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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전상직 한국자치학회장 “文정부, ‘자치분권’의지도 지식도 부족…되레 역행정책 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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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전상직 한국자치학회장 “文정부, ‘자치분권’의지도 지식도 부족…되레 역행정책 펴”
  • 신선종 문화일보 기자
  • 승인 2018.11.01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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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상직 한국자치학회장이 지난 23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학회사무실에서 자치와분권을 강조하며 대한민국 주민자치론을 설파하고 있다.
전상직 한국자치학회장이 지난 23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학회사무실에서 자치와분권을 강조하며 대한민국 주민자치론을 설파하고 있다.

전상직(64) 한국자치학회장을 인터뷰하기로 약속하고 그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찾아봤다. 젊은 시절 현대그룹에 입사해 한강의 기적이란 산업화를 체험한 후 독립해 기업을 일군 성공한 중견 기업인이다. 한편으론 풀뿌리 민주주의의 근간인 주민자치를 연구하는 한국자치학회장과 한국주민자치중앙회장을 맡고 있다. 공공정책과 주민자치에 관한 월간지를 발행하며 학술 연구도 병행하고 있다. 기업 운영과 주민자치, 학술 연구라는 서로 연관성을 찾기 힘든 세가지 일을 그는 20년 가까이 계속하고 있다. 기업경영만으로도 힘들고, 학술연구하기에도 바쁜데, 왜 주민자치 사회운동에 뛰어들었을까. 궁금증이 더해갔다.

전 회장을 만난 것은 지난 23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 있는 한국자치학회 사무실이었다. 보통 학회를 이끄는 ‘회장’ 이라는 직책을 가지면 정부와 날을 세우기보다는 정부가 잘하는 점을 말한 뒤 ‘이런 점은 아쉽다’고 하는 것이 상례다. 그러나 그는 인터뷰 시작부터 거침없이 비판을 쏟아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공약으로 연방제수준의 지방분권을 지난 대선에서 약속했습니다. 크게 기대를 걸고 지지를 했습니다. 국정과제를 발표할 때까지는 좋았습니다. 그러나 현정부가 지난 3월 내놓은 개헌안을 보면서 문재인 정부가 분권 역량도, 분권 의지도 부족하다는 생각에 실망을 넘어 분노가 느껴졌습니다. 특히 주민자치에 있어 풀뿌리 자치가 아닌 계몽주의자들의 계몽 현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민자치를 정치화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마저 들었습니다.”

전회장은 “현 정부는 자치분권을 할 수 있는 역량이 부족한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중앙정부가 가지고 있는 권한을 나눠 줄 수 있는 역량이 없으면 절대로 지방정부에 나눠줄 수 없고 ‘풀뿌리’인 주민들에게도 나눠 줄 수 없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는 “분권에는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에 나눠주는 정부 내 분권이 있고 정부에서 사회에 나눠 주는 사회간 분권이 있는데, 분권 중에서 비교적 용이하다는 정부내 분권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며 “더 어렵다는 정부-사회 간의 분권에 대해서는 기본 개념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전 회장은 “주민자치 정책을 기획하면서 주민자치 20년의 현장 경험을 무시하고 밀실에서 측근들끼리 기획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며 “주민자치회가 주민자치를 할 수 있도록 제도적·행정적 지원을 기대했는데, 그 반대로 주민자치에 역행하는 정책들을 펴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반적으로 지방자치나 분권이라고 하면 중앙정부가 시·도인 광역자치단체나 시·군·구인 기초자치단체에 권한을 대거 이양해 이들이 할 수 있는 권한을 늘려주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전 회장은 광역단체나 기초단체에 대한 권한 이양보다 ‘주민자치’가 우선돼야 분권과 자치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주민자치에는 두 가지 형태가 있습니다. 정부와 주민이 혼연일체가 돼 지방정부가 주민자치회고 주민자치회가 정부기관인 형태가 있는데, 매우 바람직한 형태입니다. 대표적으로 스위스를 들 수 있습니다. 스위스에서는 지방정부를 중앙정부의 간섭 없이 주민들이 통제합니다. 다른 하나는 정부는 행정의 역할을 하고 주민자치회는 사회의 역할을 하는 구조인데, 영국의 패리시(Parish)나 일본의 정내회(町內會)가 주민들로 구성돼 자치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지역의 행정과 사회를 통합하는 스위스형과 행정과 사회를 분리하는 영국형이나 일본형은 우리에게 장단점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주민자치는 장점의 조합이 아니라 단점으로 조합돼 있습니다. 어처구니가 없지만, 이것이 슬픈 현실입니다.”

