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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 두려워 말고 용기와 자신감으로 변화하고 도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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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 두려워 말고 용기와 자신감으로 변화하고 도전하라”
  • 김윤미 기자
  • 승인 2021.09.10 09: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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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인터뷰] 이주영 한국주민자치중앙회 제2대 총재

팽목항, 장발에 덥수룩한 수염... ‘이주영’이라는 이름을 떠올릴 때 여전히 가장 먼저 겹쳐지는 이미지일 것이다. 세월호 참사 당시 주무부처인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200여 일간 진도 팽목항에 머물며 사태 수습에 최선을 다하고 진심을 다해 유가족과 소통하며 위로하는 모습은 여전히 많은 국민들의 뇌리에 남아 있다. 5선 국회의원으로 국회부의장을 지내기도 한 그가 활동의 보폭을 더욱 넓혀 한국주민자치중앙회 제2대 총재에 취임했다. 늘 새로운 도전을 멈추지 않는 이주영 총재를 만났다.

판사 출신의 5선 의원, 여기에 장관, 국회부의장 경력까지 더해지면 선입견과 장벽은 더욱 높아진다. 다가가기 쉽지 않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주영 총재와 아주 잠깐이라도 대화를 나눠 볼 기회가 생긴다면 이러한 마음의 장벽은 금세 무너진다. 과하거나 부담스럽지 않으면서 상대방이 편안함을 느낄 수 있게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것이다.

진심어린 소통’. 이주영 총재와 마주하면서,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지금도 떠올리는 것만으로 마음이 먹먹해지는 세월호 참사 얘기를 지나치긴 어렵다. 한마디 한마디가 여전히 아프고 조심스러울 수밖엔 없지만.

피눈물 흘릴 수 있는 그런 사고가 발생해서... 그 가족들의 안타까운 마음이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것이죠. 총책임자가 장관이니까 현장에 가서 수습본부장을 맡아서 하는데... 공격의 타깃이 될 수밖에 없었죠. 많은 고통을 같이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요. 나중에는 진정성을 가지고 소통을 잘 했다는 평가를 받긴 했지만, 처음엔 책임 추궁을 당하고 협박, 공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죠. 팽목항에 머물며 유가족과 계속 만나고 밤새서 대화를 나누고 얘기를 정말 많이 했어요. 나중에는 유가족들이 오히려 저를 감싸주고 유임하라고 할 정도가 됐었죠. 그렇다 해도 책임을 면할 길은 없는 것이죠.” 목소리는 담담해도 얼굴에 회한이 스친다.

 

헌신적으로 뜨거운 열정으로한국주민자치중앙회 고문 거쳐 총재로 취임

 

"우리가 헌신적으로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임하지 않는다면 주민자치 정말 쉽지 않다. 다 같이 잘해 보도록 하자. 주민자치 실질화를 통해 대한민국 사회에 주민자치가 뿌리 내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주민자치야 말로 민주주의의 혁신이다. 관치와 관료적 습성을 다 날려 버리고 주민이 중심이 되는 주민자치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주민자치를 말한다면 모두 따르고 이끌어 나아갈 수 있는 중앙회를 만들어야겠다. 총재의 소임을 제대로 해보이겠다. 많은 도움과 관심 부탁드린다."(619일 한국주민자치중앙회 20212분기 정기회의)

총재 취임 일성이다. 이미 2017년부터 고문을 맡아 중앙회와 인연을 맺어왔던 터다. 그는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상당히 뿌리내리고 진척되었다고는 하나 완성도를 높여가야 하는 과제가 있는데 그 핵심역량은 주민자치에서 출발해야 한다. 전상직 회장님의 열정에 감명을 많이 받았고 뜻을 같이하게 됐다라며 주민자치에 대한 가치를 추구하는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법제화를 이루고, 전국민적으로 생활화될 수 있도록 해나가는데 구체적으로 앞장서서 헌신할 각오다.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도덕재무장운동 3C(변화도전자신감) 사석위호

 

내 삶의 자세와 키워드는 고등학생 때 정해졌다.’ 이주영 총재에게 딱 맞는 말이다. 그의 삶을 관통하는 대표적인 키워드는 도덕재무장‘3C'이다.

