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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이 자치하면 마을이 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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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이 자치하면 마을이 달라집니다
  • 여수령 기자
  • 승인 2022.04.12 16: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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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성식 서울특별시 주민자치원로회의 상임회장
성성식 서울특별시 주민자치원로회의 상임회장.
성성식 서울특별시 주민자치원로회의 상임회장.

주민자치가 시행된 지 20년이 넘었습니다. 어엿한 성인으로 자라 홀로서기를 해야 할 시기임에도 현재의 주민자치는 걸음마도 제대로 떼지 못하고 있는 수준입니다. 정부는 지방분권, 자치분권을 내세우면서도 정작 주민자치회에 분권하지 않고, 지방자치단체장들은 주민자치회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합니다. 여기에 더해 서울형 주민자치회는 지원이라는 명분으로 공무원과 시민단체에게 주민자치를 떠맡겨 주민들이 자치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대선과 지방선거가 함께 치러지는 올해, 여전히 태동기에 머물러 있는 주민자치제도가 진일보할 수 있는 계기를 반드시 마련해야 합니다.”

성성식(63) 서울특별시 주민자치원로회의 상임회장은 주민자치 이론과 현장 경험을 두루 갖춘 전문가다. 이웃과 마을에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던 성 회장은 1999년 주민자치위원회와 첫 인연을 맺은 후 2013년 은평구 갈현2동 주민자치위원장, 은평구주민자치협의회장을 거쳐 2020년 서울시 주민자치원로회의 상임회장에 추대됐다. 사업을 하는 바쁜 생활 중에서도 마을일이라면 두 팔 걷어붙이고 나서던 그에게 주민자치는 풀뿌리 민주주의,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서울형 주민자치회는 실패제도 개선 시급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행정안전부가 시범운영하는 주민자치회나 서울시가 추진하는 서울형 주민자치회는 주민이 아닌 ()’이 주인행세를 하고 있었다.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진 주민자치 정책을 바로잡기 위해 성 회장은 각종 토론회와 세미나에서 우리나라 주민자치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제도 개선을 촉구해 왔다.

서울형 주민자치회는 주민자치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이상적인 제도라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서울시는 마을을 주민에게 맡기지 않고 공무원인 동 지원관의 간섭 하에 뒀습니다. 더 나아가 구 지원관은 각 동의 주민자치 컨트롤타워를 자처하며 월권을 행사합니다. 또 주민자치에 일면식도 없던 사람들이 짧은 기간의 교육만으로 주민자치 전문가로 탈바꿈해, 지역을 위해 묵묵히 일해오던 주민자치위원을 내몰고 주인행세를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의 주민자치가 느리고 부족한 측면이 있었지만, 마을을 위해 20년 가까이 노력해온 분들의 노고가 일순간 사라지게 만드는 것이 과연 자치라고 할 수 있을까요?”

성 회장은 서울형 주민자치회는 실패라고 단언하며 특히 중간지원조직의 폐해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처음 주민자치위원회가 주민자치회로 전환된다고 했을 때, 기존의 틀에서 크게 발전하지는 못했지만 그나마 사업과 예산이라는 측면에서 한 단계 발전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서울시는 주민자치회 전환과 함께 마을공동체지원센터를 세워 주민자치회 관련 입법기획예산감사 등 모든 권한을 부여했습니다. 해당 지역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주민자치 전문가도 아닌 마을공동체지원센터가 주민자치회의 상급기관으로 군림하며 기존 위원들을 배척해 갈등을 빚었습니다. 동 지원관 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마을 주민이 아닌 외부 사람을 동 지원관으로 파견해 주민자치회를 좌지우지 하고 있습니다. 사업적인 측면에서도 마을의 10, 20년 미래를 내다보고 계획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당장 눈앞의 예산을 사용하는데 급급합니다. 이런 식의 운영으로는 향후 주민자치회에는 아무런 경험도, 전문성도 남지 않을 것입니다.”

