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16:55 (금)
당신의 근처, 당근이 있습니다
상태바
당신의 근처, 당근이 있습니다
  • 박소원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9.17 11: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마을이 있는 풍경]

‘마을이 있는 풍경’은 ‘마을’의 속살을 가만가만 들여다보고 소곤소곤 소통하는 코너입니다. 더 없이 가깝고 밀착돼 있지만 적지 않은 이들에겐 대체로 멀기만 한 마을의 이야기를 때론 지직거리고 둔탁한 확성기로 때론 고성능 마이크의 ASMR로 들려드립니다.[편집자주]

오후에 스타트업 IR 미팅이 있는데 같이 들어보실래요?”

잘 아는 벤처캐피털 대표님이 제안해서 당근마켓을 처음 만나게 되었다. 나는 전 국민의 중고거래 플랫폼이 된 당근마켓을 아마 가장 빠르게 접한 사람이 아닌가 싶다. 그들의 브리핑을 듣고 너무 반가웠다. 옆집 사람이 팔고 싶은 물건은 알 길이 없고 머나먼 타지 사람과 물건을 사고팔아야 하는 번거로움을 늘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근마켓은 심벌로 진짜 붉은 당근모양을 쓰고 있지만 그 뜻은 당신의 근처를 줄인 말이다. 우리 동네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물건을 팔거나 나누고 싶을 때 동네 장터 당근에 올리면 된다. ‘당근마켓에 당근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 회사는 지금까지 몇 차례에 걸쳐 투자하고 있고 당근은 엄청난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나는 앞으로의 세상이 더 더 글로벌이 되거나 더 더 로컬로 양분화될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더 이상 공항 면세점에서 물건 사기에 목매지 않는다. 예전엔 해외명품 사러 출국하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고 들었다. 생산국에 가서 현지가로 물건을 사오면 비행기 값은 충분히 남길 수 있다고들 했다. 그런데 지금은 아무도 외국에 가서 무겁게 물건을 사 들고 오지 않는다. 그냥 클릭 한번이면 지구 저편의 나라에서 파는 물건을 얼마든지 살 수 있다.

 

더 더 글로벌이 되거나 더 더 로컬이 되거나

그런 시대에 오히려 동네 이웃 거래는 더 깜깜이었던 세상에 당근이 나타났다. 옆집이 이사 가려고 내놓은 물건을 당근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옆 아파트에서 누군가 팔려고 하는 물건을 보러 슬리퍼 신고 동네 마실 가듯 가서 직접 만나 물건도 보고 거래할 수 있다. 가장 첨단의 방식으로 가장 재래방식의 관계를 엮어내었다.

나는 평생 직장생활을 했고 아직 하고 있다. 그래서 사실 살림살이를 잘 못한다. 음식을 하거나 청소를 하거나, 세탁도 요령껏 잘 하지 못한다. 살림을 익히고 집중할 시간의 절대량이 적었기 때문이다.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 중에도 살림살이를 잘 하는 슈퍼 주부들이 있지만 극히 예외라고 우기고 싶다.

살림의 고수들은 엄청난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욕실과 싱크대 틈새의 찌든 때, 곰팡이, 악취들을 제거하는 놀랍고 현란한 방법들이 있다. 세탁도 섬유의 종류별로 방법과 세탁 시기가 모두 다르고 세제를 사용하는 방법도 어찌나 다양한지 모른다. , 다들 알고 계신데 나만 그런 건지도……

게다가 요리는 또 얼마나 광활한 영역인가! 방송에 자주 등장하는 유명 요리사들 덕분에 전 국민이 요리 덕후가 되어가고 있는 시대인지라 요리 노하우도 이루 셀 수 없을 정도로 많고 다양하다. 계절에 따라 식구에 따라 재료에 따라 체질에 따라…… 이렇게 분류를 하는 것도 의미 없을 만큼 무궁무진하다.

