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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자치 토대로서 지역 공동자원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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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자치 토대로서 지역 공동자원기관
  • 박서현 제주대학교 공동자원과 지속가능사회 연구센터 학술연구교수
  • 승인 2023.03.27 13: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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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자원과 주민자치

계묘년 새해를 맞이해 제주대학교 공동자원과 지속가능사회 연구센터와 공동으로 공동자원과 주민자치를 주제로 한 시리즈기획을 새롭게 선보이게 되었습니다. 상부상조하는 공동체의 원형과 전통이 잘 계승되어 유지, 발전되는 특별한 지역 제주그리고 공동자원과 주민자치의 이야기가 지면을 한층 풍성하게 해줄 것입니다.<편집자 주>

 

공동자원과 주민자치, 커머닝과 거버닝

한국 학계에서 공동자원’(commons, 커먼즈)이 회자되기 시작하고 관련 연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은 2010년대 이후였다. 물론 이 용어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공동자원에 대한 연구라고 할 수 있는 작업은 2010년 이전에도 있었다. 이러한 작업으로 금송계나 어촌계에 대한 행정학적·역사학적 연구 등을 들 수 있다. 이 연구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전통적 의미의 공동자원은 마을공동체가 공동으로 관리하는 자원으로, 이를 관리하는 규칙이 존재했었다.

중요한 것은 전통적 의미의 공동자원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공동자원이 단순히 어떤 고정된 실체와 같은 것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공동자원은 그것을 사용하는 공동체가 공동자원과 같은 공동의 것’(the common)을 그들의 필요를 위해 운영·창출하는 과정을 통해 비로소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동자원이 공동의 것을 공동운영·창출하는 활동을 통해 비로소 존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공동자원을 이해하는 데 있어 무엇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활동·실천이라고 할 수 있다.

공동자원에 대한 이해에 있어 공동의 것을 함께 운영하고 창출하는 활동을 보다 더 강조하는 연구자들은 공동자원을 명사가 아닌 동사를 중심으로, 즉 공동관리 혹은 커머닝(commoning) 같은 동사를 중심으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공동자원의 핵심이 커머닝 혹은 공동관리, 다시 말해 공동의 것을 공동운영·창출하는 실천이라고 한다면, 주민자치의 핵심은 무엇일까? 아울러 공동자원론이 주민자치론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은 무엇일까?

주민자치가 주민의 자치 즉 주민의 스스로 다스림이고, 이러한 다스림이 곧 주민이 사는 지역과 이러한 지역에서의 주민 자신의 삶에 대한 자기 통치라고 한다면, 이러한 통치활동 혹은 거버닝(governing)이 주민자치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의미의 거버닝, 즉 통치활동과 커머닝, 즉 공동자원의 공동관리는 물론 초점이 다소 다르다. 그것은 후자가 공동의 것을 공동운영·창출하는 활동을 의미하는 반면, 전자는 예컨대 주민총회 같이 지역에서 그들 자신의 삶에 대한 주민의 자율적 다스림을 실현하는 활동 혹은 이러한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공동자원에 대한 공동체의 공동관리가 거버닝의 하나라고 말할 수도 있다. 또한 예컨대 주민의 삶에 필수적인 공공서비스나 공공재의 일부를 주민이 자율적으로 생산·공급하는 활동, 즉 이러한 서비스나 재화를 공동생산·공급하는 활동으로서의 커머닝이 주민자치에서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주민자치가 실현될 경우 주민자치의 거버닝은 위와 같은 의미의 커머닝이 될 소지가 높다. 하지만 그럼에도 공동자원의 공동관리와 주민의 자치, 커머닝과 거버닝 사이에는 강조점의 차이가 있다. 양자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공공성을 가지는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공급하는 지역 공동자원 기관

한국 학계에서 공동자원 연구는 예컨대 공기업이 민영화 되는 식으로 사적 소유가 강화되는 데 따른 폐해가 누적되는 상황에서 사적 소유에 대한 대안으로 국가와 같은 공적(公的, public)인 것을 강화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는 작업의 일환으로 수행됐다. 즉 사회문제에 대한 국가중심적 해법이나 시장중심적 해법과는 다른 제3의 해법을 모색한다는 문제의식이 국가와 같은 공적인 것이나 자본과 같은 사적(私的, private)인 것이 아닌 예컨대 소규모 공동체 같은 공적(共的, common)인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공동자원을 주목하게 만든 이유였다.

그런데 전통적 의미의 공동자원 조직이라고 할 수 있을 목축계·어촌계 같은 소규모 공동체가 농산어촌에서도 이미 상당수 해체되었을 뿐 아니라 인구의 대다수가 거주하는 도시에서는 이러한 공동체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너무도 분명한 사실이었다. 이는 곧 사회문제에 대한 해법으로 공동자원을 주목할 경우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중요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문제는 그렇다면 오늘날 무엇이 구성원의 공동의 필요에 따라 공동의 것을 공동생산·관리·공급하는 공동자원 기관일 수 있는가였다. 오늘날 무엇이 공동자원 기관일 수 있는가?

이러한 기관으로 농산어촌에 남아 있는 마을회 같은 마을조직 이외에도 농산어촌 및 도시에 존재하는 사회적협동조합 같은 비영리단체 등을 들 수 있다. 공동자원 기관은 지역에서 주민들의 삶의 필요에 부응할 수 있는 공동공간을 운영하고 공동돌봄을 제공하며, 밑반찬과 같은 먹거리를 공동생산·관리·공급할 수 있다. 공동자원 기관이 공동생산 할 수 있는 공공성을 가지는 재화·서비스에는 공동공간이나 공동돌봄, 먹거리 이외에도 에너지·토지·주택·교육·지식·정보 등이 포함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재화·서비스의 공동생산을 통해 공동자원 기관은 소규모일지언정 지역에서 공동성을 만들어갈 수 있다.

