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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자치 운동의 필요성과 경쟁력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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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자치 운동의 필요성과 경쟁력을 본다
  • 전영평 대구대학교 명예교수
  • 승인 2023.08.01 10: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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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평 교수의 자치이야기

한국 주민자치가 제대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능동적 주민자치 운동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에는 주민자치 운동 세력 이외에 그 어느 주체-국가, 정부, 단체, 주민-도 주민자치의 필요성, 중요성에 공감하고 활동하려는 적극성을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민자치의 본질적 의미를 이해하고 공익적 관점에서 주민자치 정착을 위해 능동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주체가 거의 유일하게 존재한다. 한국주민자치중앙회/한국주민자치학회가 바로 그 단체이다. 필자는 이 단체를 공익형 주민자치 옹호단체로 부르고자 한다.

중앙정부와 정치권은 주민자치의 의미와 중요성을 외면한 채 정치주도/관주도의 관변자치를 주민자치인 것처럼 포장하고 있다. 지방정부-자치단체장, 지방의회, 지방공무원-의 경우에도 주민자치를 주민의 행정 참여-행정사무의 자문, 심의, 건의-수준 정도로 이용하면서 자신에게 편한 방식으로 해석하고 무사안일하게 대응하고 있다.

주민자치(inhabitant autonomy/citizen autonomy)와 주민개입(inhabitant involvement/citizen engagement)은 구성원리, 의사결정구조, 참여방식에 있어서 엄청난 차이가 있음에도 말이다. 잘 알다시피 박원순의 서울특별시는 관변 시민단체/정파적 편향단체를 동원하여 주민에게 주민자치를 교육시키고 운영을 돕겠다는 명분을 내세워 각종 부조리를 조장하고 주민의 주민자치권을 대신 행사하는 몽니를 부렸다. 박원순의 대선 출마 욕심과 서울시 공무원의 관료주의적 순종이 빚어낸 주민자치 촌극이었다.

2022년 시행된 전면개정 지방자치법의 경우에도 주민자치 강화를 첫 번째 성과로 홍보했지만 사실은 주민자치의 핵심 몸체인 주민에 의한 주민총회 구성과 운영의 자율성 보장에 대한 제도적 보장은 빠진 채 주민발안, 주민감사청구 요건 완화 등과 같은 주민참여 사안 개정을 주민자치 강화라는 왜곡된 표현으로 포장한 것이었다.

전면개정 지방자치법의 핵심 요체는 사실상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단체장, 지방의회)-그들만의 리그-간의 숙원 요망사항을 주고받은 타협안이었다. 예컨대 자치단체는 조직설치 재량권을 확보하였고 지방의회는 보좌관제도를 얻었으며 중앙정부는 광역행정주도권을 갖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주민자치 강화라는 사안은 개정법의 서두를 장식하는 레토릭(수사법)으로 활용되었다.

주민자치와 행정참여는 분명히 다른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의 정치권과 행정부, 지방정부는 서로의 지대추구(rent seeking)를 위해 개정안을 밀어붙였다. 정치권은 주민자치 이슈의 중요성 같은 것은 아예 거들 떠 보지도 않았다.

한국의 주민자치를 이렇듯 엉망진창 부실하게 만든 가장 큰 이유는 정치권과 중앙정부, 지방정부(단체장/의회), 읍면동장의 이해득실 무사안일 상호협업 결과 때문이다. 제도적 권력을 가진 주체가 주민자치를 왜곡하고 폄하하며 행정 권력에 종속시키려 하려들 때 이를 막아낼 수 있는 주체는 현실적으로 버텨내기 힘들다.

 

유일무이 공익형 주민자치 옹호단체의 존재

더구나 주민자치와 같은 대중정치적 이슈일반 대중이 먹고사는 일에 당장 영향을 주지 못하지만 정치적 권리적으로는 중요한 이슈-에 발 벗고 나서 문제를 지적하고 시정하라는 운동을 주도할 공익형 주민자치 옹호단체가 생겨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매우 신기하게도 한국에는 주민자치 실질화 보편화를 위해 노력할 뿐 아니라 주민자치에 관한 학술 연구, 주민자치 전문잡지 발간, 주민자치 교육연수원 설치, 주민운동의 전개와 저항, 법률적 구조행위, 전국적 조직망을 구축한 한국주민자치중앙회라는 단체가 존재하고 있다.

