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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커먼즈는 어떻게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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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커먼즈는 어떻게 가능한가
  • 윤여일 제주대학교 공동자원과 지속가능사회 연구센터 학술연구교수
  • 승인 2023.04.26 11: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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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다리 마을의 시사점

농산어촌과 커먼즈

마을은 지도를 펼쳐놓고 내려다보면 구획되어 있는 평면적 공간이며 행정의 관점에서는 말단 단위지만, 삶의 지평에서 바라보면 여러 층의 시간이 켜켜이 쌓이고 다양한 요소들로 구성되는 입체적 장()이다. 특히 지역의 농촌, 어촌, 산촌은 각자의 환경에서 땅, , , 바다 등의 자연자원을 보존하며 공동생활을 영위해온 장구한 역사적 내력이 있다.

실상 마을의 어원은 물을 뜻하는 에서 비롯된 말이라고도 하며, 한자 촌()은 나무를 일정하게 심어 놓은 곳, ()는 땅에 밭을 일궈놓은 곳을 뜻한다. 마을과 더불어 쓰이는 동네동내’(洞內)가 변한 말인데, ()은 같은 물을 마시는 곳이란 의미를 간직하고 있다.

실제로 제주도에서 마을은 용천수가 있는 자리에 형성되었다. 용천수란 빗물이 지하로 스며든 후 대수층(帶水層)을 따라 흐르다가 암석이나 지층의 틈새를 통해 지표로 솟아나는 물이다. 상수도가 보급되기 이전, 지표수가 거의 없는 제주도에서 용천수는 유일한 식수원으로 마을들은 용천수를 중심으로 형성되고 용천수의 수나 수량이 마을의 크기를 결정했다.

이처럼 마을은 자연에 의지해 형성되고 유지되는 주거지를 뜻하며, 커먼즈란 바로 인간 사회가 생계와 생존에 위해 의지하고 이용해온 다양한 자연자원과 이를 이용하기 위해 성원들 사이에서 형성되었던 협력적 제도 내지 관습들을 지칭하는 개념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공동재(commons) 없이 공동체(community)는 형성되기 어렵고, 공동재의 보존과 활용을 통해 마을의 공동체는 존속해왔다.

 

도시는 어떻게 다른가

하지만 농산어촌 등의 촌락과 비교하자면 도시는 커먼즈의 조건이 크게 다르다. 첫째, 토지를 비롯한 대부분의 자원과 자산이 사적소유화 되어 있다. 둘째, 산림과 어장처럼 자연으로부터 주어진 자원이 드물다. 셋째, 구성원들 간에 이해관계가 복잡하고 공동체를 이루기 어렵다. 넷째, 공간의 규모가 넓고 경계가 개방적이다. 이러한 조건들은 도시에서 커먼즈를 형성하기 어려운 이유이자, 촌락과는 다른 유형의 커먼즈를 창출해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도시 커먼즈(urban commons)의 맞은편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은 도시 인클로저(Urban Enclosure)이다. 서울을 비롯한 한국의 대도시는 발전주의 논리에 따라 국가 주도의 압축적 도시화를 경험했다. 도시 인클로저 과정에서 한편으로는 도시 곳곳으로 사유재산제가 도입되어 배타적 사용·수익·처분권이 확립되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사적 자본의 이윤을 위해 정부가 공권력에 기반한 공용수용 권한을 행사해 사회적 약자들의 재산권을 박탈하거나 공공공간을 해체했다. 한국의 도시는 자본주의 축적구조가 법, 제도, 관습 등 다양한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들을 통해 치밀하게 관철되어 있어 커먼즈적 공간을 만들어내기가 무척 어렵다.

