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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의회 민주주의로 자치 실현하는 마을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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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의회 민주주의로 자치 실현하는 마을공화국
  • 여수령 기자
  • 승인 2022.04.05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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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회 주민자치 연구세미나
안효성 대구대 성산교양대 교수가 4월 5일 제11회 주민자치 연구세미나에서 ‘아렌트의 평의회 민주주의 사상과 기초공화국을 위한 주민자치’를 주제로 발표했다. 
안효성 대구대 성산교양대 교수가 4월 5일 제11회 주민자치 연구세미나에서 ‘아렌트의 평의회 민주주의 사상과 기초공화국을 위한 주민자치’를 주제로 발표했다.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제시한 ‘지역평의회 기초공화국’은 우리나라 주민자치 모델이 될 수 있을까? 

안효성 대구대 성산교양대 교수는 한국자치학회가 4월 5일 서울 인사동 그레이트하모니홀에서 개최한 제11회 주민자치 연구세미나에서 ‘아렌트의 평의회 민주주의 사상과 기초공화국을 위한 주민자치’를 주제로 발표했다. 

안효성 교수는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1975)가 말하는 ‘정치’란 무엇이고, 왜 평의회 민주주의에 관심을 갖게 됐는지 알기 위해서는 먼저 그의 인간관을 이해해야 한다”며 “흔히 우리가 떠올리는 ‘정치(politics)’가 제도적인 것이라면, ‘정치적인 것(the political)’은 인간의 존재론적 조건을 규정하는 것이다. 아렌트는 ‘정치적인 것’이 인간의 실존적 삶의 조건이라고 이해하고, 정치를 ‘복수의 타인들과 더불어 사는 인간만의 공존 양식이며 인간성을 실현하는 특별한 방식’이라고 간주했다”고 설명했다. 

정치는 인간의 실존적 삶의 조건

발표에 따르면 아렌트는 인간사의 영역을 ‘활동적 삶’과 ‘관조적 삶’으로 나누고 다시 그 각각을 ‘노동(labor)・작업(work)・행위(action)’와 ‘사유(thinking)・의지(willing)・판단(judging)’으로 구분했다. 이 중 ‘행위’는 사물이나 물질의 매개 없이 인간 사이에 직접적으로 수행되는 유일한 활동으로, 인간의 가장 고차원적 활동능력이자 순수한 인간의 조건으로 여겨진다. 반면 노동과 작업은 인간의 필요와 욕구에 구속된 채 필요하고 유용한 것을 제공하고 생산해 온 까닭에 결코 자유로운 활동일 수 없다고 보았다. 

안 교수는 “사람들은 행위를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 그 고유한 정체를 드러낸다. 노동을 통해서는 신체적인 필요를, 작업을 통해서는 솜씨를 드러내듯 행위를 통해서는 ‘자신’을 드러낸다. 이러한 자기 현시가 이루어지는 장이 정치의 영역이고, 아렌트는 이를 특별히 ‘공적 영역(the public realm)’이라 명시하며 ‘사적 영역(the private realm)’과 구분 짓는다”고 말했다. 

또한 아렌트는 정치가 서로 더불어 세계적으로 살아가는 ‘복수의 인간’과 그들이 구성하는 ‘공적 영역’ 속에서 비로소 의미를 갖는 것이라고 인식했다. 쉽게 말해 서로 다른 사람들이 어울려 살면서 각기 다른 개성을 드러내는 가운데 공동의 생활을 유지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바로 ‘정치’라는 설명이다. 따라서 아렌트는 복수성과 다양성을 배제하고는 정치를 이해할 수 없으며, 복수성과 다양성이 말살된 곳에서는 참된 정치가 이뤄질 수 없다고 봤다. 

대의제가 정치의 상실과 자유의 부재 초래

이런 관점에서 근대 사회에서 의회와 정당체제가 출연하고 발전하는 과정을 검토한 아렌트는 대의정치체제가 인간 실존의 근본적 조건에 해당하는 ‘정치’의 상실과 ‘자유’의 부재를 가져온다고 파악한다. 대의제 정치체제 하에서 정치는 정치적 대표자들만이 경험하는 행위이며, 사람들이 자신의 의견을 스스로 형성해갈 수 있는 공적 공간을 박탈당한다고 본 것이다. 특히 아렌트는 ‘시민권’이나 ‘보통선거권’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대의제 체제의 개별적인 투표 행위로는 투표자들 간에 실질적 관련을 맺어주지 못하며, 서로를 의미 있게 결속시키는 정치적 공간을 형성하지 못한다고 진단했다. 안효성 교수는 “아렌트는 대의제 체제에서 정치는 단지 이익을 위해 도구화된 ‘관리’나 ‘행정’으로 전락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아렌트는 관료제와 전체주의는 행위와 자유의 공간을 상실한 근대 정치의 필연적인 귀결이라고 파악했다”고 전했다.

