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16:55 (금)
우리 지역사회에 솔직한 그들이 온다면 ‘정직한 후보’
상태바
우리 지역사회에 솔직한 그들이 온다면 ‘정직한 후보’
  • 윤성은 영화평론가
  • 승인 2022.10.24 10: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마을, 사람들 그리고 영화
Town in Movie

많은 영화의 배경이 마을이다. 영화 주인공들의 삶의 터전 역시 그들이 사는 마을이고 동네이기 때문이다. 스크린 속 인물들은 배경이 되는 마을, 그리고 이웃들과 때로 갈등하고 협력하며 여러 이야기들을 만들어나간다. 그 이야기의 결말은 해피엔딩이 되기도 하고 비극으로 치닫기도 한다. 앞으로 마을, 사람들 그리고 영화에서는 마을과 사람들의 케미스트리, 그들 사이의 교감과 성장, 변화를 다룬 작품들을 소개한다. 그 속에서 주민자치의 바람직한 방향, 때로 반면교사의 깨달음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편집자 주]

 

* 영화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20212, 현재로서는 국내 최고 권위의 시상식이라고 할 수 있는 청룡영화상 시상식이 열렸다. 코로나 이슈로 세 달이나 늦게 치러진 그 해 시상식에서 가장 큰 이변으로 불리며 화제가 되었던 것은 여우주연상 수상자였다. ‘정직한 후보’(감독 장유정, 2019)의 라미란이 윤희에게’(감독 임대형)의 김희애, ‘82년생 김지영’(감독 김도영)의 정유미 등 쟁쟁한 후보들을 제치고 트로피를 거머쥐었는데, 코미디 장르에서 주연상 수상자를 내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기 때문이다.

라미란은 시상자가 자신을 호명하자 정직한 후보의 주인공 주상숙처럼 직설화법으로 저한테 왜 이러세요. (중략) 왜 상을 주고 그러세요.”라는 말로 수상소감을 시작했다. 자신에게 상을 준 것은 어려운 시기에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던 부분에 의미가 컸을 거라는 내용이었다.

저한테 왜 이러세요. 왜 상을 주고 그러세요코미디 장르로 드물게 여우주연상

라미란의 말처럼 정직한 후보는 대부분의 한국 상업영화들이 개봉을 기피하던 20202월에 개봉해 약 153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거짓말을 일삼던 국회의원 후보가 할머니의 기도로 마음 속에 있는 말만 하게 되면서 곤경에 빠진다는 내용이다.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이 작품은 동명의 브라질 영화(‘O Candidato Honesto’(감독 로베르토 산투치))를 리메이크한 것으로, 브라질 원작은 2014년 개봉 당시 흥행 1위를 기록할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는 브라질의 정치적 상황과 연결시켜 볼 수 있는데, 군부독재가 계속되던 브라질에서 2003년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며 국민 영웅으로 떠올랐으나 그 또한 많은 부정부패 의혹에 휩싸이면서 정치인들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치솟았기 때문이다.(룰라는 9월말 현재 이번 브라질 대선에서 다시 당선될 것이 유력하다) 유감스럽게도 정치인들이 거짓말을 일삼는다는 것은 불편한 진실이 되었고, ‘정직한 후보는 브라진 국민들에게 현실을 날카롭게 반영한 나름의 블랙코미디로 받아들여졌다.

공인들의 거짓말, 두 얼굴은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장유정 감독 또한 한창 선거 유세 중인 정치인이 소위 진실의 입을 갖게 되었을 때 벌어질 상황들에 매력을 느껴 영화를 리메이크하게 되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여기서 주목해 볼만한 것은 브라질 원작에서 한국 영화로 넘어올 때 각색된 부분들이다. 국가를 하나의 거대한 커뮤니티로 본다면 각본이 국경을 넘을 때는 반드시 캐릭터 및 서사가 그 지역의 관객들이 수용할 수 있도록 변형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선, 전반적인 세팅에서 브라질 원작은 주인공을 남성 대통령 후보로 설정한 반면 한국에서는 대통령 선거보다 규모가 작은 국회의원 선거를 배경으로 했고, 주인공을 여성으로 바꾸었다는 차이점이 있다. 한국에서 여성 정치인들의 숫자와 영향력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 각색이었을 것이다.

 

브라질 영화 리메이크한국 상황에 맞게 각색-주인공 성별지위설정 변화

3선 국회의원이자 4선에 도전하고 있는 주상숙’(라미란)은 아침부터 밤까지 거짓말을 능청스럽게 쏟아내는 부패한 정치인이다. 청년 시절에 약자를 대변하는 인물로 서민들의 지지를 받아 국회의원 배지까지 달게 되었지만 어느 새 그녀는 권력을 위해 모든 것을 불사하는 인물로 변해 있다. 이제는 거짓말에만 능숙한 것이 아니라 그녀의 삶 자체가 거짓이라고 해야 할 만큼 그녀는 낡은 주공아파트와 수영장 딸린 저택을 오가며 이중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고의는 아니었지만 주상숙의 가장 반인륜적인 거짓말은 십여 년 전 의미심장한 쪽지를 남기고 잠시 사라졌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발표한 것인데, 돌아온 할머니는 이후 인적이 드문 산 속에 숨어서 생활하고 있다. 원작과의 차이점도 여기서 두드러진다. 원작의 주인공이 거짓말을 못하게 된 것은 그가 죽음을 앞둔 할머니를 찾아갔다가 생긴 일이지만 주상숙은 손녀를 위해 말 그대로 숨죽이며 살고 있는 할머니를 방문한 후 할머니가 쌓아놓은 돌탑을 지나가다가 생긴 일이다.

