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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년 전라남도 보민향약(保民鄕約)의 성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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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년 전라남도 보민향약(保民鄕約)의 성격
  • 박경하 한국주민자치학회 부설 향약연구원장(중앙대학교 역사학과 명예교수)
  • 승인 2022.07.28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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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하 교수의 향약 이야기

조선시대 향촌사회의 자치규약’. 향약의 사전적 의미이다. 여기에 바로 이어지는 것은 덕업상권’‘과실상규’‘예속상교’‘환난상휼등 학창시절 역사시간에 달달 외웠던 향약의 4대 강목이다. 다분히 정형화되고 박제화 된 향약에 대한 인식을 바꿔준 것이 바로 조선시대 기층민들의 상부상조 자치조직 촌계이다. 오늘날 주민자치의 한 원형과 단초를 제시해주기 때문이다. 이에 조선시대 향약 연구 전문가로 사단법인 한국자치학회 부설 향약연구원장인 박경하 교수의 향약이야기를 연재한다. 전통시대 향약·촌계를 재조명함으로써 오늘날 주민자치에 주는 의미와 시사점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편집자주]

 

19세기 후반 전라남도는 동학의 확산과 빈번한 민란으로 인해 사회의 혼란이 가중되었다. 1895년에 동학농민운동은 진압되었으나 동학의 잔당이 결집한 영학당, 활빈당 등의 활동은 이어졌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향촌사회의 질서를 다시 세우기 위해 관찰사 이근호는 향약을 시행하였다.

1890년대에 경상도와 전라도에서는 관찰사들이 향약을 시행하거나 독려한 사례가 확인된다. 비슷한 시기에 관 주도 향약 시행이 다수 확인되는 점은 단지 관료들의 개인적 판단보다는 중앙정부의 정책적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 따라서 이근호 역시 중앙정부 정책에 영향을 받아 향약에 주목한 것으로 보인다.

각 지역에서 시행된 향약을 살펴보면 율곡의 해주향약과 같이 지역 명을 앞에 두고 향약이라 명명되는 사례를 다수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이근호는 전라남도에서 시행한 향약을 보민향약(保民鄕約)’이라 하였다. 이는 하나의 군, 면 단위가 아닌 전라남도 전체를 대상으로 시행한 향약이기 때문에 통일된 명칭이 필요했고 이에 백성을 보호하다라는 의미의 보민으로 명명한 것으로 사료된다.

전라남도 지역 大韓全地圖(국립중앙도서관 소장, 1897~1903년 추정)
전라남도 지역 大韓全地圖(국립중앙도서관 소장, 1897~1903년 추정)

관찰사 이근호, 전라남도 전역 대상으로 한 보민향약시행

전라남도 보민향약의 자료로는 광양군, 장흥군, 남평군, 완도군 등지에서 총 18개가 확인되었다. 향약의 조목을 담은 보민향약과 약원의 명단이 수록된 보민향약안을 통해 관찰사의 향약 시행 내용, 임원 구성, 운영 방안 등을 파악할 수 있었다.

보민향약은 도 차원에서 향약을 관할하는 도약장, 좌약장, 우약장과 함께 군--리로 이어지는 임원 구성으로 조직되었다. 관으로부터 각 리까지를 잇는 조직을 갖춰 향약의 영향이 가호에까지 미칠 수 있도록 하여 향촌사회의 안정을 이루고자 했다.

각 군에는 향약도정을 중심으로 장의와 색장이 임명되었으며 각 면에는 직월, 리는 약정으로 구성되었다. 도 차원의 임원인 도약장, 좌약장, 우약장은 지역사회의 지식인들로 이루어졌다. 이들은 군에서 해결되지 못한 향촌 문제를 관 차원에서 규제하였다.

