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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회 운영을 통해 살펴본 제주 주민자치의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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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회 운영을 통해 살펴본 제주 주민자치의 현황
  • 김자경 제주대학교 공동자원과 지속가능사회 연구센터 학술연구교수
  • 승인 2023.02.27 11: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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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자원과 주민자치02
공동자원을 활용한 주민자치와 균형발전 방안

계묘년 새해를 맞이해 제주대학교 공동자원과 지속가능사회 연구센터와 공동으로 공동자원과 주민자치를 주제로 한 시리즈기획을 새롭게 선보이게 되었습니다. 상부상조하는 공동체의 원형과 전통이 잘 계승되어 유지, 발전되는 특별한 지역 제주그리고 공동자원과 주민자치의 이야기가 지면을 한층 풍성하게 해줄 것입니다.<편집자 주>

 

 

마을에 대한 인식 변화 : 공동체적 문제해결 방식을 통한 주민자치의 등장

마을은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공간이다. 예전에 방영되었던 응답하라 1988’에서 보였던 동네의 모습이 우리가 마을을 상상할 때 가장 우선적으로 떠올렸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저녁 6시가 되면 밥 먹으러 집에 들어오라는 소리가 골목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이웃들과 함께 놀던 아이들은 제각기 집으로 돌아간다. 밥 한 공기가 모자라 옆집에 밥을 빌러 오라는 엄마의 심부름에 아이들이 골목을 부산히 다니더니 밥 한공기가 김치나 김, 카레 등 제각기 집에 있는 반찬들로 대체되어 이웃들의 밥상이 풍성해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사람들이 장을 보거나 이웃집에 마실 다니고, 아이들이 커가고, 학교가 있고, 일터가 있는 그런 곳이었다.

이러한 마을의 모습은 30여 년 전을 재현하는 드라마 속에서만 남아있다. 현재 마을을 상상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워졌다. 이미 일상을 영위하는 집이 있는 동네와 직장이 있는 곳은 멀리 떨어져 있으며 골목에서 아이들이 함께 놀거나 이웃집과 반찬을 나누는 일들이 상당히 적어졌다. 마을이라는 공간은 그대로이지만 그 속에서 일상을 함께 나누는 행위는 상당히 감소하였다. 우리는 대부분 도시지역에 거주하여 그렇다 할 수 있지만 농촌지역 역시 상당히 생활공동체 활동이 감소한 것이 사실이다. 농촌 인구가 감소하기도 했지만 농촌 소도시에 거주하며 농장으로 일만 하고 오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이렇게 마을이 사라지는 것인가 생각하지만 오늘날 마을을 대안이라 주장하는 이들도 많다. 1997, 2008년 두 차례의 세계적인 경제위기를 겪으며 세계는 신자유주의’ ‘경제의 양극화의 모순이 심각해지는 상황 속에서 기후위기, 코로나19 팬데믹이 덮쳐왔다.

우리는 다양한 위기에 직면해 있지만 국가나 시장 모두 삶의 문제들을 해결해주지는 못했다. 학교가 폐쇄되고 온라인 수업으로 바뀌었을 때 지역에서는 학교급식에 들어가는 농산물 꾸러미를 집집마다 배달하였다. 이와 같은 위기 상황에서 공동체적 문제 해결방식과 같은 대안을 모색하게 되었고, 그 해결방식의 주요 공간이 지역 그리고 마을이었다. 국가가 미처 헤아리지 못했거나 시장이 다 해낼 수도 없는 영역을 주민들이 스스로 논의하고 해결해나가는 과정을 상상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동네 민주주의또는 주민자치를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원리이자 방식으로 이해하는 연구들이 상당수 존재하고 있다(이태동·김한샘·고인환, 2018; 이현국·이민아, 2021; 김동철·김대건, 2021). 이 연구들의 공통점은 주민들이 공동체적으로 문제를 논의하고 해결하는 과정을 직접 경험함으로써 주민자치가 형성되는 점에 주목하였다. 적극적인 주민들이 참여하는 공동체적 문제해결은 사회자본을 형성하며, 공동체 의식이 만들어지고, 주민자치가 성숙해지면서 삶의 회복 탄력성을 갖추고 삶의 질을 높이는 결과를 만들어 낼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다.

