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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 정부의 지방자치를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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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 정부의 지방자치를 묻는다
  • 전영평 대구대학교 명예교수
  • 승인 2022.01.26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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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평 교수의 자치이야기
(대구대학교 명예교수. 미국조지아대학 행정학 박사.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초빙교수. 대구경실련 공동대표. 저서 ‘자치의 오류와 지방정부혁신’, ‘한국지방자치의 재탐색’ 외 다수)
전영평 교수

차기 정부의 지방자치, 기대할 수 있을까

코로나19의 기나긴 터널이 이어지는 가운데 새해를 맞았다. 올해는 차기대통령이 선출되고 차기 정부가 출범하는 특별한 해이다. 차기정부의 역할을 지방자치와 연결시켜본다. 과거 정권들이 지방자치를 외치긴 하였으나 ‘무늬만 자치, 관공서간 권력나누기 자치, 밀실자치’로 변질되어 주민의 불신과 냉소가 끊이지 않고 있다.
김영삼 정부에 들어서야 비로소 근대적 지방자치의 운을 떼었지만 현재에 이르기까지 실질적인 주민자치를 위한 노력은 미미하였다고 평가한다. 제왕적 대통령으로 변질되는 한국의 대통령책임제는 대통령 및 행정부가 지방과 주민에게 권한을 과감히 나눌 수 없는 구조적 한계에 봉착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에게 중앙권력을 분권하라는 시대적 요청은 오히려 자치단체장과 공무원의 권한을 증대시키는데 기여하였고, 지방자치의 주인공인 주민에게는 그 권한이 미치지 못하고 있다. 한마디로 한국지방자치는 정치권의 생색내기 자치이며 관공서간 분권자치이지 진정한 주민자치와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면, 차기 대통령 후보들과 차기 정부는 지방자치의 진수인 주민자치활성화를 위한 노력을 하고 있을까. 지금으로서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아니 아무것도 준비된 것이 없다. 참으로 실망스런 대선이다. 정책은 보이지 않고 상호비방, 파퓰리즘, 가족문제만 문제 삼는 형편없는 대선이 되어가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는 지방자치, 주민자치, 지방분권이라는 이슈는 더 이상 부각될 것 같지 않다. 
지방자치는 풀뿌리민주주의 구현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풀뿌리민주주의란 주민자치와 다름 아니다. 흔히 지방자치를 지방분권으로 오해하는 경향이 있으나 지방분권은 주민자치를 구현하기 위한 도구적 존재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중앙정부의 권한을 지방정부에 이전하는 것, 즉 분권은 주민자치를 구현하기 위한 필요조건이지 그것이 필요충분조건이 되는 것은 아니다. 주민들이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일을 스스로 기획하고 실천할 수 있게 되는 단계까지 참여민주주의가 진척될 때 비로소 필요충분조건이 만족된  풀뿌리 자치가 실현될 수 있다.
그러나 정치행정가들이 생각하는 지방자치는 매우 생략적이고 정략적이며 얄팍한 것들이다. 그들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수많은 선거 이슈 중에서 지방자치 이슈를 우선순위에 둘 이유가 없다. 실생활과 직결되지 못하는 추상적 개념일 뿐만 아니라 득표에 거의 영향 주지 못한다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지방자치, 지방분권, 주민자치 개념조차 제대로 구분이나 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이제 지방자치 강화는 더 이상 국민들의 열망하는 정치적 이슈가 되지 못하고 있다. 정치인에게 있어 지방자치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간의 권력 나눠먹기,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권한을 위협하는 구호 정도일 것이다. 단체장과 지방의회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단체장은 이렇다 할 견제도 받지 않는 지방의 소통령으로 군림하면서 공무원 인사권을 장악하여 밀실행정을 조장하고 지방유지들 요구에 맞게 적당히 자원을 분배하여 입막음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일단의 패거리를 모아서 공천만 받으면 당선, 재선은 따 놓은 당상이기에 정당과 국회의원 눈치 보기에만 몰두하는 단체장 및 지방의원들의 모습에서 한국지방자치의 모순과 병리를 목도하게 된다. 실로 우리의 자치는 정치 구조적 한계에 봉착해 있는 것이다.
서울시는 주민자치를 활성화하고 정착시키겠다는 의욕에서 일본식 마을 만들기를 모방 시행하였으나 그 시행 과정에서 시장의 대권야심, 주동세력의 정치적 편향 등으로 인해 돈뿌리기사업, 기회주의적 편향성, 선택적 주민참여 유도 의혹으로 인해 모진 비판을 받고 있다. 이는 한국의 주민참여는 정치권의 기회주의적 책략과 패거리 행동가들에 의해 얼마든지 조작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일례에 해당한다. 

