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16:55 (금)
상주 남촌향약의 성격
상태바
상주 남촌향약의 성격
  • 박경하 향약연구원장(중앙대 명예교수)
  • 승인 2022.11.22 09: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경하 교수의 향약 이야기

조선시대 향촌사회의 자치규약’. ‘향약의 사전적 의미이다. 여기에 바로 이어지는 것은 덕업상권’‘과실상규’‘예속상교’‘환난상휼등 학창시절 역사 시간에 달달 외웠던 향약의 4대 강목이다. 다분히 정형화되고 박제화 된 향약에 대한 인식을 바꿔준 것이 바로 조선시대 기층민들의 상부상조 자치조직 촌계이다. 오늘날 주민자치의 원형과 단초를 제시해주기 때문이다. 이에 조선시대 향약 연구 전문가로 사단법인 한국주민자치학회 부설 향약연구원장인 박경하 교수의 향약이야기를 연재한다. 전통시대 향약·촌계를 재조명함으로써 오늘날 주민자치에 주는 의미와 시사점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편집자주]

 

상주에는 조선시대에 시행한 남촌향약, 노동향약, 낙사계, 상주향약 자료가 남아 있다. 이번 호에서는 그 중 우선 4개면에서 시행된 남촌향약을 살펴보고자 한다.

남촌은 경상북도 상주 남쪽에 있는 청남청동(지금의 청리면) 외남내남(지금의 외남면)4개 면을 말한다. 이 지역에서 시행된 향약 규약이 옥성 서원(현 외남면 신상리)에 보관되어 오다가 창석 이준의 종가로 옮겨져 보존되어 있다. 표지에는 <주자증손향약(朱子增損鄕約)>이라고 제목이 적혀 있기는 하지만 책의 뒷부분에 있는 이재성(李齋聖)이 지은 기문(記文)을 좇아 통칭 남촌 4면 향약이라 부른다. 기문의 내용에 이 규약의 제정 및 실시 경위가 적혀 있는데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상주 남촌향약, 퇴계 예안향약과 포산향약 정신 계승

<주자증손향약>을 퇴계가 절충하여 <예안향약>을 만들었고 포산(지금의 현풍) 군수 김동명(金東溟)이 다시 증손하여 <포산향약>을 만들었는데, 1634(인조 12)에 김상복(金尙宓) 목사가 상주에 부임하였다. 이때 월간 이전(李典), 수암 유진(柳袗) 등이 주동이 되어 관의 협력을 얻어 상주에 향약을 실시하여 백성을 교화하고 좋은 풍속을 길렀다.

특히 월간 이전은 퇴계의 학통을 서애 유성룡을 통하여 계승한 학자이고 수암은 서애의 친자이니 퇴계 사상의 큰 영향과 아울러 <예안향약>을 그대로 받아 포산 약조와 주자 향약을 종합 제정하였다.

그 뒤 세월이 흐름에 따라 미풍양속이 허물어져 퇴폐하게 되었음을 애석하게 생각하고 상주 남쪽 고을에 사는 뜻있는 동지와 상의하여 월간의 5세 손인 이광(李壙)의 집에서 예전에 실시하던 향약을 얻어 정리하여 다시 실시하였다. 그 편제는 다음과 같은 순서이다.

<주자증손여씨향약>을 기본으로 하고 각 덕목 속에 포산 조약과 퇴계 약조를 첨가하였으며 특히 퇴계가 쓴 서문을 약원들이 매월 1, 15일 두 번씩 모일 때마다 탐독하여 그 정신을 이어받으려고 노력하였다. 이어 포산 향약을 보고 월간이 적은 글과 그 내용을 간략하게 적은 창석의 발문(책의 끝에 그 책에 관하여 적은 글)이 기록되어 후세 사람에게 바른 길을 찾도록 그 정신을 연결시켜 주고자 하였고, 말미에 당시의 상황을 반영한 몇 가지 약조를 새로 정하여 기록하고 있다.

<남촌 4면 향약>은 주자 증손 향약을 근본으로 하고 각 덕목 말미에 <예안향약><포산향약>을 첨부 기록하여 세부조항을 종합적인 내용으로 정비하였고, 뒷면에 매월 회의시의 절차 내용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어 운영방법을 자세히 살필 수 있다.

끝에 월간의 향약 서문에 해당하는 입의(立義), 포산입의, 퇴계의 향립약조서(鄕立約條序), 포산규약지(苞山規約識), 포산규약발(苞山規約跋) 등을 기록하여 향약을 세운 동기와 그 정신을 명확히 표현한 점이 특성이라 할 수 있다.

 

남촌향약, 유교 중심 상하 질서의 의례 그대로시비선악은 허물없이 터놓고 가려

이 향약에서는 특히 약원의 회의 방법 및 내용을 자세히 알 수 있다. 회무를 추진하는 매달 초하룻날 회합을 가진다. 만약 거리 관계로 매월 참가할 형편이 안 되는 경우 거리에 따라 14분기 중에 한 분기에 하루를 특별히 참석일로 정하여 별도로 통지하여 참가하게 하거나 아주 모이기가 불편한 곳에서는 1년 중 1~2회 정도로 회합에 참가 시킬 수 있다. 회의의 당번인 직월은 여비와 회식하는 음식을 준비한다. 회기 첫 달 초하루에는 주과(酒果)와 식사를 준비하고 다른 달의 회합에는 주과는 빼고 식사만 준비할 수도 있다.

