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미약, 아니 창대하였다. 개인적으로 이보다 거창(?)할 순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주민자치위원 위촉 1달여가 지났을 뿐인데 초기의 위풍당당은 벌써 흐물흐물해지고 있는 것 같다. 이건 다 첫 정기회의를 못 나갔기 때문이다.
정기회의가 왜 하필 이 날짜?
작년 12월 위촉식 전 열린 몇 차례 사전모임 중에 정기회의 날짜가 정해졌다. 매월 O번째 화요일. 사실 어떤 모임이든 회의 일정 정하는 게 정말 쉽지 않은데(다들 사정은 있기 마련이다) 결국은 ‘이 때만큼은 피했으면 좋겠는데…’하던 일정으로 덜컥! 정해졌다. 실은 원래 정해진 회차 보다 한 주 더 앞당겨졌다. 정확한 이유는 기억이 잘 안 나는데 담당 공무원의 요청(행정 보고 일정상 편의?) 때문이었던 걸로 기억된다.
하필 매월 일터에서 가장 바쁜 시기(그나마 O주차가 아닌 O번째 화요일이라 바쁜 날짜를 가끔씩 비껴가긴 한다)라니!!! 분과 활동은 고사하고 과연 월 1회 정기회의에라도 꼬박꼬박 참석할 수 있을까? 게다 평소에도 ‘계란 흰자’에 서식하는 바람에 ‘노른자’로의 출퇴근 시간이 물경 3시간 이상인데(ㅠㅠ).
우려는 현실이 됐다. 어쩌면 가장 중요할 수 있는 첫 정기회의와 일터의 월간 마감(‘야근 예약’ 한 달 중 가장 바쁜 날!)이 딱 겹쳤다! 어떻게든 무리를 해서라도 1월 정기회의 만큼은 꼭 출석하고 싶었는데 웬걸!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야근까지 뙇!
끝까지 출석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싶었으나 일찌감치 마음을 접었다(그럴 수밖에 없었다). OO동 주민자치회 단톡방에 ‘불가피 참석하지 못해 죄송하다’는 메시지를 올렸다. 이런! 나의 주민자치회 첫 정기모임은 그야말로 연기처럼 사라졌다.
첫 정기회의에선 무슨 얘기가?
첫 정기회의 이후 며칠은 정신없이 돌아가는 ‘생계활동’에 주민자치에 관심을 쏟을 여유가 솔직히 없었다. 그러다 하루 이틀 시간이 흘러가면서 궁금증이 솟아났다. ‘첫 회의의 주요 안건은 무엇이었을까?’‘첫 회의에서는 어떤 얘기들이 오갔을까’부터 ‘첫 회의 분위기는 어땠을까?’까지. 그도 그럴 것이 평생 처음으로 주민자치위원이 된 후 첫 회의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반적으로 어떤 조직이나 모임의 방향성, 주요사항 등은 첫 회의에서 결정되는 경우도 은근히 많다.
‘49명의 주민자치위원 모두가 참석한 것도 아니고 나처럼 불가피하게 불참한 위원들도 적지 않을테니 회의의 주요 안건과 결정사항이 무엇이었는지는 추후 공고가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기다렸다. 포털사이트에서 주민자치 관련 자료를 검색하다보면 ‘OO동 주민자치회 O월 정기회의 회의록’ 같은 자료들이 종종 눈에 띈다. 심지어 문서파일이 검색되어 회의록 원본이 어렵지 않게 발견 된다.
한 전문가는 이런 얘길 했었다. “주민자치회 회의 현장을 실시간 생중계는 못하더라도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갔는데 회의 내용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어떤 형식과 채널을 통해서든 소상히 알려야 한다. 그래야 주민자치회에서 무엇을 하는지 주민들이 알 수 있고 또 주민자치(회)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질 수 있다.”
매우 공감되는 지적이다. 안타까운 건, 그 필요성에 대해선 적극 동의를 하더라도 과연 전국의 주민자치(위원)회에서 이를 얼마나 실천하고 있을까 하는 점이다. 당장 필자가 속한 OO동 주민자치회만 보더라도(물론 작년에 새로 생긴 동에서 처음으로 출범했고 첫 회의였다는 점은 감안된다) 정기회의 개최 후 일주일간 그 어떤 움직임(?)도 감지되지 않았다. 1주일 만에 온라인 커뮤니티에 정기회의 개최 당일의 사진 앨범만 올라왔을 뿐이었다.
궁금한 마음에 단체문자방에 ‘회의내용 안내’에 대한 문의를 올렸다. 주민자치회 운영세칙을 의결하고 분과별 임원을 선출하고 분과명을 확정하는 등 (역시나 예상한대로 첫 회의에 중요한 결정들이 많았다) 굵직한 사항이 많았음에도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단체문자방에도 회의록 혹은 주요 회의내용은 공유되지 않았다.
‘2회 차때는 명확한 회의록이 등재될 수 있도록 임원회의 때 논의하겠다’‘는 회장의 답변이 있었다. 회의록은 공개를 원칙으로 하나 공개범위, 방법 등에 대해서는 임원회의에서 논의를 거쳐 다시 알려주겠다는 것이다.
궁금했던 차에 운영세칙을 찾아봤다. 관련된 조항으로는 “간사는 관련 회의의 회의록을 기록하되, 기록한 회의록의 주요 내용은 전자메일 등을 통해 위원과 공유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회의록 전문은 아니고 ‘회의록 주요 내용’을 ‘전자메일 등을 통해 위원과 공유한다’는 것이다.
뭔가 ‘주민에게 널리 공개’ 차원이 아니라 아쉬웠는데 생각해보니 ‘위원들에게도 바로바로 공지가 안 됐는데 주민들에게?’ 난망한 생각이 들어 잠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하지만 곧 희망회로를 돌려본다. 매우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것부터 하나하나 고쳐지고 개선되겠지. 물론 가만히 있어서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자꾸 의견도 내고 지적도 하고 또 솔선수범도 해야겠지.
이건 다 첫 정기회의를 참석하지 못했던 탓이다.
에디터K
‘계란 흰자’ 수도권의 한 신도시에 서식하고 있는 ‘글로소득자’. 삶의 8할, 아니 9할 이상의 시간 동안 주민자치(위원)회의 존재 자체를 몰랐다가 뒤늦게 ‘사전 의무교육 6시간’ 수강을 득하고 추첨에 의해 주민자치위원에 위촉됐다.
※계묘년 신년호부터 연재된 새로운 고정칼럼 ‘슬기로운 주민생활’은 불과 얼마 전까지 주민자치에 대해 일도 모르던 ‘지나가던 주민1’ 에디터K의 주민자치회 입성부터 활약(과연?)까지를 담아내는 ‘맨바닥’ 체험기입니다. 과연 시민K는 주민자치회 참여를 통해 ‘슬기로운 주민’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