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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는 지금] 일본 - "지속가능한 삶은 마을과 전통에서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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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는 지금] 일본 - "지속가능한 삶은 마을과 전통에서 비롯된다"
  • 김혜인 숭실대학교 정보사회학과 강사
  • 승인 2016.05.25 17: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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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공동체와 재생키워드는 ‘지역정체성’
도쿄 스미다 구 ‘밀집주택 시가지 정비사업’
시가 현 나가하마 시 ‘상점 활성화’
나가하마 시 구로카베 상점가.

근대의 도시와 지역은 역동성을 가진다. 오랜 공동체의 토양은 약화되고, 일자리나 주거를 찾아 이주한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섞여 느슨한 관계를 만들어 간다.공유한 것들이 적은 이들이 서로 상호작용하며 유대관계를 형성해 온 오래된 공동체의 열광적인 연대는 공동의 이해관계를 기반으로 한 유기적이고 계산 가능한 행태로 전환된다. 낙후된 지역은 자본적 효율성을 따라 대규모의 재개발, 혹은 신규자본 유입에 의한 젠트리피케이션으로 기존 거주민들이 떠나고 새로운 주민들이 유입된다. 이런 과정에서 지역의 정체성과 응집성은 점차 약화되고 자치역량도 약화될 수 밖에 없으며, 지역의 운용원리는 철저히 자본적 이해관계를 따르게 돼 재개발이나 재생에 있어 자본이익을 기대할 수 없는 경우, 지역은 쇠퇴하게 된다.

공동체와 마을이 붕괴된 이후의 지역쇠퇴는 어떻게 극복될 수 있을까? 중앙정부 차원의 계획이나 지원을 통한 보전밖에는 뾰족한 방법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낙후된 지역에 대한 중앙정부의 계획이나 지원도 예산의 한계가 있다. 이런 국면을 극복하기 위한 일본의 공동체 재생과 지역정체성 확립의 사례들을 찾아보자.


스미다구의 밀집주택 시가지 정비사업-------

1930년대로 타임슬립한 듯한 주택지

도쿄 스미다 구는 에도시대에 개척된 신도시(?)다. 도시 외곽의 빈민촌으로 일본 전역에서 도시를 찾아온 다양한 사람들이 나가야(長屋-빈민셋집)에 모여 살면서 상공업을 일궈가던 지역이었다. 이 시기의 스미다구 혼조후카가와 지역의 서민들의 삶과 정취를 배경으로 한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로도 유명한 곳이다. 특히, 스미다 구 내에서도 북쪽에 위치한 쿄지마 지구는 1923년 관동대지진의 직후 이재민들에 의한 새롭게 만들어진 주거지다. 원래 에도의 바깥 틀의 습지대로 대지진 직후 후카가와나 긴시쵸의 이재민들이 급거 택지를 조성해 옮겨 산 것이 이 마을의 시작이다. 그러므로 인프라 정비도 거의 되지 않았고, 농도가 그대로 오늘의 길이 됐을 정도로 낙후된 지역이었다.

그런데 제2차 대전 때 스미다 구의 다른 지역들이 폭격으로 큰 피해를 입었으나 쿄지마는 기적적으로 공습을 당하지 않았고, 그 때문에 종전 직후에는 많은 사람이 이주하고, 헥타르 당 800명 이상이라는 경이적인 거주밀도(아마 세계제일)를 기록한 경험이 있다. 따라서 쿄지마 지구의 주택은 다이쇼(大政) 말 부터 쇼와 초기에 걸쳐 건조된 것이 극히 많다. 오래된 건물이 얼마 남지 않은 도쿄에서는 매우 드문 낡은 주택지로 현재 인구 약 6000명이 노후주택에서 밀집해 살고 있다. 주변에는 1930년대로 타임슬립한 기분이드는 ‘시타마치 닌조 기라키라(서민들의 인정이 넘치는) 다치바나 상점가’라는 오래된 건물로 이루어진 상점가와 약 80년의 역사를 지닌 ‘하토노마치 도오리상점가’가 있다.

수익성이 나지 않아 주거정비지역으로 지정됐으나, 사업추진이 지지부진하던 이 지역은 최근 골칫거리였던 낡은 주택과 오랫동안 장사를 해오던 상인 조직이 오히려 지역재생의 구심점이 됐다. 특히, 이들 상점가 직영시설인 ‘챌린지 스폿! 스즈키 소우’는 신진 작가들의 아틀리에 및 숍으로 활용되고 있고, 옛민가를 이용한 카페 등도 있다. 빈 점포대책이 좋은 평가를 받아 경제산업성의 ‘신·노력하는상가 77선’에도 뽑혔다. 서민거리의 숨은 관광지 또는 아트스폿이 되면서 상가가 활기를 띠고 지역이 활성화되고 있다.