그런데 행정에서 말하는 주민자치와 실생활에서 주민자치의 내용이 다르다. 행정에서는 마을을 행정의 말단 단위로 이해하기 때문에 주민자치(위원)회를 운용하기는 하지만 적극적인 행정참여를 기획하지 않고 있다(이현국·이민아, 2021, p183). 주민자치(위원)회는 관변단체의 성격을 띤 자원봉사처럼 이해되는 것이다.

행정에서는 시군, 읍면동까지 주민자치의 범위로 인식하여 기존 동사무소를 주민센터, 행정복지센터로 부르고 있지만, 실제 생활 속에서 통리 단위로 주민자치를 실행하는 곳이 다수 존재한다. 특히 제주의 마을이 그러하다. 2005년 제주특별자치도가 되면서 제주시에 19개의 행정동, 서귀포시에 12개의 행정동으로 재편되었지만, 실제 마을 이름은 관습과 생활권을 중심으로 영역이 정해진 법정동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마을회 운영 방식 : 공동자원, 마을을 경영하다

제주는 234개의 마을(62개의 법정동과 172개의 리의 합)이 있다. 김일순·양정철·황경수(2021)는 제주의 읍면지역에 있는 172곳의 마을 중 146곳의 마을자치규약을 수집하여 분석하였다. 172개 리 중 85% 마을에 자치규약을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제주의 마을들을 행정동이 중심이 아닌, 법정동과 법정리를 마을의 단위로 삼아 주민자치를 형성하고 있다는 반증이 된다. 여기에서도 읍면지역에 있는 마을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제주의 마을은 여러 개의 자연마을이 모여서 하나의 리를 형성하고 있다. 물론 작은 마을은 하나의 마을이 하나의 리가 되지만, 대체로 마을 인구 1000명을 기준으로 3~6개의 자연마을을 이루고 있는 곳이 많다.

각 자연마을마다 회의체(동회)가 존재하고, 자생단체인 노인회, 부녀회, 청년회가 대부분 있다. 마을에 이사 가서 전입신고를 하게 되면 바로 마을주민의 자격을 얻는 것이 아니다. 자연마을에서 몇 년 동안 거주하게 되면 리 단위 마을회(리회)에 가입할 수 있으며 피선거권도 가지게 된다. 제주에서는 이를 호를 가진다라고 부르며 이른바 입호권이라는 관습이 여전히 중요한 주민의 자격을 결정하고 있다.

특히 마을의 성원권이 확인되어야 어촌계와 목장조합과 같이 마을의 공동자원을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받는다. 어촌계에 가입한 해녀와 같이 지금까지도 공동자원은 생계를 이어나가기 위해 중요한 생산수단이기에 입호에 관한 권리는 엄격한 것이다. 또한 공동자원의 지속가능한 이용을 위해 과잉이용을 억제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마을사람들은 공동자원의 관리에 책임을 맡고 공동자원 유지에 기여하면서 공동자원의 수익을 배당받는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었다.

어촌계나 목장조합 등은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경제공동체이기도 하지만, 관혼상제 등 개인의 어려운 일을 서로 돌보는 생활공동체로 연결되어 있기도 하다. 따라서 무임승차자를 제거하는 상호부조의 체계가 여러 층위로 구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최근에는 이주민의 유입으로 다양한 갈등이 생겨나자 엄격한 리민의 자격요건을 개선하는 마을도 있다.

마을회는 리장을 중심으로 개발위원회(또는 운영위원회)와 자생단체, 자연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자생단체는 마을의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어촌계, 목장조합, 수리계, 영농회, 마을문고 등으로 구성되며, 이외에는 마을기업과 같은 마을법인이 존재한다. 마을 안에 존재하는 카페나 펜션, 식당과 같은 개인사업자는 이 안에 소속되지 못한다.

마을회는 1년에 한 번 마을총회를 거쳐 마을의 1년 살이를 결산 및 평가하고, 다음 해 1년 살이를 기획하여 승인한다. 각 자생단체들은 마을총회에서 각자의 사업에 대해 보고를 하며 승인을 받는다. 그리고 마을자치규칙에 따라 마을회장을 직접 선출한다. 마을회장이 리장으로 읍면장에게 임명받는 것이다. 동지역의 마을에서는 통장으로 임명받는다.