 

다시 지방자치의 본질을 묻다

그래서 다시 지방자치의 본질을 짚어 보아야 한다. 필자는 퇴임 이후 면 단위 소재지에 주거를 옮기고 7년째 살고 있다. 전공이 행정학인 관계로 지방자치의 관점에서 주민들의 행동양식, 지방행정의 실상을 면밀히 관찰하게 된다.
도-군-면-리로 이어지는 행정의 일사 분란한 집권체제는 변한 것이 없다. 군청이나 면사무소의 주민 응대, 민원 서비스의 친절 수준은 개선되었으나 그들이 수행하는 사업이나 핵심 업무의 기획 집행에는 주민참여의 기회는 없다. 도지사, 시장, 군수, 면장은 겉으로는 주민우선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정치네트워크, 이권나누기를 위한 밀실행정에 몰두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동네에는 제대로 된 주민 집단이 거의 없다. 나이든 노인들은 경노당과 마을회관에 웅성거리지만 그곳에서 논의되는 내용은 대부분 관으로 부터의 혜택을 받아오는 능력에 관한 것이다. 이런 점을 이용하여 관청에서는 물품, 금전 지원으로 생색을 내고 관공서 장이나 지방 정치인들은 주민에게 큰 절하는 시늉만 하지 주민들을 정책결정파트너, 집행과정의 모니터링요원으로 참여시킬 의향은 없다.
대부분 주민들이 정책결정이나 집행참여의 역량이 없다고 보는 것은 그들의 오해이다. 아무리 시골이라도 공동체와 공익을 생각하는 사려 깊은 사람들은 존재하고 있으며 그들 나름대로 신중한 견해를 밝힐 능력이 있기에 주민공동체 발전을 위한 제안의 장을 만들어 주면 참다운 주민자치가 이루어 질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가 생각하는 자기 마을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을 제시할 수 있는 마을공동체 공론의 장을 만들고 운영할 생각은 아니하고, 마을회관 안주인, 경로당 바깥주인 모시기 수준으로 주민자치를 오도하는 지방행정가와 정치인들의 의식 수준이 실로 한심하기 이를 데 없다.

 

