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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자치, 왜 어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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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자치, 왜 어려운가?
  • 전영평 대구대학교 명예교수
  • 승인 2022.04.21 10: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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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평 교수의 자치 이야기

20대 대통령 선거는 인신 네거티브와 폭로 일변도의 감정 부추기기로 인하여 공공 정책이 주목받지 못하는 대선이 되고 말았다. 이 때문인지 우리가 주목하는 주민자치이슈는 별 다른 관심을 받지 못한 채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대선 공약으로 아예 등단하지도 못했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이제 주민자치 이슈는 행정안전부의 통치 영역에 정주하도록 두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주민자치는 민주주의의 초석이기에 일회성 선거 결과에 의해 그 품격이 좌우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품위 있고 성숙한 모습의 주민자치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하겠지만 그 곳은 우리가 반드시 도착해야 할 목적지이기에 주민자치운동의 중요성과 확장 필요성에 더욱 공감하게 된다.

지방자치는 지방분권과 주민자치라는 두 바퀴로 굴러가는 수레에 비유할 수 있다. 지방자치라는 수레를 이끌고 가는 소나 말에는 주민 선택에 의해 공권력을 위임받은 정치행정가들이 해당된다. 그런데 선택된 정치행정가는 주민의 여망을 외면하고 기회주의적으로 이용할 생각만 하는 듯하다. 정치적 중립을 지키면서 순수하고 공정한 입장에서 주민자치운동을 주도해야 할 시민단체마저도 정치권의 유혹에 넘어가서 정치적 물질적 이득에 현혹되는 성향을 보이고 있어 참으로 실망스럽다. 주민조차도 일회성 선거 이후에는 자신 권익에 대한 요구 활동을 지속하고자 하는 의지가 약한 듯해서 안타깝다. 필자는 이런 현상을 중앙정치 실패, 지방정치 실패, 시민단체 실패, 주민 실패로 부르고자 한다.

 

주민자치 강화를 내세우는 정부의 주장, 합당한가

이른바 전부 개정 지방자치법(2022년 본격시행)은 홍보는 요란하였으나 그 변화 내용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실망스러운 점이 많이 눈에 띈다. 정부는 이번 지방자치법 개정 이유를 민선지방자치 출범 이후 변화된 지방행정환경을 반영하여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주민 중심의 지방자치를 구현하고 지방자치단체의 자율성 강화와 이에 따른 투명성 및 책임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지방자치단체의 기관구성을 다양화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고, 지방자치단체에 대하여 주민에 대한 정보공개 의무를 부여하며, 주민의 감사청구 제도를 개선하고, 중앙지방협력회의 설치 근거를 마련하며, 특별지방자치단체의 설치운영에 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관할구역 경계조정 제도를 개선하는 한편, 주민의 조례에 대한 제정과 개정폐지 청구에 관한 사항을 현행 법률에서 분리하여 별도의 법률로 제정하기로 함에 따라 관련 규정을 정비하는 등 그 내용을 반영하여 지방자치법을 전부개정하려는 것임이라고 밝히고 있다.

또한 개정의 방향과 의의는 획기적인 주민주권 구현 자치단체 역량 강화 및 자치권 확대 자율성 강화에 상응하는 책임성과 투명성 제고 중앙-지방 협력관계 정립 및 행정 능률성 제고라는 4가지 범주로 제시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만 한 점은 지방자치법 개정론자들이 획기적인 주민주권 구현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주장의 근거로서는 제1조 목적규정 개정, 17조 주민참여권 강화, 19조 주민조례발안제 도입, 21조 주민감사청구인수 및 연령조정, 4조 자치단체기관 구성형태 다양화를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개정 지방자치법의 변동내용을 비판적 관점에서 면밀히 살펴보면 선언적인 성격(1), 현실적으로 잘 작동되기 어려운 조항의 삽입 또는 기존 요건의 형식적 완화(17, 19, 4, 21)라는 특징을 갖는다. 예컨대 획기적인 주민주권 구현이라는 모토 하에 제1조 목적규정에주민의 지방자치행정에 참여에 관한 사항을 추가하였으나 이는 때늦은 감이 있을 뿐만 아니라 현실 주민 참여를 자극하는 실질적 조항이 아니라 그냥 선언적 조항에 지나지 않는다. 17조의 변경사항 주민 권리 확대: 주민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결정 및 집행과정에 참여할 권리 신설주장도 선언적 내용이기는 마찬가지이다.