“분권은 누구에게 분권을 하는가가 중요합니다.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에만 분권을 하면 관료의 독재체제가 형성될 수 있습니다. 권력의 주인인 풀뿌리주민에게 분권을 해야 비로소 균형 잡힌 분권이 이뤄질 수 있습니다. 또 분권은 수권을 할 수 있는 대상에 분권을 해야 수권이 이뤄집니다. 지방정부로의 분권은 수권의 주체가 형성돼 있고, 어느 정도 능력을 갖추고 있지만, 사회로의 분권은 수권의 주체인 주민자치회가 제대로 형성돼 있지 않아 어려운 상황입니다.”

전 회장은 “분권과 자치의 관계를 먼저 말해야 하는데 ‘분권은 해주지 않으면서 자치를 하라’는 이야기는 알아서 해라, 사실상 방치하겠다는 것”이라며 “‘분권도 해주고 자치도 하라’는 게 진짜 자치가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자치측면에서보면 우리나라는 분권이 아예 안 되고 있고 자치도 안 되고 있다”며 “분권도 하고, 자치도 해야 하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전 회장은 우리나라의 주민자치 성공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그는 “주민자치가 형성되고 자치력이 배태(embedded)되도록 전략적인 기획을 하면 경제에서 일군 기적과 정치에서 일군 민주화처럼 주민자치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고학력에 경험이 풍부한 주민들이 지역 사회에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직장에서 은퇴하신 분도 많아요. 이런 분들은 조직 경험과 다른 직무 경험도 있고, 아직 활동할 수 있는 역량도 충분합니다. 이런 사람들을 활용하면 지역에서 못할 일이 거의 없습니다. 예컨대 웹사이트를 구축한다면 공무원은 외주를 주지만 동네 사람들에게 필요한 비용만 주고 맡기면 외주보다 훨씬 잘 만들 사람이 많습니다. 문제는 그런 분들이 마을, 동네의 일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시스템이 없는 겁니다. 그 시스템이 주민자치회 입니다.”

전회장은 박원순 서울시장이 추진하는 ‘서울형 주민자치회’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박시장이 추진하는 서울형 주민자치회는 철저하게 주민자치를 무력화하는 것”이라며 “이는 주민자치회를 규정한 지방분권 특별법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회장은 “서울시는 주민자치회 틀을 짜고 배려만 해주고 지원을하면 되는데, 지원관이란 자리를 만들어 구청마다 두 명씩 공무원을 배치하고 주민자치 전반을 장악하고 있다”면서 “이것도 모자라 동(洞)마다 주민자치담당관이란 직책을 만들어 주민자치회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들을 모두 빼앗아 무력화시키고 있다”고 성토했다. 전회장은 “지방분권특별법 제27조에는 ‘풀뿌리자치의 활성화와 민주적 참여의식 고양을 위하여 읍·면·동에 해당 행정구역의 주민으로 구성되는 주민자치회를 둘 수 있다’고 돼 있는데 서울형주민자치회는 관련법령을 위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서울시가‘ 해당 행정구역의 주민으로 구성되는 ’이라는 법령을 만약에 모르고 했으면 주민자치 정책 능력이 없는 것이고, 만약에 알면서 했으면 범법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지방분권특별법 제29조 3항에 ‘주민자치회의 설치 시기, 구성, 재정 등 주민자치회의 설치 및 운영에 필요한 사항은 따로 법률로 정한다’고 규정돼 있는데, 관련 법률이 없는데도 서울시가 서울형 주민자치회를 설치한 만큼 법을 어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전회장은 “정책을 만드는 관료들이 행정에는 달인일지 모르지만, 주민자치에 대해서는 모르는것이 많다”면서 “관료들이 주민자치를 주도하면 행정이 되고, 지방의회가 주도하면 정치가 되고, 일부 주민이 주도하면 사익이 되고 만다”고 지적했다. 이어 “주민자치가 전체 주민의 사회적 자치가 되기 위해선 지역 사회 전체의 자치 구조를 만들고, 자치 기능이 어우러지는 체계를 구축하며, 작동기제를 만들어야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전 회장은“예전에는 시민운동가들이 주민과 같은 견해를 갖고 정치인에게 대항했는데, 지금은 시민운동가들이 정치인과 편을 먹고 주민을 지배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런 예로 서울형 주민자치회와 경기도 따복 공동체를 지목했다. 그는 “지역운동을 하면서 주민자치 운운하는 것은 주민을 지역사업의 도구로 생각하는 오만”이라고 지적했다.

