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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 향약의 전범(典範), 김기향약(金圻鄕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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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 향약의 전범(典範), 김기향약(金圻鄕約)
  • 박경하 한국주민자치학회 부설 향약연구원장(중앙대학교 역사학과 명예교수)
  • 승인 2022.09.06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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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하 교수의 향약이야기

조선시대 향촌사회의 자치규약’. ‘향약의 사전적 의미이다. 여기에 바로 이어지는 것은 덕업상권’‘과실상규’‘예속상교’‘환난상휼등 학창시절 역사시간에 달달 외웠던 향약의 4대 강목이다. 다분히 정형화되고 박제화 된 향약에 대한 인식을 바꿔준 것이 바로 조선시대 기층민들의 상부상조 자치조직 촌계이다. 오늘날 주민자치의 한 원형과 단초를 제시해주기 때문이다. 이에 조선시대 향약 연구 전문가로 사단법인 한국자치학회 부설 향약연구원장인 박경하 교수의 향약이야기를 연재한다. 전통시대 향약·촌계를 재조명함으로써 오늘날 주민자치에 주는 의미와 시사점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편집자주]

 

지금까지는 조선후기 향약의 성격과 호남·충청 향약을 고찰하였고 이번 호에서는 영남지역 향약의 전범이 되는 안동 김기향약에 대하여 언급하고자 한다.

18세기 주현향약의 선구를 이루고 난() 후의 향촌사회를 이끌며 그 지표가 된, 그리고 후세에 끼친 지대한 영향력에 있어서는 퇴계와 율곡에 앞서는 북애 김기(金圻, 1547년 명종 2~1603년 선조 36)향약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이 향약은 명실상부한 조선적 향약의 성립을 뜻한다.

1602(선조 32)경 초안되었다고 사료되는 김기향약은 왜란 후 사회의 재건과 사회생활의 지표를 제시한 청사진이었고, 그것은 정확히 사회정세와 역사의 흐름을 반영하고 있었으므로 부인동(夫仁洞)향약·망양정(望洋亭)향약 등 그 후의 모든 향약, 특히 영남지방 향약의 모범이 되었다.

호서·호남에서는 율곡이 청주부사 재임시 제정한 서원향약이 전형이 되어 조선후기 내내 시행되었으며, 영남에서는 퇴계의 예안향립약조가 재지사족들의 상천민에 대한 무궤도한 수탈을 막고 양반들이 지배층으로 솔선수범할 것을 강조하였다. 퇴계의 제자인 김기는 이 향규를 토대로 양반 상천민 모두가 관권에 협조하고 상부상조하는 성격의 향약을 만들었다.

김기향약
김기향약

 

영남지방 향약의 모범 되는 조선적 향약의 성립

김기는 본관이 광산(光山)이고 자는 지숙(止叔)이며 호는 북애(北厓)로 예안(禮安)의 오천촌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병사 김부인(金富仁)이며, 어머니는 영천이씨로 농암 이현보(李賢輔)의 딸이다. 퇴계는 젊은 시절 농암에게 사숙을 했다. 이런 관계에서 김기는 이황의 문인으로 활동했으며 천성이 지극히 효성스러워 부모의 상에 모두 3년간씩 여묘살이를 했다.

임진왜란 때에는 그의 종제 김해(金垓)와 함께 고을 사람들을 모아 의병을 일으키고, 정제장 겸 소모사(整齊將兼召募事, 의병장)가 되어 많은 군량을 모았다. 또 경주의 집경전(集慶殿)에 있던 태조의 어진이 예안의 백동서당(柏洞書堂)에 이안되었을 때 임시로 수호하는 임무를 맡았다.

1597년 정유재란 때에는 안동의 27의사와 함께 화왕산성에 들어가 목숨을 다하여 싸워 공을 세웠다. 1598년 도산서원의 산장(山長)이 되어 퇴계전서의 간행에 힘을 쏟아 그 일을 끝냈다. 1602년 순릉참봉에 제수되었으나 곧 사임하고 고향에 돌아와 이황이 남긴 학문을 강론하면서 후진양성에 전념하였다. 사후에 임진왜란 때의 선무원종공신(武原從功)으로 사헌부 감찰에 추대되었다. 저서에 북애문집北厓文集4권이 있다. 이 김기향약은 북애문집3권에 실려 있다.

북애문집(사진=국립중앙박물관/한국학중앙연구원)
북애문집(사진=국립중앙박물관/한국학중앙연구원)

 

다음에서 김기향약의 특징을 네가지로 나누어 설명하고자 한다.

