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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자치는 대의민주주의 보완 기제…옹호집단 결성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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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자치는 대의민주주의 보완 기제…옹호집단 결성 시급
  • 여수령 기자
  • 승인 2022.02.25 18: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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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자치학회 제6회 주민자치 연구세미나서 전영평 교수 발제
2월 25일 열린 한국자치학회의 제6회 주민자치 연구세미나.
2월 25일 열린 한국자치학회의 제6회 주민자치 연구세미나.

주민자치회 조항이 삭제된 채 전부개정 된 ‘지방자치법’이 시행된 지 한 달여가 지났다. 전부개정 지방자치법 시행 이후 정부가 내세웠던 ‘획기적인 주민주권 구현’ ‘자치단체 역량 강화 및 자치권 확대’라는 목표는 제대로 구현되고 있을까?

한국자치학회가 2월 25일 서울 인사동 태화빌딩 그레이트하모니홀에서 개최한 제6회 주민자치 연구세미나에서 전영평 대구대 도시행정학과 명예교수는 ‘개정 지방자치법 시대의 주민자치: 성찰과 기대’를 주제로 지방자치법 개정의 문제점과 실질적 주민자치 실현을 위한 방안을 살폈다. 

전 교수는 지방자치법과 주민자치에 대한 세 가지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발표를 시작했다. 첫 번째 질문은 “지방자치법 개정의 핵심내용은 무엇이며, 그 중 주민자치 강화를 도모한다는 조항 변경이 과연 주민자치 실질적 활성화를 촉진할 수 있겠는가”이다. 전 교수는 “개정 지방자치법을 비판적 관점에서 살펴보면 ▲선언적 성격 ▲현실적으로 잘 작동하기 어려운 조항의 삽입 ▲기존 요건의 형식적 완화라는 특징을 볼 수 있다”며 “지방의회의 권한을 일부 확장하거나 주민감사 청구인 수 및 연령 등을 완화하는 조치가 과연 주민자치를 강화할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주민자치 비토그룹은 정치인과 행정부서

두 번째 질문은 “지방자치는 주민자치와 지방분권이라는 두 축으로 이뤄진 기제인데, 지방분권은 강력한 동력으로 추진되는데 반해 주민자치는 이렇다 할 진척을 보이지 않느냐”이다. 전 교수는 이 문제에 대한 답을 거시적 관점과 미시적 관점으로 나눠 살폈다. 

먼저 ‘거시 구조적 프레임’에서는 집권적・계급적 지배구조 관행이 풀뿌리 주민자치 구현을 막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앙집권적 지배관행과 하향식 의존적 의식구조가 오늘날에도 지속되면서 ‘주민자치를 통해 풀뿌리 민주주의를 구현하겠다’는 사고가 이상주의적 사고 혹은 불편한 사고로 치부된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사회의 격렬한 정치적 대립 과정에서 시민사회의 자주성, 중립성, 순수성이 상실되고 시민단체의 역량이 급격히 저하된 점도 주민자치 결사체 형성을 어렵게 한다고 봤다. 

‘미시적 프레임’에서는 정치상황과 집단연합, 행동심리 프레임으로 분석했다. 전 교수는 “지방분권 이슈는 그로 인해 발생하는 편익(便益)이 소수 세력에 집중되는 반면, 주민자치 이슈로 인해 발생하는 편익은 다수에게 분산된다. 때문에 지방분권 이슈는 옹호집단이 강하게 형성되고 반대로 주민자치 이슈는 옹호집단의 숫자나 결집력이 현저히 약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결국 주민자치는 옹호집단도, 반대옹호집단도 거의 형성되지 않는 ‘정책 소외 영역’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전 교수는 “주민자치운동의 경우 리더그룹이 누구인지 불분명하고 적극성이 떨어지며 서포터그룹(주민자치옹호집단)의 결성과 활동이 미미하다. 주민자치를 비토(veto)하는 집단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지방정치인, 중앙정치인, 행정부서 등이 비토그룹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에게 주민자치는 그들의 권력 유지와 정치적 활용을 위해 필요한 존재일 뿐이다”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동기화이론에 따른 분석도 내놨다. 전 교수는 “조선시대에 시행된 촌계와 목적계는 주민들에게 ‘상호부조보험’ 역할을 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주민자치는 촌계 방식의 상호부조 정도의 보상조차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니겠느냐”고 반문하고 “현대 한국의 주민자치는 내용이론에 준거하면 명예욕구와 성취욕구를 가진 창도가(唱導家)적 리더가 있어야 하고, 과정이론에 따르면 주민에게 보험 이상의 매력적인 보상을 줄 수 있어야 가능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전영평 대구대 도시행정학과 명예교수.
전영평 대구대 도시행정학과 명예교수.

