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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자치 빠진 한국의 지방자치, 제대로 하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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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자치 빠진 한국의 지방자치, 제대로 하고 있나
  • 전영평 대구대학교 명예교수
  • 승인 2022.09.06 15: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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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평 교수의 자치이야기

한 국가의 지방자치가 제도적 분권에만 치우친 나머지 관공서 간 분권으로 정착하고, 지방자치의 몸통이며 실체인 주민자치를 구현해 내지 못한다면 이는 불균형 지방자치로서 비판받아 마땅하지 않을까?

필자는 한국지방자치 30년 역사를 되돌아보면서 왜 한국의 지방자치에서는 주민자치 논의가 소외되면서 분권에 치중된 지방자치의 장점만 나열돼 왔는가에 대해 의구심을 토로하고자 한다. 그 중에서도 한국의 지방자치론자들이 주장하는 지방자치 필요성의 근거에 대해 과연 그러한 주장이 확실한 근거를 가지고 있는가 과연 어디서나 통용될 수 있는 주장인가?’에 대한 의심을 숨기지 않고 제시하면서 그에 대한 냉철한 논의의 단초를 피력하고자 한다.

 

지방자치의 논거를 성찰하자

왜 지방자치가 필요하며 지방자치가 어떤 측면에서 장점을 갖는가에 대한 논의는 지방자치의 도입, 실시, 평가와 직결되는 근본적인 물음이 아닐 수 없다. 거의 모든 지방자치 이론서에서 자치의 논거를 언급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중요성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공통적으로 지적되는 자치의 논거는 크게 민주주의 학습론과 효율성 논의에 집중되어 있다. 이런 현상은 20세기 초중반의 미국지방정치학자들의 논의를 답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지방자치가 자치단체 간 서비스 경쟁을 유발한다는 논거, 지역별 다양성을 증가시킨다는 논거, 창의성을 증가시킨다는 논거, 국가적 안정성이 확보된다는 논거 등이 제시되었다.

그러나 지방자치가 민주주의 학습, 효율성 증대, 경쟁, 다양성 증진에 확실히 기여할 수 있다는 가정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는 문제가 있다. 지방자치 발전과정을 역사를 통해 보거나 작금의 자치 현실을 직시하거나 자치의 기반이 급격하게 변동하고 있다는 관점에서 볼 때, 그러한 근거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필요하다는 것이 필자의 견해이다.

 

1. 민주주의 학습론은 유효한가?

먼저, 지방자치는 민주주의 훈련 교실을 제공하며 시민들은 자치를 통해 민주주의를 학습하며 참여를 증가시킨다는 주장을 검토해 보고자 한다. 물론 지방자치 실시가 민주주의 학습과 시민 참여를 증진시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방자치는 민주주의 학습이 일어날 수 있는 하나의 조건에 해당되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지방자치는 개척과정에서 주민들이 스스로 쌓아 올린 경험적 관행에 의존하는 것이지, 자치제도를 기획 수립하여 주민자치 습관을 유도한 것은 아니다. 한국의 경우에도 1950년대에 선진 외관을 갖춘 자치제도를 도입한 적이 있으나(예컨대 읍면장 직선제 도입) 이 제도가 주민의 민주주의 의식 발전에 기여하였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그 당시 지방자치 실시는 한국 민주주의가 제대로 정착하는 데 장애(지방자치 선거의 혼탁과 부패로 인한 민주주의 왜곡현상)가 되었다고도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은 지난 20년간 비약적인 민주주의 발전을 경험하였는데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독재정권에 대한 학생 및 시민들의 투쟁을 통해 획득된 것이지, 지방자치 제도의 실시를 통해 얻어진 것은 아니었다. 최근까지 집권국가 형태를 유지해온 프랑스의 경우에도 민주주의 학습이 부족해서 분권국가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다.

따라서 미국의 자치 관행, 프랑스의 자치제 도입, 일본의 분권화,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과정에 대한 통찰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자치 제도의 실시는 민주주의 학습과 발전에 결정적으로 기여하는 요인이라기보다는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제도적 요인의 하나에 해당하는 것이라 하겠다.

최근 한국을 비롯한 주요 국가들이 공통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고등교육의 보편화, 정보통신을 통한 열린 의사소통의 진화, 그리고 국경을 넘어 이동하는 자본과 인간의 세계화는 지방자치에 의한 민주주의 학습 논의를 매우 무색하게 하고 있다. 비교적 덜 근대화된 농업시대 및 산업시대 기간에 일정 지역을 중심으로 주민들이 자기 이익을 지키기 위해 자율적으로 참여하던 시대의 자치 의미는 탈산업시대의 급변하는 상황에서의 자치 의미와 다를 수밖에 없다.

현 시대의 주민은 자기 주소지와는 다른 장소에서 직업을 갖거나 생활하는 경우가 매우 빈번하며, 자주 주소지를 옮기는 것이 일상적이기 때문에 주소지 중심의 자치행정, 주민참여에 대한 지속적 관심이 적으며 기껏해야 선거나 민원사항이 있을 경우에만 선택적으로 접촉한다.

