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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자치의 실효적 대안은? [여는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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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자치의 실효적 대안은? [여는글]
  • 박정수 이화여대 교수
  • 승인 2021.11.11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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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지방자치는 1949년 지방자치법 제정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면 약 72년이 경과되었다. 1991년 지방의회가 구성되어 1995년에 지자체장이 주민 선거로 직접 선출되어 지방의회와 집행기관을 동시에 구성하게 된 실질적 의미의 민선 지방자치 시대가 개막한 지는 30년이 되었다. 결코 긴 기간이라고 이야기하기는 어렵겠지만 그렇다고 기간대비 방향성이나 제도성숙의 수준이 그리 좋은 평가를 받기는 어려운 형편이다.

그동안 지방자치는 특별자치의 확대, 주민참여의 확대, 지방의회 의정활동 생산성 증가, 지역경제발전, 지자체간 협력관행 확산이라는 많은 성과를 이루어 냈지만 아직 풀어내야 할 과제들이 많다. 형식적으로는 경찰자치까지 발족을 했고 특례시 등 대도시의 차별적 접근, 주민참여예산제도의 활성화 등 장족의 발전을 이루었으며 실제 정부예산 중 지방정부가 사용하는 몫이 더 커지는 등 탈중앙화의 방향성은 제대로 잡힌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도권에 편중된 인적물적 역량이 획일적인 지방분권 형식화를 만들어 냈고, 이러한 지방정부의 위기는 자칫 풀뿌리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근간이 될 수 있다. 지방정치의 중앙정치 예속화, 중앙정부의 지방규제 존속도 여전히 지적되고 있고 지자체의 공직사회 책임성과 자치역량 강화도 우리가 꾸준히 노력해야 할 과제들임에 틀림이 없다.

지방자치가 국민이 바라는 수준에 이르지 못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헌법이 지방자치를 형식적으로 기술하고 있고 이에 따라 중앙정부가 지방자치단체를 하부조직이자 관리감독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이유다. 이런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지방자치의 획기적 전환점을 마련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중앙정부는 지방을 국가 성장의 축으로 인식하고 자율적으로 성장하도록 돕고 국정에서도 중요한 파트너로 인식하는 자세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 위임 내지 이양형식이 아니라 보충성의 원칙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더 큰 문제는 주민은 뒷전이고 행정과 집행을 위한 단체 중심의 자치가 만연하다는 점이다. 지방자치는 풀뿌리민주주의의 근간이며, 내실 있는 지방자치는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효과적인 방안으로 손꼽히고 있다. 어려운 경제 여건이나, 안전과 복지에 대한 국민적 수요가 높은 상황에서 중앙정부는 물론 지방자치단체의 책임도 점차 무거워지고 있다. 양질의 일자리와 국민 안전, 효율적 복지서비스, 그리고 건강한 공동체의 형성을 위해서는 중앙과 지방의 적극적 협력이 필요하다.

물론 그동안의 성과도 간과하면 안 된다. 관치에서 자치로 바뀌니 주민의 지위는 통치의 객체에서 통치의 주체로 바뀌었고, 임명권자인 중앙정부와 상급기관만을 바라보고 행정을 해오던 지방자치단체장들은 주민을 바라보고 행정을 하게 되었다. 재임하는 동안 징계를 받지 않고 별고(別故)없이 자리를 지키다가 더 좋은 자리로 영전(榮轉)하면 그만이라고 인식해 온 단체장들은 주민여론을 수렴하여 주민이 원하는 행정과 지역사업을 적극적으로 수행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공무원들은 친절해졌고, ()과 관()의 거리감은 좁혀졌고, 단체장들은 보다 양질의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려고 서로 경쟁을 벌이게 되었다.

이제는 한 단계 도약이 필요한 시점이다. 1952년부터 19615.16 쿠데타 이전까지 시행된 읍·면자치가 오히려 근린민주주의를 위한 적정규모였는바 이를 회복하는 형식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2040년의 지방자치미래비전을 그려보는 작업에서 주민의 적극적 참여가 가능할 수 있는 지방자치법 개정이 필요함에 공감한다.

