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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불교에서 배우는 주민자치의 성찰과 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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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불교에서 배우는 주민자치의 성찰과 자각
  • 여수령 기자
  • 승인 2022.03.24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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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자치학회 제9회 주민자치 연구세미나
비교종교학자이자 비판불교 연구에 천착해 온 류제동 박사가 3월 24일 제9회 주민자치연구세미나에서 ‘주민자치의 불교적 해석: 비판불교에서 바라본 주민자치’를 주제로 발표했다.
비교종교학자이자 비판불교 연구에 천착해 온 류제동 박사가 3월 24일 제9회 주민자치연구세미나에서 ‘주민자치의 불교적 해석: 비판불교에서 바라본 주민자치’를 주제로 발표했다.

“일본에서 태동된 비판불교는 우리가 ‘전통’이라 믿고 무비판적으로 수용해온 가르침을 새로운 시각으로 성찰함으로써 불교가 갖는 의미를 되짚어보는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비판불교의 정신으로 오늘날의 주민자치를 볼 때, 기득권에 대한 비판의식을 견지하고 현실을 개선하려는 반성적 성찰을 함으로써 나를 성장시킬 수 있다는 가르침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비교종교학자이자 비판불교 연구에 천착해 온 류제동 박사가 3월 24일 서울 인사동 태화빌딩 그레이트하모니홀에서 열린 제9회 주민자치연구세미나에서 ‘주민자치의 불교적 해석: 비판불교에서 바라본 주민자치’를 주제로 발표했다.

비판불교는 1980년대 후반 일본 고마자와 대학 하카마야 노리야키 교수와 마츠모토 시로 교수를 중심으로 형성된 불교학의 한 조류로, ‘여래장사상은 불교가 아니다’라는 도발적 선언으로 세계적인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여래장사상(如來藏思想)은 일체가 여래(부처)의 씨알[藏]이라는 사상이며, 모든 생명은 부처가 될 가능성을 갖추고 있다는 불성(佛性)사상과 함께 대승불교의 주요 교리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비판불교 학자들은 여래장사상과 불성사상은 부처님의 가르침인 연기(緣起)와 무아(無我)의 가르침에 위배되기 때문에 불교가 아니라고 진단한 것이다.

‘불교의 사회적 역할’ 논쟁으로 촉발된 비판불교

류제동 박사는 먼저 마츠모토 시로 교수가 비판불교라는 문제의식을 갖게 된 계기를 살폈다. 발표에 따르면 1979년 세계종교평화회의에서 당시 일본 조동종 종무차장이자 전일본불교회 이사장이었던 마치다 무네오는 “일본에는 어떠한 형태의 사회적 차별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발언해 불교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논쟁을 촉발했다. 조동종 교단 소속이었던 마츠모토 교수는 이 논쟁을 통해 일본 불교계가 사회적 차별에 대한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는 소신을 갖게 됐고, 이후 1986년 인도학불교학회 학술대회에서 ‘여래장 사상은 불교가 아니다’라는 논문을 발표하게 된다. 마츠모토 교수는 논문에서 “여래장사상은 비불교적인 아트만(ātman)론에 근거하고 있을 뿐 아니라, 사회적 차별의 이론적 배경이 됐기 때문에 불교가 아니다”라고 주장했고, 이어 하카마야 노리아키 교수가 1990년 <비판불교>를 펴내면서 이들이 제기한 학문적 방법론을 ‘비판불교’라 부르게 됐다. 

류제동 박사는 “하카마야 교수는 자신의 비판불교 개념을 ‘장소불교(場所佛敎)’와 대조시켜 설명하는데, 장소불교라는 용어는 진리와 거짓을 비판적으로 구별하는데 관심이 없고 합리적 논증을 필요로 하지 않는 미학적 신비주의를 가리키고자 만들어낸 조어다. 비판불교 학자들은 언어와 이성적 사고를 도외시하는 이러한 장소불교가 합리적 사고를 흐리게 할 뿐 아니라 기득권을 옹호하는 사상으로 변질됐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비판불교 학자들은 불교전통만이 아니라 노자나 장자의 도(道), 일본을 대표하는 철학자인 니시다 기타로의 ‘장소의 논리’ 등도 모두 장소철학의 사례로 비판했다. 이에 대해 류 박사는 “불교의 사상 전통에 가혹할 정도로 비판적인 두 학자는 당연시 여겨지던 것을 문제 삼고, ‘지성적 질병’이라 간주되는 것과 싸우며 자신들의 불교관을 명료화해 나갔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하카마야 교수가 비판불교의 관점에서 제시한 불교의 세 가지 특징을 소개했다.  

류제동 박사.
류제동 박사.