1950년대 배다리 시장의 모습
1950년대 배다리 시장의 모습

 

배다리 마을 지키기 운동

그래서 배다리공유지 운동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배다리 마을은 경인선 전철이 지나는 배다리 철교 근처인 인천 동구 금곡동·창영동·송림동 일대를 가리킨다. 배다리공유지운동은 인천경제자유구역 송도와 청라지구 간 물류 흐름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건설되던 산업도로가 배다리까지 다다른 2007년 시작되었다. 50m6차선 도로가 마을 한복판을 관통할 상황에 이르자 주민들은 20073동구 관통 산업도로 무효화를 위한 주민대책위원회를 꾸렸다. 5월에는 배다리를 지키는 인천시민모임도 결성되어 산업도로 무효화 싸움에 나섰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075, 배다리는 동인천역 주변 재정비촉진계획지구로 지정되었다. 헌책방 거리를 비롯한 골목과 집들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 주차장, 위락시설, 주상복합아파트 등을 짓겠다는 재정비촉진계획에 맞서 주민들은 물론 문화공간 운영자,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배다리 마을 지키기 운동에 나섰다. 20105월에는 배다리의 역사·문화적 가치를 재조명하고 배다리만의 특징을 끌어내기 위해 배다리 역사문화마을 만들기 위원회가 출범했다.

결국 20139, 동인천역 재정비촉진계획은 배다리 구역의 전면 철거 방식에서 존치 관리로 변경되어 미개발 구역은 그대로 두게 되었다. 산업도로 건설에 관해서는 20198월 인천시를 비롯한 8개 유관 기관과 시민단체, 주민대책위 등이 배다리 구간 지하화에 합의했다. 그리하여 배다리 마을은 기존의 공간을 지켜내고, 산업도로 건설 지하화에 따른 공터가 생겨났다. 배다리공유지운동은 재정비 사업과 산업도로 건설 저지 활동이었을 뿐 아니라 마을공동체를 위해 공간을 재구성하는 활동이었다.

 

무엇을 배울 것인가

배다리공유지 운동은 그 땅이 지닌 역사성을 되짚어 활동의 정당성으로 삼았다. 배다리는 19세기 말 개항 당시 바닷물이 들어오는 깊은 포구였는데, 이리로 들어온 배들 위로 다리를 댔다고 해서 지어진 지명이다.

배다리는 개항과 일제 강점기, 한국전쟁, 산업화의 고단한 초상을 간직한 곳으로 노동자, 서민, 피난민의 고달픈 역사가 깃들어 있다. 개항장에서 밀려난 조선인들, 일자리를 찾아 몰려든 공장 노동자들, 한국전쟁 시기 북에서 내려온 피난민들이 집단주거지를 형성했다.

배다리에는 옛 건물들이 많이 남아 있다. 1897년 한국 최초의 철도공사가 시작된 옛 우각역을 비롯해 1892년 개교한 인천의 첫 사립학교인 영화학교, 개교 100돌을 넘긴 창영초등학교, 1890년대 지어진 알렌별장 터, 조흥상회 같은 근대 상업건물, 미국 감리회 한국여선교사 합숙소가 여전히 자리하고 있다. 여기에 옛 성냥공장, 양조장, 여인숙길, 전통한복길, 고서점길 등은 지역의 쇠퇴상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배다리지기들은 이를 마을의 정체성이자 마을의 공공적 가치로 전유하여 배다리역사문화마을을 내세우며 싸웠다.

또한 마을을 지키기 위한 국책사업 반대운동을 넘어서서 마을의 역사문화적 가치를 키우는 활동으로 나아갔다는 점도 특징적이다. 2007배다리 역사문화 여는 마당에서 출발한 배다리문화축전’, 지역화폐인 띠앗이나 벼룩시장, 간판 개선 사업, 마을벽화 그리기, 마을텃밭 가꾸기, 도시생태 캠핑, 생태놀이숲 조성, 헌책 잔치, 배다리 문화축전, 배다리 주말극장, 배다리 인문학 교실, 목공교실, 소식지 발간 등은 지역성이 뚜렷해 유대를 강화하고 마을 생활을 풍요롭게 만드는 활동들이었다. ‘배다리를 가꾸는 인천시민 모임2009년에는 배다리를 가꾸는 인천시민 모임으로 개명하고 구호도 산업도로 반대에서 배다리는 살아있는 인천의 역사입니다로 바꿨다.

