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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5월 혁명 55주년에 돌아보는 ‘존재 지향적’ 주민자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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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5월 혁명 55주년에 돌아보는 ‘존재 지향적’ 주민자치
  • 이관춘 연세대학교 객원교수
  • 승인 2023.05.31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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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관춘의 마을·자치·교육

금지하는 것을 금지한다(Il est interdit d'interdire).”

 

19685월 프랑스를 시작으로 전 세계를 뜨겁게 달군 ‘5월 혁명’(혹은 68혁명)의 성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구호다. 파리의 거리로 쏟아져 나온 대학생들은 기존의 위계질서와 권위주의에 반감을 숨김없이 드러내며 격렬하게 저항했다. 이렇게 시작된 시위가 프랑스는 물론 유럽 전 지역과 미국, 일본 등지로 이어지는 문화적, 사회적 혁명의 서막이 될 줄은 그들도 몰랐을 것이다.

68혁명은 먼저 진원지인 프랑스를 뒤집어 놓았다. 뉴욕타임즈의 기사(2018.5.5) 제목처럼 한 달 간의 혁명은 프랑스를 현대적인 세상(Modern World)으로 밀어 넣었다.” 신문은 프랑스를 변형시켰다(transformed)”고 강조한다. 18세기의 프랑스 대혁명처럼 정치적 혁명은 아니었지만 놀랍도록 짧은 시간 내에 프랑스를 변형시킨 문화적이며 사회적인 혁명이었다는 것이다. 기존의 불합리한 위계질서와 권위주의가 금지하는 것을 금지한 혁명이었다.

 

세계 최초의 자치 혁명68혁명

굳이 우리나라도 아닌 프랑스 현대사의 한 사건을 언급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를 자문(自問)해 볼 수 있다. 물론 올해 5월이 68혁명 55주년이라는 숫자가 주는 상징성 때문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사실이지만 반드시 그 때문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필자는 반세기 전 어쩌면 단순한 시위로 끝났을 수도 있었던 프랑스의 그 사건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세계적인 자치 의식의 혁명을 촉발시켰다는 점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68혁명은 전 세계적인 중앙집권과 통제의 앙시앵레짐(ancien regime)을 해체시키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한 세계적 차원의 사건이었다. 미국의 저명한 역사학자인 이매뉴얼 월러스틴(Wallerstein)"이제껏 세계적 혁명은 단 둘뿐이었다. 하나는 1848년에, 또 하나는 1968년에 일어났다. 둘 다 실패로 끝났지만 둘 다 세계를 뒤흔들어 놓았다"고 단언한다. 영국의 사학자인 에릭 홉스봄(Hobsbawm) 역시 68혁명은 역사상 두 번째 세계혁명이라 말하며 이 장대하고 극적인 사건이 영향을 미치지 않은 곳은 세계 어디에도 없었다고 강조한다. 단지 한국만은 예외일 것이다.

이 장대하고 극적인 사건이 전 세계에 미친 영향의 핵심은 자치 의식으로의 전환이다. 우리 자신에 대해, 그리고 가족과 학교, 직장, 정치 등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보는 의식과 방식에 있어서의 극적이고 근본적인 변화다. 동서양의 역사가 보여주듯 이러한 변화나 전환은 어찌 보면 사소하고 단순한 생각 습관에 대한 질문과 저항에서 시작된다.

프랑스의 5월 혁명도 마찬가지다. 두 달 전인 322일 프랑스 파리 근교의 낭테르 대학에서 학생 6명이 미국의 베트남전쟁 개전에 항의해 성조기를 불태운 혐의로 체포되자 학생운동을 이끌던 다니엘 콘벤디트(당시 23)는 강의실을 돌며 분노한 학생들을 규합했다. 그런 와중에 기숙사 통금과 남학생들의 여자 기숙사 방문 금지 규정 등 일견 사소해 보이기도 한 그때까지의 억압적인 생각 습관들에 대해 질문을 하면서 저항이 시작되었다. 53일에 소르본대에서 본격적으로 확대된 대규모 집회와 시위는 학생들의 연행과 경찰의 과격한 진압으로 인해 대중운동으로 급격히 퍼져 나가게 된다.

