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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의 오류를 보며 성찰적 자치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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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의 오류를 보며 성찰적 자치를 기대한다
  • 전영평 대구대학교 명예교수
  • 승인 2023.03.02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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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평 교수의 자치이야기

한국 지방자치의 기본적 한계

한국의 지방자치는 몇 가지 태생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첫 번째 한계는 우리 역사상 지방 분권형 자치의 경험이 전혀 없었다는 사실이다. 때문에 지방자치의 개념이 사람들에게 명확하게 전달 및 이해되지 못하고 있으며,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의 관계가 자치의 본뜻에 맞게 전개되지 않고 있다. 이는 지방 자치 참여자들이(단체장부터 주민에 이르기까지) 보여주는 미숙한 행태와 직결된 역사 문화적 한계이다.

둘째는 집권적 전제주의, 제국주의적 식민지배, 군사정권을 거치면서 주민들이 권위주의의 피해자인 동시에 권위주의의 추종자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지방자치 이후 발생하는 각종 폐단과 문제점은 아직까지 권위주의적 정치 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선출직 공무원과 정치적 유아 상태로 남아있는 주민들의 합작품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셋째는 한국의 지방자치는 당리당략과 보스 정치가들의 정치적 속셈이 그대로 반영된 위선적 자치라는 것이다. 자치에 대한 역사적 경험과 정치 문화적 의식이 뒤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실시된 전면적인 2계층 자치는 당연히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지방으로 갈수록, 또 기초단체로 갈수록 더욱 열악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아무 사전 실험 없이, 그것도 정당공천제를 통하여 일시에 전면적 자치를 실시한 것은 마치 국민을 대상으로 한 제도의 실험과 같은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주민들이 지나치게 정치화되어 지역감정과 전 근대적 연고에 기초한 선거를 지방 자치로 오해하는 질곡에 빠지게 되었으며, 정치권은 이를 이용하여 기초단체까지를 행정적으로 장악하는 정치적 세력화를 추구하게 되었다. 근대적인 지방자치를 위협하는 이상과 같은 태생적 한계는 지방자치의 실행과정에서 아래의 오류를 초래하게 되었다.

 

한국지방자치의 열 가지 오류

지방자치가 출범한 이후 지난 30년간 해소되지 못하고 있는 고질적 오류를 열 가지로 정리해 보면 아래와 같다.

 

1. 주민 참여가 부실한 주민소외자치

지방자치 실시 이후 가장 우려되는 점이 풀뿌리자치가 여전히 부진하다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지방정치인이나 주민들 모두가 책임이 있는 것이지만, 중앙 및 지방정치인의 책임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왜냐하면 그들은 선거 공약에 주민자치를 약속하였으며 당선 후에는 주민자치 프로그램과 재정적 지원을 해야 할 공식적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지방정부의 위원회 참여와 개최를 보면 과거보다 나아진 것이 없으며, 위원회 운영 내용도 더 말할 나위가 없다.

한마디로 자치는 외관적 제도로 시행되고 있으나 지방정치인들의 마음속에는 풀뿌리자치 마인드가 기본적으로 형성되어 있지 않고, 자치이념에 대한 명확한 인식도 부족하다. 그들은 과거의 관습대로 자신이 통치의 권한을 위임받았다고 생각하지, 지방정부의 운영이 주민과의 파트너십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자치단체장이 과거 임명에서 선출로 바뀌었다는 변화만이 있을 뿐이지, ‘정부의 통치에서 연대와 네트워크의 통치로 이행하지 못하게 된다.

 

2. 당리당략적 정당지배자치

지방자치의 태생적 한계라 할 수 있는 당리당략적 자치제도의 실시, 즉 정당공천제와 2계층 자치의 전면적 실시는 중립적 자치와 자치 능력 부족을 초래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지방자치를 주민 중심적 지방정치 및 행정의 시작으로 알고 반겼으나 실제로는 중앙집권적 행정을 생동력 있는 지방자치로 바꾼 것이 아니었다.