군 단위 임원은 향약도정, 장의, 색장으로 구성되었다. 향약도정은 진사 혹은 유학이었으며, 중앙에서 관직을 역임한 경우도 있었다. 장의와 색장에는 주로 향교 임원이나 지역 유지들이 임명되었다. 장의는 향약도정 부재시 역할을 대신하였고, 색장과 함께 군에서 향약의 실무를 맡았다.

면리의 임원인 직월과 약장에 대해서는 직역이 기입되지 않아 파악하기 어려우나 지역사료와 향교지에서 확인되는 사례를 통해 면내 행정이나 대소사를 관할하거나 보조했던 경험이 있었던 인물들이 맡은 경우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대부분 지역에서는 보민향약에 명시된 임원 구성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데 완도군에서는 차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완도군은 섬을 합해 형성한 도서지역이다. 도서지역에서는 행정업무가 마을공동체에서 자치적으로 실시되기도 했다. 이러한 연유 때문인지 완도군에서는 면리 단위 임원을 확장하여 면 임원에 직월과 약정, 리에는 두민을 두어 보민향약을 시행했다. 완도군 사례를 통해 보민향약이 관에서 내린 조목을 바탕으로 임원이 구성되었으나 군 실정에 따라 변형되어 시행되기도 했음을 파악할 수 있었다.

완도군 향약도정 황학래 임명장
완도군 향약도정 황학래 임명장

임원 구성 상세히 명시지역 실정에 따라 변형 시행하기도

보민향약은 일반적으로 확인되는 향약 자료와 같이 조목이 나열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내용에 따라 관약, 면약, 벌약, 강약, 추약으로 구분되었다. 관약에서는 호적과 세금에 대한 조목으로 구성되어 지역 행정에 관해 명시했다. 보민향약의 지역 행정 보조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어 보민향약의 관변적 성격을 확인할 수 있다.

면약에서는 오가작통제와 송계, 사환제 등 면내 조직과 제도와 향촌민 구호, 상부상조 등 면에서 지켜야하는 규율을 파악할 수 있다. 벌약에는 가장 많은 조목을 두었다. 지역에서 지켜야 할 가족간 윤리, 사회·풍속 윤리 등을 담았으며, 죄의 경중에 따라 벌을 구분하였다. 시벌 가운데 상벌에는 가장 강도 높은 벌이었던 훼가출향(毁家黜鄕, 집을 헐고 마을에서 쫓아냄)을 내려 향촌에서 추방시켰다.

19세기 후반에 시행된 주현향약에서는 시벌에 관한 조목은 비교적 적고, 주로 선과적을 통해 향촌민에게 제재를 하였다. 형벌을 내릴지라도 재범한 경우에라는 단서를 붙이고 있다. 하지만 보민향약에서는 형벌에 관한 조목을 상세히 제시하며, 초범에도 동일하게 처벌을 했다는 점에서 직접적 처벌을 통한 향촌통제를 강조했음을 알 수 있다.

강약에서는 강회 운영에 대해 명시하였다. 각 군에서는 매년 2, 각 면에서는 매달 강회가 열렸다. 강회는 강독과 시험을 중심으로 진행되었으며 평가에 따라 상벌이 부여되었다. 추약에서는 향약 임원과 관의 지원에 관한 조목을 두었다. 관에서는 보민향약과 함께 100량의 지원금을 각 군에 내렸고, 군에서는 보조금과 약원들로부터 모은 회비를 모아 식리(殖利, 이윤을 낳고 이익을 늘림)해 향약 운영 재정으로 사용했다.

보민향약. 오른쪽은 환난상휼조. 왼쪽은 관약과 면약
보민향약. 오른쪽은 환난상휼조. 왼쪽은 관약과 면약

규율과 상벌, 지원 통해 향촌 교화 및 통제

각 군에서 확인된 보민향약 자료의 조목은 모두 동일한 반면, 장흥군에서는 강회와 선과적에 관한 조목을 보충하였다. 특히 보민향약의 공통 조목에서 간략하게 언급된 선과적(善過籍) 운영에 대해 자세히 명시했다. 장흥군에서는 강회에서 선과적을 검토하고 상벌을 내리고 있어 향약의 교화책으로서 선과적의 역할이 다른 지역에 비해 강조된 것을 알 수 있다.

