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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는 지금] “미래가 불안하거든 후쿠이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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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는 지금] “미래가 불안하거든 후쿠이를 보라”
  • 김혜인 숭실대학교 정보사회학과 강사
  • 승인 2016.11.20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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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출산율과 인구유입률 자랑하는 행복마을

주민행복시대를 여는 ‘지방정부 3.0’ 구호가 뜨거웠다. 그러나 수없이 많은 주민자치, 마을공동체 담론들이 과연 주민의 행복시대를 열고 있는가는 여전히 의문스럽다. 지방자치와 분권을 이야기하기에는 참담한 지역쇠퇴지수, 헬조선을 외칠 수밖에 없는 높은 청년실업률과 고용불안전, 곳곳의 사회적 안전망 붕괴, 억울하면 돈 없는 부모를 탓하라는 수저론으로 상징되는 불평등의 구조화와 입시경쟁 등의 구조는 공고하다. 이런 구조적인 모순이 단순히 참정권의 양적확대만으로 해소될 수 있을까?

행정관점 인식의 한계

비근한 예로 출산율에 대한 접근을 살펴보자. 연일 ‘아이를 낳아야 한다’ ‘새마을운동정신으로 출산율을 높여야 한다’는 대통령과 총리, 그리고 많은 정치인들의 구호가 울려 퍼지고, 주민공모를 통한 의견을 반영했다는 몇 가지 지원정책들이 등장한다. 그런데 ‘안 낳고 있기 때문에 낳으라고 독려하자’는 단순한 논리에 기반 한 출산장려금과 같은 정책들은 큰 실효를 거두고 있지 못하다. 이는 “왜 출산율이 떨어지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근본적인 성찰과 이에 기반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기 때문이다.

즉, 이것은 문제에 대해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에서 부터 발생한다. 일단, 근본적인 성찰이 어려운 이유는 행정적인 관점과 이런 이슈를 정치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선에서만 다루고 싶어 하는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이다. 행정과 정치권에서 출산율 저하와 고령화에 대한 위험인식은 연기금재정 고갈에 대한 고민과 고령인구 증가에 따른 행정적 대응력의 한계, 그리고 지역쇠퇴와 관련한 지방행정의 구조조정에 대한 우려에서 출발했다. 따라서 출산과 관련된 정책을 여성의 사회적 진출 분위기나 육아문제와 교육 등의 관점에서 접근하기는 어려워진다. 뇌관을 알고는 있지만 정책을 추진하는 부처별 입장에서는 접근하기 어렵거니와 부처별 입장차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은 우리나라와 일본은 큰 차이가 없다. 일본 역시 고령화와 저성장이 크게 진행되고 나서야 출산율 부양을 위한 정책적 대응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또 사회의 저성장 기조에 희망을 불어 넣기 위해 이제 경제적 성장률 대신 ‘행복지수’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2010년대로 넘어오면서 유행처럼 행복지수와 관련된 지방의 순위매김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젊은이들에게 일자리를 찾아 대도시의 삶의 고집할 것이 아니라, ‘행복한 지방’을 찾아 대안적인 삶의 가치를 찾으라는 지방 활성화의 외침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한편에서는 공동체의식과 양질의 환경이라는 가치에 대해 재인식하자면서, 또 한편에서는 무시할 수 없는 지역활력의 요소로서 성장을 위한 지방창생 방안과 같은 (어쩌면) 모순적인 논의들이 튀어나오면서 전국이 특구가 됐다. 지역성을 살릴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하고 지역의 복지는 자조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찾으라는 의미에서 2004년 이후 특구로 지정된 지방은 1155곳, 지방공공재단의 숫자는 1741개가 됐다.