, 지방자치제도는 정당공천제로 인한 정당 지배자치로 변질되어, 과거에는 중앙정부의 눈치를 보던 것에서 이제는 정당 보스의 눈치를 살피는 것으로 이행되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단체장과 의원들이 주민자치를 외면하고, 스스로 통치자가 되어 각종 부조리와 폐해를 유발시키며 지역감정과 대립이 발생하는 것이 바로 정당지배 자치에서 기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3. 단체장의 제왕자치와 공무원의 충성자치

지방자치 실시 이후 단체장들이 주민을 대하는 태도가 공손해지고 관공서의 서비스가 개선되었다고 느끼는 것을 지방자치의 긍정적인 효과로 지적하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이러한 측면이 개선돼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러한 변화에 현혹되어 지방자치의 내용이 개선된 것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실제로 많은 지방자치 단체장들이 공무원의 인사권을 장악하여 공무원을 조정해 각종 부조리를 일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한마디로 지방정부의 장은 지역 내의 연고 집단과 결탁하여 소통령 같이 군림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된다. 특히 그 지역에 그를 통제할 수 있는 감시단체가 없을 경우에는 단체장 및 연고 집단의 권력 행사를 막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 경우 공무원들은 인사상의 불이익을 받지 않기 위해 또는 이득을 얻기 위해 단체장의 부당한 요구에도 충성하지 않을 수 없다.

 

4. 주민통제가 결여된 행정홀로자치

지방자치가 제대로 될 수 없는 또 하나의 이유는 행정에 대한 감시가 필요한 기초 단체일수록 권력자를 통제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시민단체가 없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권력기관의 부조리를 통제할 수 있는 자발조직의 형성이 억제되어 온 결과, 지방 권력을 견제하거나 감시하는 단체가 기 단체 수준에서는 거의 생겨나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실제로 권력견제형 시민단체는 대부분 대도시에 집중돼 있으며 그 능력과 역량도 대도시로 갈수록 뛰어난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대도시의 지방정부는 비교적 통제 가능한 상태에 놓이게 된 반면, 소도시에는 단체장 중심의 행정홀로자치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권력을 견제할 아무런 주민조직이 없을 경우, 자치단체장은 홀로 권력의 핵심에 서서 아무 거리낌 없이 독단적인 자치를 할 경향이 커지게 됨은 당연하다.

 

5. 무능과 부패의 자치

지방자치 실시 이후 계속 문제가 되는 것 중의 하나는 지방정치인의 부패와 무능이다. 지방정치인들이 선거 때마다 금권 선거 및 타락 선거를 하는 것은 이미 아는 사실이기 때문에 더 이상 언급할 필요가 없으나 문제는 금권 타락으로 치닫는 선거가 정당의 비호 하에 근절되지 못하고 있으며, 많은 주민들에게 그것을 정치로 혼동하게끔 만드는데 있다.

금권선거에 참여하는 사람은 그것이 나쁘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이득을 위해 앞장을 서고 있으며, 선량한 시민들은 선거 자체에 대한 회의에 빠지게 된다. 결국 미래의 희망이 보이지 않는 선거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지방자치 선거를 거듭할수록 과거보다 훌륭한 인물이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수준과 자질이 부족한 사람들이 선량으로 나서는 경향을 보이는 것도 한국 지방자치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요인이 될 것이다.

 

6. 빈익빈 부익부 자치

민선 자치가 실시되자 많은 사람들이 지방 시대가 도래했다고 환영하였다. 그러나 지방자치 30년이 지난 지금 지방자치단체 간의 격차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대부분의 단체장들이 지역 활성화 구호를 내걸고 여러 가지 사업을 벌였지만 실제로 큰 효과를 본 단체는 거의 없다. 실제로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가 중앙집권시대보다도 훨씬 급속한 속도로 쇠락하고 있다. 대도시 집중화로 인해 소도시 및 군의 인구와 재정은 계속 줄어들고 있다.

