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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시대의 주민자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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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시대의 주민자치
  • 정무성 숭실대 교수
  • 승인 2021.11.29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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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정무성 숭실대 사회복지학부 교수

현대사회 가장 중요한 가치는 다양성(diversity)이다. 다양성이 존중받고 수용되는 사회일수록 선진화된 사회라고 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사회가 다양해질수록 사각지대나 소외계층도 증가할 수 있다. 서로에게 무관심하거나 냉대적인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따라서 다문화 사회로 갈수록 지역사회에서 주민들의 참여를 통한 복지공동체를 구축하여 사회통합을 이루어야 지속가능한 사회를 될 수 있다.

 

다양성의 가치와 복지공동체

우리나라는 경제성장에 걸맞은 복지국가를 이루기 위해 비교적 짧은 시간에 사회보장제도의 기본틀을 갖추고, 관련 예산도 상당히 증액하였다. 그러나 국민들의 복지체감은 여전히 낮고, 자살률, 사회블평등, 삶의 만족도 등의 사회지표는 주요 선진국 중 최악을 기록하고 있다. 또한 복지사각지대가 계속적으로 발생하여 사회적 위기감을 부축이고 있다. 이는 정부의 복지정책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만큼 우리 사회가 다양해지는 상황에서는 현재의 복지정책이 모든 사회문제를 대처하는데 한계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다행히 코로나19의 훌륭한 대처로 국민적 자존심과 국가의 위상이 높아지기는 했지만, 그동안 경제위기의 고통이 저학력, 저기능, 저소득층에 집중되어 사회적 불평등과 그에 따른 취약계층의 상대적 박탈감이 여전히 잠재되어 있다. 이에 튼튼한 사회안전망을 확충하고 복지제도를 보다 내실화하여 복지에 대한 국민의 체감도를 높여야 한다. 사회복지의 공공성을 강조하는 현 정부의 정책기조에 따라 우리나라도 정부 예산 중 복지부문 예산이 가장 큰 구조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정부의 복지시책만으로는 현대사회의 복잡한 사회구조와 새로운 환경 속에서 파생되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공공복지가 발달한 나라에서도 많은 사회복지활동이 지역 공동체의 원조망을 통해 이루어진다.

한국이 북유럽의 공공재정 중심의 복지국가 모델을 따르는 것이 적절한가에 대해서도 많은 논란이 있다. 대안은 주민참여 강화를 통한 민관 협력으로 복지공동체를 구축하는 것이다. 사회통합을 이루는 포용적 복지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주민이 지역사회문제 해결에 지속적으로 참여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민간부문의 패러다임도 혁신적 변화가 필요하다. 단순히 자선적이고 시혜적인 복지서비스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고, 네트워크 구축과 함께 주민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주민역량의 강화, 공동체 의식의 제고 등 사회적가치 창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실제로 전국의 여러 읍··동에서 민관협치기구인 주민자치회를 통해 지역 문제를 직접 해결해나가고 있다. 주민자치 활동내용은 매우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는데, 가장 보편적인 것은 지역 내 돌봄 활동이다. 최근에는 돌봄에서 교육, 근린환경개선 및 수익사업까지 점점 확대되고 있다. 즉 소외계층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여러 계층과 네트워크의 협력을 통해 기후위기에 대응하면서 지역의 문제에 대해 주민들이 공동으로 대처하고 풀어나가는 지역통합돌봄(community care)이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다.

