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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안 작은 마을 [마을이 있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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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안 작은 마을 [마을이 있는 풍경]
  • 박소원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7.08 16: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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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 있는 풍경’은 ‘마을’의 속살을 가만가만 들여다보고 소곤소곤 소통하는 코너입니다. 더 없이 가깝고 밀착돼 있지만 적지 않은 이들에겐 대체로 멀기만 한 마을의 이야기를 때론 지직거리고 둔탁한 확성기로 때론 고성능 마이크의 ASMR로 들려드립니다. 편집자주

건물 안에 작은 마을을 만들어요.”

오랜만에 예전 직장 선배와 저녁식사 약속이 있었다. 약속 하루 전에 스타트업 대표 한 분을 동석해도 되냐고 물으셨다. 물론 매우 좋다고 말씀 드렸다. 나는 늘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 세상 모든 것에 관심과 호기심이 어찌나 충만한지 나는 늘 새로운 사람들 앞에 앉아있다.

스타트업이 대개 그렇지만 매우 젊은 대표가 같이 자리했다.

어떤 회사예요?”라고 물었는데 그가 한 답은

로컬스티치라는 회사인데요, 건물 안에 작은 마을을 만드는 일을 해요.”

너무 솔깃했다. 더 자세히 들어보니 이렇다.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한글표기로는 둥지 내몰림’. 낙후된 구도심이 활성화되면서 사람들과 돈이 몰리고 결과적으로 원주민이 밀려나는 현상-네이버 오픈사전) 바람이 훑고 지나간 동네들이 꽤 있다. 여전히 진행 중에 있는 동네도 있다. 도시 개발자들은 다음 투자대상 거리를 물색하고 작업(?)한다고 한다. 굳이 요즘 동네의 흥망성쇠가 아니더라도 옛 영광이 무색해진 거리들이 있다. 을지로가 그렇고, 약수동이 그렇고, 소공동이 그렇다. 한국은행 뒷길, 예전엔 고급 양복점이 즐비했던 거리. 소공동 길을 걸으면 시간을 거스르는 묵직한 자존심이 느껴지곤 했다. 가볍고 번잡한 지금의 시대를 살짝 내려다보게 하는 고고함이 있었다. 그런데 그런 자존심도 옛말이다. 소공동은 영광의 시대로부터 너무 멀어졌다.

가로수길, 여전히 힙 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 엄청난 임대료 상승을 몰고 온 젠트리피케이션은 옹골찬 소상공인들을 그 거리에서 쫓아냈고 거대자본으로 무장한 대형 브랜드들이 자리를 차지했다. 그런데 흔하디흔한 (백화점과 대도시 중심상권이라면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대기업 브랜드들이 자리를 차지한 거리는 곧 매력을 잃는다. 그래서 가로수길도 의외로 공실률 높은 텅 빈 건물들이 많다.

로컬스티치 서교
로컬스티치 서교

옹골찬 소상공인들이 쫓겨난 거리엔 흔하디흔한 대기업 브랜드들이

로컬스티치는 그런 빌딩들을 새로운 생태계의 진원지로 만드는 작업을 한다. ‘함께 살고 일하며 성장한다라는 모토를 걸고 새로운 부활이 필요한 건물을 맡아서 코하우징(co-housing)과 코워킹(co-working)이 가능한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 로컬스티치가 하는 일이다. 레지던스 공간이 있고 공유 오피스 공간이 있다. 레스토랑이 포함된 빌딩도 있고 커피숍 정도가 들어있는 빌딩도 있다. 같이 모여 살고 (물론 각자의 독립된 공간에서 기거한다) 같이 모여 일하고.

그런데 각 빌딩이 하나의 생태계를 만드는데 집중돼 있다. 같은 관심, 같은 전문성, 같은 분야의 사람들이 모인다. 선배도 있고 스타트업도 있다. 같이 논의하고 협력하는 창의적 도시생산자들이다. 그렇게 모여 일을 만든다. 선후배가 서로 협업하기도 하고 브랜드를 만들기도 하고 창업하기도 한다. 서로 친구가 되고 서로 이웃이 되고…… 건물 안에 작은 마을을 만든다고 했던 로컬스티치 대표의 말이 이해됐다. 이 작은 마을은 이미 서울에만 십여 개에 이른다. 입주하거나 오피스를 공유하는 멤버들은 다른 건물에 있는 작은 마을을 특혜로 누리며 사용할 수 있다.