자유 경쟁에 의한 지방자치의 활성화를 추구한다고 하였지만 실제로 자치단체가 인구와 산업을 유치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특히 교육과 산업인프라가 제대로 구축되어 있지 않은 자치단체와 그런 조건이 이미 잘 정비되어 있는 대도시 자치단체하고는 처음부터 경쟁이 되질 않는다.

이러한 출발점 상의 불평등이 시정되지 않는 한 자치 단체 간 경쟁은 빈익빈 부익부를 심화시키는데 그칠 것이다. 중앙정부의 대규모 균형발전 투자가 실행돼야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런 사정에도 불구하고 지방 정부가 권한을 더 가지면 지방이 활성화될 것이라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비껴가는 것이다.

 

7. 자원배분이 왜곡된 비효율 자치

원래 지방자치는 효율적인 자원 배분과는 큰 관계가 없다. 그럼에도 지방자치를 하자는 것은 그것이 민주주의적 기본 원칙인 주민 참여와 존엄을 유지시키는데 기여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사람들이 지방 자치에 대한 회의적 시각을 갖게 되는 것은 지방정부의 자원 배분 과정의 부조리에 대한 의혹에 기인하는 바 크다.

실제로 우리의 지방자치는 기본적 마인드가 제대로 형성되어 있지 않은 상태-즉 주민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통치제도를 공유한다는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 만들어진 정치적 산물이기 때문에 그 운영에 있어서도 왜곡된 자원 배분이 일어나게 된다. 지방자치를 자신의 재당선과 개인 사업 운영에 보탬이 되는 수준으로 알고 있는 상당수의 지방정치가들이 자치정부의 돈을 정치적 또는 사사로운 목적에 사용함으로써 비효율적인 지방 자치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더구나 단체장과 의원들이 대부분 같은 정당 출신이며, 지방 재정 및 회계에 대한 정보 공개도 많은 제약을 받고 있고, 주민들도 이에 대해 큰 관심이 없기 때문에 이러한 자원 분배의 비효율성은 더욱 커지게 된다.

 

8. 인력 개발 및 인력 교류가 부실한 자치

지방자치 실시 이후 자치의 효과에 대한 평가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것이 바로 지방정부의 인력 무능문제이다. 지방행정의 실질적인 동력은 공무원의 능력과 성향에 의존한다. 그런데 지방자치 실시 이후 자치 단체 간 할거주의 및 단체장의 특정 공무원 비호 등으로 인해 중앙지방간, 지방정부간 인력 교류가 급격히 줄고 있으며, 이로 인해 인력 정체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한 군데 지방정부에서 공무원이 장기간 근무할 경우, 행정 관련 부조리 발생, 행정 조직 내 권력 갈등 발생, 소외된 공무원의 사기 저하의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더욱 심각한 것은 상위 단체가 그나마 유능한 인력을 독점한 가운데 하위 단체로 갈수록 행정 수행능력이 떨어지는 공무원이 남아있게 되어 지방 자치의 현장에서의 각종 행정서비스 산출 능력이 떨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공무원의 능력 발전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도 실효성이 없는 것이 대부분이라서 자치단체의 인력 부실 문제는 지방자치에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9. 지방분권논의로 변질된 자치

지방자치의 본질적 의미는 주민들이 자기 지역의 일을 자치적으로 토론하고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는데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지방 자치는 중앙정부의 일을 지방정부가 얼마나 더 가져오느냐 하는 식의 분권으로 인식되고 있는데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이러한 가운데 정부 권력의 배분을 놓고 정치가와 중앙정부, 그리고 지방정부가 서로 권력을 더 많이 갖는데 치중된 형국으로 지방자치가 이행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지방자치는 주민참여와 자치의 학습의 장을 마련하는 풀뿌리민주주의 학습의 장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중앙정치가와 지방정치가들이 서로 많은 권력을 가지기 위해 대립하는 가운데 중앙은 중앙대로 지방은 지방대로 아전 인수식 대결로 나아가는 형국이다.

