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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의 주민자치, 그 중심에 휴머니티 의식 있어야...이익 아닌 소통 단위 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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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의 주민자치, 그 중심에 휴머니티 의식 있어야...이익 아닌 소통 단위 돼야”
  • 김윤미 기자
  • 승인 2022.07.13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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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회 김선욱 교수 ‘한나 아렌트의 휴머니티 개념과 주민자치’

한나 아렌트의 정치와 인간에 대한 인식, 휴머니티 개념을 통해 주민자치에 꼭 필요한 인간 다양성의 인정, 소통과 동의, 합의에 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다. 한국주민자치학회는 712한나 아렌트의 휴머니티 개념과 주민자치를 주제로 한 제29회 주민자치 연구세미나를 개최, 김선욱 숭실대 교수가 발제를 맡아 진행했다.

발제에 따르면, 한나 아렌트는 정치의 핵심요소로 인간의 복수성과 정치적인 것을 통찰했다. 아렌트가 말하는 정치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살면서 서로 다른 개성을 드러내는 가운데 공동의 생활을 유지하는 방법을 찾는 행위이다. 이 생각에는 다양성과 차이에 대한 존중이 자리한다. 다양한 개인이 함께 모여 정치 공간을 마련하고 거기서 언어를 사용하는 가운데 의사 합일을 해나가며 합의된 생각을 바탕으로 공동행위(action-in-concert)를 만들어가는 것을 정치의 원초적 모습으로 본 것이라고 김선욱 교수는 밝혔다.

 

정치, 인간의 다양성(복수성)과 차이에 대한 존중에서 시작

김 교수는 모든 사람이 공동체를 꾸려나가면서 의견 조율을 해나가는데 각자 관점과 체험이 다 다르다. 이와 같은 다양성을 아렌트는 인간의 복수성이라고 했다. 각자 다 다른 사람들 사이의 의견을 조율하는 것이 정치의 문제라며 아렌트가 이런 정치 개념과 아주 잘 어울리는 개념을 칸트의 판단력 비판에서 발견한다. 정치에서는 개별적인 것, 다름의 요소, 개성적인 면모를 보편적 원리로 환원하거나 보편의 적용물로 여기지 않고 개별자를 개별자 자체로 다루는 것이 중요한데 이를 다루는 것이 판단이라는 점을 칸트의 미적 판단력 개념에서 발견했다. 판단은 규정적 판단과 반성적 판단으로 나뉜다. 규정적 판단은 참으로 여겨지는 일반규칙이나 명제에 개별적 사례를 적용함으로써 그 옳고 그름을 따지는 작업이며, 반성적 판단은 개별적 사례를 적용할 수 있는 일반규칙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에 요청되는 판단이다. 어떤 예술작품의 미적 가치를 평가할 때 보편적으로 타당한 규칙이 아니라 그 작품의 고유한 가치를 중심으로 생각해야 하는데 이때 작용하는 것이 반성적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계속해서 그는 인간의 복수성에 기반을 둔 정치는 반성적 판단을 요구한다. 우리가 다루는 정치 판단론은 바로 반성적 판단에 포함되는 것이라며 아렌트는 정치가 진리의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정치를 다루는 일은 진리를 찾는 것처럼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정치는 의견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치에서 하는 말, 즉 정치 판단은 어떻게 해서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거나 거부되는가? 정치 판단이 참과 거짓의 문제가 아니라면, 그것의 수용 기준은 무엇인가? 아렌트는 정치 판단은 일반적인 소통 가능성(communicability)을 가져야 한다고 답한다고 제시했다.