포스트코로나 시대에는 사회 곳곳에서 혁신의 경쟁이 본격화 될 전망이다. 각 국가는 개혁을 통해 정부를 보다 반응적이고 쇄신적이며 주민참여적 정부로 재창조하려는 노력들을 경쟁적으로 기울일 것이다. 민간에서도 민주적인 과정을 통해 다양한 사회문제를 혁신적으로 해결하려 노력할 것이다.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통해 어떠한 재난도 극복해 나가는 지역사회 회복력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가족, 이웃, 종교계 그리고 자발적인 조직체 등 지역사회 조직을 재건하여 지역공동체를 구축하는 노력은 지역의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는 전제 조건이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의 다문화 추세

한국 사회의 다문화 현상은 86아시안게임, 88올림픽 이후 해외에서 산업연수생들이 들어오고, 1990년대 농촌총각 장가보내기 운동의 일환으로 결혼이민자들이 유입되면서 크게 활성화되었다. 코로나19 사태 직전인 201912월 기준 대한민국의 체류외국인수는 252만 명으로 전체국민의 4.9%에 이르러 국제기준으로도 명실공이 다문화사회로의 진입이 이루어졌다. 인구의 5%가 외국인으로 구성되면서 식당, 노인요양원, 소규모 작업장, 시골 들녘, 목축장, 어촌 등 우리생활 곳곳에서 쉽게 외국인을 볼 수 있다.

현재 결혼하는 10쌍 중 한 쌍은 국제결혼이다. 그들의 2세는 글로벌 리더로서 성장하여 아시아와 세계무대의 교두보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들을 지원하기 위해 다문화가족지원법이 제정되고 지역사회에 다문화 가족을 지원하기 위한 센터들이 설치되었다. 2008년 결혼이민자가족지원센터로 개소한 후 다문화가족지원센터로 개칭을 거쳐, 2021년 현재 여성가족부 산하의 전국 228개소의 다문화가족지원센터(일명, **() 건강가정지원·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결혼이민자 및 배우자와 그 가족들을 지원하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수행하고 있다. 결혼이민자들의 조기적응을 돕고, 일상에서 소소한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각 지자체별로 지역특성에 맞게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이러한 점진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다문화가족들이 가장 싫어하는 용어 중의 하나가 다문화라는 말이다. “우리아이는 한국에서 태어났고, 한국말도 잘하는데, 왜 우리아이가 다문화인가요? 우린 다문화라는 말이 너무 싫어요라고 호소한다. 비록 한국어는 서툴러도 한국을 사랑하고 한국에서 살고자하는 의지 그리고 자녀교육에 대한 열정 등은 일반 한국가정과 다르지 않다. 그런데 다문화라는 말을 싫어하는 속내는 다문화가족을 대하는 성숙하지 못한 우리사회의 태도가 투영되어 있다. 그래서 최근 다문화라는 용어보다는 문화다양성, 상호문화주의 등의 표현이 새롭게 통용되고 있다.

전국다문화실태조사(2015, 2018) 등의 자료를 보면 다문화가족이 거주 기간 별 겪는 어려움으로 거주기간이 길수록 한국어 문제는 해소되고 있지만 경제수준은 더 어려워지고, 차별도 더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거주기간에 관계없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어려움은 외로움이었다. 1/3은 외로움의 문제를 좀처럼 해결하고 못한 상황이다. 급한 일이 있어도 아이를 맡길 곳도, 자신이 몸이 아파도 급히 와달라고 요청할 곳도 없고, 지역사회의 활동에 참여할 기회도 별로 없다고 한다.

다행히 다문화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다문화가족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을 중심으로 글로벌 공동체적인 활동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다문화 체험부스, 다문화 전통공연, 에너지절약 등 기초캠페인(안산신문, 2018. 8. 22.), 지역사회와 더불어 함께하는 행복한 다문화 가족, 다문화사회 인식 개선과 자녀 바로키우기(한라일보, 2019. 5. 8), 다문화 여성들의 제주생활(2021. 5. 10), 다문화가족 모바일 역량강화 교육(제주 이도2), 다문화 가정 영유아 자녀 대상 독후활동 지도 프로그램(서울 은평구 구산동), 한국전통 고추장 담그기(고양시 일산동구 풍산동, 여주시 중앙동),김장나누기, 문화탐방(제주, 남원읍), 우리 집 가훈 갖기(부산 사상구), 반찬나누기(예산군, 삽교읍), 공동 주말농장운영(성남시) 등 지역의 특성에 부합하는 공동체의식 형성의 구심체 역할을 해내고 있다.