사회적 차별의 이론적 근거가 된 여래장사상

류 박사는 “첫째, 불교의 핵심 가르침은 연기다. 이는 인도철학의 ‘아트만’을 비판적으로 사고하면서 정리한 것으로 인도철학에서는 불변하는 실체로서의 아트만[我]이 실재한다고 여겼지만, 불교에서는 아트만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無我]고 본 것이다. 인도철학의 아트만, 중국철학의 자연(自然)사상 그리고 일본의 본각(本覺)사상은 불교의 연기에 상반되는 기체설(基體說)에 해당한다”고 정리했다. 이어 “불교의 도덕적 요청은 다른 존재들을 이롭게 하기 위해 무아(無我)로 행동하라는 것이다. 즉 나와 남을 구별 짓지 말고 열린 마음으로 사랑하며 살라는 지침이자, 변화의 가능성을 인지하고 변화를 위해 노력하라는 가르침이다. 그러나 ‘산천초목이 모두 성불할 수 있다’거나 ‘모든 존재는 불성을 갖추고 있다’는 주장은 현실 개선 노력을 부인하는 사상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경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류 박사는 “불립문자(不立文字)로 대표되는 언어에 대한 선불교의 알레르기적 반응은 불교적이라기보다 오히려 중국 토착적인 것이며 언어를 부정함으로써 대화 자체가 불가능하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여래장사상이 현실 개혁을 가로막는다는 주장의 근거는 무엇일까? 류 박사는 “여래장사상은 모든 것이 실재에 기반해 있는 그대로 평등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선과 악, 강과 약, 부와 빈이 근본적으로 ‘같다’고 여기게 되어 부정의함이나 잘못을 바로잡을 필요나 동기를 박탈하고, 기존 질서에 도전하지 못하게 하는 근거로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또 “여래장사상 곧 기체설은 애니미즘적인 아이디어 혹은 민속종교가 이론적・철학적으로 발전한 것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류 박사는 ‘불자들은 무아라는 불교적 가르침에 따라야 하며, 자신들의 나라에 대한 애국심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는 마츠모토 교수의 주장을 전하며 “전체주의 경향이 강한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 상황에 비춰볼 때 배타적이고 자신의 이익을 내세우기 위한 애국이 아닌 인류의 보편적 평화와 이익을 고려한 애국이어야 한다는 가르침으로 새길 수 있을 것”이라는 말로 발표를 마쳤다.  

주민자치도 비판적 성찰-현실개선 노력 전제돼야

이어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의 사회로 토론이 진행됐다. 박경하 중앙대 역사학과 명예교수는 “사회적 차별 문제로 촉발된 비판불교가 이후 일본에서 어떻게 자리 잡았는지”를 물었고 류 박사는 “여전히 마이너리티다. 다만 비판불교 학자들의 논문이 일본 대표 논문집에 게재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희망이 있다고 본다. 오히려 우리나라가 비판불교에 덜 개방적이라고 느낀다. 일본 내 진보적 학자들과의 연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전상직 한국주민자치중앙회 대표회장은 “‘일본에는 어떠한 사회적 차별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마치다 무네오의 발언이 나오게 된 배경과 논리적 근거는 무엇인가”를 질문했다. 이에 대해 류 박사는 “업에는 개인적 업과 사회적 업이 있는데, 초기불교 경전에서는 가난을 개인의 업이 아니라 왕이 통치를 잘못해서 빚어진 공업 즉 ‘사회적 가난’이라고 설명한다. 때문에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 전체가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런데 기체설 입장에서 사회 문제를 바라보면 부자와 가난한 자 모두 평등하다는 주장으로 나아가 변화를 가로막을 수 있다”고 답변했다. 

권행완 건국대 정치행정학과 겸임교수는 “토착사상이 지역 중심적이고 기득권을 옹호한다고 했는데, 이러한 관점이 주민자치를 가로막고 중앙집권을 정당화 하는 논리가 될 수 있지 않느냐”고 질의했다. 류 박사는 “토착사상이라고 무조건 비판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폐쇄된 토착사상으로 극단화 되는 것을 경계하자는 것이다. 주변 세계와의 상호연계 속에서, 비판적 입장을 견지한 가운데 이뤄지는 지역적 특성은 존중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전상직 한국주민자치중앙회 대표회장은 “신앙이 진리에 대한 통찰과 헌신이라고 한다면, 주민자치는 생활에 대한 통찰과 헌신이다. 주민자치가 이뤄지려면 주민들이 시민의식을 갖고 주체화되고 스스로 의제를 정해야 하는데, 일부 지자체에서는 의제 설정부터 실행까지를 ‘마을공동체’라는 이름의 단체에 맡기고 있다. 이는 ‘공동체’라는 이름으로 오히려 공동체를 억압하는 행위다. 공동체라는 이름을 사용한다고 해서 이를 주민자치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하고 “주민자치는 세간, 출세간의 문제가 아니라 기세간(器世間)의 문제다. 이러한 관점에서 주민자치를 분석하는 연구가 이뤄지기 바란다”는 당부로 세미나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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