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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인년, 포스트 코로나19의 새해와 주민자치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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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인년, 포스트 코로나19의 새해와 주민자치 교육
  • 이관춘 연세대학교 객원교수
  • 승인 2022.02.04 09: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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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관춘의 마을·자치·교육

새해라는 말은 세 살 어린아이의 해맑은 얼굴을 떠올리게 한다. 새로운 삶의 걸음걸이를 내딛는 아이의 순진무구한 미소에서 희망과 기대의 새로움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새해는 일 년에 단 한번 우리 모두에게 배달되는 삶의 선물이다. 새로운 시작, 새로운 바꿈의 기회를 제공하고 그 중요성을 되돌아보게 하는 변화의 선물이다.

개인이든 조직이든 새해 인사나 덕담은 모두 그 변화를 통한 건강과 부, 성공, 행복을 기원하는 것이다. 특히 올해 임인년(壬寅年)은 개인적 국가적 차원을 떠나 공통적으로 요구되는 변화의 물결이 일렁이고 있다. 채 가시지 않은 코로나 팬데믹에 대처하기 위해 지구촌 차원에서의 변화를 위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변화의 심각성을 뉴욕타임스칼럼니스트인 토머스 프리드먼은 다음과 같이 간명하게 정의한다. “세계는 이제 코로나 이전(Before Corona)과 코로나 이후(After Corona)로 구분될 것이다.” 새해를 시작하면서, 올 한해가 갖는 변화의 의미와 그 변화가 주민자치교육에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돌아보게 된다.

 

코로나19 팬데믹, 문명사적 전환기

프리드먼의 말은 코로나19 팬데믹이 2천 년대 들어 발생한 사스(sars)나 에볼라 혹은 메르스와 같은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하나의 문명사적 전환이란 점을 강조하고 있다. 슬라보예 지젝(Slavoj Zizek) 역시 작금의 상황이 단순한 의학적인 비상사태에 처한 게 아니라는 점을 역설한다. 단순히 정부나 의료당국의 지시를 따르며 상황이 나아지기를 기다려야 하는 위기에 처한 게 아니라는 말이다. 지젝은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우리 인류가 그동안 만들어온 시스템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고 단정한다. 따라서 지금부터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은 바이러스가 아니라 비인간적인사회적 시스템이며 바꾸어야 할 것은 우리의 사유방식, 삶의 방식이라는 것이다.

국내외 많은 학자들은 지금의 상황이 문명사적 전환기라는 진단에 동의한다. 철학자 칸트의 말을 빌어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고까지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태양이 지구를 중심으로 도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만큼이나 커다란 지각 변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거대한 인류역사의 물줄기의 변화가 눈에 띄게 드러나는 것은 아니라는 데 있다. 18세기를 살았던 유럽인들 중에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계몽주의 사조 속에 살고 있음을 감지했을지 상상해 보면 알 수 있다. 문명사적 변화란 어느 날 갑자기 발생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마치 마그마가 지표로 분출된 것이 용암인 것과 마찬가지로 축적된 과거가 뿜어내는 역사의 용암이자 임계점(critical point)이 바로 문명사적 전환점이 될 것이다.

그러한 인류역사의 축적된 과거의 중요한 특징은 비인간화라 할 수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간은 이성을 지닌 합리적 존재로서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며 행동하는 존재라는 장밋빛 전망이 근대적 사유방식이자 믿음이었다. 그러나 19세기 국가 간 힘을 겨루는 제국주의를 지나 20세기에 들어서자마자 그 인간이성을 짓밟는 세계대전의 참상을 두 번씩이나 겪게 되었다. 아우슈비츠로 상징되는 인간성 말살은 인류역사의 비인간적인 마그마였던 것이다.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중심이었던 테오도오 아도르노는 저서 계몽의 변증법에서 이러한 비인간화 현상을 다음과 같이 혹독하게 비판하였다. “왜 인류는 진정한 인간적 상태에 들어서기보다 새로운 종류의 야만상태에 빠졌는가?” 인간이성에 의한 기술의 발전적 진보는 진정한 인간적 상태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했으나 오히려 인류는 새로운 야만상태의 늪으로 빠져들었다는 것이다.

