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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자치 실태 조사를 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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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자치 실태 조사를 해 보자
  • 전영평 대구대학교 명예교수
  • 승인 2023.02.06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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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새해는 지방자치 실시 29년이 되는 해이다. 1995년 7월1일 현행 지방자치가 시작된 이후 2022년 7월 제7기 지방자치가 출범하게 되었고 지방자치 성과에 대한 갑론을박도 현재진행형이다. 이는 한국의 지방자치가 이제 성년 단계에 들어섰다는 증표임이 분명하다.

사실 현행 지방자치 실시 이후 지방자치단체는 정책 결정, 집행 및 행정서비스 제공의 차원에서 주민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주민들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자기 지역의 정부 운영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주민이 행정에 실제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방법과 범위는 그리 많지 않다. 자치와 참여의 기회가 있어도 적극적인 행동으로 실천하는 일은 매우 드물다.

이런 점에서 현재까지 실시된 지방자치는 주민참여가 부실한 관공서 중심의 하향적 자치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일은 자치단체장, 지방의회, 선거후원자들에 의한 권력 독점, 공무원의 정책 독점, 제도적 참여 장치 부실, 지방권력 통제 기제의 부실, 조직화된 시민 NGO의 부실, 주민의 참여의식과 실천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필자는 이런 자치 지체(autonomy delay) 현상이 왜 계속되고 있는가에 대해 늘 궁금증을 가져왔다. 지방자치는 지방정부나 공무원을 위한 것이 아니라 현장 주민의 자율성과 행복을 위해 실시돼야 하는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주민의 자율과 참여를 존중하는 제도나 관행이 왜 제대로 정착되지 못하고 있는지 그 까닭이 매우 궁금했다.

한국사회에서는 지방자치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간의 권한 나누기로 치부되면서 주민자치나 주민참여 차원에서의 지방자치 효과 검증에 대해서는 이를 거론하거나 연구하는 경우를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게다가 풀뿌리민주주의 구현을 위한 자생적 주민자치운동도 (한국주민자치중앙회와 한국주민자치학회를 제외하고는) 거의 발견하기 어려운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주민자치나 주민참여마저도 주민스스로가 각성되어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 시민단체나 관공서의 의도에 따라 주도되는 현실을 목도할 때 한국 주민자치의 일그러진 허상을 보는 것 같아 내심 무력감과 허탈함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이런 실망 속에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내 판단이 과연 맞는가에 대한 의구심도 생겨난다. ‘내가 느끼고 판단하는 주민자치의 실망감은 과연 얼마나 정확한 것인가? 나의 주장은 과연 객관적인 근거나 사실적, 실증적 조사에 토대를 둔 것인가? 나의 판단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주민자치 실태와 문제점에 대한 조사 연구는 왜 발견되지 않는 것일까?’하는 질문이 바로 그것이다.

 

주민자치 실태와 문제점에 대한 실증조사는 왜 없을까?

우리는 한국의 주민자치가 매우 부실하다는 주장을 주로 직관적, 통찰적 판단으로 하고 있는데 이는 관찰자의 가치관, 신념, 이념지향 등 주관적 요소에 의해 좌우될 수 있는 판단 오류일 수도 있다. 이런 판단이 힘을 얻기 위해서는 주민자치/주민참여에 대한 사실적 실증적 기초조사와 같은 보다 과학적인 방법론이나 관련 정보에 대한 수집과 분석이 필요하다. ‘주민자치에 대한 개념 정의조차 잘 정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슨 실증조사가 가능 하겠는가’하는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지만 그런 식의 근본주의적이고 소모적인 토론에 매몰되어서는 주민자치의 실태 파악을 위한 조사에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  