정부 간 관계는 수직관계(지휘감독)에서 수평관계(협의계약)로 발전해야 한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간 관계는 계층(Layer Cake) 모형에서 대리석(Marble Cake) 모형으로 발전해야 한다. 중앙과 지방의 관계가 정치권력체계에서 공공서비스공급체계로 전환되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이 본격적으로 사회전반에 영향을 미치면서 현재의 민주주의 접근 즉, 중앙정부 독점권력의 공간분산(분점) 중심에서 미래에는 주민생활 접근 그러니까 지방정부는 주민의 일상생활을 보장하는 서비스 공급기구로서 지역사회공동체와 사회경제 영역이 중요해진다.

지방의 경계는 공적 의사결정과 통치구역 단위에서 공공서비스 공급구역으로 전개될 전망이다. 광역공공서비스 공급구역단위의 다양화를 통해 특정 광역서비스를 공급하는 지방정부연합(조합) 기반의 전문기능이 활성화될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광역교통청, 광역수도청, 광역환경청, 광역시설관리청 등이 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는 인구소멸지역 등의 빈공간은 광역자치단체가 직접 서비스를 통해 효율성을 도모하겠지만 주민자치 영역은 오히려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주민의 요건과 구성의 다양성도 불가피하다. 지금까지 주민은 자신의 주민등록에 따라 하나의 지방자치단체 구성원으로 강제되었다. 이는 공법상 관계에서 주소는 주민등록에 기재된 하나의 고정된 주소만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는 주소 단수주의를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민의 활동범위는 점점 더 확대되고 있고 이에 따라 주민이 하나의 지방자치단체로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지리적 공간에서 일상적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전통적인 야간정주 주민에 더해 주간활동 주민에 대한 책임성도 강조될 것으로 보인다. 더 나아가 원거리 교통환경의 비약적 개선으로 주중과 주말의 활동 공간이 서로 다른 행정구역에 속하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결국 주민은 자신이 받는 행정서비스가 하나의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복수의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오는 경우가 흔해진 것이다. 항구적 주민에서 일시적 주민, 주어진 주민에서 스스로 선택하는 주민으로 그 패러다임이 바뀔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공급자인 지방자치단체 중심의 자치가 아니라 수요자인 주민 중심의 자치로 전환되어야 함을 시사한다. 주민중심 자치는 관할구역 간에 주민들의 공공서비스 선택권이 발생하고 공공서비스에서 지방정부간 경쟁체제, 관할구역 독점의 해체 분위기로 옮겨갈 전망이다.

 

전국에 걸쳐 획일적이고 기관(공급자) 중심의 중앙과 광역이 결정한 정책을 집행하는 행정단위로서 기초자치단체 역할에서 벗어나 읍면동(소도시) 수준의 지역단위(commune: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모여 함께 살며 공동의 이익, 재산, 소유권, 자원을 공유하는 공동체)의 주민자치가 강화될 전망이다. 반면 권력기관으로서의 수도권 중심 광역정부는 더 이상 의미가 없을 것이며 경유기관(conduit) 역할 중심의 광역자치단체는 소멸하고 서비스 및 분쟁조정기능으로 재편될 전망이다. 인구가 소멸되는 비수도권 농촌지역의 경우 지역단위 자치도 쉽지 않을 수 있으므로 이 지역은 준광역단위(county level)를 통해 필요한 의사결정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기초지방정부의 권한과 책임 강화는 지방자치법 개정취지에 부합하며 특례시 규정 신설을 필두로 차츰 광역 중심이 아니라 기초 중심의 지방자치 강화가 바람직하다. 주민의 치안, 교통 등을 담당하는 지방경찰, 나아가 지방교육도 광역단위가 아니라 기초단위가 바람직한 것으로 생각된다. 단체 중심 패러다임에서 이제는 주민 중심 패러다임으로 전환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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