시위 현장에 등장했던 구호들이 당시 참가자들의 지향점을 잘 보여준다. ‘금지하는 것을 금지한다’ ‘모든 권력을 상상력에’ ‘우리 안에 잠자고 있는 경찰을 없애야 한다’ ‘열정을 해방하라’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라등의 구호들은 다양한 정치, 경제, 사회문화적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지만 그 요구의 핵심은 기존의 사회구조, 기성체제의 권위주의가 억누르고 있는 자치의 부활이었다. 실존적 존재로서의 인간 삶의 근원적 요구는 자유롭게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면서 자신을 창조하려는 욕구이기 때문이다.

자율과 자치는 인간의 유전적 욕구이자 자연의 순리이다. 68혁명의 구호들은 개인과 개인이 속한 공동체를 위협하는 제국주의, 비인간화된 서구의 자본주의 및 동구의 사회주의, 교육과 성차별, 인종차별 등 인간으로서 스스로 존재하려는 의지를 억압했던 기존 사회구조의 혁신을 요구하는 의식혁명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68혁명이 한창이던 시기에 광적일 정도의 인기를 끌던 영국 록밴드 비틀스가 흑백 인종차별을 하는 미국 무대에서는 공연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아 주장을 관철시켰던 그 이유를 알게 된다. 또한 그 당시 작곡(19691월 녹음)된 비틀스의 렛 잇 비(Let It Be)’가 발매와 동시에 미국과 영국 등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것도 당시의 시대적 요구와 무관치 않음을 알 수 있다.

반면에 부정적이고 심지어 적대적인 리뷰를 받은 유일한 비틀즈 앨범이라는 세간의 평가는 역설적으로 노래 속에 함의된 그냥 놔두라(let it be)’자율과 자치에의 외침에 대한 권위주의적 기득권의 거부반응인지도 모른다. “인간이 곤경에 처해 있을 때나, 암흑의 시간 속에 있을 때, 혹은 마음의 상처를 지닌 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갈 때나 심지어 헤어지게 된다 해도스스로 하게끔 놔두라는 말. 그것이 지혜의 말(words of wisdom)”이라 속삭이는 노래가사에서 자신의 존재와 삶을 스스로 다스리고 결정하겠다는 외침이 들리는 것은 필자만의 느낌은 아닐 것이다.

 

존재를 위한 생활 혁명

사회문화적 혁명의 성격이 강한 68혁명은 유럽의 정치권을 근본적으로 뒤바꾸지는 못했지만 기존의 정치문화에 커다란 자극제가 되었다. 프랑스에서는 종교, 애국주의, 가부장적 권위에 대한 복종 등의 보수적 가치들을 대체하는 평등, 성해방, 인권, 공동체주의, 생태주의 등의 진보적 가치들이 사회의 주된 가치로 자리매김하였으며 이는 유럽 전역에 영향을 끼쳤다. 특히 그 해 8월 멕시코에서는 사회개혁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로 표출됐고 70년대 초까지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아르헨티나, 일본 등지까지 학생운동으로 번져나갔다.

이러한 개혁운동은 비인간화된 자본주의 소비사회에서 소외되어 살면서도 당연시하던 평범한 시민들에게 비판적인 성찰의 기회를, 그리고 삶의 의미를 새롭게 돌아볼 수 있는 변화의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그 변화란 인간답게 존재하기 위한 생활 혁명이다. “더 많이 소비하라, 더 빨리 죽으리니”, “일하지 말라라는 구호에서 드러나듯 68혁명은 삶의 질은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부의 무한증대와 경제성장에만 몰두하는 사회의 어리석음을 고발한다. 그로인한 과소비와 불평등, 비인간화에 따른 일상적 소외를 극복하지 않으면 모두가 죽는다는 위기의식을 강조한 것이다.

