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16:55 (금)
향약과 기본소득
상태바
향약과 기본소득
  • 박경하 한국자치학회 부설 향촌사회사연구소장(중앙대학교 역사학과 명예교수)
  • 승인 2022.03.07 11: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경하 교수의 향약 이야기

향약기본소득이라니 이해가 잘 안갈 것이다.

40년 동안 향약을 연구해 온 나도 얼마 전까지 향약과 기본소득이 무슨 관계가 있는지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기본소득은 대선주자 중 한 명의 공약으로 언론에서 이 주제가 뜨거운 논쟁을 일으키고 있으나, 나는 선거를 위해 누가 급조한 논리로 치부하고 아무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한 달 전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의 장재옥 교수가 향약에 대한 질문이 있다고 해서 저녁 자리를 함께 했다. 이 자리에서 영국 런던대학의 가이 스탠딩 교수가 저술한 공유지의 약탈(안효상 옮김, 창비, 2021)이란 책을 소개받았다. 나는 처음 듣는 학자인데 기본소득논의의 최고 권위자로 우리나라에도 이 분야에서는 상당히 알려진 모양이다. 장 교수가 이 책의 서문에서 한국에서 기본소득 정책이 성공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하면서, 그 예로 향약을 들고 있다고 한다. 내 전공을 말하고 있다고 하니 안 읽어 볼 수가 없다.

 

21세기 새로운 계급인 프레카리아트출현

가이 스텐딩 교수는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의 공동 설립자이자 현재 명예의장을 맡고 있으며, 30여 년 동안 기본소득에 대해 연구했고 인도 등에서 실험을 했다. 한국어판 서문에 한국은 역사에 이어져온 향약이라는 공유지 모델을 가지고 있다지금은 사회적 생태적 모델로서의 공유지를 부활시키는 것에 기초한 통합 속에서 홍익인간과 향약의 에토스를 회복할 때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분이 본 향약이 어떤 것인지는 말미에 소개하고, 공감이 되는 부분이 많기에 정치적인 면을 떠나 책의 요지를 길지만 요약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스텐딩 교수는 먼저 21세기의 새로운 계급으로 프레카리아트(precariat)의 출현을 명명하고 있는데 탁견이다. 이 신조어는 불안정함을 뜻하는 precautious와 노동자 계급을 말하는 proletariat를 합성한 말이다. 80년대 이후 무한경쟁, 약육강식의 신자유주의로부터 시작하여 지구화, 디지털혁명, 금융위기, 4차 혁명의 AI시대에 소외된 비정규직, 불완전 고용 상태의 프레카리아트계급이 나타났음을 선언하고, 앞으로 이 계층이 안정적으로 삶을 유지할 안정망으로 기본소득 지급을 주장한다. 이 프레카리아트 개념으로 보면 우리사회의 현 미취업자, 인턴, 비정규직 노동자가 이 범주에 속한다. 학력이 높다고 프레카리아트가 아닌 것이 아니다.

이 대안으로 누구나 함께 사용해야 할 천부의 자원인 공유지(commons)가 특정한 가진 자들에 의해 약탈되고 있으며, 공유지 사용의 이익 중 일부를 기금으로 조성하여 기본소득으로 지급하자는 논리이다. 주로 영국의 역사의 예를 들고 있다. 영국에서의 경험은 상당히 오래되어 1215년 귀족이 존 국왕으로부터 권리를 양보 받은 마그나카르타(대헌장)에 공유지인 산림헌장이 등장하여 1971년까지 유지되었다고 한다.

필자는 공유지를 다섯 개 범주로 나누고 있다.

1. 자연공유지 : 토지, 광물, 자연물, 삼림, , 야생 강물, 강과 호수, 해안, 공기 하늘 등

2. 사회공유지 : 치안, 우편, 대중교통, 도록, 하수도, 홍수 예방, 공원 등의 기본적인 인프라뿐만 아니라, 공공주택, 아이와 노인 돌봄, 보건의료와 사회서비스 등

3. 시민공유지 : 법률 서비스, 일자리, 건축, 공간 등

4. 문화공유지 : 예술, 스포츠, 대중매체, 공공도서관, 미술관 박물관 등

5. 지식공유지 : 정보, 지식, 교육 등

이러한 모든 시민의 공동소유인 공유지는 정부에 의해, 상업화, 사영화, 식민화 등에 의해 약탈당했고, 긴축 시대의 무시와 노골적인 사보타주에 의해 가속화되었다고 진단한다. 이 기금은 세 가지 유형의 공유지 관련 부담금으로 나온 돈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한다. 첫째로는 석유, 천연가스, 광물과 같이 고갈되는(비재생) 자원으로 이는 고정자본으로 취급한다. 둘째는 숲과 같이 보충할 수 있는 공유지로 이 경우에는 보충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자원을 따로 떼어 두어야 한다. 셋째는 공기, , 아이디어처럼 고갈되지 않는 공유지다. 여기에는 현재의 분배가 가능하도록 부담금을 부과해야 한다. 기금은 고갈되는 공유자원의 자본 가치를 보존하고 공유지 상실에 대해 공유자에게 보상하는 수단이 될 것이라 설명하고 있다. 사적 상속이 허용된다면 사회적 상속, 즉 사회적 배당도 허용해야 함을 주창한다. 요즘의 부동산은 쉬는 행복을 갖는 홈(home)이 아니고 새로운 금융산업이 되어 가고 있다는 데에도 공감을 한다.