이러한 대의제 체제의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 ‘평의회(the council)’다. 안 교수는 “평의회는 하나의 자치위원회로 행위자들의 자발적 의지로 구성되고 정치 참여가 이루어지는 공적 영역이다. 평의회에서 구성원들은 공공의 참여, 공공의 논쟁, 자신의 의견에 대한 공공의 경청, 함께 모여 스스로 판단하고 정치적 과정을 결정할 수 있는 기회를 만끽할 수 있다. 한마디로 평의회는 정치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만들고 유지하는 최적의 체제”라고 정의했다. 

안효성 대구대 성산교양대 교수.
안효성 대구대 성산교양대 교수.

자발성 강조되는 마을평의회가 대안

평의회 구성 방식으로는 노동자평의회나 직능평의회 보다 지역평의회 혹은 마을평의회가 더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계급이나 집합체로 참여하는 평의회의 경우 개개인의 견해를 자유롭게 개진하거나 다양성을 발휘하기 어려운데 반해 지역평의회는 더욱 자발적이고 자유로운 형태의 연합이기 때문이다. 

특히 아렌트는 혁명기에 자발적으로 발생한 여러 평의회 체제들 중 미국 혁명기에 나타난 마을평의회에 주목했다. 안 교수는 “미국 혁명에서 사람들은 권력을 어떻게 제한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권력을 구축할 것인가를 중요한 문제로 여겼다. 혁명 과정에서 그들은 주(state) 권력을 제한하고 폐지하는 대신 새로운 중심으로서 연방 권력을 세우는데 초점을 모았다”고 말했다. 이어 “아렌트가 제안하고자 했던 평의회의 형태 ‘마을(township)’에 기초한 ‘구(wards)’를 근거로 하는 마을(지역)평의회였다고 해석할 수 있다. 마을(지역)평의회의 가장 중요한 구성 원리는 하층평의회의 대표들에 의해 상층평의회가 구성되며, 그들은 하층평의회에 구속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마을(지역)평의회 내부의 권위는 어떠한 형태의 외부의 책임과 의무의 압력에도 구속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근대 대의제 체제의 위임이 발생시키는 위계적이고도 중심적인 권력관계와는 전적으로 구별된다”고 강조했다. 

아렌트의 ‘평의회 체제’를 민주주의와 연결시켜 생각할 때 부딪치는 문제가 바로 ‘보통선거권’이다. 안 교수는 “평의회 체제에서는 오늘날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적용되는 보통선거제도는 필요하지 않게 된다. 아렌트에게 정치적 자유란 오직 통치에 참여하는 당사자가 되는 권리 외에는 어떤 것도 의미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아렌트가 제안한 ‘타운쉽에 기초한 마을평의회’는 새롭게 창설되어 출연되는 공간이다. 아렌트 주장의 핵심은 단순히 기존의 공적 공간에서 참여를 양적으로 확대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공간을 공공화 할 수 있는 새로운 정치적 형식과 정신”이라고 역설했다. 

안효성 교수는 “아렌트는 지역평의회가 기초공화국을 구성하고 운영하는 이상적인 형태이자,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정치적 실존을 위한 가장 확실한 공적 공간을 유지하는 방법으로 간주했다”며 “지금/여기의 우리에게도 평의회 민주주의를 통해 자치를 실현하는 마을공동체를 만드는 작업이 대의민주제 국민국가를 재구성하는 기획으로서 진지하게 검토될 수 있길 바란다”는 말로 발표를 마쳤다. 

