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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날 수 없는 사람들 – 빈집을 묵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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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날 수 없는 사람들 – 빈집을 묵상하다
  • 박소원 칼럼니스트
  • 승인 2021.11.29 14: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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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 있는 풍경]

‘마을이 있는 풍경’은 ‘마을’의 속살을 가만가만 들여다보고 소곤소곤 소통하는 코너입니다. 더 없이 가깝고 밀착돼 있지만 적지 않은 이들에겐 대체로 멀기만 한 마을의 이야기를 때론 지직거리고 둔탁한 확성기로 때론 고성능 마이크의 ASMR로 들려드립니다.[편집자주]
경향신문 2021년 10월 28일자 기사내용 일부 온라인캡처
경향신문 2021년 10월 28일자 기사내용 일부 온라인캡처

수도권은 부동산 불장인데여긴 주택 열 곳 중 한 곳이 빈집.

어느 토요일 기사 한 편을 읽고 무작정 길을 떠났다. 충청북도 증평군 어느 마을에 청년은 찾아볼 수도 없고 점점 빈집만 늘어간다는 기사였다. 할머니 혼자 지내시다가 돌아가셔서 빈집이 되었거나, 노부부가 같이 요양원으로 옮겨가면서 빈집이 되었거나, 서울 자녀들 집으로 올라가면서 빈집이 되었거나…… 집의 주인들, 끝까지 지키고 살아가려 했던 집을 자력으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지경이 된 후에야 떠났다.

그 기사가 전하고자 하는 바와는 별도로 나는 그 마을이 보고 싶었다. 도시락을 싸서 소풍 가듯이 즐거운 마음으로 충청북도 어느 마을로 차를 몰아갔다. 기사에는 마을 이름이 특정화돼 있지 않아 군청소재지를 목표로 찍고 간 것이다. 중부고속도로를 벗어나 증평군으로 들어섰을 때, 어라? 아파트들이 꽤 있는 도시화된 시내가 나온다.

내가 생각한 그런 마을이 있을 것 같지 않은데?’

 

토요일 오후 무작정 충북 증평으로 향한 까닭은

 

기사를 다운받아 휴대폰을 누군가에게 보여주면 증평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곳이 어느 마을인지 알 거라고 찰떡같이 믿었다.

먼저 부동산 중개소를 찾아갔다. 토요일 오후인데 대부분의 부동산 사무실이 불을 켜놓고 있다. 막 입주를 시작하는 아파트를 사고파는 사람들이 주말에 시간을 내 계약을 하러 몰리는 것 같았다. 첫 번째 부동산에 들어가서 순서를 기다렸다. 계약을 진행하는 중이라 한 팀에게만도 시간이 꽤 많이 들었다. 나보다 먼저 온 사람들이 두 팀이나 기다리고 있는데 돈도 안 되는(?) 이런 일을 물어보기가 점점 미안해졌다. 한 팀도 끝나기 전에 나왔다.

경찰서를 찾아가면 알지 않을까? 마을의 안전 관리에 대한 이슈도 있어서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있지 않을까 했다. 출장소로 이름 붙여진 경찰서는 생각보다 규모가 컸다. 주차공간도 꽤 넓은 곳이다. 경찰관들이 5-6명 큰 테이블에 둘러앉아 있었다. 하루 일이 끝나 서로 정보를 공유하는 시간인 건가? 아무튼 많은 사람들을 한 번에 다 만났으니 다행이다 싶었다. 쭈뼛쭈뼛 거리며 말을 건넸다.

제가요, 중평에 있는 어느 마을 기사를 보았는데요, 이 마을에 좀 가보고 싶어서 왔어요. 그런데 기사에는 마을이름이 없어서요. 혹시 이 사진들 보시면 어느 마을인지 아실까요?’

쭉 둘러앉아 있던 경찰관들이 몰려들어서 내 휴대폰의 기사를 들여다보았다.

어디여?” “글쎄 모르겠는데?” ”빈집들 있는 마을이라고?”……

모두 한마디씩 거들었지만 아무도 그 마을을 특정화하지 못했다.