주민자치 옹호집단 결성-한국적 모델 개발

세 번째 질문은 “개정 지방자치법 시행 이후에도 주민자치가 실질적 성과를 이루지 못한다면 어떤 대책을 마련할 수 있을까”이다. 전 교수는 “앞서 살펴본 바에 따르면, 주민자치의 성공을 위해서는 ▲계급적・통제적 지배구조를 평등적・자유주의적 지배구조로 바꾸는 일 ▲3원적 사회구성체를 만드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는 거시적 변동현상으로 미시적 주민자치운동 역량으로는 해결하기 힘들다. 따라서 미시적 차원의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전 교수가 제시한 주민자치 활성화 방안은 주민자치 옹호집단 결성이다.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원론적 주장만 할 것이 아니라 주민자치 옹호집단을 결성해 연합하고 정책 획득-실행-평가의 과정 거쳐 주민자치를 진화시켜 나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한 “선진국 주민자치모델을 비판적으로 수용해 한국적 주민자치모델을 개발하는 한편, 지역 간 격차에 따른 주민자치 전략을 세워야 한다. 나아가 대중정치 상황에 머물러 있는 주민자치 이슈를 부각시키기 위해선 ‘주민운동 정치 지도자’를 만들고, 주민자치・인권・환경 등을 연계한 ‘신 공공정당’의 창당도 가능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전 교수는 “한국 주민자치의 길을 멀고도 험하지만 반드시 가야할 길”이라며 “다만 주민자치 옹호집단의 결성과 활동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뿐 아니라, 주민자치회에 대한 특정 정치세력의 유입과 장악시도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은 경계해야 한다. 이 경우 주민자치운동이 격렬한 대립과 혼란을 유발해 주민이탈현상과 자치냉소주의가 만연하는 ‘자치의 역설’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를 밝히며 발표를 마쳤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질의응답에서 박경하 중앙대 역사학과 명예교수는 “주민자치 현장을 가보면 동네마다 마을을 위해 일하려는 봉사적 인간형이 존재한다. 이런 사람들 주민자치의 동조자다. 이들을 조직해 ‘주민자치 옹호집단’을 구성하고 정치적 행동이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권영옥 서울시 주민자치여성회의 공동회장과 이섬숙 서울시 주민자치여성회의 상임회장, 이은희 강동구주민자치위원은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주민자치회의 재정 운영과 주민자치위원 임기 제한 등의 문제를 지적하고 주민자치 활성화 방안을 질의했다. 이에 대해 전영평 교수는 “주민자치위원 임기는 주민들이 자율적으로 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다만 권력화 현상을 막기 위해 임기 규정을 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리더십의 연속성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전문성을 갖추는 것이 더 필요하기에 전문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답했다. 

주민자치는 불안정한 민주주의 보완할 기제

전상직 한국주민자치중앙회 대표회장은 “주민자치위원을 추첨으로 선발하고 임기를 제한하는 것은 주민자치위원을 무지(無知)화 하고, 주민자치회를 무력화 하는 정책”이라고 비판하고 “주민자치의 양대 키워드는 자발성과 자율성이다. 자발성이 익서 자율성으로 나아가는 과정은 참으로 멀고 힘들다. 발표자께서 주민자치 옹호그룹 결성이라는 숙제를 내주셨는데, 한국자치학회에서 이 부분에 대한 연구를 지속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주민자치 정당의 필요성을 묻는 질문에는 “지난 총선 때 시군구 주민자치협의회장들이 주민자치 비례대표를 내자고 제안했지만 양당 구도를 넘어 정당투표를 받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판단해 포기했다”며 “주민자치에 대한 이해가 깊고 주민들을 대변해줄 수 있는 국회의원이 있어야 한다는 데는 공감하지만, 정당의 성공여부는 현재로선 불확실하다”고 답했다. 

끝으로 전영평 교수는 “중앙과 지방 정치권의 폐해가 심각하고 시민단체들도 자신들의 이슈에만 매몰되어 있는 오늘날 주민자치를 이루어보려는 시도는 권력자들을 압박함으로써 시민을 위한 정치가 이뤄지게 하는 자극을 줄 수 있다. 민주주의는 완성될 수 없고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주민자치는 불안정한 민주주의를 보완하는 기제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밝히며 발표를 마무리 했다. 

사진=이문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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