물론 공공성을 가지는 재화·서비스의 안정적 공급을 위해 국가가 자원을 지원하는 것은 중요할 뿐 아니라 필요하다. 하지만 이 문제와 관련하여 우선적으로 유의할 것은 이러한 지원은 국가가 시혜적으로 베푸는 어떤 무엇이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목격해온 것은 공동자원 기관이 부재한 상황에서 공공재·공공서비스의 공급이 지자체 등의 국가기관에 의해 일방적으로 이루어져왔다는 사실이다. 아울러 이러한 일방성의 연장선상에서 지역에 대한 주민의 자치 역시 미미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역으로 다양한 공동자원 기관들이 존재하는 지역은, 달리 말해 공동자원 기관들이 지자체와 협력하여 공공재와 공공서비스를 자율적으로 생산·관리·공급하는 지역은 곧 주민이 스스로 다스리는 장소가 될 소지가 크다는 것을 함축한다. 공동자원 기관에 참여하는 주민들이 그들의 삶의 재생산에 영향을 미치는 공공재·공공서비스를 지자체와 협력하여 자율적·주체적으로 생산·관리·공급하면서 지역에서 소규모 선순환경제를 구성하는 식으로 지역에서의 주민의 삶을 일정부분 변형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식으로 공동자원 기관은 지역에서의 삶의 변화를 일정부분 가져올 수 있을 뿐 아니라 지역에 대한 주민의 자치를 신장시키는 데에도 기여할 수 있다.

주민자치의 토대로서의 지역 공동자원 기관

공동자원 기관들이 자생력을 갖추고서 지역을 주민들의 공동체로 만들어갈 수 있다면, 이러한 지역 공동체는 주민자치의 토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확인했듯 지역에 다양한 공동자원 기관들이 존재해야 하며 이들이 상호연결되어 주민들의 마찬가지로 다양한 삶의 필요에 부응할 수 있는 공공재·공공서비스의 일부를 생산·공급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공동자원 기관들의 활동을 통해 지역이 주민들의 공동체로 만들어지고, 이러한 공동체가 다시금 주민자치를 실현하는 자치체의 토대가 되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주민총회 같은 제도에 입각하여 조직된 자치체가 구현하는 주민자치의 내용은 공동자원 기관들의 활동과 겹칠 수 있다. 예컨대 지역의 다양한 공동자원 기관들이 생산·공급하는 공공재·공공서비스가 전체 주민의 의견을 반영하여 주민총회에서 조정되는 식으로, 공동자원 기관들의 활동에 대한 조율이 주민자치에 입각하여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달리 말한다면 주민자치는 전체 주민의 의견을 반영하는 식으로 지역 공동자원 기관들의 활동을 조율하는 제도일 수 있다. 이러한 조율은 주민이 지역, 근린에서의 삶에 필요한 공공재·공공서비스를 적절히 공급하기 위한 근린생활거버닝에 다름 아닐 것이다.

근린생활거버닝은 주민총회와 같이 주민이 직접 참여하는 의사결정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으로서 민주주의를 체험하고 훈련하는 의미를 가진다. 물론 본래 공동자원 기관은 주민이 그것에 참여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체험하고 훈련하는 장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것이었다. 주민자치는 이러한 체험과 훈련을 더 심화·확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민주주의의 체험·훈련이라는 점에서 주민자치와 공동자원의 공동관리는 서로 일치하는 측면이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체험·훈련이 주민이 그들이 사는 근린을 어떻게 운영할 것이며 근린에서의 그들의 삶의 재생산에 영향을 미치는 공공서비스·공공재를 어떻게, 얼마나 생산·공급할 것인지를 자율적·직접적으로 결정하는 동시에 실제로 이러한 생산·공급을 위해 자원을 지원하도록 지자체 등과 협력하는 것을 필요로 하는 근린생활거버닝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러한 실천이 관료화된 지자체, 국가를 바꾼다는 의미를 가지는 한에서 그에 대한 저항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관료화된 국가가 이를 선의로 들어줄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러한 변화를 위해서는 예컨대 주민총회의 결정이라는 식으로 주민의 집합적 의지로 행정에 이를 강제하는 것이 필요할 수 있다. 물론 통리의 주민총회에 참여하여 그들의 의사를 제시하고 공동의 필요를 위해 각자의 의사를 조율하여 결정을 내리는 것은 이를 위한 주민의 의지와 역량이 없다면 결코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그들이 사는 지역에 대해, 나아가 지역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다른 주민들의 삶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서 작은 것일지언정 지역의 문제, 삶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려는 의지와 역량을 가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지역을 주민의 공동의 것, 공동체로 만들어가는 지역 공동자원 기관들의 활동은 주민자치의 토대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주민자치는 주민총회 등을 통해 주민 공동의 필요를 조정하는 과정 속에서 지역 공동자원 기관들의 활동을 조율하는 제도가 될 수 있다. 아울러 주민자치는 지역 공동자원 기관들에 의한 공공재·공공서비스의 자율적 생산·공급을 위해 국가, 지자체 등과 협력하면서 관료화된 국가를 바꾼다는 함의를 가질 수 있다.

물론 이러한 변화가 국가나 지자체의 선의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변화는 예컨대 주민총회에서 표현된 주민 전체의 의사를 지자체의 운영에 반영하기 위한 주민자치 운동의 결과로서만 도래할 수 있다.

 

사진=지역 공동자원 기관의 사례 '제주 인화로 사회적협동조합', 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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