보민향약은 관찰사가 전라남도의 모든 군에서 시행한 향약으로, 이를 살펴봄으로써 중앙정부의 향촌통치관을 파악할 수 있다. 보민향약의 시행 시기는 1902년으로 갑오개혁이 실시된 이후이다. 개혁의 단행으로 신분제와 과거제가 폐지되었다. 그러나 보민향약을 살펴보면, 개혁을 반영하기보다는 오히려 유교적 질서를 유지하고자 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보민향약에서는 신분에 따라 형벌에 차등을 뒀다. 그리고 노비나 아랫사람이 사족에게 그릇된 행동을 하면 처벌하여 상하의 기강이 무너지는 것을 경계했다. 이를 통해 새로운 질서를 세우기보다는 봉건적 질서를 유지한 것을 알 수 있다. 동시에 재지사족의 권위를 보호함으로써 이들로부터 향약 시행에 호응을 얻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사농공상을 구분하여 각각의 역할과 의무를 제시하는데 선비에게는 과거제가 폐지되었지만 유학에 정진해야하는 것과 사민들이 직분을 지킬 것을 강조했다.

 

보민향약, 갑오개혁 반영 보다 유교적 질서 유지에 방점중앙정부의 향약 활용 사례

중앙정부는 1895년에 면리의 지방자치를 실시해 지방행정의 원활한 운영과 중앙집권을 도모하고자 <향약판무규정><향회조규>를 반포했다. 비록 <향약판무규정>은 향약의 외형만을 가져온 것이기 때문에 보민향약에 미친 영향을 판단하기는 어렵다. 반면, <향회조규>는 규약에서 군, , 리 단위의 향회에서 결의될 주제로 호적, 납세, 사창, 공공산림 등을 두고 있는데, 보민향약의 조목에서도 이를 담고 있어 연관성을 추측해볼 수 있다. 납세의 독려, 구휼 등은 이전에 시행된 향약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보민향약은 <향회조규>에서 다루고 있는 결의 주제를 동일하게 명시했다. 이를 통해 1895년 중앙정부가 지방행정 운영을 위해 내린 지침이 보민향약에 영향을 미쳤음을 사료해볼 수 있다. 또한 보민향약에서는 조목에 지역사회에서 민인 사이에 지켜야하는 규율이 아닌, 관의 행정과 관련된 내용을 담은 것을 통해 관에서 향약을 행정업무의 보조책으로서 활용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관찰사 이근호는 보민향약과 함께 중앙정부의 지방통제장치인 오가작통제를 실시하여 군부터 각 가호까지 긴밀하게 연결하고자 했다. 오가작통제는 호적제 보완의 기능, 인보기능, 각종 부세 수납기구의 기능 등 향촌 운영에서 기초 단위로서 역할했다.

행정을 뒷받침해주는 오가작통제가 보민향약에서 시행되고 있는 것은 향약의 행정업무 보조 및 관여가 강화된 중앙에서 내려온 관찰사가 일괄적으로 전라남도 전역에서 지방행정, 교화, 통제에 관한 조목을 담은 향약을 실시한 것을 통해 정부에서 향약을 향촌민들의 자치조직, 규율로서만이 아닌 향촌의 중심적 제도로 인지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전라남도의 사례에만 국한된 한계가 있지만 이를 통해 중앙정부의 정책적 관점에서 향약을 어떻게 활용하고자 했는지 그 단면을 파악할 수 있다.

 

이 글은 필자가 지도한 백지연 <1902년 전라남도 保民鄕約의 시행과 중앙정부의 향촌통치관> 중앙대학교 대학원 석사논문(2021)에서 요약 정리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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