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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자치를 어렵게 만드는 네 가지 미시적 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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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자치를 어렵게 만드는 네 가지 미시적 요인
  • 전영평 대구대학교 명예교수
  • 승인 2022.05.19 10: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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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평 교수의 자치 이야기

지난 호에서는 한국의 주민자치를 어렵게 만드는 거시적(사회구성체역사적) 요인에 대해 알아보았다. 이번 호에서는 미시적 요인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사실 주민자치 활성화 문제는 대부분 국가 사회에서 잘 되지 않고 있는 사회적 난제이다. 그 이유는 현재 시점에서 주민 각자가 주민자치 활동에 참여하고자 하는 욕구가 약하거나 동기부여가 잘 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주민자치 참여를 조직적으로 옹호하는 사회적 집단이 거의 없거나 그것이 있다하더라도 강력한 참여 자극 활동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주민자치, 개인에게 큰 이득도 손해도 없는 활동?

이번 호에서는 이런 현상을 뒷받침하는 몇 가지 흥미로운 발견 점을 제시해 보기로 한다. 주민자치가 잘 안 되는 첫 번째 이유는 주민자치 참여활동이 주민 개인에게 이렇다 할 이득을 가져 다 주거나 큰 손해를 보게 만드는 사안이 아니라는 데 있다. 윌슨(J. Q. Wilson)이 말하는 대중 정치적 정책 상황이 여기에 해당된다고 하겠다. 대중 정치적 상황-감지된 편익이나 감지된 비용이 적을 경우-에 주민 각자는 주민자치 활동에 참여해 크게 얻을 이익이 없다고 느끼며 그 활동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해도 큰 손해를 입을 일이 없게 되기 때문에 주민자치이슈나 활동에 참여하고자 하는 동기가 생기지 않는다.

이에 비하여 국가가 추진하고 있는 지방분권이슈는 그 정책으로 인해 발생하는 편익이 소수의 세력(중앙과 지방정치인, 지방토호세력)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으며 그 정책이슈로 인해 지불해야 할 비용은 다수(일반주민)에게 분산되는 상황에 해당한다. 이 때문에 지방분권 이슈는 고객 정치상황에 해당 된다(. 택시요금인상 요구의 경우-택시업자는 고객이 되고 정부는 그들의 요구를 우선적으로 고려하게 된다).

이 경우 지방분권추진자들은 자기들의 편익을 증가시키기 위해 결집력과 행동력을 적극적으로 발휘하여 고객정치 상황을 주도하게 된다. 반면 주민자치이슈는 그 정책이슈로 인해 발생하는 편익이 다수에게 분산되고 그 정책이슈로 인한 비용도 다수에게 분산된다. 이로 인하여 주민자치 이슈에는 이를 추진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집단이 결성되지 못하고 추진력과 행동력이 발생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는 창도가적 주민자치 리더나 단체가 나타나지 않는 한 주민자치운동은 동력을 얻기 힘들게 된다. 이는 한국의 주민자치이슈가 왜 지리 멸렬한가를 잘 설명할 수 있는 통찰이라 아니할 수 없다.

한국 주민자치가 잘 안 되는 두 번째 이유는 주민자치활동을 지원하는 옹호단체가 부실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회 문제나 주요 이슈에 대해서는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옹호집단 (advocacy groups)이 결성되거나 반대옹호집단이 생겨난다. 이들 옹호집단들은 그들이 개입하고자 하는 사회이슈에 대해 찬성하거나 반대하기 위해 결성된 존재들이므로 이슈에 대한 신념, 이익, 판단, 감정을 토대로 하여 그들이 얻고자 하는 정책을 위해 열정적으로 활동하는 집단들이다. 예컨대 장애인, 여성, 일본군위안부, 외국인노동자, 탈북자, 결혼이주여성 등과 같은 소수자 이슈에 있어서는 이슈를 옹호하는 집단(옹호집단)/반대하는 집단(반대옹호집단)이 존재하고 있다.

그런데 주민자치이슈는 사회적, 정치적으로 중요한 이슈로 부각되고 있는 것 같으나 실제로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주민자치이슈를 사회적으로 강력하게 주도하는 옹호집단이나 반대옹호집단을 발견하기 어렵다.

 

적극적 옹호집단도 반대집단도 없는 정책소외영역

반면 지방분권이슈와 관련된 옹호집단은 신념, 이득에 대한 기대, 정치적 이유 등으로 인해 활발한 분권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지방분권이슈의 옹호집단은 그 숫자도 많고 신념, 결집력, 행동력이 강한 데 비해 주민자치이슈의 옹호집단은 극소수이며 결집력과 행동력이 약하다. 이로 인하여 지방분권의 제도화는 상당한 진척이 있는 반면, 주민자치의 실질적 작동은 지지부진해지고 있다.