이어 김선욱 교수는 소통이 가능하려면 실제로 대화를 해야 한다. 지상의 인간은 복수로 존재하기에 서로 대화해야 한다. 소통은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뿐만 아니라 그들로 이루어진 공동체를 전제로 한다. 대화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설명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설명은 이론적 증명, 즉 논증이 아니라 자신이 어떤 의견을 어떻게 해서 갖게 되었으며 그 이유가 무엇인지 말하는 것이다. 아렌트가 제시하는 설명은 삶의 경험과 말하는 이의 개성과 인격이 모두 드러나는 일상적 대화의 형식을 의미한다라며 개성과 개인의 관점이 전적으로 드러나는 설명이 공적 영역에서 실제로 교환되는 것이 정치적 대화다. 대화 참여자는 타인의 관점과 의견을 고려함으로써 자신의 관점에만 머물지 않을 기회를 얻는다. 대화에 참여하는 자세로 여러 사람이 서로 다른 의견을 들으면 우리는 한편에 치우치지 않은 공정한 관점을 얻을 수 있다. 이런 태도를 불편부당성(impartiality), 즉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음이라고 한다. 이런 자세에서 불편부당한 의견을 형성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대화-의견 교환 통해 사고의 확장-더 많은 동의 가능성 높아져

 

그는 또 이런 사고의 확장은 혼자의 머릿속에서가 아니라 실제 대화를 하고 의견을 교환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실제로 대화를 나누는 것은 필수적 행위다. 그러나 실제 대화가 진행된다고 해서 생각이 자동으로 확장되거나 대화 횟수가 증가한다고 해서 생각이 그에 비례해서 확장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중요한 것은 생각이 실제로 확장되는 것이다. 확장된 생각만이 자신의 정치적 판단을 일반화하게 하고, 더욱 많은 사람의 동의를 얻을 가능성을 높인다고 덧붙였다.

김선욱 교수는 아렌트가 바라보는 정치와 인간, 소통에 대한 인식에 관해 설명을 이어갔다. 그에 따르면, 아렌트는 정치 이론에서 다루는 인간상과 도덕 이론에서 다루는 인간상이 다르다고 주장한다. 아렌트는 정치란 사람들이 도덕적이지 않고도 좋은 시민이 될 수 있는 요건을 찾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도덕은 개인의 행위에 불과하지만 정치는 공적 행위이기 때문에 정치는 도덕의 영역과 분리되어야 한다.

김 교수는 아렌트가 말하는 정치적 영역에서의 타당성 인정은 합리적 동의로 확보하는 것이 아니다. 정치적 설득은 설명으로 상대방에게 동의를 호소하는 것이다. 이는 예술작품을 평가하는 과정과 유사하다. 이런 식의 동의가 가능한 이유는 모두에게 이성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공통감각때문이라고 아렌트는 설명한다. ‘공동체 감각이라고 번역될 수도 있는 이 감각은 우리가 서로 소통하는 의사소통 공동체의 일원이 되게 해주는 기능을 한다. 공유한 이 감각에 호소함으로써 우리의 판단은 타인과 소통되고 타인의 동의를 얻게 된다고 밝혔다.

그는 아렌트가 지상의 인간공동체가 복수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만 이 복수의 공동체를 넘어서는 근본적인 하나의 원리를 발견한다. 이 원리를 가능하게 하는 인간의 정신기능이 공통감각이며 그것의 내용은 인간됨(휴머니티)’의 원리다. 인간됨은 판단이 궁극적으로 귀의해야 할 원리지만 도덕의 원리는 아니다. 모든 인간을 연결해 주는 끈이 될 수는 있지만 그것에서 직접적 행동의 원리를 도출할 수 있는 원리는 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공동체 감각휴머니티, 공감 불러일으키고 사람답게 만드는 요소

 

김선욱 교수에 따르면, 아렌트의 분석은 의견, 즉 정치적 판단이 좋고 나쁨, 옳고 그름을 중심으로 나뉠 수 있는 기준점을 발견하는데 그것이 확장 가능성소통 가능성이다.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여 공유할 수 있는 가능성의 폭을 의미한다. 그러한 확장 가능성의 관건은 그것이 사적 유용성에서 얼마나 벗어나서 모두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가에 있다. 이것이 공공성이고,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자 다른 말로 휴머니티이다. 이것이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어 주는 요소이며, 모든 사람 각자의 생각 가운데 깃들어 있는 것이다.