지역의 개성을 살리고 삶의 다양한 가치를 수용함으로써 경제성장 둔화의 어려움과 성장위주의 패러다임을 극복하고, 사람들이 희망을 갖고 삶을 이어갈 수 있게 하자는 취지는 교부금과 출연금 아니면 규제완화를 위한 우수사례로 선정되기 위한 전장이 돼가는 아이러니가 등장했다. 주도성을 발휘함으로써 삶의 선택지를 늘리고 능동적으로 자치를 실현하자는 원론적인 주민자치의 관념보다는 형식적·양적 주민참여(동원)를 독려하거나 행정적 운영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선택을 위해 주민을 설득하는 방식을 주민자치로 보는 사례들이 증가했다. 대표적인 것이 국내에도 소개된 후쿠이 현 사례다.

행복지표의 한계와 주민권

일본사회의 행복담론 부상과 함께 호세이대학(法政大學) 대학원은 2011년 일본의 47개 지자체의 평균 수명 및 출생률, 완전 실업률, 범죄발생 건수 등 40개의 사회경제통계지표를 토대로 행복도를 조사, 순위를 발표했다. 이 조사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하던 농촌지역이랄 수 있는 후쿠이(福井) 현이 1위를 차지하면서 일약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미혼율이 낮고 출생률이 높은 점, 장애자 고용율과 정직원 비율이 높은데다 범죄율이 낮은 점, 초등학생 학력평가 1위, 노동자세대 실수입 1위, 보육원 수용률 1위 등이 높이 평가됐다.

또 ‘행복동네 후쿠이리포트 이토록 멋진 마을’의 저자는 비전을 가진 행정지도자가 교육·복지 부문에 과감한 투자와 주민자치에 힘을 쏟은 결과, 결혼과 동시에 경력단절 없이 여성이 일과 육아를 함께 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으며, 고령자를 자치적적인 방식으로 봉사활동에 참여시킴으로써 지역사회 돌봄의 주역으로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받아 삶의 활력을 찾을 수 있게 하는 협치의 모델로 부각시키고 있다.

1990년대 일본의 옛 경제기획청이 선정한 지자체별 ‘풍요지표’ 순위에서도 후쿠이 현은 5년 연속 종합 1위를 고수했다. 다른 지역으로부터 선망을 받는 후쿠이 현은 고시히카리로 대표되는 쌀 생산지로 유명한 고장이다. 여기까지가 이토록 멋진 마을에서 소개하는 후쿠이의 모습이다.

그러나 후쿠이 현은 일본에서 가장 원전이 밀집해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후쿠이 현에는 일본 원전 50기 가운데 24%에 해당하는 13기가 들어서 있는데, 현을 구성하는 9개 시, 8개 마치 중 해안에 접한 쓰루가시와 오이마치에 원전이 몰려 있다. 일본원자력발전의 쓰루가 원전(2기)과 간사이 전력의 미하마 원전(3기), 오이 원전(4기), 다카하마 원전(4기)이 그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즉시 핵무기로 전용이 가능한 까닭에 ‘원전괴물’이라 불리는 고속증식로 ‘몬주’도 있다. 후쿠이 현에 있는 원전 13기가 생산해내는 전기는 후쿠이 현에서 필요로 하는 전력의 15배가 넘는다.

국내에도 번역 소개된 책 ‘행복동네 후쿠이리포트 이토록 멋진 마을’. 후쿠이는 가정, 기업, 행정이 선순환하는 지방자치의 성공적인 모델로 주목받았다.
국내에도 번역 소개된 책 ‘행복동네 후쿠이리포트 이토록 멋진 마을’. 후쿠이는 가정, 기업, 행정이 선순환하는 지방자치의 성공적인 모델로 주목받았다.