꽤 오랜 세월 전국 중고등학교의 대표적인 교내 특별활동 동아리였던 MRA(Moral Re-Armament, 도덕재무장)가 막 서울시내 학교로 확산될 무렵, 한 선배의 권유로 이 총재도 고교 1학년 때 이 운동에 참여하게 된다. 당시 재학 중인 경기고에는 이 동아리가 없어서 친구 3명과 의기투합해 교장선생님을 찾아가 교내 개설을 설득하고, 지도교사를 초빙하고 학생을 모집해 MRA를 창립하기에 이른다. 일일이 각반을 다니며 90명의 회원을 모았다. 전파수단으로 합창단까지 만들어 단장을 맡는 등 열정을 기울였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MRA 서울대회 조직위원장을 맡아 고교생 1만 명을 장충체육관에 모아 대규모 행사도 치렀다. 대통령유엔총장학부모선생님동료학우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채택해 전달해 한 달 후 대통령의 회신까지 받았다.

이 시절에 만난 도덕재무장운동이 청소년기는 물론 제 인생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좌표가 됐습니다. 절대 정직순결무사(無私)사랑 등 4가지 도덕표준은 말할 것도 없고 나 자신의 변화를 통해 사회, 나라,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메시지를 통해 ‘3C(변화도전자신감)’의 자세로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변화(Change)와 도전(Challenge)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삶을 추구하게 했다. 말 그대로 꿈은 이루어진다끊임없는 도전정신을 가지면 목표를 꼭 이룰 수 있다는 마음가짐이다. 여기에 필요한 또 한 가지, 자신감(Can Do, Confidence)이다. 그는 도전을 하면서 될까 안 될까 하는 회의, 부정적인 생각을 다 떨쳐야 한다. 나는 할 수 있다, 해낸다는 자심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좌우명도 3C와 일맥상통한다. 사석위호(射石爲虎), ‘돌을 범인 줄 알고 쏘았더니 돌에 화살이 꽂혔다는 뜻으로, 성심(誠心)을 다하면 아니 될 일도 이룰 수 있다는 말이다. 한 마디로 포기하지 않는 집념쯤 될 것 같다.

그는 삶 자체가 도전이다. 물론 실패도 있지만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성장해 나가는 것 같다. 어떤 생각을 하느냐가 정말 중요하다. 꿈과 목표의 성취가 생각에 따라 좌우될 수 있다. 물론 하늘의 운이라는 게 작용할 수도 있겠지만 운에 기대기보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정신자세와 노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나치게 FM(Field Manual)적인 지당한(!) 말씀으로만 들릴 수도 있지만 은근 유머감각이 장착되어 있는 그의 소통법처럼 삶 역시 중간 중간 의외성이 드러난다.

 

은근한 의외성조용한 추진력튀지 않는 과감성

 

여기서 잠깐. 이주영 총재의 의외성의 보여주는 짧지만 흥미로운 에피소드 하나. 홍준표 의원과의 특이한 인연과 관련된 얘기다. 1984년 이 총재가 청주지방법원 형사단독재판장으로 근무할 당시 공판 담당 검사가 홍판표 초임검사였다. 그 시절 이 총재는 성명학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고 있었는데 홍판표라는 이름이 발음도 힘들고 성명학 상 이름에 쓰면 좋지 않은 한자가 보여 준표로 개명을 추천했다고 한다. 지금과 달리 개명이 힘든 시절이라 그의 권유와 도움이 없었다면 홍준표란 이름은 없었을 것이다.