마을의 한 해 살이를 살펴보면 마을포제(리사제), 당굿, 리민 단합대회(체육대회), 어버이날 경로잔치, 마을 정비 및 청소, 마을축제 등 다양한 행사가 벌어지고 있다. 이 행사에는 예산이 들어가며 이 비용은 행정기관에서 지출하는 것이 아니라 자체의 마을 예산을 들여 진행한다. 마을 경비는 기본적으로 마을주민들에게 리세를 받아 충당하고 마을이 자체적으로 수익사업을 진행하는 곳도 있다. 어촌계나 목장조합 등 공동자원을 운용하여 얻은 수익도 존재한다.

따라서 공동자원을 관리하는 사업단위가 마을의 의사결정구조에 들어간다는 의미는 공동자원이 마을 공동의 부를 창출하거나 공동의 생산기반이라는 뜻한다. 제주 마을회는 중요한 마을의 의제 설정, 예산을 반영한 자치 행사 등을 통해 상당한 수준의 마을 자치 체계를 갖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결국 마을이라는 것은 행정단위로서 마을이 아니라 자치단위로서 마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공동자원론과 주민자치의 접점

생업과 삶에 중요한 공동자원은 마을을 경영하는 중요한 기제였다. 마을을 경영한다는 것은 마을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기반을 마을사람들이 공동으로 운영한다는 것이다. 주민자치를 행정동에서 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지만 제주에서는 이러한 주민자치와는 다른 통리 단위의 마을에서 생활권을 중심으로 공동체 활동이 존재해왔다.

자율적인 개인들이 모여 자치의 규정을 지키는 근간에는 서로의 신뢰(공동성)가 있다. 그 속에서는 경제공동체, 생활공동체, 돌봄공동체 등이 존재한다. 제주의 마을 내 의사결정을 보면 각 자생단체의 총회, 자연마을 단위의 총회, 리 단위의 마을총회 등 상당히 중층적인 의사결정과정이 존재한다. 물론 관습을 중심으로 한 전통적인 방식이 존속하기도 하지만 시대의 흐름에 따라, 정부의 정책에 따라 이를 받아들이거나 현대적으로 변용하기도 한다.

향후 제주의 마을들이 지금까지 공동자원을 유지해 온 것에 대해 다양한 가치평가가 필요하다. 특히 주민자치의 관점에서, 공동자원을 중심으로 마을을 경영하는 경험을 통해 주민자치의 잠재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의사결정과정의 중층성이 보다 역량 있는 자치 구조를 만들어내고 그 기반에는 공동자원이 있었다. 마을에서 긍정적으로 수행한 자치의 경험은 마을을 행정의 말단에서 자치의 최전선으로 전환할 수 있는 동력이 될 수 있다. 앞으로 지역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주민자치에서 행정의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주민자치로 확대해야 할 것이다.

 

사진=김자경 학술연구교수 제공

 

참고문헌

김동철·김대건, 시민참여와 사회적 자본의 관계에서 공동체의식의 매개효과에 관한 연구: 춘천시 주민자치회 전환 지역을 중심으로, 사회과학연구601, 2021, 3~29.

김일순·양정철·황경수, 마을자치와 제주 향약에 관한 연구-·면 지역 마을 향약의 리민의 자격·권리·의무규정을 중심으로-, 제주도연구55, 2021, 199~232.

김자경, 공동자원을 둘러싼 마을의 의사결정구조와 공동관리: 제주 행원리 사례를 중심으로, ECO231, 2019, 35~74.

이태동·김한샘·고인환, 동네 민주주의 개념과 적용 연구, 한국정치연구27집 제2, 2018, 143~171.

이현국·이민아, 한국 주민자치의 현주소와 발전방안-영국의 로컬카운실 사례를 중심으로-, 한국지방자치학회보334(통권116), 2021, 177~202.

허훈·라해문, 마라도 향약의 경험에서 찾는 한국 주민자치에의 교훈, 한국지방자치학회보343(통권 119), 2022, 117~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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