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16:55 (금)
“왕정의 읍면동에서 민주공화정의 읍면동으로”
상태바
“왕정의 읍면동에서 민주공화정의 읍면동으로”
  • 여수령 기자
  • 승인 2022.03.19 15: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자치학회 제8회 주민자치 연구세미나
3월 18일 열린 제8회 주민자치 연구세미나에서 권행완 건국대 정치외교학과 겸임교수는 ‘주민자치와 유교: 성왕론과 삼강론을 중심으로’를 주제로 발표했다. 
3월 18일 열린 제8회 주민자치 연구세미나에서 권행완 건국대 정치외교학과 겸임교수는 ‘주민자치와 유교: 성왕론과 삼강론을 중심으로’를 주제로 발표했다. 

주민자치와 유교. 언뜻 연결지점이 떠오르지 않는 두 주제를 통해 주민자치의 일상화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권행완 건국대 정치외교학과 겸임교수는 3월 18일 서울 인사동 태화빌딩 그레이트하모니홀에서 열린 제8회 주민자치 연구세미나에서 ‘주민자치와 유교: 성왕론과 삼강론을 중심으로’를 주제로 발표했다. 

발표에 앞서 “우리나라의 주민자치 정착이 왜 이렇게 지체되느냐”는 질문을 던진 권 교수는 “한국인은 수백 년 동안 중앙집권체제의 역사 속에서 살아오면서 중앙집권은 안정되고 발전된 것으로 인식하고 중앙집권화를 이루지 못하면 정치적으로 혼란라고 미성숙한 단계라고 파악하는 역사관에 익숙해져 있다. 이러한 역사관 때문에 중앙은 좋고 지방은 나쁘다, 통일은 좋고 분열은 나쁘다고 인식하는 습속이 있다. 따라서 지방의 자치성에 대해 긍정적 시각보다는 부정적 시각이 지배적이고, 자치에 대한 경험 역시 취약하고 일천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일제는 조선을 ‘자치성이 결여된 타율성의 민족이며 정체성(停滯性)의 민족이라 자치할 수 없다’며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자치화는 시대정신…어떻게 제도화 할 것인가

이어 “격동의 근현대사를 거치며 한국은 식민지를 경험한 국가 중 산업화와 민주화에 성공한 유일한 나라로 발돋움했다. 이제 한국의 시민들은 모두 자기 자신의 삶의 주체임을 자각하게 되었고, 삶의 주체로서 자기 운명은 스스로 결정하는 주권재민의 시민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자치화(自治化)가 시대정신이 된 것”며 “그럼에도 건국 70주년이 지나도록 자치정신은 제도로 온전히 담아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권 교수는 “‘정치란 무엇인가’라는 추상적 개념보다 ‘정치적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접근해보면 구체성, 감각, 감성 등을 공유하는 습속이 중심이 된다. 유교적 습속은 한국인의 생활과 정신문화 속에 살아 있기에, 습속의 관점에서 주민자치의 문제를 살펴보면 ‘성왕론’과 ‘삼강’이 가장 핵심적인 문제로 부각된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왕정에서 민주공화정으로 변모하는 역사적 흐름을 살폈다. 발표에 따르면 조선시대 초기에는 군주들이 국가경영의 중심적 역할을 했고, 이후 사림이 등장하며 국정을 장악했다. 후기에는 군주도 사림도 아닌 백성들이 수많은 민란을 일으켰고 급기야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인내천을 표방하며 동학혁명이 일어났다. 군주에서 사대부를 거쳐 민(民)으로 흐르는 도도한 역사의 물줄기는 3.1운동이라는 큰 호수에 이르러 기미독립선언문에서 ‘조선이 독립국임과 조선 사람이 자주민임을 선언’하게 된다. 이러한 3.1운동 정신은 임시정부를 출범케 하는 기폭제가 됐고 상해임시정부는 1919년 대한민국 임시헌장에서 ‘국민이 주인이 되는 대한민국’의 탄생을 선언한다. 권 교수는 “이러한 흐름을 볼 때 3.1운동은 왕정에서 민주공화정으로 전환되는 기미혁명이라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 지방자치의 역사도 짚었다. 권 교수는 “임시정부의 대한민국 건국강령은 건국 과정을 3기로 나누고 2기에서는 ‘전국 각 리(里), 동(洞), 촌(村)과 면(面), 읍(邑)과 도(島), 군(郡), 부(府)와 도(道)의 자치조직과 행정조직과 민중단체와 민중조직이 완비되어 경향 각층의 극빈 계급의 물질과 정신상 생활 정도와 문화수준이 제고 보장되는 과정’이라고 제시한다. 이러한 영향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지방자치법은 제헌 헌법 제97조에 의거해 제정된 1949년 7월 4일 법률 제32호였다. 하지만 1951년 5.16 군사정변 직후 지방자치에 관한 임시조치법이 제정됨으로써 사문화됐고, 1995년 6월 처음 지방자치단체장을 선거를 통해 주민을 손으로 선출한 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읍면장 선거는 1952년 실시됐으나 폐지됐다. 김대중 정부는 1999년 읍면동을 구조조정하고 주민자치회를 설치하려 했으나, 공무원들의 동요로 읍면동은 축소 존치하고 주민자치센터를 설치했다. 이는 대통령이 당선되기 전에 ‘민(民)’은 민주의 민이었으나, 집권 후에는 ‘민본(民本)’의 민으로 퇴색해버린 사례가 아닌가 생각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권행완 건국대 정치외교학교 겸임교수.
권행완 건국대 정치외교학교 겸임교수.