지방분권 옹호집단은 중앙정치행정가, 지방정치행정가, 지방언론, 지방기업, 시민단체, 학회, 행동가로 구성되어 강한 여론조성 및 정치적 투입활동을 주도하는 옹호연대(advocacy coalition)를 구축하게 되었다. 반면 주민자치 이슈는 분권우선주의 옹호집단들의 정치 세력화, 강력한 추진력, 연대활동 등에 밀려나게 되었고 이로 인하여 주민자치이슈는 자치의 그늘에 놓이게 되었다.

이로 인해 지방자치이슈의 정책적 중개자(policy brokers)도 분권우선론에 편향된 정책과 제도변경에 치중하게 되었으며 이는 분권-자치의 불일치(mismatch) 현상을 발생하게 하였다. 혹자는 최근의 전부개정 지방자치법의 핵심개정 내용으로 주민자치이슈가 제도적, 정책적으로 강화되었다고 반박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내용을 분석해보면 대부분 선언적 규정이며 몇 가지 실효성 없는 규제 완화에 그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방분권이슈의 약진과 주민자치이슈의 정체 현상을 보다 구체적체계적으로 이해하려면 아래의 표를 보면 된다. 이 표는 두 개의 기준-옹호집단 형성의 정도와 반대옹호집단 형성의 정도-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이 표를 보면 지방분권이슈의 경우 옹호집단(분권옹호단체, 지방정치인 등)의 활동이 매우 강하며 이를 반대하는 반대옹호집단은 거의 없기 때문에 정책혜택영역에 해당됨을 알 수 있다. 한편 주민자치이슈의 경우에는 옹호집단형성 수준(숫자나 결집력)이 약하고 반대옹호집단도 거의 없기 때문에 정책소외영역에 해당됨을 보여 준다.

 

옹호집단의 능동적전문적 역할로 주민자치도 정책수혜영역으로 옮겨가야

분석을 통해 통찰할 수 있는 시사점으로는, 향후 주민자치이슈/운동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주민자치옹호집단의 활동이 양적 질적으로 확대되고 옹호연합을 결성하여 현재의 정책소외영역을 정책수혜영역으로 이동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책창도가의 역할이 강력하게 요구된다. 한국주민자치중앙회와 한국자치학회의 능동적전문적 역할이 기대되는 대목이다.

 

이 표를 보면 주민자치가 잘 될 경우 어떤 편익이 주민에게 집중될 수 있는지, 주민자치가 안 될 경우 어떤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지에 대해 잘 설득 주장해 낼 수 있는 지도자와 옹호집단이 등장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옹호집단이 잘 연대하고 창도가적 지도자가 나설 경우 정책소외상황은 정책혜택영역으로 이동하게 될 것임을 잘 암시해 주는 것이다.

세 번째로 주목할 만한 주민자치 설명 모형은 공공재와 무임승차이론이다. 맨커 올슨(Mancur Olson)이라는 학자는 집단행동의 논리(Logic of Collective Action)라는 책에서 공공재적 성격을 갖는 재화나 서비스-예컨대 공기, -는 무한대로 공급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서비스의 양과 품질에 어느 정도 문제가 생겨도 이를 시정하고자하는 집단행동이 발생하기 쉽지 않다고 주장한다. 보통 사람들은 심각한 사회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직접 자기에게 피해가 오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한 이를 시정하기 위한 집단적공익적 활동에 대한 관여비용을 지불하고자 하지 않는 성향이 있다. 이것이 무임승차 성향이라는 것이다.

예컨대 맑은 물이 산에서 계속 내려오고 누구나 이를 실컷 이용할 수 있다면 그 물을 사먹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물의 양이 줄어들고 오염이 될 경우에도 사람들은 자기에게 직접적으로 큰 피해가 오지 않는 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서려하지 않는다. 특히 다른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나설 경우에는 본인은 무임승차를 할 수 있을 때까지 나서지 않으려는 기회주의적 성향을 보이게 된다.

 

공공재 성격의 주민자치서비스만연한 무관심무임승차 어떻게 극복해야하나

주민자치의 경우에도 이와 유사하다. 개정 지방자치법에서 강조하는 주민자치강화는 일종의 정부공급 공공재로서 성격을 갖는다. 이는 정부가 법률을 통해 주민자치의 범위, 기능, 권능 등을 규정하고 배분하는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부가 제공하려는 공공재로서 주민자치서비스에 대해 주민은 과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주민들은 대부분 개정된 주민자치강화 사안에 대해 자세히 알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주민자치강화로 인한 혜택은 무상으로 받고 주민생활에 극심한 불편을 주기 전에는 주민자치강화를 위한 집단행동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주민자치에 있어 집단행동의 실패가 일어나는 원인이고 주민들의 기회주의적 행동은 무임승차가 되는 것이다.

