산될 위기에 처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위기 또한 끝까지 에린과 소통하며 인내한 대다수의 주민들에 의해 극복된다.

결국 에드 측이 제안한 PG&E와의 중재 건에는 634명이 찬성한다. 힝클리 주민들 모두가 서류에 서명한 것이다. , 이들이 받아낸 333백만 달러는 100%의 협조가 만들어낸 쾌거였다.

 

세계 최대 화학기업 기소한 대기업 파트너 변호사의 이야기 다크 워터스

다크 워터스’(Dark Waters, 토드 헤인즈, 2019)PG&E 재판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세계 최대의 화학기업, 듀폰의 PFOA(과불화옥탄산) 유출 사건을 다루고 있다. 대기업의 파트너 변호사, ‘롭 빌럿’(마크 러팔로)은 승진하자마자 낯선 이들의 방문을 받는다. 그의 할머니를 안다며 도움을 청한 이들은 웨스트 버지니아 파커즈버그에 사는 농부들이다.

주말에 할머니를 찾아간 롭은 이 지역에서 이상한 일들이 발생하고 있음을 목격한다. 그를 찾아왔던 윌버 테넌트는 자식과도 같은 가축들이 희귀병에 걸려 죽어갔다면서 듀폰의 드라이런 매립지에서 유출된 화학물질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롭은 곧바로 듀폰의 불법행위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한다.

에린 브로코비치와 마찬가지로 다크 워터스도 대기업의 화학물질 유출 사건에 헌신한 한 정의로운 인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롭은 대기업을 변호해야 하는 입장임에도 파커즈버그 주민들이 온갖 질병으로 고통 받는 것을 참지 못하고 듀폰을 기소하기에 이른다.

이 소름끼치는 실화 또한 파커즈버그 주민의 입장에서 재구성해볼 수 있다. 윌버 테넌트는 성실한 농부로 수십 년 동안 젖소를 돌보며 살고 있었다. 그런데 골짜기 뒤에 듀폰의 쓰레기 매립지가 들어서면서 젖소들이 죽어가기 시작한다. 장기 뿐 아니라 뇌에 이상이 생겨 갑자기 사람을 공격해 오는 소들을 직접 총으로 쏘아 죽이는 경우까지 발생하면서 윌버의 손으로 묻고 태운 소는 무려 200마리에 달하게 된다.

참다못한 그는 동네 주민의 손자가 대형 로펌에 다닌다는 소문을 듣고 롭을 찾아간다. 처음에는 거절하는 입장을 취하던 롭도 파커즈버그에 와서 직접 상황을 확인하자 그 심각성을 깨닫는다. 최초의 제보자로서 윌버는 듀폰의 악행을 밝히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수많은 동네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얼마 안 가 그와 아내도 암 선고를 받는다. 지난한 재판을 통해 듀폰이 피해를 보상하기까지는 20년이 걸렸고 안타깝게도 윌버는 그 한참 전에 세상을 떠나고 만다.

 

보상까지 20, 최초 제보자는 그 전에 세상 떠나...지역사회 책임 고민해야

 

파커즈버그에 사는 조와 달린 부부의 증언도 충격적이다. 그들은 듀폰 직원들이 회사에서 독성물질을 쓴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듀폰은 연봉도 높고 처우도 좋은 꿈의 직장이었기에 아무도 그 부분을 건드리지 않았다고 증언한다. “이 마을 사람들은 대가를 치른 거죠라는 달린의 대사는 씁쓸하기만 하다.

영화에는 듀폰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는 이들도 보이는 반면, 미국을 대표하는 기업에 대한 맹신을 가진 이들도 등장한다. 후자는 ‘C8’과 건강의 관계를 밝히기 위해 채혈에 동참하면서도 듀폰이 잘못했을 리 없다고 말한다. 조와 달린의 집에 불을 지른 이들 또한 듀폰 관계자들이 아니라 동네 주민이었다. 혈액검사를 하는 오랜 시간 동안 이 부부는 계속 일각의 비난과 따돌림에 시달린다. 그러나 묵묵히 이들을 지지하고 협조한 대다수의 주민들 덕분에 결국 듀폰은 패배를 인정한다. 이들의 배상 규모는 3535, 677십만 달러에 이른다.

파커즈버그의 듀폰 소송은 비단 지역 사회만의 문제가 아니다. 롭이 밝혀낸 바에 따르면 듀폰은 40년간 ‘C8’이라는 화학물질이 인체에 유해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회사의 막대한 매출을 위해 아무 것도 하지 않았고 그 결과 지구상 생명체의 99%는 이미 이 물질에 오염된 상태다. 음식이 들러붙지 않는 프라이팬 테프론C8이 사용된 대표적인 주방용품이다. 윌버가 생면부지의 롭을 찾아가지 않았다면, 지역 주민들이 계속 듀폰을 두려워하기만 했다면 대기업의 횡포는 검은 물속에서 계속되었을지 모른다. 글로벌 시대에 걸 맞는 지역 사회의 책임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 대목이다.

 

사진=유니버설·컬럼비아픽처스/CJ엔터테인먼트·이수C&E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주민 동의 없는 2기 시범사업 및 조례 개정 철회하라" 종로구 주민자치사태 논란
  • "주민자치회장 선거에 동장 개입" 의혹...춘천 후평동서 무슨 일이?
  • 일본 정내회 지역·주민대표성에서 한국 주민자치 시사점 찾다
  • 주민자치 역행하는 춘천시 행태에 대책위 강력비판-시정촉구 청원서 전달
  • 꽉 막힌 ‘주민관치’ 어떻게 풀어야할까?
  • 강원도주민자치회, 플라스틱 순환사회 조성에 한 축 맡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