마을만들기센터 개설

일본의 밀집주택 시가지정비촉진사업은 현지개량형 정비방식의 도시재정비 사업으로서 마을만들기(마치즈쿠리)의 일환으로 추진됐다. 시행방식은 지방자치단체, 도시재생기구, 지역 주민, NPO, 컨설턴트 등이 함께 참여하는 제3섹터형 마을만들기 지원센터를 설립해 추진하고 있다.

쿄지마 지구를 제외한 스미다구의 다른 지역들은 1970년대부터 마을만들기(마치즈쿠리) 사업이 시작돼 마을경관 변화가 현저하다. 목조주택의 불연화가 진행되고, 재건축에 의한 새로운 주택이 오래된 주택을 대체해버렸다. 아담한 맨션이나 철골조의 주택이 높은 밀도로 늘어서고, 묘하게 디자인된 도로와 주택의 배합이 어딘가 이상한 마치나미(마을풍치)의 인상을 자아내고 있다. 주거개선으로 새롭게 유입된 주민들은 기존의 자치회로 잘 융화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반면, 같은 시기에 마을만들기가 시도됐지만, 당초 계획대로 사업이 진행되지 못한 것이 스미다 구의 쿄지마 지구다. 면적은 25헥타르 정도로 오래된 목조주택군으로 막힌 지구다. 스미다 구 전체를 보면, 남쪽지역은 목(目)자 모양으로 정연하게 정비된 지역과 협애한 옛 농로의 시스템이 그대로 남은 북측의 지역으로 분할돼, 쿄지마 지구는 북측지역 안에서 가장 비계획적인 장소로서 누추한 이미지였다. 근처의 무코지마가 요정이나 포주집이라는 유흥문화를 동반해 세련된 인상을 주는 것과 좋은 대조를 이뤘다.

마을만들기의 시책이 급하게 1970년대부터 80년대에 걸쳐 추진되기 시작했고, 밀집 시가지에 대해서도 제도상 큰 전진이 있었다. 경제성이 맞지 않아 대규모 부동산회사가 주도하는 재개발사업은 이뤄지지 못했고, 부분적으로 주거시설을 개선해 재생해 나간다는 방침이 정해졌다. 재생에 대한 주민참여 의사가 높아 마을만들기협의회가 조직돼 구청이 사업을 진행시키기 위해 ‘마을만들기 센터(まちづくり)’를 시작했다. 주민들이 직접 민간법인의 마을만들기센터를 개설했으며, 도청과 구청이 토지매입과 도로정비 등의 사회간접자본 대부분을 보조하는 원칙이 마련됐다(주택밀집 시가지 사업의 경우 4분의 3, 나머지 사업은 3분의 2).


행정에서 민간중심으로 사업주체 바뀌다

마을만들기를 중심으로 제도의 충실화와 주민의 조직화가 이뤄졌지만, 문제는 그 내용물이었다. 계획의 골자는 도로의 확폭과 불량주택의 재건축에 있다. 구획정리에 의지하지 말고, 토지매수를 행하며, 마을만들기 사업용지를 확보한다는 방법은 주민이나 현지의 산업에 인센티브를 얼마나 주는가 하는 문제를 남겼다. 사업을 시행하려고 하는 행정의 의사는 전해 졌지만, 현지 사람들이 좀처럼 동의하지 않았고, 사업진행은 늦어지기만 했다.

일반적으로 사업보고서는 활동의 주체는 행정이 되고, 주민은 어디까지나 지원돼야 할 대상이 된다. 이렇게 행정이 중심이 돼 추진을 하다보면, 주민은 사업의 주체로서의 자각이 없이 보상을 받고 떠나면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보다 나은 보상조건을 위해 움직일 수 밖에 없다.