주민자치의 정의를 매우 협의로 ‘통리단위 마을의 주민 자율 체제’로 정의하는 것이 옳은지, 주민자치를 마을 자치범주에만 한정시키지 않고 주민참여까지 포함하는 것이 옳은지, 자치분권체제에서 위임한 사무 범위 내에서 주민자율을 보장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합의가 어렵기 때문에 주민자치 실태를 조사하지 않는 것이 (잘못된 정의에 입각하여 조사를 할 경우, 결과 활용의 왜곡이 가능하기 때문에) 맞다는 논리를 펴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이 국면에서 우리는 잘 생각해 봐야 할 것이 있다. 첫째는 주민자치에 대한 정의가 서로 다르다고 해도 각자의 정의에 입각한 실증조사가 의미 없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실증적, 사실적으로 조사된 결과는 그것이 비판의 소지는 있더라도 이후 연구의 비교지표는 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주민자치에 대한 서로 다른 입장의 실증조사 조차도 그 가치가 있는 것이라는 점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둘째, 주민자치에 대한 ‘자기만의 고유한 정의’를 고집하는 것은 편협한 주장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다중의 동의를 얻지 못하게 될 것이다. 어떠한 주장이라도 그것에 동의하는 사람을 얻지 못 할 경우에는 주류 궤도에 오르지 못할 것이기(과학의 분야와는 달리 사회현상 분야의 논의에는 진리에 가까운 이론을 제시하기는 불가능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 칼럼에서는 과거 필자가 주도한 주민자치 실태조사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시사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필자는 지방자치 실시 이후 최초로 주민자치 및 참여의 실태 파악하기 위해 몇 가지 주요한 지표를 제시하고 그 문제점과 대안을 밝히고자 한 실증조사 연구를 실시한 적이 있다 필자는 주민자치에 대한 다양한 주체의 인식이 어떠한가를 알기위해 크게 3개의 이슈에 대하여 4개 응답자군을 대상으로 조사를 하여 그 결과를 연구논문으로 발표하였다.  보다 구체적으로 주민참여와 관련된 3개 차원의 인식-1)참여자치에 대한 일반적 인식, 2)자치만족도에 대한 인식, 3)자치 활성화에 대한 인식-을  4개 집단(주민, 공무원, 시민단체, 국민운동/관변 단체)을 대상으로 조사하고 집단 간의 차이점을 발견하려고 하였다.

 

주민참여자치-자치만족감-주민참여활성화 인식 조사 내용은?

첫째, 주민참여자치에 대한 일반적 인식조사이다. 이는 지방자치 실시 이후 주민들이 경험적으로 느끼는 지방 자치 전반에 대한 일반적 평가를 의미한다. 이 범주에는 ①주민의 일반적 참여의식 ②주민참여의 기회에 대한 인식 ③행정․정책과정의 주민참여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포함된다.  지방자치 실시 이후 주민들은 새로 시작되는 지방자치에 큰 기대를 걸었다. 

시행착오적으로 진행된 지방자치 실상에 대하여 혹자는 긍정적 평가를 할 수도 있고, 혹자는 부정적 평가도 할 수 있다. 이러한 평가의 진위가 어떻든 간에 지방자치의 성패는 주민참여의 활성화에 달려있는 것이 사실이며, 주민참여가 없이는 참여자치는 실현될 수 없게 된다.  문제는 현재의 지방자치가  관공서 중심의 제도적 분권에 치우친 나머지 주민 참여를 등한히 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자치 만족감에 대한 조사이다. 자치만족감이란 자치의 성과가 주민 자신에게 좋은 영향을 준다고 느끼는 태도를 의미한다. 보다 구체적으로 자치만족감은 지방자치에 대한 1)자신의 영향력이 크다고 느낄 때 2)지방자치에 대한 이해도가 증가될 때 3)주민참여의 효능이 크다고 느낄 때 발생하게 된다고 할 수 있다. 자치만족감을 측정하는 도구적 개념지표로는 자치권력감, 자치이해도, 자치효능감을 사용하였다.  자치권력감(empowerment of self-governance)이란 개인적 또는 주민단체 차원에서 지방자치에 얼마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가의 정도를 의미한다. 자치권력감은 다른 한편으로는 자치무력감(powerlessness of self- governance)이라는 ‘자치로부터의 소외’로 이해할 수 있다. 자치의 이해도란 주민자치를 무엇으로, 또 어느 수준까지 이해하고 있는가를 의미한다. 이에는 현재 자치수준이 어떠한가와 미래의 바람직한 자치수준은 어떠한 것이 되어야 하는가, 그리고 현재의 주민자치제에 대한 인지 정도를 의미한다. 자치효능감이란 지방자치제도가 실시된 이후 지역주민들의 지방정부과정에의 참여에 따른 반응에 대한 인식으로, 주민들의 지방행정의 변화를 얼마나 만족감을 느끼고 있는가에 관한 것이다. 

셋째, 주민참여 활성화에 대한 인식 조사이다. 주민참여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주민의 참여의식 고양, 참여환경의 조성 등 다양한 조건이 선결되어야 하지만 특히 참여를 매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의 확충이 필요하다. 참여제도가 충분히 구축되지 않을 경우 주민참여가 전반적으로 축소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참여 자원을 보유한 일부 계층에 의해 참여가 독점될 수 있다. 여기서는 참여 활성화에 대한 인식을 참여활성화 주체, 활성화 기여도, 및 주민의 조직적 참여, 그리고 제도적 개혁에 대한 호응도를 통해 살펴보고자 하였다. 

