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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혁신과 주민자치회[기획특집-주민자치회법 의미와 기대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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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혁신과 주민자치회[기획특집-주민자치회법 의미와 기대효과]
  • 장훈 중앙대 교수
  • 승인 2021.02.10 11: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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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이 32년 만에 국회를 통과했다. 그러나 행정안전부가 제출한 원안에 포함됐던 주민자치회 관련 조항이 삭제돼 별도 법률안 제정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한국주민자치중앙회를 중심으로 지난 20대 국회에 발의되었다가 회기만료로 자동폐기된 ‘주민자치회법(안)’이 성안되어 국회 발의를 앞두고 있다. 이에 정치학 행정학 철학 사회학 교육학 등 다양한 분야의 학자와 전문가들이 ‘주민자치회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의 의미와 기대효과를 분석해 기획특집으로 싣는다.

I.

요즘 전세계적으로 유행하는 민주주의에 관한 대표 저작들의 제목을 살펴보자.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How Democracies End?> <이걸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는가?> <게임오버> <미국, 파티는 끝났다>. 하버드대학 정치학과 교수에서부터 독일의 영향력 있는 작가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저자들이 오늘날 전세계를 휩싸고 있는 민주주의의 쇠퇴와 위기를 경고하고 있다.

이러한 위기는 공간적으로는 미국, 영국과 같은 선진민주주의 국가부터 최근 20여년 사이에 민주화의 길에 들어섰던 동유럽, 중유럽, 남미에 이르기까지 거의 전지구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전세계적 위기의 요인은 무엇인가? 이미 숱한 이론가들이 경제 양극화, 부패, 정치인의 권력에 대한 끝없는 탐욕 등 다양한 요인들을 거론하지만, 가장 오래되고 보편적인 민주주의 위기의 원인은 현대 민주주의의 가장 일반적 양식인 대의제 민주주의의 실패이다.

당원들은 대부분 떠나고 권력에 취한 정치엘리트들만 남은 정당(민주주의 선진국이건 후진국이건 상관없이), 청년세대, 일하는 평범한 이웃들의 고통스런 삶의 현실과는 담을 쌓은 채 당파싸움에만 몰두하는 의회 정치인들과 의회. 이러한 이미지들로 상징되는 대의제는 오늘날 전세계적으로 거의 파산상태이다.

 

II.

대의제가 흔들려온 지난 수십 년간 민주주의 이론가들과 실천가들이 한결같이 주목해 온 대안은 결국 시민이다. <시민들의 이야기에 답이 있다> <지방자치는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꾸는가?> <Here Comes Everybody>. 최근 민주주의의 혁신과 회생을 이야기하는 학자들과 실천가들이 궁극적으로 바라보는 희망은 결국 시민 주도성, 시민참여, 시민주도 민주주의의 혁신이다.

이러한 시민주도 민주주의 혁신은 지난 20여 년간 민주주의 국가들을 중심으로 다양하게 시도되어 왔다. 한편에서는 브라질의 포르투 알레그레(Porto Alegre)가 깃발을 높이 들었던 시민참여예산제가 있다. 이 제도는 이후 캐나다, 미국, 영국 등 전세계로 퍼져나가며 시민 직접참여의 대표적 메커니즘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또한 단순한 통계 여론조사의 한계를 넘어 시민들의 상호토론과 이해, 상호교감과 공동체의식 함양, 참여하는 기쁨과 만족감을 조화시켜보려는 시민공론제도(civic deliberation)가 다양하게 도입되기도 했다. 아울러 주민청원, 주민소환 같은 전통적 제도 역시 시민들의 직접 참여를 통한 민주주의의 혁신을 위한 시도로서 그 중요성이 점점 커져왔다.

 

III.

이 같은 시민 주도 민주주의의 혁신은 그 이론적, 실천적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중대한 장애물에 막혀 있다. 선거로 뽑히는 의원과 의회의 고루함, 무반응을 돌파하기 위해 다양하게 시도되는 시민참여가 마주치는 또 다른 장애물은 바로 거대한 관료제이다. 우리의 경우에도 지난 수년 사이 참여예산제도, 공론화위원회 등 시민들의 자율적 주도를 통한 혁신 제도들이 시도되어왔지만 이러한 시민 주도 혁신의 이면에서는 언제나 관료제의 압도적 힘이 작용하여왔다.

참여예산제도의 예를 들어보자. 서울시를 포함한 모든 지방자치단체들은 관계법의 정비에 따라 비록 적은 비율이기는 하지만 전체 예산의 일부를 시민참여예산제도를 통해 운영한다. 물론 여기에 적지 않은 시민들이 관심을 기울이고 참여예산학교를 수료하기도 하고 또 주도적으로 예산계획과 집행을 위한 의제를 발굴하기도 한다. 하지만 서울시 참여예산 관련 회의록을 정밀 분석한 한 연구(유소영 2013 <참여와 협력의 거버넌스>, 성균관대학교 박사학위논문)에 따르자면 참여예산 회의 발언을 주도하는 주체는 시민이 아니었다. 발언을 주도하는 것은 관료들의 몫이었다. 또 절반에 못 미치는 시민 발언 중에서 청년층과 여성은 한 번 더 소외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IV.

시민은 자유롭게 태어나지만, 오직 투표 하는 날 하루만 자유롭다18세기 프랑스의 혁명적 사상가 루소의 통찰은 21세기 한국에서 여전히 유의미하다. 시민이 주도하는 민주주의의 걸림돌은 단지 무감각하고 구시대적인 대의제 의원들뿐만이 아니다. 조직, 데이터, 전문성으로 무장한 관료제 역시 시민 주도 민주주의의 오랜 장애물이다.

이런 맥락을 차분히 살피다보면, 사단법인 한국자치학회가 수년간에 걸쳐 준비한 주민자치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의 의미가 선명하게 드러나게 된다. 이 법안이 제시하는 주민자치회는 대내적으로 주민들이 스스로 구성하는 주민 주도의 자치회이다. 동시에 대외적으로는 주민들을 대표하는 주민회이기도 하다. 아울러 주민자치회는 주민 공동체의 일을 스스로 찾아내고 계획하는 권리능력과 행위능력을 갖춘 기구이다.

이 법률안이 제시하는 주민자치회는 단지 대의제의 실패와 관료제에 대한 소극적 대응이 아니다. 한편으로는 주민들이 공동체의 일에 직접 참여, 봉사를 시도해왔던 우리의 오랜 전통과 역사의 경험으로부터 구축된 경험의 구조물이며, 시민의 직접 지배를 향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온 민주주의 선진국들의 경험의 재구성물이라고 할 수 있다.

주민자치회를 통한 민주주의의 혁신은 이미 낡고 무기력해진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시민중심의 강한 민주주의로의 근본적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때 주민은 근대 민주주의의 표만 찍는 방관자가 아니라 능동적 주인과 참여자로 변신하는 것이다. 지방자치단체와 시민들의 관계는 이제 수직적 관계를 넘어 서로를 구분하는 수준이 사라지는 변증법적 관계로 진화하는 것이다. 책임과 통제의 원리를 넘어 상호존경과 상호소통의 원리로 이행하는 것이다.

이러한 전환을 통해 민주주의는 다시 한 번 오늘의 위기와 동요를 넘어 새로운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민주주의는 혁신을 멈출 수도, 멈추어서도 안 되는 영구 혁명 프로젝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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