꼭 해야 할 세 가지
 
지방행정가와 지방정치가들이 실로 이런 식의 ‘주민달래기’를 지방자치로 이용하도록 두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우리는 3가지 일을 해야 할 것 같다. 첫째는 대통령과 국회의원, 행정자치부로 하여금 그들이 생각하는 지방자치의 비전과 궁극적 목표가 무엇인지를 밝히게 하고 세부 추진사업목록, 추진과정, 수행 및 모니터링 방안을 제시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지방자치의 완성을 통한 미래한국의 궁극적인 모습을 어떻게 상정하고 있으며(비전설정),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대통령과 국회, 정부가 어떤 협력네트워크로 어떤 노력할 것인지(목표와 과제설정), 추진과정의 성과를 어떻게 평가하며 관리할 것인지(모니터링과 평가, 반영)를 명확히 해야 할 것이다.
둘째, 지방정부-지방행정가/지방정치인-의 횡포를 막고 지방정부를 획기적으로 개혁해야할 과제를 부여해야 한다. 작금의 지방자치는 관공서간 분권자치로 변질되었다. 지방자치의 본래적 목표는 수단이 되고 권력분권이 목적이 돼버린, 목표와 수단이 도치된 자치가 지금의 한국지방자치 모습이다. 그래서 지방정부 권력 낮추기를 해야 한다.
지방정치인들은 주민을 기회주의적으로 이용하면서 주민자치를 꿈꾸는 주민지도자의 양성과 참여를 배제하고 있다. 그들은 자기 입맛에 맞는 주민을 선택적으로 수용하며, 주요 정책의 입안과 추진과정에 주민 참여를 배제함으로써 손쉬운 행정의 길로 나서고 있다. 이런 식으로 지방행정을 할 바에야 왜 분권을 하고, 왜 자치를 하자고 했는지에 대한 근본적 회의가 든다.
셋째, 진정한 주민자치의 구현을 위한 민간차원의 운동조직을 만들고 이들의 기획에 의한 창의적이고 실행 가능한 주민자치 프로그램을 가동해야 한다. 비정부조직(NGO)에 의한 지속적 주민자치운동이야말로 향후 한국의 지방자치가 풀뿌리자치의 건강함으로 살아갈 수 있는 토양이 될 것이다. 정부도 기업도 아닌, 각성된 NGO에 의한 지속가능한 주민 지향적 주민자치 운동이 필요하다.
외국의 사례에서도 보듯이 NGO는 다양한 수요에 잘 반응하는 창의 발전소-권력계층제 조직인 정부, 이윤추구계층제인 기업조직과는 달리-이며 공동체정신과 공동선을 추구하기 위한 신념과 열정을 가진 활동가를 수용할 수 있는 제3지대의 희망이 될 수 있다. 소비자보호, 안전, 인권, 평화, 환경, 지구, 질병퇴치, 민주주의 감시 등의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선진국의 NGO 활동을 보면 NGO에 의한 주민운동이 얼마나 큰 영향력과 호응을 받고 있는 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경우 경실련, 참여연대, 환경운동연합 등의 굵직한 시민운동단체들이 나름대로 시대적 역할을 해 왔다고 평가할 수 있겠으나 종내에는 정치권과의 결합, 객관적 비판역량 부실, 기획 및 전문성 결여 등으로 인해 선진국 NGO와는 다른 실망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는 정부실패, 시장실패와 더불어 NGO실패로 불리어 마땅하다.
현재의 한국정치 현실에서 역량 있고 소신 있는 주민자치운동체가 만들어지고 제대로 활동할 수 있을지 진정 의구심이 든다.  자는 교수 생활을 하면서 이십년간 시민단체에서 활동해 본 경험이 있다. 의욕과 이념이 앞서는 운동가들, 나름대로의 생각과 욕망이 있어서 입회한 전문가들, 다양한 배경의 회원들이 모여 정책감시비판을 하기도 하지만, 그 실체는 알려진 것과는 달리 너무나 비체계적이며 소수 집중적이고 언론플레이 위주의 위약한 집단이었다.
한국 시민단체의 열악한 현주소를 솔직히 고백하면서도 한 가지 희망을 놓지 않고 있는 것은 시민단체의 역량이 강화되지 않고서는 정부와 기업(시장)의 활동을 전업으로 감시 비판 제안할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주민자치의 구현을 위해 이를 전업으로 전담할 수 있은 주민자치 NGO기구를 잘 만들어 놓을 필요가 있다. NGO의 성공은 기본적으로 정치적 중립성, 도덕적 청렴성에 기초를 두되 활동인력의 창의력, 기획력, 추진력, 도전정신, 전문성, 성과에 대한 지속적 점검관리 등이 실행될 때 이루어 질 수 있다. 더구나 NGO의 재정안정과 후원이 확보돼야하니 참으로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 할지라도 ‘한국의 풀뿌리 주민자치를 구현하는 데 헌신하겠다’는 비전은 진정 보람 있고 훌륭한 일로 추진해야 할 일이기에 향후 주민자치운동 전문 NGO 활동과정을 흥미 있게 지켜보도록 하겠다.         

