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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주민자치법을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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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주민자치법을 만들자
  • 전상직 한국자치학회 회장·본지 발행인
  • 승인 2016.02.0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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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상직 한국자치학회 회장·본지 발행인.
전상직 한국자치학회 회장·본지 발행인.

주민자치라는 말이 인구에 회자된 것이 15년 여 됐고, 그동안 우리는 1998년에 주민자치센터와 2013년 시범실시 주민자치회라는 두 제도를 경험했음에도 안타까운 것은 주민자치가 성공할 수 있는 경험을 비축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원인은 여러 가지로 분석할 수 있지만 주된 실패 원인은 두 정책이 ‘주민’을 도외시했고 ‘자치’를 무시했다는 것이다. 기본에 충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민자치는 지금 바로 새로이 시작해야만 한다.

2016년 병신년은 주민자치법이 입법되는 원년일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달에 국회에서 있었던 ‘주민자치 실질화 대토론회’는 매우 큰 의미가 있다. 그 동안 공무원이 독점해서 진행한 1998년 주민자치센터가 주민자치를 모르고 저지른 것이라면, 2013년 시범실시 주민자치회는 현장을 모르고 저지른 것이었는데, 그런 점에 대해서 처음으로 예리한 분석들과 적나라한 지적들이 있었다. 다른 토론과는 달리 경험에서만 연역해낼 수 있는, 또 주민자치를 하려는 가슴으로만 귀납해낼 수 있는 토론들이 있었던 것이다. 앞으로 주민자치정책을 수립하는 기본을 잘 짚었다.

주민자치센터에 대해서 읍·면·동장에게 교육센터를 맡긴 것은 큰 실책이었으며, 게다가 행정공무원인 읍·면·동장이 주민자치위원회를구성하도록 맡겨서 뜻있는 사람들의 자치 의지까지 효과적으로 좌절시켰다. 주민자치를 주민관치로 만들어서 주민관치도, 주민자치도 성공하지 못하게 만든 것이다. 실패의 경험조차도 없도록 만들었다. 행정자치부가 주도한 두 정책은 완전하게 빗나간 정책으로 처절하게 실패했다.

시범실시 주민자치회도 주민자치센터와 별로 다를 게 없었다. 무위도식의 대명사인 주민자치위원회를 주민자치회로 전환시킨 것은 자치에 대한 무지의 극치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이름이 비슷해도 주민자치위원회가 주민자치회는 아니지 않는가. 여기서 행정자치부는 주민자치에 대한 한계를 여지없이 드러내고 말았다. 그 뒤에 주민자치지원관제도와 주민자치 컨설팅 제도 등 극약을 투입했지만 누구도 치유하지 못했다. 더 이상 행정자치부에 성공적인 주민자치법 입법을 기대한다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한다. 뜻있는 사람들과 당사자들이 나서야 한다.

주민자치회는 위원회처럼 동장을 자문하는 단순한 기구가 아니라, 주민들과의 관계에서 주민자치라는 임무가 있어야 하며, 행정기관과의 관계에서 역할이 있어야 하며, 그 임무와 역할을 자치적으로 수행하는 기능도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주민자치회는 복합적인 조직이다. 사회적인 임무와 행정적인 역할과 조직적인 기능이 있어야 비로소 주민자치회는 조직으로 구성될 수 있다.

주민자치는 공동체 과정·방법 설계하는 것

주민자치회는 관변단체가 아니며 지역을 경영해야하는 조직이므로 주민총회 같은 최고 조직, 이사회 같은 의결기구, 집행부 같은 집행조직도 있어야 하며, 적재적소에 해당 임무를 수행할 수있는 적임자가 배치돼야 한다. 주민자치회는 무슨 일을 하는가에 따라서 조직과 인력이 결정되고, 절차도 형성되므로 무슨 일을 어떻게 하는가를 먼저 설계해야 한다. 그것도 필요하다고 해서 강요할 것이 아니라, 주민들이 동의할 수 있고 주민자치회가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주민자치사업을 설계해야 한다.

그런 주민자치회가 단순한 무보수 명예만으로 주민자치사업을 수행할 수는 없다. 재원이 필요하다. 주민자치 회원의 회비나 주민자치를 위한 목적세가 있어야 한다. 주민자치회원의 회비로 할 경우에는 주민들의 회비납부를 유인할 수 있을 정도로 호소력 있는 주민자치사업이 있어야 하며, 목적세로 충당할 경우에도 세금을 투입할 만한 가치 있는 주민자치사업이 있어야 한다. 사업만이 아니라 조직도 회원들이 동의하고, 세금투입의 당위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기획돼야 한다. 주민자치회 조직과 사업이 잘 설계돼 주민의 뜻과 힘을 모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주민자치회는 전적으로 주민들의 뜻에 따라서 구성돼야 한다. 주민들의 자발성이 근거가 되지않으면 여느 행정기관과 다를 바 없다. 그러므로 행정사무 하청만을 위해 주민자치회를 설계하는 것은 본말을 전도시키는 것으로 식민지 시대에 사회정악을 위해 시행하는 제도와 다를 바 없다. 주민자치는 직접민주에 근거해서 성립하는 주민자치회여야 한다.

주민자치회는 정부의 하향식 행정을 일선에서 감당하는 준행정조직으로 설계돼서는 안 된다. 이미 대부분의 국가에서 채용하고 있는 3단계 행정구조를 우리나라는 4단계 행정구조로 운영하고 있다. 3단계의 자치계층에 행정계층인 읍·면·동이 하나 더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준행정기구인 주민자치회를 하나 더 만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주민자치회법을 입법해야 한다. 그것도 주민들이 자치를 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주민들의 자치가 바람직해 질 수 있도록 만드는 틀거리로 만들어야 한다. 주민자치는 국가와 시장과 사회가 맞닥뜨리는 지역에서 모순을 소화하고 발효시키는 기능으로 설계돼야 한다. 말하자면 공동체를설계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개인의 양보와 희생을 전제로 만드는 공동체가 아니라 개인의 자연스러운 삶이 저절로 귀결돼서 공동체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설계하는 것이다.

주민자치는 결과가 아니라 공동체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설계하는 것이며, 방법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어떤 연구나 조사도 성공할 수 있는 주민자치를 기획하는 데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모든 학자와 전문가가 머리를 맞대고 노력해야 한다. 모든 전문가들의 의견을 결집해서라도 국가 백년지대계인 주민자치법을 훌륭하게 입법해야한다. 그것이 주민자치에 대한 우리의 소명이다. 1998년 주민자치센터와 2013년 시범실시 주민자치회를 되풀이 하지말고 보란듯이 성공하는 주민자치를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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