즉, 후쿠이 현에서 생산되는 전기는 교토와 오사카지역에 공급되고 있다. 실질적으로 후쿠이 지역의 산업경제 비중을 살펴보면, 자치단체와 주민들이 원전입지 교부금과 노동자고용에 의존하고 있어 지역경제가 원전에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용부문에서는 원전 연관 산업에 종사하는 주민이 대다수다. ‘후쿠이 신문’에 따르면, 매년 후쿠이현이 원전에서 얻는 세수비중은 전체 20%에 달한다. 특히, 쓰루가 시의 경우 1년 세수 250억 엔 가운데 약 10%인 20억 엔이 원전으로 얻는 교부금이다. 구체적으로 원전 1기당 지역 주민 3000여 명이 고용되며, 1만세대(3인 가족 기준)가 일자리를 얻고 있다. 후쿠이 현 인구 80여 만명 중 원전과 관련해 직·간접으로 일하는 사람이 5명 가운데 1명 꼴이라는 분석도 있다.

원전이 분포한 오바마 시 하쿠구에서는 바다 너머 오이 원전이 어렴풋이 보인다.
원전이 분포한 오바마 시 하쿠구에서는 바다 너머 오이 원전이 어렴풋이 보인다.

원전교부금 분배에 따른 갈등

평화롭게 보이는 후쿠이 현의 기초자치단체들 간의 원전교부금 분배에 따른 갈등도 불거졌다. 원전이 분포한 오바마 시 하쿠구에서는 바다 너머 오이 원전이 어렴풋이 보인다. 바다를 사이로 불과 4㎞ 남짓한 거리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원자력발전소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 바로 피해를 보는 거리에 있는 셈이다. 그러나 원전 존재여부를 두고 현이 지급하는 교부금에는 큰 차이가 있다. 2010년 당시 누적금액을 보면, 오바마 시에 지급된 금액은 86억 엔인 데 비해, 오이원전이 있는 오이마치는 387억 엔이었다. 이에 따라 원전에 대한 입장이 양 자치단체와 주민 간에 상이하게 드러나기도 했다.

2010년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사고 후 점검을 위해 가동을 중지했던 원전에 대해 후쿠이 현청은 조기가동을 선언했다. 또 2012년 7월 7일에 후쿠이 현은 중앙정부에 대해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기회로 미래에너지 정책을 다시 수립할 때 원자력을 필수 전원으로 취급해 줄 것을 요청했다. 중앙정부 각 부처로 부터 익년 4월 1일부터 시작하는 2013년 회계연도에 대한 그들의 예산 안을 여름까지 제출토록 요구받기 전에 정부에 대한 건의사항 팩키지에 이를 포함시켰다. ‘지방정부는 국가에너지정책에 기여하며 일본경제를 떠받쳐온 원전 유치지역의 활력을 유지할 책임을 질 필요가 있다’고 당시 후쿠이 현 주지사 니시카와 이세이는 건의사항 머리에 썼다. 이런 입장은 주민회의를 통해 채택됐다는 점에서 자치적인 성과로 칭송 받기도 했다.

그러나 원전을 중심으로 한 이해관계에 얽히지 않았거나 상대적으로 원전의 혜택을 적게 받았던 주민들의 입장은 달랐다. 교부금에 차이를 보이던 오바마나 아예 교부금 혜택을 보지 않았던 내륙 농업지역에서는 원전재가동에 대한 반발이 일기 시작했다. 아이가 있는 젊은 부부들은 쓰루가 지역의 활성단층 지형의 존재와 방사능누출 등을 우려하기 시작했고, 곳곳에서 원전 반대운동이 일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런 목소리는 자치회의에서 지역경제를 생각하지 못하는 철없는 소리로 묵살됐다. 이에 2014년 12월 주민들이 후쿠이 지방법원에 간사이전력 다카하마(高浜) 원전 3·4호기(다카하마정=高浜町), 오이(大飯) 원전 3, 4호기(동현 오이정=おおい町)의 재가동 금지를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이 소송 결과, 2015년 4월 법원은 원전반대 주민들의 손을 들어 다카하마 원전 3·4호기 가동이 금지됐다. 후쿠이 지방재판소(지방법원)는 2015년 4월 규제 위의 새 규제기준이 완화될 것이라며 다카하마 3·4호기 운전을 중단하는 가처분결정을 내린 상태며, 이를 뒤집을 때까지 가동시킬 수 없게 됐다. 간사이 전력은 이에 이의신청을 했다.

