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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들이 말하는 유년시절의 우리 마을 ‘아마겟돈 타임’ ‘알카라스의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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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들이 말하는 유년시절의 우리 마을 ‘아마겟돈 타임’ ‘알카라스의 여름’
  • 윤성은 영화평론가
  • 승인 2022.12.28 11: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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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사람들 그리고 영화 Town in Movie

많은 영화의 배경이 마을이다. 영화 주인공들의 삶의 터전 역시 그들이 사는 마을이고 동네이기 때문이다. 스크린 속 인물들은 배경이 되는 마을, 그리고 이웃들과 때로 갈등하고 협력하며 여러 이야기들을 만들어나간다. 그 이야기의 결말은 해피엔딩이 되기도 하고 비극으로 치닫기도 한다. 앞으로 마을, 사람들 그리고 영화에서는 마을과 사람들의 케미스트리, 그들 사이의 교감과 성장, 변화를 다룬 작품들을 소개한다. 그 속에서 주민자치의 바람직한 방향, 때로 반면교사의 깨달음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편집자 주]

 

* 영화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감독들이 자전적 이야기를 영화로 만드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유년시절 자신이 살았던 동네의 사회학적 지형도를 그리는 이들이 부쩍 많아진 것은 하나의 징후가 아닐까 싶다.

종교 갈등이 심했던 아일랜드 벨파스트 출신의 케네스 브래너는 아예 지역명을 제목으로 내세운 작품을 만들었고(‘벨파스트’(2021)), 파울로 소렌티노는 마라도나의 나폴리 입성을 지켜봤던 십대 시절의 기억을 영화화했다(‘신의 손’(2021)). 두 사람은 대중들에게 익숙한 이름은 아닐지 몰라도 미학적인 작품을 만드는 연출가로서 신작이 나올 때마다 유수의 영화제에 초대받고 있는 아티스트들이다. ‘그래비티’(2013)처럼 대중적인 영화도 예술로 승화시키는 알폰소 쿠아론 감독 또한 몇 년 전, 어린 시절 멕시코 로마에서 살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2018년에 로마라는 영화를 만들었는데 당시 멕시코의 정치적 격랑이 잘 드러나 있다.

 

유년시절 살았던 동네의 사회학적 지형도 그리는 감독들

 

비열한 거리’(1994), ‘잃어버린 도시 Z’(2016) 등을 통해 국내에도 많은 팬들을 확보하고 있는 제임스 그레이 감독은 넷플릭스의 투자로 자전적 이야기를 선택했다. 뉴욕에서 태어난 그는 고향을 배경으로 여러 작품을 만들었지만 최근에는 아마존(‘잃어버린 도시 Z’)과 우주(‘애드 아스트라’)로 시선을 옮겼다가 다시 40년 전 자신이 살던 마을로 돌아왔다. 우주에서 작은 동네로의 공간적 이동이 극단적으로 보일지 모르나 인터넷이 없던 시절의 어린 소년에게는 아마 마음껏 활보 가능한 마을이 세상의 전부였을 것이다.

지난 11월에 개봉한 두 편의 영화, ‘아마겟돈 타임’(ARMAGEDDON TIME, 제임스 그레이)알카라스의 여름’(Alcarras, 카를라 시몬)도 같은 맥락에서 조명해 볼 수 있는 작품들이다.

카를라 시몬은 장편 데뷔작이었던 프리다의 그해 여름’(2017) 한 편으로 베를린영화제를 비롯한 전세계 영화제에서 무려 38개의 상을 쓸어 담았던 감독으로, 스페인 알카라스에서 복숭아 농사를 짓던 할아버지 가족을 모티브로 알카라스의 여름을 만들었다.

 

특권의식우월감 가득 찬 위선적 또래들과 어울릴 것인가 인종차별에 항거할 것인가

 

아마겟돈 타임은 러시아계 유대인으로서 뉴욕에서 정착한 감독의 가족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작품이다.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이자 예술가를 꿈꾸는 ’(뱅크스 레페타)은 나쁜 심성을 가진 아이는 아니지만 여느 또래보다 말썽꾸러기임에는 분명하다. 그는 보수적이고 때로 폭력적이기까지 한 아버지의 가정교육에도, 위계와 질서를 중요시하는 학교 분위기에도 적응하지 못하고 내적인 방황을 계속한다.

폴은 가난한 흑인 소년 죠니와 친해지는데 그는 사회의 편견 및 어려운 가정환경 때문에 억눌린 분노를 종종 거칠게 표현해 교사들의 미움을 사는 유급생이다. 중산층 가정에서 엄격한 교육을 받고 있는 폴은 자신에게 허락되지 않은 죠니의 자유로움을 부러워하는 한편, 인종차별로 인해 그에게 가중되는 처벌에 불합리함을 느낀다. 둘은 나름의 일탈을 함께 하며 우정을 쌓아가지만 죠니가 학교에 가져온 대마초를 피우다가 발각되는 사건을 계기로 폴이 사립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자 점차 관계가 소원해진다.

폴은 너무나 사랑하는 할아버지까지도 사립학교에 가는 것이 좋겠다고 권유하자 눈물을 머금고 교복을 입는다. 명문대 진학을 목표로 하고 있는 사립학교 아이들은 짐짓 교양 있는 척 행동하지만 그들 사이에도 인종차별이 팽배해 있는 것은 매한가지다. 폴은 특권의식과 우월감으로 가득 찬 또래들의 위선에 놀라면서도 그들에게 따돌림 당하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에 혼란스러워한다. 그는 죠니와 계속 친구로 남기 위해 전쟁을 치를 것인지, 사립학교 아이들과 어울리며 조용히 지낼지 결정해야만 한다.