이런 가운데 자치단체장과 공무원, 그리고 일부 학자들과 단체들이 분권이 모자라서 자치가 안 되고 지역의 활성화가 안 된다는 식의 논리를 펴고 있다. 확실히 분권화의 논쟁은 지방자치의 본질에 대한 논의를 방해하고 있다. ‘선자치 후분권이 순리이지 선분권 후자치는 자치제 도입의 취지에도 안 맞을 뿐 아니라 지방자치를 호도할 가능성이 크다.

 

10. 협의 과정이 무시된 자치

과거 중앙집권적 행정체제에 대한 최대 비난 중의 하나는 단체장과 공무원이 중앙정부의 지시에 따라 밀실에서 결정하여 정책을 추진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방자치가 되어도 단체장과 공무원들은 여전히 밀실행정의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방정부의 위원회도 실제 운영되는 내용을 보면 자기들의 기호에 맞는 전문가 및 기득권 집단의 구성원들이 주로 참여하여 지방정부의 결정을 정당화해주는 역할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성찰적 자치를 바란다

향후 지방정부의 개혁은 지방정치인의 독선적 행정을 반성하는 것에서 출발하여 연고 주의적 폐쇄성을 극복하고 나아가 품격 있는 지식문화기반을 조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해야 한다. 이러한 지방정부 개혁논리의 출발점을 성찰적 자치로 설정하고 성찰적 자치의 원리를 제시하고자 한다.

성찰적 자치란 과거의 자치 경험에 대한 끊임없는 반성과 비판을 통하여 자치의 실패 요인을 수정하여 나아가는 형태의 자치를 의미한다. 자치에 참여하는 주체는 단체장이나 지방의원, 공무원만이 아니다. 오히려 지방 자치의 핵심은 주민에 의한 자치에 있다. 그런데 지금의 지방자치는 한마디로 정치적 유아들에 의한 자치로 변질되고 있다. , 지방단체장들은 주민을 그들을 의사결정의 파트너가 아닌 정치적 회유대상으로 인식하는 정치 유아적 경향을 노골적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상당수의 주민들도 민주정치와 지방자치의 근본 취지에 무관심한 채 선거로 시작하여 선거로 끝나는 것을 주민참여로 생각하는 유아적 성향을 보이고 있다.

한마디로 이런 상황에서는 성숙한 지방자치제도가 정착하기 어렵다. 따라서 이러한 점을 근본적으로 반성하고 그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지 못할 경우 한국의 지방 자치는 완전 실패로 갈 확률이 높다. 성찰적 자치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에 대한 언급을 하기 전에 성찰적 자치를 위한 몇 가지 원리를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담론의 원리이다. ‘성찰적 자치는 현재 지방 자치의 근본적 문제점에 대한 비판과 그에 따른 대안이 신중하고도 성실한 담론을 거쳐 도출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담론에 참여하는 사람을 제한하지 않으며 이러한 담론의 장을 촉진할 의무는 일차적으로 자치단체에 있다.

둘째, 점진적 개선의 원리이다. ‘성찰적 자치는 무분별한 분권의 확장을 추구하지 않으며 기존의 문제점을 충분히 해결한 후에 그 다음 단계의 자치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셋째, 수준 향상 우선 원리이다. ‘성찰적 자치는 자치의 양이 아닌 자치의 질적 수준의 향상에 주목하는 것이다. 따라서 질적 수준의 향상이 수반되지 않는 자치는 일단 보류하며, 수행된 자치의 업적에 대한 평가와 환류를 시도하는 것을 의미한다.

넷째, 주민자치 우선 원리이다. ‘성찰적 자치는 근본적으로 주민에 의한 자치를 지향하며 주민자치의 확장을 궁극적 목표로 추구한다.