 

주민자치 실태 조사를 위한 측정 지표들

이를 측정하기 위해서 필자는 1)자치의존도 2)자치기여도,3)주민의 조직적 참여,4)제도 개혁에 대한 호응도라는 지표를 설정하였다. 먼저, 자치의존도란 주민참여의 활성화가 주민 스스로에 의한 것보다는 외부적 조건에 있다고 믿는 태도를 의미한다. 둘째, 자치기여도란 주민자치와 관련된 주체 중에서 누가 가장 주민자치의 활성화에 기여하였는가의 정도를 의미한다. 이를 위하여 중앙정부, 정당, 자치단체장, 지방의원, 공무원, 언론, 이익/직능단체, 시민단체, 국민운동단체 그리고 시민 등이 포함시켜 이들의 자치기여도에 대한 태조조사가 필요하다. 셋째, 주민의 조직적 참여란 개인적 행동 차원의 참여가 아니라 단체의 구성 또는 가입을 통한 조직적 차원에서의 주민참여방식을 의미한다. 조직적 참여는 개인 차원의 참여가 자치권력감과 영향력을 증가시키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 인식에 기초한다. 이를 위해서는  주민참여를 위한 자발적인 주민단체의 구성의지 여부와 이러한 자발적 주민단체의 가입을 통한 주민참여 활동여부를 조사가 필요하다. 

넷째, 주민참여 제도개혁 호응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 정부 주도적인 지방자치에 대한 주민참여제도 개혁은 꾸준히 요구되고 있다. 주민참여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참여의 제도화가 중요하다. 비제도적인 참여를 통해서도 정책과정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지만 참여의 비용에 따른 불평등을 완화하고 정부의 수용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제도화된 참여로 확대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상의 논의를 간략하게 정리하면 아래의 표와 같다. 

필자의 조사 결과를 간단히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주민들은 자치에 대한 그들의 영향력을 매우 낮은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는 주민이 실질적인 참여자치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한 것으로서 향후 주민들의 적극적 참여 도출이 매우 중요한 시민사회 과제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해 준다.


주민의 불만은 현재의 주민참여 수준이 단체장 및 지방의원을 선출하는 선거 참여 수준이라는 응답에서 잘 나타난다. 주민은 현재 실시되고 있는 지방자치에 무력감, 의존성, 불만족, 참여 부재에 대한 실망감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주민은 주민참여의 수준 향상과 활성화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었으며, 조직화된 주민참여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동의하고 있었다. 주민은 자발 조직에 대한 참여활동에 대해서는 소극적인 자세를 가지고 있으나, 참여 제도의 확대, 자치의식의 향상, 단체장의 적극적 관심, 시민운동의 활성화를 향후 참여자치의 활성화를 위한 과제로 지적함으로써 정치적 제도 형성과 시민단체행동에 의한 자치 개혁에 기대를 걸고 있었다.

공무원은 주민참여에 대하여 가장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공무원은 시민의 자치적 문제 해결 능력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바람직한 주민참여의 수준도 행정집행기능의 보조 수준으로 한정하는 경향을 보여 주었다. 이들은 타 집단에 비해 주민들에 의한 제도적 행정 통제에도 소극적이었다. NGO집단의 경우 시민단체와 국민운동단체 간에 응답에 차이를 보이는 것이 많았다. 국민운동(관변)단체는 시민들의 참여의식과 참여기회, 정책과정에의 참여에 대하여 시민단체보다 뚜렷이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으며 바람직한 주민참여 수준에 대하여도 초보적 수준의 주민참여 방식에 더 많은 호응을 하고 있었다.  

 

주민자치 실증 조사 결과와 그 시사점

전체적 응답 추세를 통해 볼 때 시민과 시민단체의 응답이 서로 유사한 패턴을 보여주고 있었으며, 공무원과 국민운동단체도 서로 유사한 반응 패턴을 보고 있었다. 이 중에서 가장 주목해야 국면은 당연히 주민의 응답 패턴이다. 주민참여의 주체는 주민이며, 참여자치의 성패는 주민의 수용 자세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이상과 같은 필자의 조사연구는 향후 주민자치와 주민참여에 있어서 어떤 지표와 항목, 어떤 방법론을 사용하여 연구할 것인가에 대해 나름대로 적지 않을 시사점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비록 필자의 조사연구가 과거에 실시되었다 할지라도 많은 시간이 지난 현재 시점에서 다시 한 번 동일한 지표, 혹은 유사한 지표를 사용하여 주민자치 및 주민자치에 대한 주민, 공무원, 시민단체, 관변단체에 의식을 조사해 보는 것은 매우 유익하고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 

이밖에도 주민자치와 관련된 다양한 이슈에 대해서도 사실적 자료를 확보하는 차원에서 실태조사, 실증조사를 기획하고 추진해 볼 것을 권유하고자 한다. 특히 올해부터 한국주민자치중앙회와 한국주민자치학회는 주민자치에 특화된 유일한 주민자치옹호/연구단체이기 때문에 실태조사와 실증자료 축적을 위해 그 역량을 발휘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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