지자체 스미다구에 의한 쿄지마의 모델사업은 커뮤니티 하우스의 건설이었다. 노후화한 목조주택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서서히 이 공공주택으로 옮기고, 단계적으로 용지를 확보하고, 도로확폭이나 새로운 하우징의 계획을 행하는 것이다. 철거민을 위해 ‘커뮤니티 주택’이라는 임대주택을 건설해 시중 임대료 보다 저렴하게 거주할 수 있도록 하고, 민간기업에서 임대주택 사업을 할 경우에도 경비를 지원하는 것을 골자로 했다. 그러나 공공에 의한 용지수매를 전제로 한 이 시책은 구의 재정을 압박하고, 도쿄 23개구 중에서도 특히, 수지가 나쁜 스미다 구로서는 그런 일을 계속할 수는 없었다. 1999년 결국 커뮤니티하우스의 건설도 중지돼 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6000명의 주민 중 30%가 65세 이상의 고령자 층으로 주도적인 사업추진이 어려웠던 이 지역에 재생주체로 나타난 것이 상점협회였다. 지지부진한 사업추진으로 상점가 운영이 어려워지자 상점주들이 중심이 돼 사업을 추진했다. 행정중심에서 민간중심으로 사업의 주체가 이전되면서 정비사업은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정비사업 시행 이후 ▲주민들을 위한 커뮤니티주택 건설 ▲지구 내 소공원 확보 ▲마을회관 등이 새롭게 들어섰고 ▲노후주택들의 개량사업으로 주거환경이 양호해졌고 ▲쿄지마 지구의 환경개선 이후에 독특한 풍광과 낮은 임대료에 매료된 젊은 예술가들이 노후주택에 작업실을 만들어 주민과 예술가가 함께하는 단체 ‘RICE+’가 생기는 등 쿄지마지구는 활기를 되찾게 됐다. 정부의 재정지원 속에서도 관중심의 사업추진 보다는 주민들의 주도권을 보장해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지속적인 마을만들기를 진행하고 있다.

나가하마 구로카베 그라스관(구구로카베 은행).
나가하마 구로카베 그라스관(구구로카베 은행).

나가하마시의 상점 활성화--------------

일본 제2의 도시 오사카(大阪)에서 기차로 1시간 반 떨어진 시가(滋賀) 현 나가하마(長濱) 시는 오사카를 중심으로 한 한신공업지대의 수원 비와코의 중심지이자 교토의 배후도시다. 나가하마의 중심부에는 교토와 오사카에서 일본해까지 연결되는 도로가 이어져 400년 이상 전부터 사람과 물건의 왕래로 활기에 넘쳤다. 주변에는 옛 그대로의 상가나 창고 등 전통적인 건물이 많이 남아있었는데, 이 건물들을 향토요리점이나 기념품점, 유리공예 갤러리 등으로 개장해 만든 것이 ‘쿠로카베 스퀘어’였다. 검게 칠한 외벽이나 판자로 만든 벽이 곳곳에 남아 있는 거리는 현대의 일본과는 다른 옛 정취를 느끼게 했다.


풍격있는 마을만들기 위원회 결성

1970년대에 지방 도시들의 경기침체 여파로 도심쇠퇴가 진행되기 시작해 1979년에 구도심에 있던 대형점포 2곳 세이유(西友), 헤이와도(平和堂)의 교외 이전 추진으로 구도심의 급격한 쇠퇴가 일어났다. 198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이곳은 늙어가는 일본사회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인구 6만명의 농촌도시로 전락했다. 위기의식을 느낀 상점가 상인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상점가 활성화를 위한 마치즈쿠리(まちづくり) 사업이 시작됐다.

상인과 지역 주민이 협의체를 구성해 모두 공감하고 힘을 모을 수 있는 방안을 구상해 ‘풍격(風格) 있는 마을만들기위원회’를 결성했다. 여기서부터 나가하마의 구도심 재생과 마치츠쿠리를 담당하는 지역단체 및 시민이 참여하는 나가하마 마치즈쿠리(長浜まちづくり) 주식회사와 제3섹터인 쿠로카베 주식회사, NPO법인 마치즈쿠리야쿠바(まちづくり役場) 등이 시작됐다. 이들 기관과 단체가 지방자치단체와 협력하며 지역의 활성화를 견인하고 있다. 마치즈쿠리야쿠바는 1998년 설립돼 2003년 특정비영리 활동법인으로 전환됐으며, 누구라도 자유롭게 찾아와 마을만들기에 대한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장소로 연중무휴로 운영중이다.

사업 초기 빈 점포들이 과반수 이상이었던 상점가가 2014년 현재는 대부분 점포들이 입주해 공실이 거의 없다고 한다. 비영리법인이던 제3섹터 회사가 주식회사로 전환해 수익창출을 하고, 대신 이 수익은 100% 마을만들기 사업에 재투자되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어 행정과는 상당히 독립적으로 운영가능하다고 한다. 제3섹터 사업들이 많은 실패를 경험하는 일본에서도 ㈜쿠로카베는 매우 특이한 사례로 인정 받고 있다.

나가하마 유리공예.
나가하마 유리공예.