다섯째, 과정적 합리성 확보 원리이다. ‘성찰적 자치는 이념적이고 전시적인 자치 개혁 목표의 허구성을 비판하며, 현실 자치 과정상의 문제점을 파악하는 한편, 주민자치를 위한 실질적인 방안으로 주민 계몽 및 교육, 주민능력개발, 주민 참여 유도 활동에 대한 노력에 주목하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 30년 간 실시된 한국의 자치는 형식적 자치에 해당되는 것으로서 지방 정치인의 선거와 제도상의 정부 분리로 특징지을 수 있다. 실제로 한국 지방자치의 큰 문제점은 제도상의 지방자치 또는 지방 정치인의 선거를 지방 자치로 치부하면서, 자치의 핵심인 주민참여는 외면하고 있다는 데 있다

진정한 의미의 지방 민주화는 주민의 자발적 참여와 비판을 유도하여 기존의 폐쇄적 권력 구조를 열린 담론의 구조로 전환하는 데 있다. 그러나 인구 이동성이 낮고 지역 연고가 강한 상당수의 자치 지역의 경우 지역의 소수 권력 및 상공인 엘리트(혹은 토호세력)의 독단, 단체장 사적 후견 네트워크가 동원되는 현상이 심각하다. 최근에는 지방자치의 실시가 오히려 지역사회 권력 엘리트의 폐쇄적 통치와 각종 부조리 발생에 일조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이다.

보다 회의적인 시각에서 보면, 한국의 지방자치는 선거 부조리, 주민의 무관심, 지방정치인 및 지역 토호 세력의 독주와 결탁, 계속되는 중앙집권적 행정으로 인하여 지방자치 실시의 본래적 의도에서 멀어져 가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지방정부 개혁의 주요 과제를 제시한다

성찰적 자치를 지향하는 지방 자치 개혁의 범주는 중앙정부(중앙정치)와 지방정부간 관계 지방자치의 다양화 필요성 지방정부와 주민 관계 지방정부의 통제 메커니즘 자치단체장 및 조직 내부의 권력 및 회계 구조 주민 참여의 문제점 지역사회의 권력 구조 개편 등을 포함하는 것이어야 한다.

자치 개혁의 범주 설정은 지방정부와 지역사회를 개혁하는 과제를 도출하는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 자치 개혁의 범주에 의거하여 지방정부와 지역사회를 개혁할 수 있는 우선적인 과제를 제안하면 다음과 같다.

 

1. 열린 정책네트워크 추진

현재의 지방자치는 중앙으로부터 이양된 권한이 지방정부에게 다시 집권화 되는 구조, 즉 제도적으로 집권화가 강한 구조를 가지고 있어 단체장 중심의 권력 집중을 초래할 수 있다. 이러한 권력 집중은 시민의 정치참여공간을 제한함은 물론, 시장을 중심으로 한 관료체제의 정책독점을 관행화시켜 자칫 지방자치가 지방 독재로 흐를 수 있는 위험을 내재하고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단체장 중심의 지방사업 설정 및 추진을 통제하고 공무원의 정책독점 관행을 타파하여 지역의 주인인 지역주민에게 의사결정권이 이양될 수 있도록 민주적 분권화가 용이한 유연한 구조로 전환되어야 한다. 이러한 구조전환은 바로 열린 정책네트워크의 지방거버넌스 추진을 뜻한다.

열린 정책네트워크란 현재의 정부위원회의 부실운영을 대폭 개선함은 물론이고 정책입안단계부터 시민참여제를 도입해 참여네트워크를 통한 정책성찰과 대안 마련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열린 정책네트워크를 통한 의사결정에의 시민참여는 시민의 알권리를 자연스럽게 충족시켜 줄 뿐 아니라 행정에 대한 신뢰 향상과 정책의 정당성을 확보해 줌으로서 바람직한 지방거버넌스 형성에 기여할 것이다.