이러한 사회문화적 혁명의 바탕에는 이를 추동하는 진보적 철학사상이 있었다. 특히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역할이 컸다. 호르크하이머를 비롯해 헤르베르트 마르쿠제(Marcuse)와 에리히 프롬(Fromm)의 철학은 68혁명의 뒷받침이 된 것은 물론, 포스트 코로나19 시대의 근본적인 변혁을 위한 철학의 바탕을 제공하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68혁명의 정신적 스승(guru)으로 평가받는 마르쿠제는 대표 저서인 일차원적 인간에서 드러나듯 자본주의 사회의 심층적 구조와 그 모순의 본질을 파헤치고 인간다운 삶을 위해 무엇이 본질적으로 요청되는지를 탁월하게 규명해냈다. 그런 그가 당시 학생들의 열정과 대의를 향한 성원을 거두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마르쿠제와 함께 권위와 가족을 저술한 프롬 역시 정신분석의 이론과 사회학 분야의 깊은 통찰을 통해 비인간화된 삶의 방식을 극복하려는 68혁명의 노력을 지지했다. 프롬은 저서 소유나 존재냐에서 68운동에 참가한 학생들의 존재 지향적 삶을 위한 순수한 변화의 열정을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이 젊은이들에게서 우리는 취득과 소유의 감춰진 형태가 아니며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데서 진정한 기쁨을 나타내는 소비패턴을 보게 된다. 이들 젊은이들은 먼 곳까지, 그것도 가끔 고생을 하면서 찾아가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보고 싶은 장소를 보고,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난다. 그들의 목적이 그들이 생각하는 만큼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는 여기서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들에게 충분한 진지성, 준비 혹은 집중력이 없다고 하더라도 이 젊은이들은 과감히 존재하려고 할뿐 보상으로 무엇을 얻느냐, 무엇을 보존할 수 있느냐 하는데 관심을 갖지 않는다. (중략) 그들은 아직 자신이나 실제생활의 지표가 될 목적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갖기 위해서나 소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되기위해서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프롬은 68혁명을 통해 젊은이들이 요구하는 사회변화는 인간으로서 존재하는 것’, 그리고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란 점을 포착하고 있다. 이를 위해 소비패턴도 소비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행하는 데서 기쁨을 얻는 소비로,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한 소비패턴으로 바뀌고 있다고 말한다.

슬라보예 지제크(Zizek)68혁명이 가져온 이러한 변화를 새로운 자본주의 정신이라 규정한다(한겨레, 2018.3.2.). 나아가 이러한 새로운 자본주의 정신은 이제 기업 자본주의의 억압적인 사회조직, 그리고 실재하는 사회주의 양자 모두에 반기를 든 성공적인 자유지상주의 혁명으로 스스로를 현시하기에 이르렀다고 말한다.

 

존재 지향적 삶을 위한 주민자치

슬라보예 지제크는 새로운 자본주의 정신의 한 사례로 신발기업 탐스슈즈를 든다. 탐스슈즈는 2006년 다음과 같은 단순한 전제 위에 설립된 신발업체다. “고객이 신발 한 켤레를 구매할 때마다 탐스슈즈는 일대일 기부 공식에 따라 도움이 필요한 제3세계 어린이에게 신발 한 켤레를 전달합니다. 우리의 취지는 고객의 구매력을 사회적 공익에 사용하는 것입니다. 전 세계 60억 인구 중 40억의 사람들은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운 열악한 조건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탐스슈즈와 함께 내일을 위한 한 발자국을 내디디세요.” 프롬의 표현을 빌리면 이런 기업은 소비자본주의 체제 하에서도 과감히 존재하려고 하는새로운 자본주의 정신을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자본주의 정신 운동은 각자도생이 당연시 되는 21세기 신자유주의 세계화시대에도 점차 확산되고 있다. 윤리적 소비행위를 통해 소비자 개인이 공동체적 운동의 일부가 되는 경험, 자연환경을 보존하고 소외된 이들을 돌보는 경험을 통해 인간으로서 존재하기 위한 삶을 추구하는 것이다. 프롬이 말하는 소유지향적 삶에서 존재지향적 삶으로의 패러다임 변화다.