 

다문화사회의 사회통합과 주민자치 과제

다문화 사회로 접어든 한국의 지역사회는 사회복지 실천의 핵심적 수단인 동시에 복지서비스 제공의 중요한 대상이다. 그러나 산업화의 진전과 함께 전통적인 지역사회의 개념이 파괴되고, 공간으로서의 지역사회의 복지적 기능에 대한 회의를 갖는 사람도 많아지고 있다. 우리 사회도 산업화 이전에는 가족 및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하는 비공식적인 복지기능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나, 20세기 후반의 산업화 과정에서 지역사회를 매개로 하는 사회복지의 기능은 매우 약화되었다.

전통적으로 우리 사회는 마을에 기근이 들거나 역병이 돌 때 마을주민들이 힘을 합쳐 위기를 극복했다. 이러한 우리 선조들의 주민자치 행태는 향약 4대 덕목에 잘 반영되어 있다. ‘덕업상권(德業相勸), 덕업을 서로 권한다’ ‘과실상규(過失相規), 과실을 서로 규제한다’, ‘예속상교(禮俗相交), 예속을 서로 교류한다’ ‘환난상휼(患難相恤), 환난에서 서로 위로한다’. 현대에도 이러한 정신을 가장 잘 이어가고 있는 것이 주민자치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 각국은 현재 코로나19라는 대재앙 앞에 글로벌화를 지향했던 복지국가 형태를 탈피하여 뉴노멀 사회의 새로운 복지사회 형태로의 전환을 위한 개혁을 요구받고 있다.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부합하는 새로운 국가와 사회의 틀, 새로운 사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어떻게 설정하느냐가 우리 시대의 화두이자 국가와 국민 생존의 문제를 좌우할 것이다. 특히, 거대 중앙정부의 출현으로 민주주의와 자치분권이 새로운 위기를 맞고 있는 현실에서 어떻게 자치와 분권을 지키면서 이 재난과 재앙위기를 극복하느냐는 우리 사회가 당면한 과제이다.

지속가능한 사회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개인, 가족, 이웃 및 지역의 자발적 주민조직들이 지역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정부는(중앙정부든 지방정부든) 그에 따른 권한과 책임을 지역사회에 이양하고 보다 견고한 지역공동체 재건을 위하여 주위 여건을 조성해 가야한다. 주민들의 참여와 협동에 의해 자주적 관리가 이루어지는 주민자치의 사회를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하는 것이다.

다문화가족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들은 늘어나고 있는 추세로 보이고 드물기는 하지만 결혼이민자들이 직접 자치위원으로 참여하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주로 통역을 맡고 있거나 문화다양성 강사들이거나 지역의 오피니언 리더들이다. 그들은 도시의 통장(강원도, 고양시, 원주시) 명예통장(구로구, 오류동, 개봉동, 수궁동, 광주 광산구)이나 시골의 이장(전남 무주군, 경북 양천)으로서 주민자치와 협력하거나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더 많은 다문화가족들이 지역의 구성원으로서 역할과 책임을 다하기 위해 그리고 한국어와 지역사회에 익숙하지 않은 초기 입국자들과 외국인 등의 의견수렴을 위해 주민자치위원으로 활동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비록 한국어 표현이 서툴거나 지역사회에 대한 이해가 적더라도 지역의 발전을 위해 모든 계층이 소통하고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회복지의 이념 중 정상화(normalization) 개념은 모든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져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정상적인 사회라는 이념이다. 이는 사회통합(social integration)을 통해 복지공동체를 이루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러한 이념들은 지역사회는 변화될 수 있으며 변화를 통해 주민이나 구성원들의 삶의 질이 향상될 수 있다는 신념에 근거한다. 그동안 단일민족을 강조해온 한국 사회가 다문화시대를 맞아 지역사회 내에서 새로운 복지공동체 구축을 위해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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