미국의 경우에도 소수의 소규모 지역에서 직접주민참여가 이루어진 경우가 있으나 이 조차도 참여율이 매우 저조하고 이해관계자 중심의 참여가 되어 거의 효과가 없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의 경우에도 혐오시설배척, 선호시설유치 등의 경우에 주민참여(집단민원형 참여)가 폭증하는 경우가 있으나 이러한 형태의 주민참여가 제대로 된 민주주의 학습과정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제도화로서 지방자치 혹은 분권화가 주민의 민주주의 학습에 기여하는 부분은 이제는 매우 미미한 정도라고 봐야 할 것이다.

 

2. 지방자치는 효율적인가?

지방자치를 실시해야 하는 또 다른 근거로 제시되어 온 가치는 효율성이다. 지방자치를 실시함으로써 중앙집권시대의 획일적 행정에서 오는 비효율을 제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분권화된 자치지역은 스스로의 정책 결정과 집행을 통해 주민서비스 제공의 효율성을 증진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주장이 갖는 이론적 타당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국가권력의 분권화를 대기업의 분권화와 혼동해서는 곤란하다.

대기업의 경우 규모가 방대할 경우 하부 단위에 재량권과 책임을 나누어 주는 분권을 실시하여 효율성을 도모한다. 하지만 대기업 운영과 국가체제 운영은 그 원리가 확연히 구분된다. , 대기업의 분권은 하부기관에의 권한과 책임 위임으로 그치는 것이며, 하부기관의 존치와 운영에 대한 최종적인 통제권은 기업 최상부가 장악하고 있다. 예컨대 삼성전자의 조직 분권은 효율적인 관리를 위한 분권이며 이런 식의 조직 분권을 통해 얻어지는 이익 또한 전체의 이익에 포함될 뿐이다.

한편, 지방자치제도를 통한 국가권력의 분권화는 삼성전자의 회사 내부 분권화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그 맥락과 내용이 다르다. 우선, 분권화된 조직(지방정부)의 권력 담당자, 즉 지방정치인은 주민의 선거에 의해 선출된다. 지방정치인들은 대체로 4년 임기로 공직을 수행하며 재당선된다는 보장도 없다. 이들은 임기 중에 독자적으로 각종 정책 사업을 결정하고 집행할 수 있으며 이들이 하는 일은 주민의 생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하지만 이들의 정책 실험이 실패로 돌아가더라도 임기 이후에 책임을 지는 경우는 없다. 대기업과는 달리 지방정치인들은 엄밀한 평가를 받지 않는다. 이들은 거의 독자적인 지방공화국의 지배 계층으로서의 지위를 갖는다. 따라서 국가권력구조를 분권화해 자치체를 구성하는 것과 대기업이 분권화된 팀을 갖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다.

지속적인 평가를 받는 대기업의 분권조직은 오로지 효율성을 증명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겠지만, 분권화 된 지방자치단체는 그럴 필요를 거의 느끼지 않는다. 모든 정치가 그러하듯이 지방의 정치도 정치적 타협, 이익의 분배, 엘리트 집단의 정책 독점이 일상화된다. 특히 자치단체장을 중심으로 한 권력 집중, 지역 토호들의 끈질긴 개발요구, 선심성 사업의 남발, 지방의회 및 공무원의 역량 부족, 지역 언론 및 시민단체의 통제력 부족, 주민 참여의 실종 등 각종 부조리한 지방정치의 현실은 지방자치단체가 과연 어떻게 효율성을 추구할 수 있는가에 대해 의심케 한다.

물론 이러한 현상을 지방자치로 인한 문제라고만 할 수는 없다. 중앙집권시대 임명직 단체장 시절의 지방행정과 마찬가지로 지방자치시대의 자치 행정도 효율성을 추구할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은 없다는 것이다.

 

3. 지방자치는 경쟁을 촉발하는가?

지방자치단체에게 포괄적 자치권한이 부여(분권이 강화)되면, 자치단체 간 경쟁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것이며 이에 따라 주민선택권과 주민서비스의 개선이 이루어 질 수 있다는 주장도 자치 강화를 위한 강력한 논거가 되고 있다. 자치입법권, 자치재정권, 자치조직권, 자치행정권 등 자치 4권이 확고하게 보장되면 거의 모든 측면에서 지방정부의 활력이 증가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리며, 이는 지방정치인으로 하여금 타 자치 지역과의 치열한 경쟁을 촉발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설이다.

이 가설의 전제는 분권강화론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서 분권이란 자치단체라는 법인에 대한 분권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지방정치체인 자치단체에게 입법행정에 관한 재량권을 부여하여 지방정치인 주도의 지역 활성화와 서비스 경쟁을 추진하도록 유도한다는 것이 경쟁촉발론의 핵심 논지라 할 수 있다.