새로운 종류의 야만상태는 인간만이 아니라 자연과의 관계에서도 점차 심화되어 왔다. 산업화시대부터 심화된 자연생태계 파괴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할 정도의 임계점에 와 있다. 코로나19사태에 가려져 있지만 전 세계적으로 심각한 기후변화위기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 한 해 세계 곳곳은 온난화로 인해 초강력 폭우와 홍수, 폭염과 산불 등 물불 가리지 않은 이상기후가 동시다발로 발생하여 초토화되다시피 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으로 나라 전체가 가라앉고 있는 남태평양 섬나라들의 절박한 상황이 언론에 긴급 속보로 타전되고 있다. 한 예로 작은 섬나라 투발루는 1년에 1미터씩 해안이 사라지고 해마다 평균 1cm씩 물에 가라앉고 있다는 것이다.

지구 한 쪽에서는 섬이 가라앉고 다른 쪽에서는 폭우와 홍수, 화마가 덮치고 있지만 더 주목해야 할 것은 그런 이상 현상에 “133년 만의 폭우” “기상관측 이래 가장 많은이라는 수식어가 동반된다는 점이다. 자연 파괴로 인한 이상기후 현상이 더 이상 방관할 수 없을 정도의 임계점에 도달해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작금의 코로나 팬데믹 역시 인간에 의한 인재(人災)라는데 전문가들은 동의한다. 누적된 환경파괴가 산불과 홍수 등으로 나타나면서 야생 동물의 생존을 위협하게 되었고, 서식지를 잃은 야생동물들이 도심으로 내려오면서 인간과의 접촉이 잦아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웰스(Wealth) 경제에서 웰빙(Well-being) 경제로

지난 한 세기 동안 경제발전과 근대화란 이름으로 행해진 자연파괴는 결국 인간성의 파괴와 비인간화 및 그로인한 인간 소외현상의 심화로 귀결되었다. 많은 학자들은 자연과 인간성의 파괴를 막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의식과 행동의 전환이 요구된다는 점을 끊임없이 경고해 왔다. 인간은 이성을 도구로 자본주의와 경제발전을 이루었다. 문제는 그 도구적 이성만이 전면에 나서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는 점이다.

20세기 초 막스 베버는 인간이 이성을 목적에 대한 관심과 성찰 없이 오로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와 수단으로만 사용할 때 인간은 결국 '쇠우리 창살'에 갇히게 될 것이라 경고하였다. 베버 이후 호르크하이머나 아도르노, 그리고 이들의 뒤를 이은 하버마스는 관점의 차이는 있으나 모두 비판적 이성의 회복을 주장했다.

기후변화위기 극복을 위한 생태철학을 강조한 한스 요나스는 생태학적 위기는 인간에 의해 야기된 것이기에 인간 자신에 의해 극복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그 유일한 방법은 우리 각자의 삶의 양식을 변화시키는 것뿐이라는 것이다. 아도르노는 아우슈비츠 이후에도 시를 끄적거린다면, 그건 야만인이라고 말하며 비인간화 현실을 보고 수수방관하는 지식인들의 삶의 자세를 혹독하게 비판하였다.

재정적 성장의 전면화와 도구적 이성의 전면화는 어찌 보면 일란성 쌍둥이다. 하나의 동전에 양면이 있는 것과 똑같다. 인간이 이성을 도구로만 사용할 때 발생하는 일종의 병리현상이라 봐도 무방할 것이다.

1968년 유럽에서는 철학과 경제를 포함하는 삶 자체의 변화를 촉구하는 '사회혁명' 일어났었다. 이른바 '68혁명'이다. 프랑스 파리에서 촉발된 68혁명은 부의 축적과 인간이성의 도구화에 기반 한 사회현상에 반발한 혁명이었다. 자본주의를 성서처럼 떠받드는 경제와 평화란 목적으로 전쟁을 도구로 삼는 정치에 대한 환멸에서부터 생태, 노동, 문화, 여성 등 다양한 영역에서의 삶의 모습을 혁신하자는 혁명이었다. 그들은 인류의 행복과 진보를 약속한 근대라는 이름의 신화에 돌을 던졌다. 그 결과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새 패러다임을 낳았다.