 

비어 있음을 무엇으로 채웠는가

도시는 토지의 상품화 정도가 높고 사적 소유가 곳곳으로 침투해 있으나 나대지, 빈집과 같은 공터가 존재하며 이 공터는 새로운 활동이 일어나는 터전이 된다.

배다리에서 비어 있음이 생겨나는 경로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 경로는 장기간 활용되지 않는 건물이나 방치되어 있는 땅이었다. 배다리는 오래된 마을이며 오래된 건물이 많다. 이들 건물과 거리는 역사적 가치를 지니지만 쇠퇴한 모습으로 비쳐지기도 한다. 배다리에서 새로운 문화공간은 바로 사용되지 않던 건물들에 자리 잡아 생활문화공간 달이네..’, 요일가게, 나눔가게 돌고, 나비날다 책쉼터 등 도시 재생에 나섰다.

두 번째 경로는 산업도로 지하화에 따른 것이었다. 산업도로 건설은 배다리마을 3구간을 남겨둔 채 1, 2구간을 우선 개통하려다 주민들이 전 구간 전면 폐기를 내세우며 막아섰고, 3구간의 경우 지하화를 전제로 주민들이 마을텃밭 가꾸기, 여름생태캠프 개최, 생태놀이터 조성 등 공동체 활동의 거점으로 활용했다.

배다리공유지 운동은 이처럼 곳곳의 유휴공간 활용을 포함해 배다리 마을을 공유지로서 성격 전환하겠다는 지향을 설정하고 있었다. 여기서 공유지는 공원처럼 뚜렷한 경계와 면적을 가진 공간이 아니라 공유화(commoning) 활동의 장을 가리킨다.

 

행정이 아닌 민간의 시선으로

배다리공유지 운동의 방향은 역사·문화·생활·생태 공동체였다. 20105월 산업도로 건설을 일단 막아낸 배다리 활동조직 및 구성원들은 역사·문화·생활·생태 공동체 조성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배다리역사문화마을만들기위원회를 꾸렸다.

그런데 주민들과 예술가들의 노력에 힘입어 옛 건물들, 공예거리, 헌책방 골목이 쇠퇴상이 아니라 배다리 마을만의 역사문화 자산으로 여겨져 사진명소 등으로 주목받자 인천 동구청은 관광 활성화를 목표로 삼아 재공간화 계획을 수립한다. 동구청은 2016년부터 국토교통부 공모 지원 도시재생선도사업인 개항창조도시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거기에 배다리근대역사문화마을조성사업계획을 포함시킨 것이다. 이는 시설과 조형물 등 외관을 옛 이미지로 꾸미는 볼거리 중심의 관광지 조성 계획이었다.

대신 배다리지기들이 내세운 것은 배다리역사문화마을이다. 이는 동구청의 사업명인 배다리근대역사문화마을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나 두 가지 중요한 차이가 있다. 첫째, ‘근대라는 말이 들어있지 않다. ‘근대는 배다리마을을 과거시제로 박제화해 실제 생활과는 유리된 볼거리로 바라보는 어감을 지니고 있다. 둘째, ‘배다리역사문화마을은 마을의 미래 지향점이지 사업명이 아니다. 여기서는 마을이 지닌 공유적 자산과 가치를 바라보는 민간과 행정의 시선 차이가 드러난다. 그것이 바로 배다리공유지 운동에서 얻을 수 있는 또 하나의 시사점이다.

 

사진=2007년 배다리 마을의 모습과 동인천 주변 도시재생사업 조감도(필자 제공)

 

계묘년 새해를 맞이해 제주대학교 공동자원과 지속가능사회 연구센터와 공동으로 공동자원과 주민자치를 주제로 한 시리즈기획을 새롭게 선보이게 되었습니다. 상부상조하는 공동체의 원형과 전통이 잘 계승되어 유지, 발전되는 특별한 지역 제주그리고 공동자원과 주민자치의 이야기가 지면을 한층 풍성하게 해줄 것입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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