엄정하게 말하면, 이 주장은 주민자치론이 아니라 단체자치론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 주장은 결국 선관후민(先官後民)의 분권론이 될 수밖에 없다. 물론 경쟁 기획의 과정에 주민을 참여시키게 된다고 주장할 수 있으나 결국은 관에 의해 선택된 주민, 혹은 이해당사자 들이 정책 들러리를 서게 됨으로써 자치의 본래 의미는 거의 희석된다.

하지만 이러한 지방분권강화론도 경쟁 촉진을 통해 지방 활성화 및 주민 편익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좁은 범위에서 지방자치실시의 명분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지방정부의 증가된 권한과 재정이 제대로 된 단체 간 경쟁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이를 매개하는 지방정치인, 공무원, 주민 사이의 거버넌스 체제, 그리고 당해 지역의 제반 상황이 잘 구비되어있어야 한다. 또한 자치단체 간 합리적 경쟁을 위한 외부 조정의 틀도 마련돼야 한다. 이 둘 중에서 보다 중요한 것은 자치단체 내부의 경쟁 역량을 어떻게 확보하는가이다.

 

4. 지방자치는 다양성을 촉진하는가?

지방분권의 강화는 저마다 특색 있는 지방사회 형성을 가능케 하여 국가사회 내부 다양성을 증가시킨다는 주장이 가능하다. 그러나 지방사회의 다양성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분권강화론이 말하는 다양성의 의미가 무엇을 지칭하는지는 다소 불분명하다. 이에 필자는 지방사회의 다양성이 의미하는 바를 크게 1)지방정치행정체의 다양성 2)지방정치행정체는 그대로 두되 지방정치체의 제도와 정책 선택의 다양성 3)지방사회의 문화적 다양성 등으로 나누고자 한다.

만일 어떤 분권론자가 지방정치제의 다양성을 지방사회의 다양성으로 본다면 그것은 자치제도의 다양성에 해당하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처럼 행정자치구, 교육자치구, 특별자치구 등 다양한 자치구를 설립한다든가 지방행정자치체 형태도 카운티, 타운, 타운십 등으로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그것이다.

두 번째, 지방정치체의 제도 및 정책 선택의 다양성이란 자치단체가 입법, 재정, 사무, 조직 등에 있어서 자기 책임 하에 자유로운 선택을 하도록 함으로써 다양한 형태의 자치가 이루어지는 상태를 말한다. 하나의 자치단체 내에서 법과 동등한 수준의 입법권을 행사하게 한다든가 각종 조세권을 허용한다든가 개발사업 보존사업에 관한 포괄적 정책을 수행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세 번째, 지방문화의 다양성이란 첫 번째, 두 번째의 다양성이 작동함으로써 얻어지는 지역사회의 문화적 독특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 세 가지 다양성 중 어떤 것을 다양성으로 지칭하든 분권강화가 자동적으로 지방사회의 다양성을 가져오리라는 보장은 없다는 것이다. 현 시대의 지방사회의 다양성은 지방정치체나 행정서비스의 다양함에서 초래되기보다는, 주민의 행동 및 생활 패턴, 기업 등 민간 부문의 다양화, 정보 접촉 증가, 이동성 증가, 비영리부문의 성장 등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훨씬 타당성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주민자치에 주는 시사점

이상과 같이 필자는 지방자치와 관련된 4가지 논거에 대해 다소 냉정하게 비판적 성찰을 하였다. 이를 통해 필자는 지방자치제의 실시가 민주주의 학습, 효율성, 경쟁 촉진, 다양성 증가를 반드시 초래하는 기제가 아님을 주장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필자가 중앙집권제가 그러한 가치를 더욱 잘 보장한다는 논리를 지지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필자가 주장하는 바는, 현 시대에는 자치제도의 엄격한 구축이나 지방분권의 강화를 통해 이런 가치가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제도보다 더 심층적인 분야인 자치 기반의 변화에 의해 이런 가치들이 구현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세계화, 민주화, 정보화, 교통수단, 지식수준의 급진전으로 인하여 자치의 핵심 주체인 주민의 이동 범위와 의식수준이 지역 경계 보다는 국가와 세계 경계로 확장되고 있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특히 현시대의 주민은 부의 축적에 몰두하는 경향이 있어 정치나 행정적 이슈에 대한 관심이 매우 적다. 또한 현대의 주민은, 엘빈 토플러가 혁명적 부(Revolutionary Wealth)’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이, 시간의 준거를 동시화로, 공간의 준거를 고부가가치 공간으로 인식하는 성향이 있으며 지식에 의한 부의 창출을 추구하는 성향이 있어서 구태의연한 정치나 고답적인 행정에 기대하는 바가 매우 적게 되었다.

따라서 이제는 지방자치 및 분권화 강화를 위한 제도의 설계 보다는 자치기반의 변화를 민감하게 이해하는 일이 선행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주민자치 운동에 집중하고 있는 집단과 세력에게도 자신의 활동을 회고 성찰하면서 향후 비전과 전략을 재정립하는데 큰 시사점을 준다. 급변하는 국내외 환경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주민의 개인행동 요인에 대한 냉철한 분석이 선행되어야 제대로 된 주민자치의 기획과 실천이 성숙한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합리적 이유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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