유리공예와 매력적인 마을 전국 1위

쿠로카베 사업은 특별한 지역산업이 부재하던 나가하마에 신산업으로 유리공예 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한 것이 아니다.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도시 내 전통건물 보전과 활용을 위한 사업모델로 유리공예 산업을 활용했다는 점은 매우 주목할 만하다. 유리공예를 해결책으로 떠올린 위원회는 직접 유럽을 찾아가 마케팅 기법을 배웠고, 젊은 유리공예가를 초청해 상권을 재구성했다. 1989년엔 십시일반 돈을 모아 쓰러져가던 옛 은행건물을 매입해 유리공예가들을 위한 구로카베를 만들었다.

구로카베에는 지역의 60여 개 기업도 주주로 참여했다. 관리는 시장 상인이 하지만 유능한 전문가를 초빙해 경영을 맡겼다. 그렇게 번 돈은 전통시장에 재투자 한다는게 제1의 원칙이다. 나가하마 상공회의소에서 30여 년을 일하다 전통시장 사무국장으로 일하는 요시이 시케히토 씨(72)는 “역사 도시라지만 내세울 만한 상업기반이나 관광자원은 거의 없었다”며 “지역 주민과 상인이 의기투합해 1800년대 이 마을에서 번성했다가 사라진 ‘유리공예’를 떠올리지 못했다면 지금도 동네사람 몇 몇만 오가는 시장이 되고 말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가하마 시의 마치즈쿠리 사업은 마을의 상징이었던 ‘구로카베 은행(クロカベ 銀行)’의 보존운동에서 시작됐다. 건물 보존을 목적으로 1988년 ‘구로카베(クロカベ) 유리공예관’이 설립돼 마치즈쿠리 사업의 거점이 됐다. ‘쿠로카베 유리공예관’은 낡은 건물과 유리의 독특한 조합이 만든 신비로운 분위기 덕분에 TV, 잡지 등에 자주 소개되면서 급속히 관광객이 늘었다. 현재 나가하마는 연간 200만명이 방문하는 마을로 전국에 알려져 있으며, 지역명물인 나가하마 시장의 매출은 지난해 8000억원이나 됐다. 일본 언론들은 나가하마를 ‘매력적인 마을 전국 1위’로 꼽고 있다. 또 지역민으로서의 자긍심을 유지하기 위한 축제를 지속하고 지역 정체성을 고취하기 위한 노력도 지속하고 있다.

히키야마 마츠리.
히키야마 마츠리.

나가하마의 자존심 히키야마 마츠리

나가하마의 대표축제 히키야마 마츠리는 매년 4월 열리는 400년된 지역축제다. 무대가 있는 큰 수레위에서만 4∼12세 남자어린이들이 가부키를 공연한다. 수레는 나가하마 중심가에 위치한 히키야 마마츠리 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평소에는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가 축제기간이면 직접 등장하는 주인공이다. 축제기간이면, 이행차를 보기 위해 하루 15만명이 몰려든다. 하나에 5∼6t 정도의 엄청난 규모의 수레는 모두 12개로 거의가 200년전 것이다. 바퀴나 일부장식물을 빼고는 전부 나무로 나사 하나 쓰지 않고 만들어졌다. 총 12개의 수레는 각각의 조직이 관리하고 있다. 작은조직은 19명, 큰조직은 150여 명이 활동하고 있다. 히키야마마츠리 박물관은 1984년 '박물관도시 구상'이라는 목표아래 대형 상업시설이 들어갈 수 있었던 도심의 빈 땅에 들어섰다. 건물을 사들이는 데만 27억엔이 들었고, 나가하마 도심을 살린 그 씨앗도 이 축제의 보존·계승이 목적이었을 만큼 나가하마의 자존심이자 미래이기도 하다.


시사점---------------------------

일본은 장기간 경제침체를 경험하면서 지역 활성화를 위해 지역상공인들 주도로 마치즈쿠리 사업을 추진하고, 지방정부가 행·재정 지원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면서 많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정부 주도의 활성화 방안이 아니라, 시장이나 상공업자가 주체가 돼 행정과 협력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쇠퇴하는 지역상권을 살리기 위한 지역상점가들이 건물소유주와 상인들이 하나의 생존 공동체로서 작용하며, 전통적인 마을이 붕괴된 공간을 채워 나아가고 있으며, 그런 방안으로 전통을 찾아 활용하고, 강화하고, 지역의 정체성을 부여하고 있다. 이를 통해 젠트리피케이션이나 대규모 재개발방식을 통한 지속불가능한 도시의 모습을 극복해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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