68혁명의 기운이 감돌고 있던 그때, 다른 한편에서는 유럽의 경영자, 교육자, 과학자들이 모여 로마클럽을 결성하였다. 이들은 천연자원의 고갈과 환경오염, 지구온난화, 기상이변 등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연구와 조언을 지속적으로 제시하였다. 1972년 로마클럽은 '성장의 한계'라는 보고서를 통해 "21세기 초에 이르면 지구의 자원이 늘어난 인구를 부양하지 못할 것"이라 경고했다.

코로나19 팬더믹 현상이 지구촌을 뒤덮자 최근 로마클럽은 '성장의 한계' 발간 50주년을 앞두고 펴낸 보고서에서 '웰빙 경제학(Wellbeing Economics)'을 포스트 코로나의 대안으로 제시하였다. 인류가 살 길은 재정적 성장에 우선순위를 두고 다른 모든 것을 희생하는 부(Wealth)와 소유 중심의 경제에서 벗어나 인간다운 웰빙(Well-being)의 경제구조로 바뀌어야 한다는 절박한 경고다. 도구적 이성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도구적 이성의 전면화가 문제이듯 부를 추구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재정적 성장만이 삶의 목적이 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로마클럽의 보고서에 따르면 1970년대 이후 야생동물 개체수가 무려 68% 감소하는 등 갈수록 환경파괴는 심각해지고 있다. 보고서는 환경파괴가 환경의 문제만이 아니라 생태계 사슬처럼 인간의 건강과 생계, 식량안보 등 모든 측면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 결과 인류는 '전 지구적인 비상사태'이자 실존적 위기에 직면해 있으며 이러한 비상사태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연, 사람, 지구가 앞으로의 삶의 방식에 핵심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유럽연합 리더들의 문제의식도 로마클럽과 맥을 같이 한다. 2020916일에 있었던 유럽의회 연설에서 우르즐라 데어 라이엔(Leyen) 유럽연합집행위원장은 "코로나19는 웰빙보다 부를 가치있게 여기는 모델의 한계를 보여줬다"고 결론을 내렸다. 코로나19와 같은 현재의 위기는 근원적으로 부의 축적만을 위해 자연과 인간을 희생한 현재의 경제시스템에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경제 시스템을 회복하고 갱신하기 위한 유일한 대안은 새로운 경제적 사고와 실천인 '웰빙 경제학'에 있다는 것을 다시금 촉구한 것이다. 다시 말해 재정적 성장에 모든 걸 희생하는 경제구조를 벗어나 시민 각자의 인간다운 웰빙이 가치의 기반이 되는 경제시스템으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포스트 코로나19 새해의 주민자치 학습

올해가 코로나 이후의 원년이 될 수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다. 코로나 초기에는 이 상황이 언제쯤 끝날까?”란 질문을 던지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부터 이 상황이 끝나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할지 모르겠다는 말을 하고 있다.

위드 코로나라는 생경한 단어가 자연스럽게 사용되면서 코로나19가 완전히 사라지길 바라기보다 차라리 공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도 형성되고 있다. 코로나가 박멸되든 아니면 공존해야 하든, 사람들은 이제 코로나 이후의 세계와 인간의 삶의 방식의 전환에 대하여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세계경제포럼(WEF) 회장인 클라우스 슈밥은 단적으로 대규모 리셋(Great Reset)”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그는 세상의 우선순위는 모두 재편될 것이며, 이 거대한 리셋의 시기를 어떻게 맞이하는가에 따라 개인과 기업, 국가의 운명이 달려 있다고 주장한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게오르기에 총재는 지금 이 위기가 역사에 어떻게 남을지 생각해 볼 것을 촉구한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지금은 세계를 다시 상상하고 다시 재건하고 다시 설계하고 다시 힘을 불어넣고 다시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세계경제포럼(WEF)이나 로마클럽(Club of Rome) 사이트에도 기후학자나 보건복지 전문가, 환경운동가, 경제학자, 정치학자, 인류학자 등 다양한 전문분야의 사람들이 세계경제의 새로운 방향에 대한 논의에 참가하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코로나19로 인한 세계적 위기를 새로운 기회로 삼아 삶의 방식을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의 주장과 논의를 살펴보면 새로운 대안을 제시한다기보다는 오래전에 '경고'성으로 제시했던 그 오래된 미래'가 대안임을 알 수 있다. 그 대안이란 로마클럽의 제안대로 웰빙 경제를 위한 사유방식의 전환이다.