모임이 있는 날에는 일찍 일어나 준비한다. 약정, 부약정, 직월이 모두 의관을 갖추고 향교로 모인다. 향교에 모일 형편이 안 될 때에는 다른 조용한 장소를 선정하였다. 북쪽의 벽에 옛 성인이나 훌륭한 유학자의 초상화를 걸어 놓는다. 회의장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동편에 있는 방에서 나이순으로 동편으로부터 차례로 앉는 자리를 정한 다음 인사한다. 약원은 의관을 단정히 하여 동참한다. 유고하여 참석할 수 없을 때에는 하루 전에 직원에게 통보한다. 약원의 자제로 아직 입적이 안 된 자라도 참석을 허용한다. 그러나 회식의 자리에는 동참시키지 않고 별도로 자리를 만들어 간단히 점심을 대접하고 여비 지급은 하지 않는다.

절차에 따라 회의장에 들어가서 격식에 따라 인사하고 절차가 끝나는 대로 직원이 회칙을 낭독하고 부약정은 그 뜻을 새겨 설명하는데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으면 질문을 받는다. 이 때 약원 가운데 선행을 한 사람이 있으면 서로 추천하고 허물이 있었던 사람은 직월이 허물을 캐내어 따지고 밝힌다. 다시 약정이 여러 약원들과 함께 협의하여 반대가 없을 때에는 직월이 그 내용을 각각 기록부에 등재하고 다시 회원의 의사를 물어 이의가 없을 때에는 회의를 마친다.

회의가 끝나면 식사를 하고 잠시 휴식을 한 다음 다시 회의를 속개하여 학문과 도의의 뜻을 강의하고 해석하는 강론과 무예를 단련하기도 한다. 강론을 할 때에는 비록 유익한 것이라도 편벽되고 어지러운 말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며, 중앙의 조정이나 지방 행정의 잘못이나 다른 사람의 과실을 정당하지 않게 말을 지어 내는 자는 직월이 따져서 밝혀 공개한다. 이런 절차를 협의하다가 날이 저물면 회의를 전부 마친다.

이상과 같은 절차에서 형식적인 부분이 많아 유교 중심 사회의 상하 질서의 의례가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향중이 한 곳에 모여 공사명분을 허물없이 터놓고 시비선악을 가려 권선징악을 밝혀 향풍을 순화시킨 점과 학문과 덕행을 기르고자 한 것이 눈에 띈다.

당시의 사정을 반영한 신증약조(新增約條)는 다음과 같다.

 

. 공적인 자리에 나아 가고자, 염치없는 일인 줄 알면서도 엽관 운동을 하는 자

(冒沒廉隅奔競公任者)

. 여러 관청에 자기의 사리를 위하여 출입하는 자

(公廨各廳營私出入者)

. 유생의 의관을 하고 시전의 장사꾼 같은 방자한 행동을 하는 자

(儒衣儒冠慈行市墨者)

. 체면 없이 상한배와 한 패가 되어 명분을 문란하게 하는 자

(押近常漢紊亂各分者)

. 성질이 부박하고 가벼워 학문을 계승하여 숭상하기를 폐기한 자

(廢棄課業專尙浮燥者)

 

위의 사람들은 상··하로 나누어 상벌(上罰)은 관에 고발하여 벌을 받도록 하며, ·하는 정도에 따라 다스린다.

 

남촌향약, 양반들의 자기규제 향규’+상하민 전 대상 주현향약적 성격 융합

<남촌향약><주자증손여씨향약>을 바탕으로 하였으나 신증향약을 보면 퇴계의 <예안향립약조>를 참조하여 양반들의 잘못된 행실에 대한 과실상규 조목들이 신설되었다.

퇴계의 향약은 원래 상촌민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닌 양반들의 하층민에 대한 침탈을 막고 향촌의 유지로서 유교적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양반들을 대상으로 하였기에 주로 향규적 성격의 과실상규 조항이 강조되었다. 동시에 포산 현감으로 상하민 모두를 통치 대상으로 삼은 김동명의 향약도 포함하였다.

결론적으로 상주의 <남촌향약>16세기 이래 양반들이 자기규제를 했던 향규과 17세기 중반의 상하민 모두를 대상으로 한 주현향약의 성격을 모두 갖춘 향약이라 할 수 있다.

 

사진=박경하 제공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공공성(公共性)’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연구세미나95]
  • 문산면 주민자치회, 주민 지혜와 협의로 마을 발전 이끈다
  • 제주 금악마을 향약 개정을 통해 보는 주민자치와 성평등의 가치
  • 격동기 지식인은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연구세미나94]
  • 사동 주민자치회, '행복한 끼'로 복지사각지대 해소 나서
  • 남해군 주민자치협의회, 여수 세계 섬 박람회 홍보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