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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글] 한국 주민자치의 현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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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글] 한국 주민자치의 현주소
  • 전상직 한국자치학회 회장
  • 승인 2016.04.01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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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상직 한국자치학회장.
전상직 한국자치학회 회장.

한국의 주민자치는 1912년 조선총독인 이토히로부미가 전통마을을 통폐합해 읍·면을 설치하면서 암흑기를 맞이했다. 해방이 되면서 국가는 일본의 강점으로부터 벗어 났지만, 주민자치는 아직도 일제치의 국가독점 행정체제가 그대로 남아서 아직도 행정이 주민의 영역까지 점유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번에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를 맞아 ‘국회의원 후보로부터 듣는 주민자치 대담·토론회’를 개최한 것은 주민자치법 입법을 담당하게 될 국회의원 후보들에게 주민자치의 적나라한 현실을 살펴서 바른 의견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또 주민자치위원들에게도 주민자치 실태를 학습시키고, 토론회 형식으로 나마 실천해보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대담·토론회를 진행하면서 느낀 것은 아직도 주민자치로 나아가는 길에는 도처에 넘기 어려운 절벽이 상당히 여럿 있다는 것이다.

첫 번째 마주친 주민자치 절벽은 주민자치위원

주민자치위원의 현재의 규정적 임무는 주민자치가 아니라 프로그램 자문이다. 그러므로 주민에 대한 임무도, 자치에 대한 임무도 없다. 그렇다고 자문이나 하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서 국회의원 후보 대담·토론회를 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상당수의 시·군·구협의회에서 대담·토론회를 실시할 정도로 괄목할 만한 성장을 했다. 그러나 다수의 시·군·구 협의회장은 대담·토론회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가하면, 동감은 하더라도 실시에 대해서는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자치력이 현저하게 부족한 것이다.

제도적으로 주민자치의 불모지대인 우리나라에서 국회의원 후보를 초청할 정도로 주민자치협의회가 성장했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묵시적인 공간에서, 묵시적이고 명시적인 방법으로 공무원들이 방해한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읍·면·동장이 위촉하는 주민자치위원들이 국회의원 후보를 대상으로 토론회를 가질 수 있을 정도가 된 것이다.

그러나 욕심을 부리자면 아직도 상당수의 시·군·구 협의회장은 해당 공무원에게 토론회 개최 여부를 질의하고, 지침에 따라 토론회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주민자치협의회 스스로 관치기구의 하나임을 자임하는 것이다. 그러나 태생이 읍·면·동장의 위촉이요, 임무가 프로그램 자문임을 감안할 때 충분히 이해될 수 있다.

두 번째 마주친 주민자치 절벽은 공무원

대담·토론회 취지에서 밝혔듯이 우리나라의 주민자치는 일제가 주민들로부터 탈취해 공무원의 행정사무로 복속시켜서 말살한 이후 100여 년이 지났다. 그래서 공무원들은 주민자치에 대한 이해도 없고, 행정제도로도 주민자치가 전혀 없다. 그러니 공무원들은 오로지 정부행정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행정관치만 할 줄 알고, 주민자치는 전혀 모르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그런 공무원에게 주민자치를 맡기는 것은 마치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기는 것과 같을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을 주민자치가 아닌 행정관치로 처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민자치의 본질은 행정관료가 빠져주기가 관건이 된다.

이번 토론회에서 공무원들이 과연 국회의원 후보 대담·토론회가 순수한 주민자치영역이니 주민들이 자치로 할 수 있도록 했을까? 결코 그렇지 못했다. 주민자치위원회가 사회적·정치적으로 힘을 갖는 것을 좋아할 단체장은 원칙적으로 없다. 더구나 국회의원 후보를 대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것으로 판단되는 대담·토론회를 단체장이 환영할리 없다.

일부 단체에서는 주민자치협의회장 혹은 주민자치위원장에게 직접적인 압력을 가해 토론회를 하지 말 것을 종용했다. 주민자치의 입장에서는 주민들이 대담·토론회를 통해 소통과 단합을 할 수 있지만, 공무원들의 입장에서는 어쨌든 반갑지 않은 행사에 직간접으로 영향력을 행사했다.

세 번째 마주친 주민자치의 절벽은 국회의원 후보

많은 후보들이 지방자치와 주민자치를 구분하지 못하고, 설령 구분한다손 치더라도 주민자치는 필요하다는 원칙적인 입장에서만 토론을 했다. 일부 토론자는 스스로가 주민자치위원 출신이라고 하면서도 주민자치위원을 주민들이 선출하는 것에 대해서 적절치 않다면서 거부의사를 표현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주민자치에 대한 심층적인 이해는 부족했으나 행정관치와 주민자치를 구분하고, 주민자치를 해야한다는 원칙에서는 대부분 동의한 것이 대담·토론회의 수확이다.

주민자치가 읍·면·동 차원에서 이뤄지는 일들이 있는가하면, 국가차원에서 해야 할 일들이 있는데, 국회의원 후보 대담·토론회에서는 국가차원에서 해야 할 일에 대해 집중하는 토론이다.

이번 대담·토론회를 종료하면서 한국의 주민자치가 한 단계 상승할 수 있는 큰 계기를 마련했다고 자부한다. 명치유신 때 민주(democracy)를 일본이 하극상으로 번역했듯이 우리는 지금 주민자치를 하극상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공무원들은 하극상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주민자치위원들도 하극상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주민자치의 현상을 전근대적인 시각에서 살펴보면, 하극상으로 보여 질수도 있지만, 주민자치는 하극상이 아니다. 주민자치는 주민들의 잘 살자는 몸부림이다. 그 몸부림이 성립할 수 있는 형식을 만나서 꽃으로 필 때 비로소 주민자치는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잘 살자는 몸부림이 정치-경제-사회의 영역에서 성립될 수 있는 형식을 고심하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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