관료정치 영향으로 주민자치 무력화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토론에서 채원호 가톨릭대학교 교수는 “아렌트의 추상적이고 철학적인 개념을 주민자치 구현에 어떻게 적용할지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 현재 한국의 주민자치(위원)회는 읍면동 단위로 구성되어 있는데, 더 세부적인 근리자치 단위에서 평의회 같은 조직을 거버넌스의 한 형태로 고려할 수 있을 듯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김정환 경기도 주민자치원로회의 대표회장은 “현재 주민자치회는 말로는 주민들에게 자치를 하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행정의 간섭을 많이 받는다. 여기에 더해 정치인과 시민단체까지 주민자치회에 들어와 영향력을 행사한다. 주민자치가 실시된 지 20년이 넘도록 왜 이러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보느냐”고 질문했다. 안효성 교수는 “이는 대의민주주의와 평의회 민주주의가 공존하기에 빚어지는 모순”이라며 “평의회 민주주의가 가능하려면 대의민주주의, 관료 정치와 공존해서는 안 된다. 이 둘이 영향을 미친다면 주민자치회는 무력화된다. 특히 주민자치회에 정당이나 시민단체가 개입하는 것은 반칙이다. 평의회는 대등한 관계의 구성원들의 모임이다. 평의회 외에 특정 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직능단체나 시민단체 등은 존재할 수 있으나, 이들 역시 평의회와 같이 수평적으로 운영되어야 한다”고 답했다. 

권행완 건국대 정치행정학과 겸임교수는 “아렌트는 인간을 너무 낙관적으로 바라본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렌트는 인간의 본성을 어떻게 보았는가”를 질의했다. 이에 대해 안 교수는 “아렌트는 인간이 말 하는 능력, 판단하는 능력을 상실하면 겉잡을 수 없는 악한이 될 수 있지만, 통상적 지성능력을 갖춘 평균적 인간들이 함께 모이면 발전적인 일을 할 수 있다고 보았다. 다만 인간의 정치행위능력은 공적 영역이 갖추어진다는 전제 하에서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백영춘 한국주민자치중앙회 부회장은 한나 아렌트의 주장이 ‘이상주의적’이라는 문제를 지적했고 안 교수는 “너무 서양 고대 모델만 표본으로 삼아 현실성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있다. 아렌트 자신도 언급했지만, 정치이론과 철학으로 볼 때 하나의 사고실험으로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아렌트가 자신의 저서에서 주장한 바를 보면 고대 모델을 복원하자는 주장 아니라, 지금/여기의 현상을 고민하다보니 비판의 척도를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고 설명하고 있다”고 답했다. 

지역평의회 자발성 어떻게 견인할 것인가

김영섭 웹이코노미 대표는 “대의민주주의 대안으로서의 평의회가 현실적으로 실현되기 위한 로드맵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안 교수는 “현재 우리가 안정되게 운영하고 있는 정치시스템을 급격히 바꾼다고 했을 때 막연하고 불안할 수 있다. 하지만 근대국민국가로 살아본 경험이 인류 역사에서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미래에 도래할 정치적 상상을 불가능 한 것, 이상적인 것으로만 치부하기 보다는 인간의 상상력을 열어놓고 토론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의 정치체제가 무언가 잘못되었다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문제가 무엇인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오답인 것을 알면서도 계속 고수해서는 발전을 이룰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마지막 토론자로 나선 전상직 한국주민자치중앙회 대표회장은 “아렌트가 살아온 여건에서는 실존적 삶이 정치적 것으로 표현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주민자치 입장에서 보면 개인 차원에서는 자치회를 만들 권한도, 운영할 권한도 없다. 집합적 차원에서도 조례에서 주민 누구나 회원이 되는 것이 아니라 위원회 형태로 운영하도록 명시해 자치회에 주민의 참여를 배제하고 있다. 이런 조례나 법안은 정치인들이 만들었지만 실제는 행정이 주도한 것이다. 한국의 주민자치는 아직도 행정에 의해 점유되어 있다. 주민의 사회성, 정치성은 배제된 채 행정성만 남은 상황”이라고 현 주민자치제도의 문제점을 짚었다. 

이어 전 회장은 “주민자치회는 다원성 가진 사람들이 자유롭게 운영해 공적인 결론에 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지역평의회의 경우 다원성을 결합할 공공을 투입하지 않으면 저절로 형성되기 어렵다. 때문에 서울형 주민자치회는 시민단체를 통해 끊임없이 재화를 투입하는 방식으로 이를 해결했다. 주민들의 자발성을 유도하면서도 통합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 나가자”는 말로 세미나를 마무리 했다. 

사진=이문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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