전 회장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주민자치 역사는 오래됐다. “한국의 주민자치 역사는 출발기, 전성기, 말살기, 소멸기로 나눠 볼 수 있습니다. 조선 중종 때 향약의 도입이 향촌 자치의 출발이었습니다. 그때 향안(鄕案)을 만들어 주민에게 지역 사회의 덕목을 다 함께 실천하도록 주민자치회를 제도화했습니다. 분권도 있고 자치도 있었습니다. 조선후기에 가까워지면서 향약이 동계(洞契) 등으로 발전해 주민의 결속력이 강화되고 조직력이 형성됨으로써 사회적 경제 양식인 두레도 만들고 각종 계를 만들어 지역 사회가 주민자치로 활성화됐습니다. 일제강점기에는 식민지 장악과 수탈을 위해 향촌의 사회를 면(面)이라는 기관으로 장악해 버립니다. 주민자치 말살기인 것이지요. 해방이후 건국시기에는 혼란으로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방치됐고 산업화 시기에는 선택에서 제외됐고 민주화시기에도 외면했습니다.”

그러면 주민자치가 뿌리내리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주민자치를 하려면 동네주민들이 내가 사는 마을을 내 마을로 생각해야 합니다. 내 마을에 무슨 일이생기면 ‘어 안되는데, 우리마을에 이런일이 있으면 안 되는데’라는 마음이 생겨야 하고요. 이웃 주민이 내 이웃이라고 생각해 이들을 위해 무언가 해줄 수 있어야 하고 동네 일이 내 일이 돼야 해요. 행정조직인 동과 구청이 ‘동장이 다 해드리겠습니다’‘ 구청장이 하겠습니다’라고 하면 누가 동네 일에 관심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일을 하겠습니까. 현재는 지역과 이웃에 관심을 가질 수 없는 시스템이고, 일제강점기의 식민지 관리 시스템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이 시스템을 어떻게든 바꿔야 하는데 바꾸려면 동장부터 주민이 직접뽑는 선거를 해야 합니다.”

지금도 지방선거는 광역단체장, 광역의원, 기초단체장, 기초의원, 광역의원과 기초의원비례대표 그리고 교육감까지 모두 7번투표를 해야한다. 동장까지 선거로 뽑자고 하니 시간과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반대가 예상됐다. 전 회장은 “서울에서 인구 2만명 되는 동에 1000만원 정도 든다고 하더라. 서울시가 매년 주민자치담당관제도 운영을 위해 각 구에 나가는 비용이 1억6000만원 정도 되는데, 이것만 가지고도 동장선거를 하고 남는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작 중요한것은 행정안전부인데 아마 동장까지 다 선거해버리고 나면 ‘주민들이 말을 들을것이냐’이런 걱정을 하는 것 같다”면서 “그런데 주민이 행안부 말을 들어야 하나, 행안부가 주민 말을 들어야하나, 뒤집어놓고 생각해보면 이상한 소리라는것을 금방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동장 선거를 2년에 한 번, 혹은 5년에 한 번 정도 하면 부작용을 최소화 할 수 있다”며 “동장선거가 정치적인 행위가 아니기 때문에 투표권은 가구주에게만 주는 것도 생각해 볼 만하다”고 말했다. 영국의 경우는 주민자치회장선거에 모든 유권자가 참여하지만, 일본은 가구주에게만 투표권이 부여된다.

전 회장은 “주민자치 연구와 실천에 몸을 던진 지 20여 년이 됐고, 그동안 많은 노력도 했으나 정책담당자들 손에서 번번이 농락을 당하고 있다”면서 “대학교수도 아닌데 학회가 본업처럼 돼버렸다”고 회고했다. 그는 “그래도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열심히 하고 있다”면서 “민주주의는 자치를 할 수 있을때 성숙하고 발전하는거지, 자치를 할 수 없을때에는 민주주의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 회장은 “자치가 먼저고 민주는 그다음”이라며 “자치를 할 수 없는데 사회가 사회답게 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 내 소신”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주민자치 운동에 대한 전망을 밝게 봅니다. 옛날에는 먹고사는 게 참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먹고사는 문제는 해결된 분들이 지역에 많습니다. 매일 등산을 가고 골프를 쳐도 재미없어집니다. 지역 사회의 일을 하면 재미가 있어요. 이제 대한민국은 주민자치를 할 수 있는 충분한 인적자원이 갖춰졌다고 봅니다. 제도만 마련되면 이들이 전부 이타성을 발휘할 채비는 다 돼 있어요. 소통하는 시스템만 만들면 주민자치는 금방 자리를 잡을 수 있습니다. 사람을 인격자로 만들어주는 주민자치, 마을을 공동체로 만들어주는 주민자치회가 가능 하리라고 확신하기 때문에 발걸음을 멈출 수 없습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전 회장은 “주민자치는 국가개조사업이어서 정치적 판단에 휘말리면 안 된다”며 “그래서 저는 정치인이 될 수도 없지만, 정치를 해서도 안 된다. 또 행정적인 판단에 휘말려도 안된다”고 강조하면서 주민자치에만 전념할 뜻을 분명히했다.


※본 내용은 2018년 10월 26일자 문화일보에 게재된 기사를 전제한것임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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