성왕론과 삼강은 군주지배의 정치논리 

다음으로는 유교의 성왕론과 삼강의 성립과 의의를 설명했다. 권 교수는 맹자와 순자, 공자의 성왕론을 차례로 살핀 후 “순자는 ‘성인(聖人)은 인륜을 통달한 자이다. 왕은 예법 제도를 다 갖춘 자이다. 이 둘을 다하면 천하의 지극한 법칙이 된다’는 주장으로 성왕론을 완성한 인물”이라고 정의했다. 이어 “한나라의 동중서는 통일된 중앙집권 국가의 통치원리로서 ‘삼강(三綱)’을 제시했다. 삼강은 유교적인 생활규범을 국가의 수직적 위계체계로, 유교적 권위를 국가적 권위로 변화시켰다. 결국 삼강은 군주지배의 정치논리를 사회의 기본단위인 가족 속으로 침투시키려는 이데올로기였으며, 삼강의 논리는 모든 정치권력을 군주에게 집중해 군주를 정점으로 한 피라미드 제국체계를 건설하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조선의 건국이념에 대해 권 교수는 “조선의 제도를 구축한 정도전은 ‘인군(人君)은 천공(天工)을 대신해 천민(天民)을 다스리니 혼자 힘으로 할 수 없고, 관을 설치하고 직을 나누어 현명한 선비를 구해 이를 담당하게 한다’는 생각을 가졌다. 또 요순시대부터 139명에 이르는 군주의 유형과 통치 형태를 분석해 재상 정치를 주장했다. 이후 역대 군주들은 제왕이 정치를 하는 순서와 근본을 다룬 대학연의를 탐독했고, 신하들도 임금에게 성학(聖學)을 권했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조선의 역대 왕들이 오륜록, 삼강행실도 등을 보급하며 군주지배 논리를 강화한 사례를 언급했다. 

권 교수는 “성왕론과 삼강 외에 또 다른 유교적 습속으로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를 들 수 있는데 여기에는 가정[家]과 나라[國]만 있지 리(里), 향(鄕) 등의 사회는 빠져 있다. 이처럼 제왕적 대통령제는 한국인의 오랜 정치적 습속으로, 오늘날도 행정수반인 대통령을 성왕(聖王) 즉 천명(天命)을 받은 사람으로 여기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주민자치 일상화 위해 의식구조 개혁 필요