가로수길, 그 길이 가로수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전, 신사동 로터리 뒷길 정도로 불렸던 그곳은 강남의 중앙에서는 벗어나있는 한적한 거리였다. 송탄 부대찌개 식당이 있었고 몇몇 젊은 디자이너들의 옷집이 있었고 그 외엔 이렇다 할 번잡함은 없는 참 조용하고 소박한 거리였다. 오히려 주택가에 가까웠다.

부대찌개 집에서 점심을 먹을 때엔 참새가 방앗간 들르듯 항상 몇몇 옷집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명색이 디자이너들이라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옷들이 늘 담담히 말을 걸어왔다. 뿌리치기 어려웠다. 디자이너 브랜드라도 그다지 비싸지 않아서 당시의 주머니 사정으로도 한두 벌 픽 해오곤 했다. 옷에 큼직한 그림을 하나씩 그려 넣은 옷을 만드는 여자 디자이너와는 죽이 잘 맞아서 옷을 사러 가는 게 아니라 수다 떨러 가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소량 제작한 옷을 팔아서 생계를 이어갈 수 있을까 염려하곤 했는데 강남치곤 임대료가 비싸지 않아 그럭저럭 꾸려갈 만 하다고 했다.

로컬스티치 가로수길

신사동 로터리 뒷길, 핫한 가로수길이 되었으나 그때 그 사람들은 떠나고

그 거리에 맛 집이 한두 개씩 생겨나고 옷집도 생겨나고 거리가 조금씩 북적해진다 싶었는데 어느새 유명 프랜차이즈들이 치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다. 이름도 그럴듯한 가로수길이 되었다. 잘 나간다는 브랜드들이 모두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사람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그 길을 차로 통과해 가려면 꽤 긴 시간이 들었다. 임대료는 천정부지로 뛰어오르고 신사동 로터리 뒷길로 불릴 때의 소박한 정경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가끔 그 옷 집 있던 자리가 여기였나 저기였나 궁금하지만 도저히 알 수 없다. 흔적이 별로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의 그 거리에서 옷을 만들어 팔던 사람들은 서로 경쟁자이기 보다 동료이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코튼 소재로 옷을 만드는 게 좋아’ ‘나는 좀 아스트랄한 패션을 꿈꾸지’ ‘주로 어느 공장에서 만들어 와요?’ ‘오늘 매출이 최고예요’ ‘축하할 겸 문 닫고 다들 모여 한잔 할까요?’……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이웃이지 않았을까?

가로수길이 흥행하는 거리가 되었을 때 그들은 모두 떠났다. 고향과 같은 그 거리를 떠나 기업에 취직했거나 다른 일을 찾아 갔을 것이다. 당시 유명했던 송탄부대찌개 식당은 관세청 맞은 편 골목으로 자리를 옮겼고 이후 여러 개의 분점을 내고 확장하고 있는 것 같은데 풋풋하고 옹골찬 디자이너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지 알 수 없다.

 

그때 그 거리가 했던 일을 건물 안으로 들여 작은 마을이 되다

로컬스티치는 그때 그 거리가 했던 일을 건물 안으로 들이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건물 안에 작은 마을이 있다. 비슷한 일을 하는 선후배들이 함께 모여 서로 생각을 나누고 일을 나눈다. 더 큰 일을 도모할 수도 있고 1인의 창의적 생산자로 머물기도 한다. 하나의 건물에 모여 있지만 하나의 거리가 했던 일, 하나의 마을이 했던 일을 하고 있는 셈이다.

마을의 공동체성이 해체되고 있다.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지는 못한다. 그러나 또 다른 구조와 규모의 마을은 분명 여전히 새로운 환경 속에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요즘 거리를 지나면 늘 건물들을 바라본다. ‘저 건물 가치가 몹시 하락했을 것 같은데……’ ‘저 건물에 나 같은 경험 많은(이라고 쓰면 꼰대로 읽히지 않아야 될 텐데)도시 생산자들이 후배들과 어울려 창의적 생태계를 계속 만들어갈 수는 없을까?’……

마을의 순기능은 어떤 모습으로라도 계속 존재해야 한다.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 없기 때문이다. 함께 어깨를 내어주고 의지해야 한다. 그게 마을의 본질이다.

 

사진=로컬스티치 웹사이트 캡처

박소원 씨앤씨티에너지 마케팅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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