끝으로 아렌트의 판단론이 주는 주민자치적 함의와 관련해 김선욱 교수는 주민자치는 지역성을 전제로 한다. 주민자치가 대립하는 것은 모든 것을 중앙에 집중시키는 통치체제이다. 주민자치가 추구하는 지역성은 지역마다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는 구조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지역의 필요는 정치적 소통이 실질적으로 이루어지는 단위로 필요한 것이지, 지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단위로 요구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지역의 주민자치는 그 중심에 휴머니티 의식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주민자치 내부의 소통도 가능할 뿐 아니라 다수의 주민자치체 사이의 소통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아렌트가 정치적 판단론을 통해 주목한 휴머니티는 현실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내재해 있고 또 그들의 사유 속에서 작용할 수 있는 것으로,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근거라고 제시했다.

 

주민자치 중심에 휴머니티 있어야 소통도 가능...설득대화 노력 중요

발제가 끝난 후 채진원 한국주민자치학회 학술부회장의 진행으로 본격적인 토론이 이루어졌다. 채 부회장은 주민자치는 여러 사람들과의 협의, 대화, 갈등이 존재하고 공감과 대화를 통해 동의 받은 과정이 곧 인간다움이라 할 수 있다. 그 출발은 여러 사람과의 대화이고 공감 있는 소통에서 찾아야 한다는 말씀에 공감한다라고 토론의 포문을 열었다.

박경하 중앙대 명예교수는 주민자치는 인간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데 때로 인간의 냄새가 빠져있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 사람다움, 인간다움을 강조해주심에 감사드린다. 주민자치 활동을 하다보면 참여자들의 가치관이 다 다르고 어찌 보면 자기 것을 양보할 생각이 없는 사람들이 만나 충돌하는 것 같기도 한데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소통을 통해 보편성을 확보할 것인가가 문제일 것 같다고 말했다

전은경 교수는 “‘정치적 중립을 지켜라할 때의 정치와 정치적인 것이라고 할 때의 정치가 다른 것 같은데 그 관계는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정치적 결정을 할 때, 다수결의 원리가 기본이지만 이에 대한 비판의 소리도 있고 소수의 의견도 존중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는데 이런 속에서 어떻게 보편성을 확보해갈 수 있겠는가의 문제도 나오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에 김선욱 교수는 우리가 다 지역에서 살고 있는데 사는 곳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지역성이다. 중앙성은 추상화된 개념이다. 어디가 중앙? 중앙은 없다. 사는 곳은 다 지역이다. 지역은 가장 기본적이고 우리 삶이 이루어지고 있는 곳이다. 결국 우리 삶은 우리가 경험하는 지역성이 중요하고 인간성도 여기에서 담보되고 확보되는 것이다. 그리고 보편적인 것은 객관적으로 확인된 보편으로 설득을 통해 상대방을 따라오게 하는 것은 실패한다. 보통은 자기 의사를 바꿀 생각이 전혀 없을 때, 이해관계가 걸려 있어 꼭 관철시키려 할 때 공격적인 태도가 나오는데, 자신의 이해관계를 줄여야 소통이 열린다. 나도 상대방도 이래야 한다. 대화적 관계가 형성되어야 하고 일상 속 공유되는 부분에서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소통이 된다라고 말했다.

계속해서 김 교수는 한국사회에서 정치적이라는 것은 정파적이 된다는 의미인데, 아렌트의 정치적인 것과는 다르다. 그리고 민주주의는 다수결이라고 할 때 부정적 견해 꽤 있어 어리석은 자의 다수로 환원 vs 깨달은 소수로 환치라는 구도도 있는데 이것은 이거 소크라테스, 칸트, 아렌트도 다 거부했다. 윤리적으로 탁월한 삶 자는 소수가 맞으나 모든 사람들에겐 생각할 수 있는 능력 즉 사유 작용이 다 있어서 삶을 제어하는 방식으로 꾸려가는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본다. 지혜, 올바른 정치적 판단을 소수의 깨달은 자만 할 수 있다는 생각은 근본적으로 잘못됐다고 본다. 정말 인내심을 가지고 설득, 대화하는 노력, 다수 의견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지치지 않고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민주주의는 민주주의밖에 대안이 없고, 결국 민주주의 방식이 맞다는 결론에 도달한다고 답했다.

사진=이문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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