중앙회가 개최하는 각종 세미나, 행사 등에 일 년 반이 넘게 참여하여 관찰한 바로는 한국주민자치중앙회는 순수한 민간단체로서 특정 이념과 정파적 이해에 휘둘리지 않고 풀뿌리민주주의 입장에서 (주민의, 주민에 의한, 주민을 위한) 주민자치 구현을 위해 십수년간 노력해 온 단체이다. 조직구성이나 운영의 측면에서는 한국새마을운동중앙회와 유사하지만 여러 가지 측면-규모와 정부 지원 여부 등-에서 큰 차이가 있다. 주목할 만한 차이는 새마을운동중앙회의 리더는 사실상 정치적 임명직이라 할 수 있는 데 반하여 한국주민자치중앙회의 설립, 존속, 유지는 중앙회 대표회장의 의지와 투자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상직 회장에 의한 지난 십수년간의 투자와 활동은 매우 특이한 경우로 이는 마치 대학재단 설립자, 혹은 공공병원재단 설립과 유사한 것으로서 공익형 NGO/NPO의 설립과 비슷한 상황에 해당한다. 그런데 중앙회가 추구해 온 순정한 형태의 주민자치 운동-즉 주민이 주인이 되고 조직을 만들고 총회를 하는 형식의 주민자치 운동-은 지금까지 크게 빛을 발하지 못한 채 정치권, 사회, 주민들에게 주요 이슈로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필자는 이런 현상을 정치실패, 정부실패, 시장실패, 주민실패라는 용어로 설명한 적이 있다.

주민자치는 국민 누구나가 누릴 수 있는 공공가치재-마치 민주주의라는 공공가치와 마찬가지-로서 매우 중요한 사회적 가치를 갖는 것은 사실이나 그것을 배타적으로 차지하기 위해 상호경쟁을 할 필요를 느끼지 않기 때문에(비배타성, 비경쟁성) 무관심 영역에 놓이는 대표적인 공공재적 가치인 듯하다. 주민자치라는 사회적 공공적 가치구현이 우리에게 존재하지 않아도 자기주장을 자유롭게 할 수 있고, 자치회 활동에 참여하지 않아도 불편이 없는 상태라면 사람들은 주민자치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게 될 것이다. 동네 저수지가 마르거나 넘치지 않는 한 저수지의 공공가치에 관심을 두는 사람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 경우이다.

주민자치가 구현된 상태가 지금보다 훨씬 더 큰 자존감, 자율성, 마을의 삶의 질, 민주주의, 사회자본을 구축하는 선진민주주의 문명사회로 이행하는 것이라고 열렬하게 설득할지라도 이에 적극 동조하여 공적 활동에 시간과 비용을 투하하는 주민이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를 하기는 어렵다. 이런 이유로 인하여 역설적으로 주민자치 운동을 하는 공익적 단체의 활동과 노력이 더욱더 필요해지게 된다.

당장의 상황을 비관적이거나 실망스러운 것으로 판단하여 좌절한다면 공익적 가치 획득 노력-예컨대 자유민주주의운동, 환경보전 운동, 인권존중 운동 등-은 결코 실현될 수 없었을 것이다. 거대 국가권력에 대항하는 공익적 시민운동, 거대 기업에 맞서는 소비자보호운동은 물론이거니와 일반 국민을 각성시키는 기후변화 대응 운동, 청정에너지 운동, 국제구호 운동 등은 대부분 조직화에 성공한 공익 NGO/NPO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 주민자치 운동의 경우에도 서구의 역사적 진화과정을 모델로 하여 순정성, 진정성 있는 주민자치 운동을 지속 가능하게 전개하는 일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필자는 아래와 같이 주민자치 옹호 NGO가 갖추어야 할 역량 혹은 경쟁력 목록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주민자치 옹호단체가 갖추어야 할 역량과 경쟁력

첫째는 논리 경쟁력을 가져야 한다. 주민자치 옹호 단체는 무엇보다도 주민자치가 무엇이며(개념, 용어 정의), 주민자치의 시대적 공간적 가치, 주민자치 운동의 목표와 중요성, 주민자치 운동의 전개와 기대효과에 대한 논리적 근거(logical rationale)를 확실히 정립할 필요가 있다. 이는 주민자치를 제도적 현실적으로 주도 주관하고 있는 중앙/지방정부의 그릇된 관행을 제어하기 위한 기본적 논리 무장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현실을 보면 주민자치의 해석과 실행은 전적으로 정부와 정치가에게 맡겨진 가운데 주민자치의 의미, 필요성, 목표, 효과 등에 대한 홍보도 정부 주도로 진행되고 있다. 한마디로 정부가 북 치고 장구 치는 주민자치라고 할 수 있다. 주민자치 본뜻에 크게 어긋나는 이러한 관청 주도 하향식 주민자치에 대항해 그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운동을 하기 위해서는 중앙회 스스로가 주민자치 필요성에 대한 논리적 경쟁력을 가져야 한다.

둘째는 자료 아카이브와 실태분석 경쟁력을 가져야 한다. 관청 주도 주민자치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논리 경쟁력도 중요하지만 세계 여러 나라의 주민자치에 대한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는 일이 필요하다. 즉 주민자치 자료 아카이브에 구축하고 이를 주제별, 키워드별로 분류하여 조사와 연구에 필요한 자료로 사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또한 한국 주민자치 현황, 문제점, 개선방안을 사실적 객관적으로 제시하기 위해서는 주민자치 실태조사와 관련 자료를 정량적, 정성적으로 분석하여 발표하여야 한다.