존재지향적 삶으로의 변화는 68혁명과 같은 해에 발족한 국제적 민간단체인 로마클럽1972년 발간한 성장의 한계에서, 그리고 최근 성장의 한계발간 50주년(2022)에 펴낸 보고서에서 제시한 웰스 경제에서 웰빙 경제로의 전환을 통해 새롭게 강조되고 있다. '웰빙 경제학은 부의 축적과 성장에 초점을 맞춘 삶의 방식을 탈피해 인간으로서 잘(well) 존재하는(being) 것을 중시하는 삶의 방식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주목할 점은 프롬이 강조한 존재 지향적 삶이나 로마클럽이 역설한 잘 존재하기 위한웰빙 경제학은 1972년 유네스코 포르(Faure) 보고서에서 이미 강조되었다는 점이다. 보고서의 주역인 에드가 포르는 68혁명 당시 프랑스의 교육부 장관이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20세기 가장 위대한 교육개혁 보고서로 평가받는 포르 보고서는 로마클럽의 성장의 한계와 같은 해에 발표되었으며, 제목 자체가 존재를 위한 학습(Learning to Be)’이다. 포르 보고서는 20세기의 학교교육체계가 거의 한계에 봉착했으며 근본적인 대규모 혁신이 필요한 시점에 와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또한 혁신을 위해서는 작은 개선이 아니라 크고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한다. 보고서 서문에서 밝히듯 그 근본적인 개혁이란 교육의 지속적 확장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교육의 목표와 방법, 구조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함으로써 인간이 그 자신의 존재성을 실현하도록하는 것이다.

55년이 흐른 지금 68혁명에 대한 평가는 관점에 따라 다양할 수 있다. 그러나 2021년 세계경제포럼(WEF)의 공식주제가 대규모 리셋(The Great Reset)이 될 만큼 포스트 코로나19 세계는 근본적인 변화와 혁신이 요구되고 있으며, 그 혁신의 방향에서 68혁명의 성과는 재조명될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바로 소유와 부 중심의 삶에서 존재 지향적경제와 사회, 교육 등으로의 전환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러한 존재 지향적 삶으로의 전환은 에리히 프롬을 비롯한 프랑크푸르트 학파나 로마클럽 등에서 제시한 삶의 방식이며 이들은 모두 프랑스 68혁명에 직간접적으로 빚을 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존재 지향적 삶이 무엇인지를 정의하는 것은 쉽지 않다. 왜냐하면 눈에 보이는 소유나 와는 달리, 존재가 관계하는 것은 개인적 경험이기에 보이지도 않으며 개인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프롬에 따르면 존재 지향적 삶은 한 개인이 다른 사람 및 사물들과 관계하는 근본 방식을 의미한다. 존재 지향적인 사람은 자기 스스로가 주체로서 존재하고, 자신과 타인, 자신과 공동체와의 관계가 대립이 아니라 서로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다른 사람이나 사물과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호의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며 타인의 성장을 도우려고 한다. 소비자로서의 개인이든 생산자로서의 기업이든, 슬라보예 지제크(Zizek)68혁명이 가져온 변화라고 말한 새로운 자본주의 정신이 존재 지향적 삶의 한 형태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본 다면, 지역의 주민으로서 스스로가 삶의 주체로서 존재하는 주민자치는 존재 지향적 삶의 중심인 철학이자 실존적 당위라 할 수 있다. 소유양식의 주민자치에서 주민은 다른 주민이나 지역사회를 객체이자 대상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그는 타인이나 지역사회를 대립된 것으로 인식한다. 이 경우 주민은 타인이나 지역공동체를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소유물로 인식하게 된다. 그 결과 주민자치가 자신에게 현실적이며 직접적인 이득을 가져다주지 않을 경우 그 필요성을 쉽게 외면한다.

반대로 존재양식의 주민자치에서 주민은 프롬이 말한 함께 사는 무도회에 참가하는 마음으로 타인과 지역사회를 대한다. 신발기업 탐스슈즈에서 보여주는 경영자와 종업원, 소비자와의 관계처럼 다른 주민과 지역사회의 성장을 도우면서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존재한다는 것, 자신이 삶의 주체로 살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서 충만감을 느끼며 서로에 대한 친밀감, 지역사회에 대한 애정 어린 관심을 갖게 된다.

이런 점에서 존재 지향적 주민자치는 68혁명의 정신과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어쩌면 존재 지향적 주민자치라는 말이 이상적이며 추상적으로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탐스슈즈같은 기업들이 보여주듯 성과달성과 이윤추구가 지상 목표인 비즈니스 세계에서도 존재 지향적 기업경영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음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19 시대에 새로운 자본주의 정신’, 존재 지향적인 새로운 주민자치 정신의 사상을 제공했다는 점에서도 68혁명은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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