영화 후반부 대사에 등장하듯이 할머니가 죽었다는 거짓말은 한국 사회에서 절대 용납될 수 없는 것이므로, 할머니의 두 번째 죽음은 주상숙에게 정치인생의 무덤이 될 만큼 거대한 장애이며 영화의 마지막까지 서사의 중요한 요소로 작동한다. 과거 민심을 움직여 주상숙을 국회의원으로 만들었던 할머니의 거짓 사망이 부메랑으로 돌아와 현재 주상숙의 모든 것을 앗아갈 수 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유교적 가치관이 뿌리 깊게 박혀 있는 한국에서 적절한 각색이 아닐 수 없다.

지난 달 말에 개봉한 정직한 후보 2’는 서울시장 선거에서 패배의 쓴 맛을 본 주상숙이 강원도지사가 되면서 생기는 일들을 다루고 있다. 1편에서 주상숙이 4선을 노렸던 현탄시는 가상의 공간으로 수도권의 신도시라는 점만 짐작할 수 있었는데, 2편은 강원도라는 실제 지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흥미로운 것은 원작이 한국에서 각색될 때와 마찬가지로 공간의 변화가 1편과 2편 사이의 다양한 차이를 이끌어냈다는 점이다. 1차 산업에 종사하는 인구가 많은 어촌에서 주상숙은 동네 주민들과 육체노동을 한다. 그녀는 한 청년이 타고 있던 트럭이 바다에 빠지자 잠수복을 입고 들어가 그를 구출해내게 되고 이 일로 단박에 강원도지사 자리를 꿰찬다.

초심으로 돌아간 주상숙은 청렴하고 성실하게 이전 사업들을 검토해 보려 하지만 더딘 행정으로 지지율이 떨어지자 결국 현실과 타협하면서 3선 의원으로서 부귀영화를 누렸던 때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만다. 그녀는 지역 현안인 일자리 창출도민 주거 안정의 해법으로 동해 앞에 초고층 랜드마크 르강원 팰리스의 건설을 허가한다. 랜드마크 건설은 강원도의 관광객 유치를 위해서도 매력적인 프로젝트지만 무엇보다 시각적으로 표 나는 도지사의 치적이라는 점이 기저에 깔려 있다.

이후 막대한 예산을 들여 우스꽝스런 황금오징어상을 바닷가에 세우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관객들의 예상대로 르강원 팰리스에는 처음부터 사기꾼들과 투기꾼들이 개입되어 있었을 뿐 아니라 공사 과정에서 해양생물에 유해한 물질을 바다로 흘려보내 환경오염까지 일으켰음이 밝혀진다. 경기도 국회의원이 아닌 강원도지사 주상숙은 가장 부패한 상태에서 다시 한 번 할머니의 음성을 듣는다. 그녀가 1편의 산과 대비되는 공간, 즉 오염된 물고기들이 떠다니는 바다 속에서 진실의 입을 갖게 된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1편 가상도시-2편 실제지역서 펼쳐지는 정치인의 거짓과 정직의 파노라마

주상숙이 추진하는 북한과의 공동행사도 강원도의 풍경을 잘 보여준다. 군사분계선을 두고 북한과 접해 있는 강원도는 한반도 전체의 평화를 위해 북한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 주상숙은 계속 말을 바꾸며 행사를 어렵게 만드는 북한 고위급 관계자들에게도 솔직한 입담을 발휘한다. 북한을 도발하는 강원도지사라니, 따지고 보면 공포스런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혹자에게 정직한 후보시리즈는 단순히 킬링 타임용 영화일지 모르지만 이처럼 각본을 찬찬히 뜯어보면 커뮤니티의 특성에 따라 변주시킨 서사와 디테일의 아이디어가 곳곳에 빛난다. 많은 관객들이 이 시리즈를 관람한 것도 현실적 요소들과 코믹한 요소들이 적절히 맞물려 있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한편, 브라질 원작 정직한 후보1997년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진 라이어 라이어’(감독 톰 새디악)를 표절했다는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라이어 라이어에는 정치인이 아니라 소송에서 이기기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질 변호사가 등장하는데, 가족들에게까지 거짓말을 반복하던 주인공이 아들의 기도로 진실만을 말하게 되면서 인생관이 달라진다는 할리우드식 가족주의가 영화의 뼈대를 이룬다.

여기서 표절에 대한 시시비비를 가리는 일은 차치해 두자. 사적 드라마에 무게 중심이 있었던 영화가 사회적 문제를 아우르는 영화로 탈바꿈된 것 또한 시대별 지역별로 당면한 문제가 다름을 시사한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한국에서 정직한 후보시리즈가 계속된다면 다음에는 어떤 지역을 배경으로 어떤 이슈를 들고 나올까. 가장 바람직한 것은 정치인들이 공공연한 거짓말을 한다는 사실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회가 되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사진=NEW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공공성(公共性)’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연구세미나95]
  • 문산면 주민자치회, 주민 지혜와 협의로 마을 발전 이끈다
  • 제주 금악마을 향약 개정을 통해 보는 주민자치와 성평등의 가치
  • 격동기 지식인은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연구세미나94]
  • 사동 주민자치회, '행복한 끼'로 복지사각지대 해소 나서
  • 남해군 주민자치협의회, 여수 세계 섬 박람회 홍보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