웰스 경제에서는 부의 축적이 전면에 등장함으로써 "건강, 교육, 환경과 같은 다른 웰빙 지표는 저평가되거나 전혀 평가되지 않는" 현상을 불러들이게 된다. 그리고 생태계 파괴와 비인간화 현상이 그 뒤를 잇게 된다. 따라서 포스트 코로나19 시대는 모든 주민의 웰빙(well-being)이 가치 기반 지표로 측정되고 건강과 먹거리, 고용, 교육 등 사람들의 삶과 생계에 최적화된 인프라가 제공되는 웰빙 경제 시스템을 개발하고 구축하는 것이 급선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임인년 새해에는 웰빙 경제로의 전환을 위한 노력이 가시화되어야 하는 시대적 과제가 놓여 있다. ‘탄소중립이란 단어가 상징하듯 거시적 측면에서 웰빙 경제로의 전환은 이미 시작되고 있다. 주민 자치의 본질이 과연 무엇인지를 생각해 볼 때 웰빙 경제의 화두는 주민자치교육이나 학습의 중요한 목적과 내용으로 스며들어야 한다고 본다.

물론 웰빙 경제 시대의 주민자치교육이란 말이 언뜻 추상적이고 실생활과는 거리가 먼 용어처럼 다가올 수 있다. 그러나 웰빙 경제 교육은 개미처럼 돈을 벌고 부를 축적하느라 '죽도록' 일만 하게 만드는 시스템은 나를 진짜로 '죽인다'는 성찰에서 출발한다. 그 성찰을 바탕으로 우리의 삶에서 우리가 간과하고 있지만 진정으로 중요한 가치들을 회복하는 교육이다. 즉 참된 의미의 웰(well, ) (being, 사는 것)을 찾는 교육이다.

최근 세계경제포럼이 21세기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가장 필요한 교육은 사회적 공감학습(SEL)’이라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웰빙을 위해서는 자신과 타인에 대한 올바른 이해, 타인과 함께 살 수밖에 없는 공동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를 마치 예측이라도 한 듯 유네스코는 21세기를 목전에 둔 1996년 중요한 교육보고서(Delors Report)를 발간하였다. 제목은 학습, 그 안의 보물이다. 전 세계 석학들이 머리를 맞대고 향후 웰빙 경제를 위한 주민자치교육, 성인교육의 방향을 제시한 셈이다. 웰빙 경제를 위해서는 교육을 통한 성인들의 학습이 필수적이며 그 학습 안에 바로 보물이 들어있다는 뜻이다.

유네스코가 보물로서 제시한 학습의 원리는 네 가지이다. 즉 알기위한(to know) 학습, 실천하기 위한(to do) 학습, 함께 살기 위한(to live together) 학습, 그리고 존재하기 위한(to be) 학습이다. 지금까지 학교교육에서나 주민자치교육에서는 지식을 배우는 학습, 이를 실천하는 학습이 강조되어 왔다. 그러나 유네스코가 강조하듯 남과 함께 사는 것에 대한 학습, 그리고 인간으로서 존재하는 것에 대한 학습은 무시되거나 첫 두 가지 학습의 부산물로 치부해 온 측면이 강하다. 하지만 유네스코는 마지막 두 가지 학습이 바로 진정한 웰빙 경제, 웰빙의 주민자치에 필수적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면 남과 함께 살기 위한 학습존재하기 위한 학습이 주민자치교육에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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