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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주민자치에서 배운다 ‘권력 무게중심을 아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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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주민자치에서 배운다 ‘권력 무게중심을 아래로’
  • 여수령 기자
  • 승인 2022.02.24 00: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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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주민자치 연구세미나 
2월 23일 열린 제5회 주민자치 연구세미나에서 장철균 전 스위스 대사가 '한국의 선진화 전략 스위스에서 배운다'를 주제로 발표했다.
2월 23일 열린 제5회 주민자치 연구세미나에서 장철균 전 스위스 대사가 '한국의 선진화 전략 스위스에서 배운다'를 주제로 발표했다.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높은 국민소득, 영세중립국이라는 안정적 지위. ‘스위스’라고 하면 흔히 떠올리는 이미지들이다. 이와 함께 게마인데(Gemeinde)로 대표되는 스위스의 직접민주주의는 우리나라 주민자치의 이상적 모델로 손꼽힌다. 한국자치학회는 “스위스가 직접민주주의를 만든 것이 아니라 직접민주주의가 스위스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스위스의 주민자치 역사와 오늘날 우리 주민자치 정책에 주는 시사점을 모색하는 연구세미나를 개최했다. 

2월 23일 서울 인사동 태화빌딩 그레이트하모니홀에서 열린 제5회 주민자치 연구세미나에서는 장철균 전 스위스 대사가 ‘한국의 선진화 전략 스위스에서 배운다’를 주제로 발표했다. 장 전 대사는 1975년 외무고시에 합격한 후 주 중국대사관 공사, 주 라오스 대사를 거쳐 2007~2010년 제17대 주 스위스 대사관 대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동덕여대 초빙교수와 서희외교포럼 대표를 맡고 있다. 저서로는 <서희의 외교담판>(2012), <스위스에서 배운다>(2013)가 있다.

발표에 앞서 세미나를 주최한 전상직 한국자치학회장(한국주민자치중앙회 대표회장)은 “우리가 추구하는 주민자치는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것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읍면동은 ‘주민의’ 주민자치와 ‘주민에 의한’ 주민자치는 없이 ‘주민을 위한’ 정책만 강조되고 있다. 이는 결국 정부와 지자체가 주민들에게 분권을 할 생각이 없다는 반증이다. 우리나라는 1999년 김대중 정부 당시 주민자치를 시행하려 했으나 읍면동 행정기관의 반대로 ‘주민자치위원회’라는 태생적 한계를 가진 조직을 출범하게 됐다.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진 것이다. 그렇게 20년이나 지난 시점에 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베네수엘라 차베스 민중혁명을 참고해 주민자치 지원조직이라는 명분으로 시민단체를 참여시키는 기형적 제도를 시행했다. 주민자치 연구세미나는 이러한 문제점을 짚기 위해 시작한 것이다. 스위스가 주민자치제도를 통해 높은 차원의 공공성과 능률성, 발전성을 구현하게 된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개회사를 했다. 

스위스는 ‘아래로부터 세운 나라’

장철균 전 스위스 대사.
장철균 전 스위스 대사.

장 전 대사는 먼저 한국과 스위스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짚었다. 발표에 따르면 스위스는 한반도의 5분의 1에 불과한 면적에 산지가 75%에 달한다. 부족한 부존자원으로 용병을 주요 외화 수입원으로 삼았던 스위스는 ‘피를 수출한 나라’라는 아픔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지정학적 이점을 잘 활용해 ‘명품국가’로 거듭날 수 있었다. 특히 스위스는 4개 국어를 쓰는 26개의 칸톤(kantone)으로 이뤄진 다층적 연방국가라는 특징을 지닌다. 

장 전 대사는 “스위스는 왕조를 기반으로 한 ‘위로부터 세운 나라’가 아니라 국민의 필요에 의해 구성된 ‘아래로부터 세운 나라’다. 다민족 복합문화를 지향하는 스위스가 연방국가를 이루게 된 배경에는 ‘필요하면 한다’는 스위스 실용주의가 바탕을 이루고 있다. 미국 역시 연방자치 국가이지만 연방정부와 대통령의 권한이 비대한데 비해 스위스는 ‘작은 정부’를 지향하며 ‘다양성 속의 통합성’을 이루려 노력한다”고 스위스의 정치적 특징을 짚었다. 또한 “스위스는 권력의 분산과 여야가 없는 거국내각으로 권력의 무게중심이 아래에 있는 나라”라며 ‘스위스 정신’으로 ▲독립성 ▲중립성 ▲타협성 ▲자율성 ▲실용성 ▲창의성 ▲근거성 ▲준비성을 꼽았다.