기존에는 향약 시행에서 상민의 교화를 담당하는 풍헌과 수령의 행정 지휘체계에 속하여 정령을 집행하는 면임은 일원적이었다. 그런데 김기는 약임(約任)과 향임(鄕任)의 분리 이원화를 주장하고 있다. 약임·향임의 분리라는 새로운 주장은 향임에는 지금껏 이족(吏族)들도 취임하는 것이 예사였다. 또 향임과 관아의 아전들과는 밀접한 일상적인 관련이 있어서 그 영향을 받기 쉬웠으므로 약임을 분리시키고 이를 사족이 독점함으로써 교화를 통해 지배하고 그 하위에 위치하는 사무를 담당하는 이족들보다 우위에 서겠다는 사족 층 의향을 수렴하는 동시에 사족 우위를 확보하는 방책을 제시한 것이다.

 

수령권 강화-지역민 모두를 향약 구성으로...‘상하합계’‘합촌경향 뚜렷

둘째, 수령권의 강화이다. 김기는 경재소(京在所)의 입지조건이 소실되어가는 대세를 직시하고 경재소 혁파 이후의 정세에 대비하여 재지사족의 향촌지배를 뒷받침하는 배경으로서 수령권의 강화를 의도하고 향약의 조직과 운용을 수령에게 긴밀히 연계시켰다.

셋째로는 개선된 민중의 처지를 반영하여 거기 상용하는 지배층의 자세를 가다듬었으며 하층민에 대해서도 태장으로만 다스릴 것이 아니라 인정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동향인 금란수(琴蘭秀)별립약조(別立約條)취지를 발전시켰다. 하층민도 같은 천민(天民)이니 권규길흉을 같이하면서 그들을 이끌어가야 하며, 약법의 준행은 사족이 솔선수범해야 효과가 있다는 각성에서 사족의 솔선을 주창하는 동시에 왜란 후의 특색인 지역사회의 전원을 향약의 구성원으로 포함시켰다. 이와 아울러 새로 하층민들이 준행할 하민약조(下民約條)’를 마련한 것은 큰 특징이다.

조선전기 향약의 실시는 전국적인 경향은 아니었으며 양반들은 자신들의 권익보호의 형태를 띤 향규나 족계 등을 통하여 생활하였다. 아울러 민간에서의 상천민들은 고래로부터의 향도계 등으로 불리는 인보조직 등을 통하여 상호부조·상호규검하는 생활을 영위하여 왔다.

그러나 이러한 생활이 임진왜란을 분수령으로 하여 변화를 보이기 시작하였다. 즉 임란 후의 향약에서는 양반들의 상계(上契)’와 상천들로 구성된 하계(下契)’를 합친 양반·상천이 함께 참여하는 양반중심 상하합계형태의 동약 등장이 그 특징이었다. 조선전기에 감사나 수령들의 주도로 시행되던 향약보다는 주로 관직에서 물러나 향촌에 거주하고 있던 퇴관자나 벼슬을 하지 않고 향촌에 세거하고 있던 사족들에 의해 주도하는 상하합계형태의 동계들이 출현하였던 것이다.

같은 시기에 대표적으로 정탁은 예천에서 양반과 상민이 함께 참여하는 1602<고평동 동계>을 입약하여 운영하였다. 임란 직후 상하합계의 경향은 봉화안동임실자인합천달성영해 등 피해를 많이 입었던 영남 대부분의 지역에서 뚜렷하게 나타났다.

왜란을 겪으면서 인명·재산의 손실 속에서 서로 삶을 부지하기 위해서는 자생적으로 여러 마을을 한 동으로 합촌하여 서로 돕지 않고서는 살아가기 어려운 형편이었다. 그리하여 대구를 비롯하여 울진·진주·의성 등지에서도 이웃 마을과 합촌하여 향약을 실시하였다. 특히 진주의 경우는 임란 전 112개리에서 임란 후 53개리로 통폐합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황폐화된 촌락을 재건하기 위해서 상하귀천(上下貴賤)을 막론하고 합력하여야만 했다.

하인약조. 위 내용에서 상천민은 남녀 모두가 참여했음을 알 수 있다.
하인약조. 위 내용에서 상천민은 남녀 모두가 참여했음을 알 수 있다.

 

임란 후 황폐화된 촌락 재건 위해 양반-상천민 협력 요구돼

넷째로는 공동체적 관계로서의 협동이 권장되었다. 이는 전란으로 인한 많은 인명 손실로 말미암아 일손을 많이 필요로 하는 농업을 본으로 삼는 공동생활 속에서 나올 수 있는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러므로 상하합계를 이루는 상황은 전란의 피해에서 뿐만 아니라 공동의 노력으로 극복하여 나가야 할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도 강조되었다.

연대책임에 의한 부세(賦稅)의 확보, 치안의 유지는 당시로서는 효과적 방도일 수 있었고 또 안정된 재생산 조건의 확보를 위해서도 상부상규하는 전통인 이웃돕기나, 마을 전체를 가족시하는 공동체적 관념이 권장되었다.

이러한 특징을 갖는 김기향약은 특히 영남지방에서 재지사족의 향촌지배를 위해 시행되었고, 특히 18세기에는 수령들이 향촌 통치를 위해 시행한 주현향약의 전범으로서 활용되었다.

 

사진 제공=박경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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