그렇다면 이러한 유교적 습속을 극복하고 주민자치를 일상화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권 교수는 ‘의식구조 개혁’을 가장 시급한 과제로 꼽았다. 그는 “자치에 관한 교육을 확산해 민주적 습속을 길러야한다. 그래야 주민의 자치성이 일상화되는 주민자치가 이뤄지고, 주민의 일상성이 자치화 될 수 있다. 왕정의 읍면동에서 민주공화국의 읍면동이 되기 위해선 ‘정치적인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체험적 요소로 접근해야 한다. 한나 아렌트가 주장한 ‘이소노미아(isonomia, 정치적 평등)’ 즉 비지배 영역을 만들어서 주민자치를 해야 한다. 함재봉 박산는 ‘이소노미아는 시민들이 따를 법을 자신들이 만드는 제도’라고 했다. 이러한 지향으로 주민자치를 했을 때 링컨이 말한 것과 같이 ‘주민의, 주민에 의한, 주민을 위한 자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는 말로 발표를 마쳤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토론에서 이섬숙 서울시 주민자치여성회의 상임회장은 “사상은 제도를 통해 구현된다는 말에 공감한다. 최근 몇 년간 서울형 주민자치회가 시행되면서 중간지원조직들이 주민자치회를 지배하거나 사유화하는 사례를 보아왔다. 주민자치 제도가 개선될 수 있는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현장의 목소리를 전했다. 이어 김봉수 신총동 주민자치위원회장은 “주민자치가 국가와 개인의 중간 역할이라 생각한다. 주민자치를 실현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덕목은 무엇일지 말씀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권 교수는 “사상이나 철학을 실천하려면 제도가 동반되어야 한다. 그래야 사상과 철학이 일상화되고 항구화될 수 있다. 우리가 흔히 ‘민주’를 말하는데 이때의 ‘민’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도 중요한 문제다. 민주를 외치던 대선 후보들도 당선된 후에는 국민을 다스릴 대상, 시혜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이 아닐지 우려스럽다. 그만큼 제도 없이 사상과 철학을 실천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답했다. 

이은숙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교수는 “상해임시정부가 국호를 ‘대한제국’이 아닌 ‘대한민국’으로 정하게 되는 구체적 논의 과정이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박경하 중앙대 역사학과 명예교수는 “당시 중국에서 손문과 각료들 사이에 입헌군주제 논쟁이 치열하게 이뤄졌는데 우리나라도 그러한 상황을 지켜보며 민권의식을 키워 나간 측면이 있을 것이다. 또 남원 기지방 입암향약을 분석해보면 천민들이 성(姓)이 기록된 것이 1903년부터다. 신분제가 철폐된 후 10년 정도가 지난 시점인데, 이때부터 민중들의 주인의식이 일상에도 등장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답했다. 

전은경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교수는 “발표자께서 의식개혁을 위한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는데, 교육학계에서도 그동안 경쟁력 있는 인간을 양성하는 데만 교육을 집중해온 것 아니냐는 반성이 있다. 국가 차원의 민주주의를 넘어 지역 민주주의, 풀뿌리 민주주의를 가르치는 교육이 정규 교과로 편성되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주민자치 경험 누적돼야 의식 개혁 가능

정빈나 성균과대학교 박사는 “유교적 습속의 연원으로부터 의식구조 변화를 어떻게 이끌어 낼 것인지가 관건이다. 다만, 의식개혁이나 자치교육라는 것도 자칫하면 ‘위로부터의 교화’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경계해야 한다. 특히 주민자치의 경우 위로부터의 교육이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필요에 의한 전략 구성이 필요하다. 주민자치 경험이 누적되면서 아래로부터의 변화가 일어나야만 유교적 습속에서 민주적 습속으로 변화가 가능하리라 본다”는 의견을 밝혔다.

유튜브로 세미나에 참여한 전상식 한국주민자치중앙회 대표회장은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개인[修身]과 국가[治國] 사이의 사회가 공화의 개념이 아니겠느냐”고 질문하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시작한 시민운동가의 주민자치 지배는 그 철학이 ‘민주’가 아니라 ‘민본’이라고 생각한다. 주민들에게 자치의 능력이 있는데도 시민단체가 지도해야 한다는 사고에 대해 조선시대 유교 현상과 비교해 설명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대해 권행완 교수는 “공화라는 개념은 동아시아 역사에서도 찾을 수 있다. 서주 공화국의 사례를 보면 백성이 왕을 몰아내고 협치하는 과정이 있다. 그런 전통이 있음에도 중국에서는 공화사상이 주요 사상적 줄기로 나타나지 못했다. 주민자치의 철학과 이념으로 삼을 수 있는 덕목에 대해 질의했는데, 이 부분은 좀 더 연구 보완해 발표하겠다”고 답하며 세미나를 마무리 했다.  사진=문효근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공공성(公共性)’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연구세미나95]
  • 문산면 주민자치회, 주민 지혜와 협의로 마을 발전 이끈다
  • 제주 금악마을 향약 개정을 통해 보는 주민자치와 성평등의 가치
  • 격동기 지식인은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연구세미나94]
  • 사동 주민자치회, '행복한 끼'로 복지사각지대 해소 나서
  • 남해군 주민자치협의회, 여수 세계 섬 박람회 홍보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