하시만의 경우에도 이와 유사한 지적을 하였다. 그는 조직현상에 있어서 고객의 충성, 항의, 퇴장 현상에 주목하였다. 그의 이론을 응용하여 주민자치 서비스를 고찰해 보면, 주민자치 서비스가 만족스러울 경우 주민들은 주민자치제도에 대해 충성(royalty)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에 대한 불만이 커지면 항의(voice)할 가능성이 커지며, 항의해도 소용없을 것이라는 판단이 서면 주민들은 지방자치 논의의 장에서 퇴장(exit)할 것이다(퇴보하는 조직에서는 조직구성원이나 고객은 퇴장할 수 있으나 국가퇴보의 경우에 국민의 퇴장이 용이하지 않기 때문에 항의하거나 충성한다. 이로 인하여 항의와 충성의 딜레마가 발생한다).

지방자치의 경우 분권에 충성하는 국민이 항의하는 국민보다 많을 것이지만 퇴장하는 국민이 더욱 많은 관계로 인해 지방자치 냉소주의가 만연하게 된다(분권은 그들만의 잔치, 주민자치는 뜬 구름 잡기).

그렇다면 개정 지방자치법의 내용에 대해 향후 주민들은 어떠한 행동을 보일 것인가. 그것에 대해 주민이 무관심하다면 정책은 있으나마나 한 것이 될 것이다. 이 경우 관전 포인트는 주민자치옹호집단의 형성과 활동여부이다. 왜냐하면 개별 주민은 모래알처럼 분리 분산되어 있기 때문이다. 주민자치 옹호집단이 생겨나고 주민자치회가 활성화되어 정책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한국 주민자치의 활성화가 잘 안 되는 네 번째 이유는 주민자치참여가 개인의 사회적 욕구 충족과 큰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주민자치에 대한 욕구가 결핍되지 않는 한 주민자치를 하고자 하는 동기발동이 되지 않을 것이다.

 

주민자치, 주민의 사회적 욕구 어떻게 충족시켜줄 것인가

기존의 동기화 이론은 크게 욕구내용이론과 욕구과정이론으로 나뉜다. 욕구이론은 주민자치에 대한 관심부족 현상을 가장 미시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근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욕구이론은 인간은 욕망하는 동물(man is a wanting animal)’이라는 단순명료한 관찰에서 출발한다. 욕구이론에는 내용이론과 과정이론이 있는데, 내용이론(contents theory)은 인간의 욕구내용과 욕구단계를 설명한다. 과정이론(process theory)은 인간의 욕구는 어떤 과정을 통해 발현되는가를 설명한다.

욕구이론을 차용하여 주민자치에 동기화 될 수 있는 주민의 욕구는 어떤 단계인가? 주민이 보상에 대한 어떤 기대를 가지고 있을 때 주민자치에 동기화 될 것인가?”에 대해 논의해보자.

내용이론의 대표적인 욕구5단계이론(마슬로우)에 따르면, 인간의 동기화는 생리적 욕구, 안전욕구, 협동욕구, 명예욕구, 성취욕구 5단계를 거치게 되는 바 주민자치의 경우 주민은 어느 단계 욕구에서부터 주민자치에 동기화 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논의 할 수 있을 것 같다.

조선시대 생존형 촌계의 주민자치는 안전의 욕구에서 출발했을 것으로 보이며, 목적 계는 협동이나 명예욕에서 출발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현대의 주민자치의 동기는 어떤 욕구에서 출발할 수 있을까? 즉 어떤 수준의 욕구가 만족되어야 다음 단계의 욕구로 진행될 수 있을 것인가. 이는 주민자치의 성공을 위한 심리 공학적 측면에서 중요한 질문이 된다.

과정이론의 대표적 이론은 기대이론(expectation theory)인데 이에 따르면 인간은 보상에 대한 매력과 그 실현 확률에 따라 동기화 된다는 것이다. 촌계에서의 보상은 상호부조보험과 같은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주민자치는 촌계방식의 상호부조정도의 보상조차 확보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 이 질문 또한 주민자치성공을 위한 심리 공학적 측면에서 중요한 이슈가 아닐 수 없다.

필자가 볼 때 현대 한국의 주민자치는, 내용이론에 준거하면, 명예욕구, 성취욕구를 가진 창도가적 주민자치리더가 있어야 가능할 것이다. 과정이론에 따르면, 현재의 주민자치는 주민에게 보험이상의 매력적인 보상을 줄 수 있어야 가능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주민들의 욕구를 충족, 동기화 시킬 것이며 어떤 보상을 만들어서 활용할 것인가를 연구해야 할 것이다.

필자는 위와 같은 다소 비관적인 전망을 하면서도 주민자치의 길은 민주주의의 초석(사실 민주주의도 주민자치와 마찬가지 성격을 가진 서비스의 일종으로서 국민들의 기회주의적, 무임승차적, 집단행동실패가 일어나는 영역)이며 물과 공기와 같은 존재이기에 이를 정화, 심화해야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분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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