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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근대적 의료보험’ 강릉 약국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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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근대적 의료보험’ 강릉 약국계
  • 박경하 한국주민자치학회 부설 향약연구원장(중앙대학교 역사학과 명예교수)
  • 승인 2022.12.28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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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약이야기

조선시대 향촌사회의 자치규약’. ‘향약의 사전적 의미이다. 여기에 바로 이어지는 것은 덕업상권’‘과실상규’‘예속상교’‘환난상휼등 학창시절 역사시간에 달달 외웠던 향약의 4대 강목이다. 다분히 정형화되고 박제화 된 향약에 대한 인식을 바꿔준 것이 바로 조선시대 기층민들의 상부상조 자치조직 촌계이다. 오늘날 주민자치의 한 원형과 단초를 제시해주기 때문이다. 이에 조선시대 향약 연구 전문가로 사단법인 한국자치학회 부설 향약연구원장인 박경하 교수의 향약이야기를 연재한다. 전통시대 향약·촌계를 재조명함으로써 오늘날 주민자치에 주는 의미와 시사점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편집자주]

 

 

강릉지방에서는 17세기 초부터 전염병, 질병 등이 돌 때에 의원도 없고 약재도 부족한 것을 극복하기 위해 사족들이 계를 만들어 의료행위를 우선적으로 제공 받던 약국계가 존재했다. 요즘으로 말하면 전근대적 의료보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자료는 이규대 강릉대 교수가 1980년대에 발굴하여 소개하였는데 이번 호에 이 자료를 인용하여 소개한다.

강릉지방에서 약국계가 만들어진 시기는 선조 36(1603)이며 그 설립 동기는 약계입의에 잘 나타난다. 강릉 일부가 영외(嶺外)에 위치하여 무의무약(無醫無藥)한 관계로 비록 효자가 부모의 질병도 속수무책으로 천명을 기다릴 뿐이라 하여 지역적 한계성을 극복하려는 의도에서 약국계가 비롯되고 있으며, 따라서 그 설립목적은 지역적 한계성을 극복하여 질병을 치료하고 그 인명을 구제하는데 두고 있다고 하였다.

이처럼 의원도 없고 약도 구하기 힘든 지역적 한계를 극복하고 활인명(活人命)에 목적을 둔 약국계는 그 실천수단으로서 약국을 설치 운영하여 계원을 비롯한 일향의 구료 활동을 전담하면서 약 200여 년간 지속되었다.

 

약국계, 무의무약한 지역적 한계 극복 위해 창설돼 200여 년간 지속

약국계는 활인명을 위해 무의무약한 지역적인 한계를 극복하려는 목적을 갖는 것이었으며, 그것은 임란을 경과한 시점에서 재지사족을 중심으로 조직되고 있었다는 점에서 그들의 향촌사회의 안정책과 무관할 수 없는 것이다.

약국계는 이러한 목적의 실천수단으로서 약국을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었다. 약국의 설립을 위해 요구되었던 물적·인적인 자원은 일면으로 향중으로부터 수합되고 있었으며 다른 한편으로 관의 협조를 얻음으로써 충당될 수 있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약국이 비록 일향의 재지사족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었다하더라도 그것은 그들만을 위한 사국이 아닌 공국으로서의 성격을 갖는 것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이러한 점은 약국계의 직임조직에서 나타나는 관부와의 관계에서 여실히 나타나고 있었다.

약국계의 직임은 계수 1, 계장 2, 항정유사 4인 그리고 오현유사와 각면 유사를 각각 1인씩 두고 있었다. 여기에서 실제적으로 약국계의 운영은 계장 2인과 항정유사 4인에 의해 주도되고 있었지만 계장과 항정유사의 임명절차는 계층의 공론과 향소의 동의비망으로 관부에 의해 정탈됨으로써 수령권의 우위가 인정되고 있었다. 더욱이 약국 운영의 제반사는 관부화 되고 있었던 향소가 예겸하는 계수()에 의해 검칙되고 있었다는 점에서 그 통제를 받고 있었다고 할 것이다.

재지사족에 의한 약국 설립 운영, 그러나 관의 통제 하에서 공적 역할 수행

이러한 점은 약국의 공국으로서의 성향을 반영하는 것이라 할 것이다. 이처럼 약국계의 직임의 구성에서는 관부와의 관계가 설정되면서 그 영향을 받고 있었지만 약국계의 내적인 운영기구로 춘추강신회를 두고 있었다.

계원의 전원 참여가 요구되고 있었던 춘추강신회에서는 약조의 규정과 개정, 계장·항정유사 등 직임의 차정과 개체를 위한 공론이 수렴되고 있으며 아울러 논죄의 사항이 논의 결정되고 있었다. 이와 함께 계규의 위반자에 대한 처벌도 논의 결정되었다. 이처럼 직임의 차정, 체임권, 위약자의 처벌권, 약규의 제정권 등을 춘추강신회에서 가짐으로써 약국계의 운영은 이를 구심점으로 자율적인 면모를 보이고 있다.