판사로의 진로는 그의 성향과 잘 맞아 보인다. 실제 그는 형평을 생각하고 공정하게 살핀다는 점에서 검사보다는 판사가 더 맞겠다 싶었다. 아무래도 검사는 피의자와 직접 대면하고 피의사실을 놓고 증인조사, 대질신문을 해야 해서 와일드한 측면이 있는데 그런 건 적성에 안 맞는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런 가운데 이주영 판사를 유명하게 한 사건이 있었다. 1992년 서울고등법원 시절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김보은 양 사건이다. 어린 시절부터 성년이 될 때까지 자신에게 몹쓸 짓을 한 의붓아버지를 남자친구와 함께 살해한 사건으로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낮은 형량이 선고된 것이다. 이에 이 총재는 살인은 나쁘지만 그 동기에 있어서 충분히 참작할 만한 사유가 있었다. 당시 시민공동대책위가 구성되고 변론도 변호사들이 대거 선임되었으며 방청 운동이 벌어졌을 정도로 사회적 관심사였다. 무죄로까지 인정되긴 어렵다 봤고 그렇다고 엄벌에 처하는 것보다는 정상을 참작하여 무죄주장과도 가까운 판결을 내렸다. 그 사건이 계기가 되어 가정폭력방지법, 성폭력방지법 등 특별법 제정이 논의됐다고 밝혔다.

또 다른 의외성은 판사로 15년 재직 후에 나타났다. 이주영 총재는 부장판사까지 올라갔는데 15년 쯤 하니까 판사 일을 하는 게 너무 소극적이고 수동적으로 느껴졌다. 배당된 사건만 처리하고 하고 싶은 걸 찾아서 하는 직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5년 전 영국유학을 1년 반 했는데 넓은 세계를 보게 되니까 더 그런 생각이 컸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능동적 할 수 있는 영역이 정치라는 생각이 들어 도전하게 됐다고 밝혔다.

결과는 국회의원 5이지만 정치 도전 처음부터 꽃길은 물론 아니었다. ‘맨땅에 헤딩’, 실패와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꾸준함과 뚝심으로 하나하나 장애를 헤쳐 가며 새 길을 일궈 나갔다. 겉으로 보기엔 조용한 모범생이미지, 튀지 않는 스타일이지만 그 속에서 과감한 추진력을 발휘해 주변을 놀라게 했다. 국회의원 시절 권력실세들의 실명을 거론하며 굵직한 게이트를 파헤친 것 등이 그 사례이다.

두려워하지 말고 모험하라!

 

새로운 도전은 계속된다. 요즘은 일주일에 반 이상 경상남도 창원에 내려가 도민들과 만나고 있다. 경상남도지사로 꿈을 펼치기 위해 도전을 시작한 것이다. 그는 사법, 입법, 행정에서 쌓았던 경험들을 고향인 경남 발전을 위해 푹 쏟아내고 싶다. 경남이 최근 침체된 상황인데 이를 업 시킬 수 있는 그런 리더가 되고 싶다는 생각으로 부지런히 준비하고 있다라며 지방분권, 지방자치에서 주민자치는 중요한 부분이다. 주민자치가 더 실질화 되도록 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는 일이다. 마을사람들이 공동체를 잘 조직화해서 리더십을 세우고 그 리더십 하에 마을사람들 총의를 모아서 마을일들을 스스로 자율적으로 결정하고 집행하는 것이 곧 주민자치니까, 읍면동장 직선제가 주민자치 실질화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이주영 총재가 생각하는 리더의 조건은 무엇일까.

대표적으로 3가지 조건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첫째 대중적으로 국민들에게 매력이 있어야 한다, 둘째 추진력, 지도력, 카리스마가 있어야 한다, 셋째 국가 발전의 비전, 큰 그림을 그릴 수 있고 구체적 정책을 낼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이런 게 지도자의 조건의 아닐까요?”

끝으로 특히 힘든 터널을 지나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청했다.

지금 시대의 기술을 보면, 자꾸 새로운 것을 만들려는 창의적 정신, 도전정신으로 만들어낸 것들이잖아요? 하다가 실패할 수도 있고, 하다 잘못되면 엄청난 손해를 보고 회복도 쉽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낸 것이지요. 미국의 디지털 혁명 주역들, 빌 게이츠, 주커버그, 일론 머스크 등 이런 사람들은 전통적 재벌가 출신이 아니라 창의적 기술을 자기가 꼭 이루려고 하는 집념으로 해냈잖아요. 그런 걸 해내야 하는 게 젊은 세대인 것 같아요. 그런 모험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라, 굉장히 가치 있는 일이다. 자신을 위해서도 나라와 세계를 위해서도 가치 있는 일이다, 도전하라! 이런 얘기를 하고 싶네요.”

 

사진=김윤미 기자, 한국자치학회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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