잘못된 제도를 바꾸기 위해서는 법적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성 회장은 지난해 지방자치법이 개정되면서 주민자치회 조항이 삭제돼 주민자치회에 대한 법적 근거가 사라졌다는 점이 안타깝다지난 2020년 국회 첫 발의로 주민자치회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이 상정돼 희망을 가졌는데, 지금까지 국회에서 제대로 된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충분한 숙의를 통해 주민자치회법이 제정된다면 조례가 아닌 법률로서 주민자치회가 운영되어 대한민국 주민자치의 위상이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주민자치회에 대한 주민 감사 청구권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성 회장은 앞으로 주민들이 주민자치회 운영을 견제, 감시할 수 있도록 감사 청구권이 마련되어야 한다. 최소 50명 이상의 주민 동의가 있을 경우 감사를 청구할 수 있도록 각 지자체별로 조례를 개정해야 한다. 지방선거 이후 새 지자체장이 선출되면 이러한 내용을 제안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서울특별시 주민자치원로회의 출범식. 월간 주민자치 자료사진.
서울특별시 주민자치원로회의 출범식. 월간 주민자치 자료사진.

주민자치회 정치적 이용 경계

오는 61일 치러지는 전국동시지방선거에는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드러냈다. 지방자치단체장이 주민자치 정책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주민자치에 대한 이해와 의지를 갖춘 인물이 당선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일각에서 주민자치회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시도가 있기 때문이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주민자치에 대한 식견을 갖추고 주민자치 발전을 위해 힘써온 분들이 출마를 결심한 사례들은 매우 고무적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일부에서 주민자치회를 정치적 야망을 이루기 위한 도구로 여기는 사례들이 있습니다. 주민자치회장이라는 직책을 정치적 발판으로 삼고, 출마를 위해 임기 도중에 자리를 팽개치는 것은 주민자치 정신과는 거리가 먼 행동입니다. 앞으로 이런 사례를 막기 위해 주민자치회장은 적어도 1년가량은 선거에 출마할 수 없도록 법적 조치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직 주민자치위원들의 모임인 주민자치원로회의가 각자의 경험과 지혜를 현직 위원들에게 나눠주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야 한다는 바람도 밝혔다. 성 회장은 현장에서 활동할 때는 생동감을 느낄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임기를 마친 후 한 발 떨어져서 보면 조금 더 넓게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오랜 기간 주민자치 현장에서 배우고 익힌 경험을 나누고, 현직 위원들이 하기 어려운 정치적제도적 해법 모색을 위해 지혜를 모으는 것이 원로위원들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주민자치 생활화되면 마을이 달라진다

우리나라 주민자치 정책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하는 그이지만 마을 이야기를 할 때면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은평구 갈현2동은 그가 초등학생 때부터 살아온 동네이기에 골목골목 마다 추억이 서려 있다. 때문에 초등학교 담벼락에 날카로운 나뭇가지가 뻗어 나와 아이들이 다치지 않을까, 고장 난 가로등 전구로 행여 밤길이 위험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직접 해결에 나선다. 자신이 이사장으로 있는 갈현동 MG새마을금고에서는 어르신들의 사진을 촬영해 액자에 넣어 선물하는 장수사진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장수사진이라고 이름 붙이긴 했지만 어르신들뿐만 아니라 학교에 입학하는 어린이들을 위한 입학 기념사진, 뜻 깊은 날을 기념하고 싶은 단체사진 등으로도 활용될 수 있다. 최근에는 한걸음 더 나아가 자신의 생애를 사진과 영상으로 정리해 가족, 지인들과 함께 볼 수 있도록 하는 미리 보는 장례식프로젝트도 구상 중이다. 성 회장은 이것을 주민자치의 생활화라고 부른다.

주민자치는 어렵고 번거로운 것이 아닙니다. 주민들이 이웃의 어려움을 살피고 마을의 불편한 점들을 바꿔 나가는 것이 곧 주민자치입니다. 우리가 마을의 주인이라는 생각이 바로 주민자치의 출발점이지요. 올해는 대통령과 지방자치단체장이 새로 선출되는, 큰 변화가 이뤄지는 해입니다. 이번 기회를 주민자치가 새롭게 거듭날 수 있는 계기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주민 스스로 주민자치의 필요성을 체감하고 제대로 된 주민자치를 배우고 익혀야 합니다. 서울시 주민자치원로회의 또한 코로나19 사태가 끝나면 가장 먼저 교육의 장을 펼칠 것입니다. 함께 공부하며 진정한 주민자치 실질화를 이뤄 나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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