19조 주민발안제는 기존 단체장 사항이던 것을 의회 사항으로 확장하였으나, 이는 지방의회의 권한을 확장한 것인지 주민의 권한을 확장한 것인지 모호하다. 단체장에 대한 주민발안제가 무관심으로 인해 거의 작동 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의회에 대한 조례개정 발안권을 준다고 해서 무슨 큰 주민참여의 기능이 발휘될 수 있다는 것인가. 조례개정 발안권이 왜 잘 작동되지 못하고 있는지에 대한 근본원인을 파악하여 대처해야 함에도 발안권을 의회로 확대한다고 해서 주민자치가 잘 작동될 수 있다는 근거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또한 의회에 대한 조례개정권 발안의 부작용도 발생할 것인데 이에 대한 대책은 무엇인가. 특수 이익집단이나 정치집단에 의해 의회 조례개정이 특수 집단의 이해관계에만 부응하고, 주민일반의 이익에 배치될 경우 이를 어떻게 시정할 것인가. 주민감사 청구인수 조정, 청구권기준 연령완화의 경우(21)에도 주민감사청구가 과연 청구인수의 문제나 청구권기준연령완화가 안돼서 주민참여가 부실했다는 증거에 기초해서 변경한 조항인지, 아니면 단순히 참여 기회가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감에서 변경한 조항인지에 대한 의문을 해소해야 한다. 자치단체 기관구성 다양화(4)의 경우에도 주민의 자치기관 선택범위를 넓힌 것은 성과라고 할 수 있으나, 실제로 이런 일이 가능하도록 촉진하는 주민참여기제가 어떻게 작동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도 강한 의구심이 든다.

필자의 비판적 지적에 대하여 정부와 개정론자가 억울함을 호소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개정안은 지방정치인(특히 지방의회)의 숙원사업 실현, 자치단체의 권한 확대, 중앙-지방정부간 관계 재정립이 핵심 이슈였고, 주민자치강화라는 언급은 간판용 명분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힘들게 되어있다.

 

주민참여 이슈는 왜 인기가 없나 : 거시적 관점

하나의 질문이 떠오른다. 주민참여는 오로지 정부의 과오로 인해서 활성화가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맞는 것인가. 주민참여에 대한 무관심을 정부의 적극성이 부족한 탓이라고 치부하는 것이 과연 제대로 된 판단인가. 그건 분명히 아니다. 주민참여는 민주주의의 학교라고 할 수 있지만 그 학교에 가고자 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대부분의 주민들은 투표권 행사를 통한 대의민주주의를 선택한 듯하다. 대통령, 단체장, 국회의원, 기초의원을 선출하여 그들에게 공권력을 위임하였지만 그들은 공공의 이익보다는 대부분 자기들 진영의 권력유지, 개인적 영달을 위해 공권력을 이용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이는 대의정치의 실패임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말들은 이미 실패한 대의정치에 천착되어 대의정치가 차선의 대안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듯하다.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중앙정치든 지방정치든 그것을 고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대의정치 실패를 고착적으로 반복하는 동작을 멈추고, 주민들이 단결하여 대의정치의 한계를 직접 시정하는 동작을 취할 때 가능하다. 주민과 주민결사체가 강하지 못할 때에는, 대의 정치가들이 자기들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위해 주민을 선동하고 이용하고 조작하려든다는 사실을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된다. 대부분의 정치행정가들은 권력 지속을 위해 입법을 하고 이득을 취하며 자기를 옹호해주는 배후 집단과 연합하여 그들과 이익을 나누시키면서 정치의 참 뜻을 왜곡시키며, 주민에게 피해를 주는 정책과 행정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래서 몇 가지 질문을 하고 이에 대한 답변을 하고자 한다. 지방자치는 주민자치와 지방분권 두 축으로 이루어진 기제이다. 그런데 왜 한국의 지방자치는 지방분권의 측면에서는 강력한 동력을 가지고 추진되고 있는 데, 주민자치의 측면에서는 이렇다 할 진척이 없는가?

왜 지방분권이슈는 주목을 받고, 집단결성도 잘 되고, 성과(?)를 내는데 반하여 주민자치이슈는 소외되고, 결집되지도 못하고, 이렇다 할 성과도 없는가? 이러한 자치 불일치(autonomy mismatch)는 어떻게 설명될 수 있는가. 이러한 불일치는 거시적이며 구조적 문제인가, 아니면 미시적인 행동 심리적 현상인가, 아니면 둘 다 때문인가? 필자는 이러한 자치불일치( autonomy mismatch) 현상에 대하여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그 이유를 밝히고자 한다.

먼저, 거시 구조적 관점에서 한국적 자치불일치 이유를 설명하면 첫째는 계급적 지배구조 역사라는 한계, 둘째는 한국사회구성체의 불완전성이라는 한계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먼저 계급적 지배구조 역사 프레임의 관점을 적용해 보자. 인류 역사를 돌아볼 때 국가통치의 지배구조는 왕, 황제, 군주, 귀족, 종교귀족, 특권계급, 관료제, 공무원 등이 권력상부에서 연합하고 있었기 때문에 주민자치와 같은 풀뿌리 통치방식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금기였다. 역사적으로 볼 때 제국주의, 전체주의, 독재주의, 파시즘, 공산주의 지배구조 속에서 주민의 지위는 통치대상이었지 통치의 주체는 절대로 아니었다. 이런 관행은 제국주의, 식민주의, 전체주의, 공산주의, 파시즘, 나치즘 시대에 더욱 강화되었다. 서구 민주주의 전개 과정에서도 국민은 간헐적인 투표행위를 통한 공직자 선거권을 행사할 뿐이었지 실제로는 통치의 대상, 의무의 대상으로서의 기능을 한 것이 사실이다.