현재 중앙회/한국주민자치학회는 한국에서 가장 많은 자료를 생산하고 있다. 이는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세미나, 토론회 자료를 많이 보관하고 있는 것하고 그 자료를 활용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드는 일, 그리고 정량, 정성적 분석을 위한 형태로 자료 분류 체계를 만들고 정리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월간 <주민자치>는 주민자치 담론, 세미나, 토론회, 관련 정보아마도 세계 유일의 주민자치 전문 월간지로서 가장 많은 자료를 엄청난 분량으로 생산 보유하고 있다. 이런 자료가 연구나 분석에 크게 활용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인공지능(AI)의 작동원리가 데이터를 통한 문제 해결 능력 발현이라는 사실을 직시할 때 향후 주민자치 분야에서 AI 활용은 필수가 될 것임이 분명하다. 세상에는 다양한 AI 검색 앱이 존재하지만 자료가 전문적이고 객관성이 부실할 때는 그 결과도 부실할 수밖에 없다. 결국은 한국주민자치중앙회/한국주민자치학회가 품질 높은 자료를 만들어서 아카이브화 하고 이를 전문적으로 분석 가공해야 주민자치 연구의 품질과 활용도가 높아질 것이다. 이를 위해 한국주민자치학회 내의 주민자치연구소가 콘트롤타워가 되어 자료 아카이브를 구축하고 전문적이며 고품질의 연구와 분석을 주도하였으면 한다.

셋째는 주민자치 대안 경쟁력이다. 관청 주도 주민자치에 대한 실망감은 1995년 지방자치가 전면 실시된 이후 수십 년째 이어지고 있는 악몽이다. 주민 스스로가 해야 할 주민자치를 관청이 대신해 주겠다는 발상과 멘탈은 실로 반민주주의적이다. 관존민비 사고방식, 관청 편의주의, 지방정치인의 득표 전술이 합작하여 만들어 낸 괴물이 오늘의 주민자치 현장이다. 지방자치 전문가는 물론이거니와 주민들마저도 주민자치를 관청 자문으로, 주민자치센터, 행복센터 프로그램 향유로, 기껏해야 행정 참여로 이해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다고 해서 관청 주도의 주민자치의 실태를 비판하는 것으로 주민자치 운동을 마감할 수는 없다.

 

논리대안조직 경쟁력과 체계적 아카이브 구축 그리고 주기적 평가의 필요성

중앙회/한국주민자치학회는 현행 주민자치의 실태와 문제점을 명확히 제시하고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주민자치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사실 중앙회는 십수년간 한국 현실에 맞는 주민자치 대안을 고민하고 나름대로 제시하였다. 읍면동 민주화와 연결된 통리 단위 주민자치 모형이 대표적인 대안이다. 주민자치의 기본정신, 가치, 철학, 역사적 맥락, 실질화 원리 등도 잘 개발하였다. 문제는 중앙회가 제시하는 대표적 대안의 (시대적 공간적) 적용 가능성, 수용 가능성, 실행 가능성이 제대로 검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안 제시는 언제나 위험부담과 책임의 문제가 따른다는 점도 큰 장애물이다.

그러나 분명한 한 가지는 있다.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주민자치회를 구성하고 동네의 주요 현안을 주민 회의를 거쳐 결정하는 과정에서 민주주의 학습이 이루어지는 방식으로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진정한 풀뿌리민주주의 정착은 주민회가 결정한 일의 성공 실패 결과가 아니라 토의와 결정 과정에서의 민주적 의견 표출과 토론, 규칙 만들기, 상호존중, 자원봉사, 동네 가치의 발견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것이야말로 자치회 내에 축적되는 민주적 사회자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일을 제일 잘 연구하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곳이 현재로서는 중앙회/한국주민자치학회이다.

마지막으로 조직 경쟁력이다. 한국주민자치중앙회는 고유 사업을 수행하기 위한 조직을 가지고 있다. 중앙회 조직은 크게 핵심 현안 사업, 회원 관련 사업, 학회 관련 사업, 월간지 제작 배포사업, 조직관리 사무를 이행하도록 짜여 있다. 중앙회 조직은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사업 목표 달성을 위해 전략적으로 특화 되어 있는 것이 그 특징이다.

그런데 전략적으로 조직구성이 특화된 조직이라고 해서 그 조직이 능률적이고 효과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가장 큰 변수는 사업기획력이다. 기획력이 탁월하기 위해서는 유능한 인재가 필요하다. 그다음은 가용 재원의 확보이다. 재원의 조달은 회비, 사업소득, 기부금, 후원금으로 이루어지는바 이들 재원의 지속적 확보역량과 균형이 요망된다.

조직의 거버넌스 구축 역량 및 홍보 역량도 조직 경쟁력 핵심 척도의 하나이다. 중앙회 조직의 규모와 특성상 중앙회 조직 역량에 전문 평가를 받을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조직관리의 혁신은 사업의 성패, 목표 달성과 직결된 중요한 변수이기 때문에 아무리 공익형 NGO라고 할지라도 주기적인 자체 평가/외부 평가를 받아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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