 

당장 가정과 학교에 순응하며 살 것인가 집을 나올 것인가

 

아마겟돈은 요한계시록에서 사탄과 하나님의 마지막 전쟁 장소로 명명된 곳으로, 종종 세상의 종말에 있을 인류 최후의 전쟁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감독이 바라본 1980년의 미국은 이렇게 무서운 단어가 어울릴 만큼 끔찍한 해였을까. 이는 영화에 직접적으로 언급되는 미국정치사, 즉 로널드 레이건의 대통령 당선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1970년대 미국은 베트남전 패배와 석유파동, 인플레이션 등으로 골머리를 앓았고, 규제완화 및 자유 시장을 옹호하는 목소리들이 커져갔다. 공화당 후보였던 레이건의 당선은 바로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의 결과였으며 보수주의, 물질주의, 소비주의, 신자유주의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유럽에서 이주한 폴의 가족들은 레이건의 당선 소식에 종말이 온 듯 탄식한다.

폴에게는 대통령이 누가 되느냐보다 당장 가정과 학교에 순응하며 살 것인지 집을 나올 것인지 결정하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그러나 십대에게 그런 결단은 자신의 인생을 걸어야 할 만큼 중대하고, 치열한 내적 갈등을 거친 후에야 가능한 것이라는 의미에서 미시적 아마겟돈 타임이라 할 수 있다.

영화 제목이 먼저 정해졌을 테지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06, 러시아의 핵 위협에 대해 아마겟돈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이 영화와도 전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지난 40년간 국경은 무의미해졌고, 지구 반대편의 아포칼립스까지도 곧바로 우리의 현실이 되었기 때문이다. 제임스 그레이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다행히, 혹은 아직, 인류가 멸망하지는 않았지만 최후가 될 지도 모르는 전쟁은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수십 년간 계속되고 있음을 말하고자 했던 게 아닐까.

 

땅을 갖지 못한 농부들이 막을 수 없는 시대의 흐름

 

분주하고 번잡한 뉴욕과 달리 평화롭고 한적해 보이는 알카라스에도 시름은 있다. ‘알카라스의 여름은 아름다운 복숭아나무들이 한가로이 바람을 맞고 있는 과수원의 전경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카메라는 곧 집 안으로 들어가 키메트’(조르디 푸홀 돌체트) 일가가 당면한 비극을 알려준다.

이들은 세계대전 당시 조상들이 지주를 살려준 보답으로 땅을 받아 대대로 농사를 지으며 살아왔는데 소유권에 대한 계약서가 없어 지주의 후손에게 쫓겨날 위기에 놓여 있다. 농업을 천직으로 여기는 키메트는 젊은 지주가 과수원 자리에 들여올 태양전지 사업에 고용하겠다고 해도 역정만 낸다.

그는 동료들과 함께 유통 업체에 복숭아 가격을 올려달라는 데모를 하기도 하고, 태양전지 사업에 동조하는 이들을 혼내주기도 하며 지주에게 저항한다. 그러나 보란 듯이 불도저는 나무를 쓰러뜨리며 집 앞까지 들어오고 만다. 그것은 땅을 갖지 못한 농부들이 막을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었다.

 

3대가 함께 하던 여름날의 추억은 거대 자본의 그림자 아래로

 

감독의 유년 시절 경험이 깔려 있는 만큼 영화는 대가족 중에서도 주로 십대 남매인 로제르’(알베르트 보쉬)마리오나’(세니아 로제트), 그리고 5-6살 정도로 보이는 이리스’(아이네트 주누)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이들은 키메트와 각각 다른 갈등을 빚게 되는데, 4대가 피땀 흘려 일구어온 농장을 빼앗기게 된 키메트가 분노를 외부로 투사하면서 폭력적인 성향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농부로서 키네트에게 인정받고 싶은 장남 로제르는 칭찬은커녕 농사보다 공부를 잘해야 한다는 키메트의 말에 일탈을 하고, 마음 여린 마리오나는 태양전지 사업에 관심을 보이는 고모 부부와 키메트의 사이가 틀어진 것에 상처를 받는다. 천진한 이리스는 언젠가부터 어른들이 쌍둥이 사촌들과 못 놀게 하는 것이 속상하다. 그러는 사이에 3대가 함께 복숭아를 따고, 음식을 나누고, 물놀이를 하던 여름날의 추억은 자본의 거대한 그림자 아래로 사라져간다.

알카라스의 여름의 마지막 신들은 감독들이 왜 어린시절 이야기를 꺼내드는지에 대한 모범답안과도 같다. 기어코 땅을 빼앗기게 된 키메트는 그 동안 참아왔던 눈물을 터뜨린다. 그 동안 아이들, 형제들과 갈등을 빚어왔던 것은 결국 지켜내지 못할 땅에 대한 미안함과 절망감 때문이었던 것이다.

온 가족이 지켜보는 앞에서 알카라스의 복숭아 농장 시대는 끝이 난다. 멀리서 과수원이 망가지는 모습을 비추는 부감 샷은 참담할 정도다. 그러나 이리스와 쌍둥이들이 뛰어다니는 소리만큼은 화면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아마겟돈 타임에서 학교 축제를 혼자 조용히 빠져나오는 폴을 마지막 샷으로 보여준 것처럼 이 영화도 다음 세대에게 어떤 앞날이 기다리고 있는지 묻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에게 소중했던 가치와 환경의 유산을 아이들에게도 물려줄 수 있기를 바라게 만드는 작품들이다.

 

사진=유니버설픽쳐스/영화사 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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