 

주민자치의 성공을 위하여

지방의 몰락은 막아야 한다. 그러나 지방의 몰락을 누가 어떤 방식으로 막는가에 대해서는 신중한 담론이 필요하다. 또 지방에 대한 적극적 투자가 구체적으로 지방의 누구를 위한 것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지방의 일각에서는 수도권의 인구, 경제, 교육의 집중 현상을 시정하라는 강력한 요구를 하고 있다.
그러나 수도권 집중을 막을 수 있는 획기적인 대책 마련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일자리와 기회, 그리고 대중문화가 번창하고 있는 수도권으로 가고 싶어 하는 인간의 보편적 욕구를 막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생각 끝에 그들은 지방분권과 적극적 지방투자를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하지만 지방분권과 적극적 지방투자로 지방이 살아날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지방 분권과 투자는 지방정부와 소수 지방기득권의 입지만 강화시킬 수 있다. 지방이 몰락하는 이유는 지방정부의 권한이 적어서도 아니며, 지방에 대한 투자가 적어서가 아니다. 권한과 투자를 증대시켜주어도 그것을 제대로 소화해낼 수 있는 협력 체제와 개방적 자세가 미흡하다는 점이 근본 문제이다.
지방의 여론은 일부 성장 연합 세력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은 수도권 집중으로 인한 피해에 가장 민감한 기득권 집단이며 폐쇄적 연고에 의해 움직이는 집단이기 때문에 권력의 공유나 열린 담론의 전개에는 거의 관심이 없다. 한심한 일이지만 지방에는 내부 비판도 없고 내부 교류도 없다. 모두가 자기 것 지키기에 급급하며 개방과 교류를 위한 협력네트워크의 구성에는 별 관심이 없다. 지방과 수도권과의 근본적 차이는 바로 여기에 있다. 
마땅히 지방 살리기의 핵심주제는 열린 참여와 협동 네트워크 형성이어야 한다. 그리고 지방에 대한 투자와 분권은 참여와 협력네트워크 형성에 대한 보상으로서의 의의를 가져야 한다. 현 상태에서의 지방자치분권은 지방정치의 과오를 촉발시킬 수 있으며 투자의 증가는 선심성 사업 발주나 일회성 소비로 치달을 수 있다.
지방 정부에 대한 지원은 주민 및 시민단체와의 열린 정책 네트워크 구성 여부에 따라 차등화 돼야 하며, 교육부문에 대한 지원은 학교별 지원이 아니라 협력적 교육네트워크 및 지역 학술재단의 설립 등과 같은 공유적 개념의 교육 지원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경제적 지원도 개별 기업에 대한 지원이 아니라 경제협력망의 구성에 대한 것이라야 한다.
문제는 참여와 협동의 네트워크에 대한 실천이 지방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나기 힘들게 되어 있다는 점이다. 실로 걱정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작은 도시로 갈수록 열악해지는 지방자치능력과 주민참여네트워크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참여 자치의 기제를 만드는 일이 가장 시급한 과제이다. 지방의 지식인과 시민단체가 직접 나서야 대목이 바로 이 부분이다. 지방화선언이 자칫 지방 정부와 보수 기득권의 이익을 대변하도록 두어서는 안 될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우선 필요한 작업은 지방의 혈액순환을 막는 연고주의와 보수주의를 타파하는 일이며 동시에 주민참여와 협동의 네트워크 형성을 통해 활력을 증진시키는 일이다. 무릇 지방화선언은 지방의 경제를 수도권 같이 만들자는 것이 아니라 지방이 수도권을 능가하는 품격 있는 참여 자치를 하는 일에 치중해야 한다. 그래야만 지방 살리기가 우리 수준에서 가능해지고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차기 대통령과 차기 행정부는 지방자치와 주민참여의 현실과 본질에 대한 진정성 있는 고민을 가지고 출발해야 할 것이다. 특히, 과거 정부가 그러하였듯이, 지방분권으로 주민자치를 호도하지 말고 풀뿌리주민자치를 위한 지방자치의 철학, 담론, 협력체계, 평가 환류체계의 로드맵을 여러 관련자들과 민주적으로 협의하여 결정하고 추진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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