2015년 12월 니시카와 가즈미(西川一誠) 지사는 법원의 재심판결을 하루 앞두고 현청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간사이 전력 다카하마(高浜) 원전 3·4호기(후쿠이 현 다카하마 정)의 재가동에 동의한다고 표명했다. 지사는 다카하마 정장과 현의회 동의와 더불어 현 측도 독자적으로 안전성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또 정부가 전면적으로 나서서 원자력정책을 책임져 나갈 자세가 확실해졌다며 “현 측 요구에 정부가 대응했다”고 평가한 뒤 “정부와 사업자 방침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재가동에 동의하는 판단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간사이 전력 측이 제기한 이의신청에 대해서 후쿠이 지방재판소가 제시하는 결론에 따라 재가동 가능 여부가 결정되게 되고, 그 심판 일을 하루 남겨두고 중앙정부와 원전기업 측의 경제적 보상내용을 협상 카드로 의회를 설득해낸 것이다. 이에 원전 재가동에 반대하던 주민 측은 사법 판단 직전에 원전 재가동 동의를 표명함으로써 판결에 압박을 가하려는 움직임으로 보고 거세게 저항했으나 결국, 여론은 경제적 보상에 손을 들어줬다.

니시카와 지사는 동의조건으로서 입지지역의 경제·고용대책과 원전에 대한 국민들의 이해촉진을 언급했다. 하야시 경산상과 회담을 갖고 원자력정책에 관한 정부의 자세를 확인하고, 간사이 전력의 야기 마코토(八木誠) 회장과 회담을 통해 현에 유리한 협상결과를 얻어냈다고 자신했다. 결국, 일본 후쿠이 지방법원은 이런 발표를 하루 뒤인 24일 간사이 전력이 운영하는 후쿠이 현 다카하마초의 다카하마 원전 3·4호기의 재가동을 금지한 지난 4월의 가처분 결정을 취소했다. 그리고 2016년 1월부터 원전은 가동 중이다.

이것이 주민과 기업과 지방정부가 함께 일궈낸 번영의 행복마을 후쿠이의 이야기 이면에 감춰진 이야기이다. ‘미래가 불안하거든 후쿠이를 보라’는 슬로건과 고령화와 저출산율시대에 놀라운 출산율과 인구유입률을 자랑하는 행복마을 후쿠이를 떠받치는 것은 다양한 삶의 가치가 보장되는 주민자치의 힘도 있겠으나 여전히 원전을 기반으로 한 높은 고용율과 안정된 복지예산이었다.

자치에 대한 주민의 입장과 행정의 입장에는 차이가 있다. 근대국가에서 행정중심의 자치란 보다 적극적인 지지기반을 마련해 정책이 안정적으로 수행되도록 하는 기제라면, 주민의 입장에서 자치란 보다 다양한 가치가 정책에 반영될 수 있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다수의 행복이라는 미명 하에 희생되지 않을 방법을 찾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현안문제에 대한 행정과 주민의 입장은 늘 일치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어떤 가치에 우선을 둘 것인가가 충분히 합의되고 절대적인 삶의 기준을 충족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하는 것은 긴 시간과 시행착오를 필요로 한다.

충분한 숙의를 거치지 않고 의회민주주의적인 방식으로 패자가 결정되고, 한 안이 채택되면 더 이상 그 문제에 대해 논의할 수 없게 만드는 형식적 민주주의 한계를 주민자치에서 반복하고 제도를 통한 침묵을 강요해서는 안 될 것이다. 초등학교 사회교과서에도 나와 있듯이 민주주의 원칙은 다수결의 원칙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같은 중요도를 갖는 소수의견의 존중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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