 

공유지 이익금으로 기본소득 지급

결론적으로 기본소득은 노동이 아니라 일을, 소비가 아니라 여가를 장려할 것이다. 기본소득은 노동 기반 복지노동연계 복지대신에 새로운 커먼페어(commonfair)에 도움이 되며, 일할 권리의 가치, 보존 및 생태권의 가치를 불러일으키는데 도움이 될 것임을 강조한다. 이 주장은 단순히 책상에서의 이상이 아니라 필자가 직접 실험하며 도출한 실현 가능한 대안이 될 수도 있음을 느끼며 깊은 공감을 했다. 이 내용은 1215년 영국의 마그나카르타 이후 걸어 온 수많은 도전과 타협의 과정 속에서, 즉 영국의 역사 속에서 나온 것이기에, 우리나라에 적용 가능한지는 또 다른 심층 검토가 필요하다.

기본소득이라고 표현은 안했으나 기본소득과 같은 인본적 함의에 대해서는 동양에서는 이미2,300여년 전 맹자<등문공>편에서 맹자가 등나라 문공에게 유항심자 유항심, 무항산자 무항심(恒産者 有恒心 無恒産者 無恒心)이라 하여 즉 먹고 살 항산이 없는 사람에게 무슨 예의와 염치를 따질 수 있느냐고 강조한다. 여기에서 항산기본소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신약성경마태복음에 포도원 주인의 품삯 주는 비유가 있다. 포도원 주인이 인력시장에 나가 그 날 일할 일꾼들을 선택해 데리고 올 때 새벽에 일찍부터 데리고 온 사람이나 일을 끝내기 한 시간 전에 온 일꾼이나 똑같이 약속한 한 데나리온을 주는 내용이 있다(20, 1~16). 당연히 새벽부터 와서 오랜 시간 일한 사람이 주인에게 불공평하다고 불평을 한다. 일찍 온 사람이나 늦게 일에 합류한 사람이나 똑같이 가족을 부양하려면 최소한 한 데나리온이 필요하기에 포도원의 주인은 그렇게 하였을 것이다. 이 한 데나리온이 기본소득이라 할 것이다.

한국의 공유지 모델로 향약제시

다시 주제로 돌아오면, 가이 스텐딩이 아는 한국의 향약이 어떤 것인지 한국어판 서문에서 소개한다. 스텐딩 교수는 한국은 역사에 이어져온 향약이라는 공유지 모델을 가지고 있다지금은 사회적 생태적 모델로서의 공유지를 부활시키는 것에 기초한 통합 속에서 홍익인간과 향약의 에토스를 회복할 때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1회 농촌기본소득 정책 포럼에서 보령시 장고도 촌계를 듣고 향약을 이해한 것 같다. 1983년 어촌계에서는 업자들에게 임대하던 공동어장을 어촌계에서 운영하여 1993년부터 해삼 소득 배당을 시작하고, 2019년에는 바지락에서 나오는 수익으로 기본소득을 1,300만원씩 배당하였다고 한다. 공동체에서 공동 관리, 공동 생산, 공동 분배를 한 것이다. 전통시대의 모든 향약에서 공동 생산, 공동 분배하는 경우는 아니지만 농촌에서도 이와 유사한 사례는 있다. 송계(松契), 금송계(禁松契,) 사산계(四山契)라 해서, 동네의 뒷산을 마을 주민들이 공동 관리를 하고, 겨울의 땔감을 공동으로 채취해서 사용하고 수익을 올리기도 한 사례는 각 동리마다 보편적으로 존재했다.

한국의 전통시대는 공유지 기반의 사회였으나 이제는 사유화, 상업화, 무분별한 개발로 대부분의 공유지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어떻게 기본소득의 재원을 마련해야 할 것인가는 구성원들의 합의와 합리적 정책적 개발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전통시대 향약에서의 공동체적 상호부조, 상부상조의 협동 정신을 계승하려는 상생적 노력과 지혜가 요청된다.

 

지구는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아니고 후손으로부터 빌려 온 것이다

- 오스트레일리아 환경부 장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공공성(公共性)’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연구세미나95]
  • 문산면 주민자치회, 주민 지혜와 협의로 마을 발전 이끈다
  • 제주 금악마을 향약 개정을 통해 보는 주민자치와 성평등의 가치
  • 격동기 지식인은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연구세미나94]
  • 사동 주민자치회, '행복한 끼'로 복지사각지대 해소 나서
  • 남해군 주민자치협의회, 여수 세계 섬 박람회 홍보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