약국계의 창계 목적이 활인명으로 분명하다는 점에서 그 기능 또한 이를 정점으로 설명될 수밖에 없으며 질병치료가 우선하는 기능일 것이다. 약국계의 창계과정에서 무의무약한 지역적 한계가 지적되고 있듯이 전통 한방의료에서 갖추어야 하는 중요한 요소는 의료인의 양성과 약재의 확보이며 따라서 약국계의 기능도 이러한 차원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활인명목적 외에 의료인 양성 및 약재 확보 기능도 수행

먼저 의생들의 양성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앞서 살핀 바와 같이 조선전기 의생의 양성은 관주도적으로 이루어졌다. 태조 2년에는 각도에 파견된 의학교수를 중심으로 계수관에 의원을 설치하고 의생을 양성하였으며, 세조 7년에는 지방 의생의 질적인 향상을 꾀하기 위한 방책으로 중앙에 의생방(醫生房)을 설치하여 교육시키기도 하였다. 또한 계수관이 혁파된 이후 의생의 양성은 각 읍의 수령에게 전위되었으며 그 교육은 교수와 훈도가 겸장하고 있었다.

약국계에서 의생의 교육을 직접 담당한 자는 의관이었다. 이는 약가의 불상채(不備, 불비)가 심화됨에 따라 임의로운 제약발매가 규제되고 있으나 계규(契規)의 어디에도 의관에 대한 규제 규정은 보이지 않으며 요식(料食)이 지급되었음이 밝혀졌을 뿐이다. 더욱이 약재의 치종, 당재(唐材)의 수입 등의 활동 어디에서도의관의 역할은 보이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이러한 약국 운영의 제반사는 약국계의 직임인 계장에 의해서 주도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의관의 역할은 의생의 교육에 국한되었다고 보여지며 그 신분은 앞서 살펴보았듯이 재지사족으로서 계원 가운데서 차정되었다고 하겠다.

다음으로 약재의 확보와 관련하여 약재는 약국계가 조직된 강릉부에서의 생산여부를 기준으로 소산약재(所産藥材)와 불산약재(不産藥材)로 구분된다. 소산약재는 다시 수집 방법에 따라 채취약재와 종양약재로 나뉘며, 불산약재는 향재(鄕材)와 당재(唐材)로 구분된다. 따라서 약재의 확보책도 이를 기준으로 살펴보면. 계원들의 장노() 1명씩의 출력을 바탕으로 자생약재 100여종의 채취가 그 절기를 좇아 이루어지며, 그 절기는 진공약재가 춘등, 추등, 동등, 납등으로 구분되는 점을 감안할 때 연중 계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자생약재의 채취는 계원의 출력에만 의존되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강릉부 관내에서 잡역으로 추정되는 약국 사환에게 크게 의존하고 있었다. 이들 약국 사환이 자생약재의 채취에 종사했음은 약국사환이 약한(藥漢)으로도 불리었던 것으로 미루어 알 수 있다.

채취, 종양, 무역 등 다양한 방식으로 약재 확보

이처럼 약국사환은 신분은 비록 하민이라 하더라도 관부와 계장, 유사의 임의적인 사역이 규제되고 있었고 이것은 자생약재의 채취라는 역할이 약국계 운영의 성과와 직결되는 문제라는 점에서 여타의 잡역으로부터의 보호라는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자생약재의 채취는 강릉을 중심으로 하는 인읍의 약재도 수합되었으니 여기에는 오현유사의 역할이 기대되었다.

다음으로 지방불산 약재와 당재는 무매(貿買, 이익을 남기고 팔기위해 물건을 구매하는 것)로서 확보되었으며, 무매를 위한 자본은 창계 초기에는 각 리 단위로 미두를 수합하여 이용되었고 이후로는 약가미(藥價米)로서 충용되고 있다. 또한 약재의 확보를 목적으로 토지를 소유하고 있기도 했다.

약국에는 동의보감(東醫寶鑑)을 비롯한 의서가 구입되어 비치되고 있었으며, 특히 향촌의 이용을 목적으로 하는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과 같은 방서(方書)가 고루 비치되어 의생의 의학 습득과 처방에 이용되고 있었다.

전통의학에서 중요성을 더하는 약재의 확보는 일차적으로 계원의 출력(出力)과 관부로부터 차정되었던 약한·고직 등에 힘입어 자생약재와 종양약재가 수집되고 있었다. , 당재와 불산약재는 경내의 수합미(收合米)와 약가미 그리고 식리전(殖利錢)을 자본으로 무역을 통해 구입하여 확보하고 있었다. 이를 위해 재경인을 선정하여 사신을 수행하는 의관을 통해 구득하고 있었다. 이렇듯 약재는 채취, 종양, 무역 등의 방법으로 약국계가 자체적으로 조달하고 있었다.

 

사진=박경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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