상생의 정치와 국민의식 개혁으로 선진국 진입

반면 우리나라는 대통령과 국회의 권한이 비대한 ‘제왕적 대통령제’로 선진국의 문턱에서 ‘중진국의 함정’에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장 전 대사는 “한국은 최단기간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었지만 선진국이 축적해 온 법과 원칙이 지배하는 사회적 전통과 경험이 부족해 선진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스위스의 성공을 가능케 해준 요인은 다양성의 분열적 요인을 극복하고 정치적 안정성을 확보해 국가 경쟁력을 강화한 데 있었다. 우리가 정치적 안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권력의 무게중심을 아래에 두고 상생의 정치를 펼쳐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국형 이원집정부제를 도입해 대통령과 국회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내려놓고 삼권분립과 법치주의를 제대로 시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권위주의에서 자유주의로, 집합주의에서 개인주의로, 체면과 명분에서 원칙과 실용으로, 흑백논리에서 다원주의로, 닫힌 민족주의에서 열린 민족주의로 국민의식이 개혁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장 전 대사는 “이제는 국민 스스로 의식을 개혁해야 한다. 이 개혁은 ‘아래로부터의 개혁’을 필요로 한다. 아래로부터의 개혁을 통해 21세기 선진국 진입을 위한 밑거름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삼권분립-이원집정부제 도입 제안

이어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의 사회로 토론이 진행됐다. 권행완 건국대 정치외교학과 겸임교수는 “우리나라의 중앙집권적・제왕적 대통령제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느냐”고 물었고 장 전 대사는 “명쾌한 정답은 있을 수 없지만 철저한 삼권분립 정신을 지키고 내각 중심의 이원집정부제를 시행하는 것이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답했다. 이어 “현재 스위스에는 켄톤의 기본단위인 게마인데가 2600여개 정도 존재한다. 게마인데가 실질적인 정책을 결정하면 켄톤은 이를 실행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연방정부는 화폐와 에너지 같은 국가 기간 사업에 관한 행정만 담당한다. 이 같은 스위스의 정치체계를 우리나라에 바로 적용하기는 어렵지만, 이원집정부제 도입부터 순차적으로 추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유튜브 시청자 ‘나팔수’는 “국민의식 개혁을 강조하는데 주민자치 차원에서는 어떤 개혁이 이뤄져야 하느냐”고 질문했다. 장 전 대사는 “우리나라는 민주주의를 채택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유교적 의식구조와 정치구조가 지속되고 있어 개인이 헌법에 명시된 권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4.19혁명 이래 많은 개혁을 이뤘지만 정치적 민주화를 넘어 주민의식의 발현까지는 연결되지 못했다. 국민 스스로 주권을 행사하는데 까지 개혁이 일상화되고 제도화되지 못한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초중등학교부터 민주주의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답했다. 

‘스위스 정신’ 본질 우리 상황에 맞게 제도화

김봉수 서울 신촌동 주민자치위원장은 “한국의 주민자치회가 스위스 주민자치 사례에서 본받아야 할 점을 무엇이냐”고 질의했다. 장 전 대사는 “가장 중요한 것은 교육제도”라며 “우리나라는 현재 인적자원의 최대효율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민주주의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정착할 수 없다. 우리나라와 스위스는 출발선이 다르므로 제도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그 제도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이를 우리 상황에 맞게 적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답했다. 
끝으로 전상직 한국주민자치중앙회 대표회장은 “주민자치가 제대로 이뤄지려면 다양한 현장 경험을 통해 주민의 자치역량을 키우는 것이 중요한데, 현재는 주민자치를 시도조차 하지 못하게 하는 상황”이라며 “스위스 같은 사례를 바탕으로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하고 이를 우리 상황에 맞게 제도화 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 같다”는 말로 이날 세미나를 마무리 했다. 

사진=이문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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