살림의 세계가 이토록 무궁무진 진보하는 동안 살림 무능자는 허겁지겁 따라가기 바쁘다. 살림살이를 잘 하는 사람들을 만나 어쩌다 획득한 노하우를 우려내느라 한 달 내내 같은 메뉴를 내놓기도 하고 관련 양념이나 기구들을 사들이기도 한다. 예를 들면 참치액과 에어프라이어가 그런 것들이다. 참치액은 국 요리의 필수품이다. 브랜드도 콕 집어 알려준 대로 산다. 에어프라이어를 쓰느라 사들인 재료들이 냉동실에 가득하다.

사진=호텔리브 홈페이지

나 같은 살림 무능자들을 위해 세상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걸 본다.

집안 청소를 해주는 서비스, 매일매일 세탁물을 가져가서 세탁하고 정리해서 가져다주는 서비스, 욕실만 청소해주는 서비스, 가스레인지 후드를 세척해주는 서비스, 고급 요리의 재료를 정량 소분해서 보내주는 서비스, 매일 반찬을 바꿔서 배달해주는 서비스……

뭐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 서비스 상품들이 살림의 고수들을 무력화시키고 나 같은 얼치기 주부를 도와주고 있다. 그래도 사실 나는 그런 서비스의 힘을 거의 빌리지 않고 얼치기인체로 대충 살아가고 있다. 살림고수들을 따라잡으려고 애쓰는 재미가 또 쏠쏠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다고 탄복하는 서비스가 있다. ‘호텔리브라는 욕실청소서비스다. 딱 욕실만 청소해준다. 특별한 계기가 있어 호텔리브교육장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곳에서 일주일간 실습교육을 받고 각 가정에 파견된다. 욕실 환기구의 팬 날개까지 닦는 것을 보고 나는 도저히 따라 할 수 없는 경지라고 판단하고 그들에게 맡기기로 했다. 기꺼이 돈을 지불하고 서비스를 받기로 말이다. 얼마나 구석구석 정교하게 청소하는지 모른다. 약품도 쓰고, 도구도 모양과 소재가 다양하다.

 

이웃을 묶는 다른 방식의 품앗이...마을도 세계도 더 더 가까워져 작은 지구가

이런 살림 서비스들은 당신의 근처’, 즉 근거리 동네를 그룹으로 만들어 판매한다. 우유배달이나 신문배달이 그랬듯이 근거리 동선을 묶어서 그 단위 안에서 서비스를 제공한다. 우리 집에 욕실청소를 오는 분은 우리 아파트에 사는 분이다. 마을 안에서의 품앗이 같다고나 할까? 물론 나는 품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돈을 지불하고 있지만.

대문을 열어놓고 마을이 서로 소통하고 지내던 시절에는 농번기에 마을 전체가 동원된다. 오늘은 이 집 논을, 내일은 저 집 밭을 돌며 서로 일을 도와준다. 보수를 지불할 때도 있고 도움을 주거니 받거니 서로의 노동력을 노동력으로 지불하기도 하고.

얼마 전 우리 집에 욕실 청소를 해주던 분이 고객이 많이 줄어서 서비스를 더 이상 못하게 되었다고 하신다. 한 단지에서 최소한 10가정 이상은 신청해야 서비스가 유지된다고 한다. 결국 내가 나섰다. 아파트 입주민 카페에 들어가서 욕실청소 함께 받으실 분~’ 하고 외쳤다. 일종의 공구제안인 셈이다. 물론 얼마나 편리한 서비스인지 자세히 홍보했다. 다행히 함께 몇 가정이 신청을 해서 서비스는 계속 유지되고 있다.

세상이 많이 바뀐 것 같지만 사실 별로 달라지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다른 방식으로 품앗이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마을도, 세계도 더 더 가까워져서 작은 지구가 되고 있는 듯하다. 지구가 한 마을처럼 변해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세계가 이웃인 세상, 세계가 마을인 세상이 펼쳐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공공성(公共性)’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연구세미나95]
  • 문산면 주민자치회, 주민 지혜와 협의로 마을 발전 이끈다
  • 제주 금악마을 향약 개정을 통해 보는 주민자치와 성평등의 가치
  • 격동기 지식인은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연구세미나94]
  • 사동 주민자치회, '행복한 끼'로 복지사각지대 해소 나서
  • 남해군 주민자치협의회, 여수 세계 섬 박람회 홍보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