군청을 가 봐요. 당직이 있을 테니 아마 알 거예요.”

군청에 가서 걸어 잠근 로비 안쪽에 잠깐 움직임이 있는 직원을 큰 소리로 불렀다. 결과는 모른다였다. 그 후로도 해가 지기 전에 여러 부동산 중개소를 방문했고 한자리에서 30년 넘게 부동산중개업을 하고 있다는 할아버지는 그런 곳이 많지 뭐. 그게 뭐 특별한 곳이냐라는 반응을 보이셨다. 사진의 집이 어느 마을인지는 모르겠다고 답하시면서.

결국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들 때문에 을씨년스러운 그 마을을 찾아가보겠다는 내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내가 군 단위의 행정지역을 너무 만만하게 본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기자가 기사로 쓸 정도면 꽤 심각한 문제가 된 곳일 진데 그곳이 어딘지 상상도 못한다는 건 좀 문제가 있지 않나? 그런데 답은 의외의 곳에 있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기사의 장소가 어딘지 모르겠다고 말하면서 말끝에 저는 여기 안 살아요. 청주 살아요.”

마을 일이 나의 일이 되고 내 마음이 닿을 수 있기를

 

소위 군청 주변의 번화가(?)에서 일하는 많은 분들이 청주에서 살면서 출퇴근 한다는 것이다. 공무원도 부동산중개인도. 그러니 증평의 쓰러져가는 작은 마을 일이 나의 일이 아니다. 내 마음과 연이 닿아있지 않다.

나는 왜 기사 속 그 마을에 이끌렸을까? 단풍 인파로 고속도로가 가득 차있는 주말, 2시간 넘게 운전해서 그곳에 무작정 가고자 했을까? 허물어져 가는 집보다 여전히 그곳이 나의 집이라 불편함과 소외를 감수하고 살아가고 있는 노인들을 만나고 싶어서였다. 마치 나도 지켜 남아있고 싶은 땅이 있는 사람처럼, 혹은 나를 대신해서 남아 있어준 분들에게 감사하기 위해서.

요즘, 이 칼럼을 쓰는 것이 계기가 되어 마을에 마음이 많이 기울어진다. 옆집 살림살이가 폈는지, 아들네가 아이를 낳았는지, 아이가 학교에 입학했는지, 아프던 부모님이 회복되었는지…… 그런 정도는 서로 알고 지낼 수 있는 사람들의 마을, 그런 곳에서 살고 싶다.

빈집을 옆에 두고 있으면서 너무 무섭다고 누군가 하소연했다고 한다. 그 집을 철거해서 그곳에 누군가 살았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게 해달라는 소리로 들린다.

그곳에는 나랑 친한 할머니가 사셨잖아. 그 할머니는 요리 솜씨가 참 좋으셨지. 할아버지는 한량 같은 분이셨는데 나이 들어서는 할머니한테 꼼짝 못했어. 할머니가 김장하실 땐 우리 다 가서 도와드렸지. 그래서 몇 포기 얻어먹으면 얼마나 맛있던지. 아들네가 서울로 오시라오시라 한다더니 안가고 계시다가 두 분이 같이 요양원으로 들어가셨네. 마당엔 늘 예쁜 꽃들을 심어서 그 집 마당에 들어가면 어찌나 기분이 화사하던지. 그런 집이 빈집으로 남아 마당에 풀이 무성하고 집 기둥이 기울어져가는 걸 지켜보는 건 너무 우울해. 저 집을 아예 철거하든지 누가 이사 와서 다시 살려놨으면 좋겠어……

이런 마음의 소리를 듣게 된 느낌이었다. 그래서 그 마을에 비어져버린 집들에 다시 온기를 불어넣고 새로운 이야기가 생겨나게 할 수는 없을까. 그런 생각에 단풍이 절정인 그 주말, 나는 증평에 다녀온 것이다.

 

박소원 씨앤씨티에너지 마케팅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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