선후진국을 막론하고 국가형성과정에 있어서 국민의 기능은 지나치게 강조된 반면, 주민의 기능은 무관심의 대상이거나 무시되는 현상이 일반적이었다. 현대에 들어서도 중앙집권적 지배관행과 하향식 의존적 의식구조가 관성적으로 존속하면서 주민자치를 통한 풀뿌리민주주의를 구현하겠다는 사고는 급진적 사고이거나 이상주의적 사고, 아니면 매우 불편한 사고로 치부되었다. 역사적으로 지속되어 온 집권적 계급적 지배구조의 관행은 풀뿌리 주민자치 구현을 막는 거시적 프레임으로 작용하고 있다.

둘째, 사회구성체 프레임 관점에서 볼 때 한국의 지방자치는 시민사회형성이 미숙한 관계로 인하여 풀뿌리민주주의 활동이 미약하다고 판단된다.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사회는 국가정부, 시장경제, 시민사회라는 3개의 요소로 구성된다.

 

미국 및 서구 선진국의 경우 이 세 가지 요소가 균형적으로 잘 발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국가정부의 탈권위주의적 지배양상, 시장경제의 활성화, 그리고 이 두 가지 요소에 토대를 둔 시민사회의 형성과 성숙이 바로 그것이다. 특히 시민사회는 국가의 탈권위화 및 시장경제의 풍요가 밑바탕이 되어야 비로소 성숙한 풀뿌리민주주의, 자발적 시민활동, 사회적자본 사회로 이행되는 경향이 있다. 권위주의 국가체제와 피폐한 경제 상황에서는 절대로 민주주의가 구현될 수 없다는 역사적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한국사회는 형식적으로는 탈권위적 정부, 시장경제, 시민사회가 나름대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사회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국가정부는 여전히 탈권위화 되어 있지 못하다. 삼권분립과 법치주의 원칙은 제왕적 대통령에 의해서 파괴되고 있으며, 정당과 국회는 청와대의 하수인 역할을 자처하며 제대로 된 정책창출 및 조정기능을 잃어가고 있다. 시장경제는 규모면에서는 엄청난 성장을 하였으나 정경유착과 기업연합의 이기적 활동, 노동세력의 정치화와 배타적 이익추구 현상으로 인해 늘 불안한 상황에 놓여있다. 게다가 제왕적 대통령과 정부, 정당은 자신의 권력지향에 따라 시장경제를 압박하고 통제하려는 입법과 행정을 서슴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국의 시민사회는 공권력 남용 및 부패 통제, 시장경제의 모순해결, 시민참여권 확대를 주장하며 성장하여 왔으나, 결국은 정치적 편향과 주도세력의 정치참여 야욕을 드러내며 시민단체로서 지켜야 할 중립성, 순수성, 전문가 윤리를 저버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국의 경우, 왕조사회, 식민사회, 군사독재를 거치면서 주민자치 결사체의 맹아가 소멸하였으나, 다행히 문민정부 이후(1990년 초반 이후) 결사체 민주주의의 급속한 확장 현상이 발생하였다. 언론과 더불어 시민단체가 시민사회를 구성하고 활동하여 소기의 성과를 거둔 성과는 있으나 격렬한 정치적 대립으로 인하여 시민사회의 정치화가 가속되면서 시민사회의 자주성, 중립성, 순수성이 상실되고 시민단체의 역량도 급격히 저하되고 말았다. 게다가 주민자치조직도 관변화, 정치화, 도구화되어 자치 변질 현상도 발생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한국의 주민자치가 외면되는 이유 중의 큰 원인은 국가정부 실패와 시민사회 실패라는 사회구성체 불안정성이라는 거시적 요인에 기인하는 바 크다. 이런 구조적 한계는 한국 주민자치의 성장을 지속적으로 방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두 가지 거시적 요인-계급적 지배구조 역사와 사회구성체의 불완전성-이외 에는 한국의 주민자치 부실을 설명할 수 있는 다른 요인들은 없는 것인가. 당연히 존재한다.

필자는 한국주민자치의 한계를 설명할 수 있는 거시적인 프레임 이외에도 미시적 프레임과 요인에도 주목하고 있다. 미시적 프레임이란 현재 시점에서 주민이 왜 주민참여운동에 왜 소극적이며 주민자치를 외면하게 되는가를 설명할 수 있는 관점으로서 여기에는 몇 가지 설명 모형과 그것의 응용적 설명이 필요하다. 미시적 프레임과 그 내용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 서술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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