 

2. 행정의 투명성 및 책임성 강화

지방정부의 비효율과 부패는 행정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확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미흡할 때 쉽게 발생한다. 따라서 지방행정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강화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한 전제 조건은 정보공개의 확보이다. 정보공개에 대한 요구는 시민의 알 권리에 대한 정당한 요구이므로 모든 정책들은 형성단계에서부터 결정, 집행, 사후관리에 이르는 전 과정이 공개되어 시민들이 자유롭게 공공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기존 정보공개제도는 그 범위가 제한되어있으며 적용상의 예외사항이 많아 실효성이 떨어진다. 기존 정보공개의 범위를 대폭 확대하고 정보공개제도를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실질적인 노력이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와 더불어 잘못된 행정을 고발하고 지역의 각종 비리를 척결할 수 있도록 감사청구, 주민소송제가 작동되는 사례가 조속히 나타나도록 해야 하며, 주민옴브즈맨 제도의 도입과 실질적 활동이 일상화 되도록 해야 한다

 

3. 단체장 통제 강화

지방자치는 중앙정부의 통제나 감독에서 벗어나 자율성을 확보할 때 비로소 달성되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떠한 감시세력도 배제한 채 지방정부에게 완전한 자율성을 부여해주는 것이 절대 선은 아니다. 지방으로 이양된 권한은 단체장에 의해 남용되거나 오용될 소지가 크므로 단체장의 권한사용을 감시하는 견제세력은 반드시 필요하다. 과거에는 그러한 감시기능을 중앙정부가 수행했지만 지방화시대에는 지역사회의 주체로서 주민이 그러한 기능을 직접 수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4. 지방재정의 개혁

재정개혁의 기본 원리는 예산의 낭비를 차단하는 것이므로 먼저 예산회계제도를 개선하고 재정정보공개 및 주기적 평가 제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지방분권이 이뤄져 이전된 자원이 효율적으로 사용되고 있는지에 대해 주민이 통제할 수 있는 시스템이 시급히 도입되어야 하는데 이에 대한 방안으로서 일정액수 이상의 재정지출사업은 결정단계부터 시민평가단이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

 

5. 지방정부권력 분산제도의 확립: 다양한 자치시도

지방분권은 행정조직 외부로의 분권은 물론이고 행정조직 내부의 분권도 병행되어야 그 의미가 있다. 먼저 단체장에게 집중되어 있는 정치적행정적 권한을 분산시킴과 동시에 시장의 행정적 업무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시 관리인제도의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둘째로 지방정부의 예산사용의 비효율성과 낭비를 줄이고 회계의 투명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정부회계관리관을 지역주민이 선출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셋째로 시장이 공무원의 인사권을 장악하고 있음으로 해서 초래되는 시장에 대한 공무원의 충성경쟁을 지양하고 인사의 중립성과 인사관리의 전문성을 향상시켜 공무원들이 주민의 공복으로서 지역을 위해 봉사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인사관리관을 주민이 선출하는 제도의 도입을 고려해 볼 수 있다.

 

6. 주민지향적 분권과 시민협력 네트워크 형성

현재 제기되고 있는 지방분권 논의는 자치현실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결여된 채 진행되고 있다. 따라서 자치의 초점을 흐리는 원론적 분권 논의는 종식될 필요가 있으며, 주민이 의사결정의 파트너로서 정책네트워크의 주요행위자가 될 때까지 분권 논의에 제동을 걸고, 지방정부를 압박하여 주민지향적 개혁 행정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시민단체 및 공익형 자발조직이 솔선하여 주도적 역할을 수행해야 하며 그러한 노력을 통해 획기적인 주민자치권을 확보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중앙정부를 압박하여 지방정부가 열린 정책 네트워크 및 자원 공유 네트워크에 투자할 수 있도록 중앙의 지원을 요구해야 한다. 열린 정책네트워크 및 자원공유 네트워크는 지역의 자치단체, 기업, 시민사회 3자가 협력해 정책을 수립하는 협력형 네트워크로서 정책과 자원을 지역사회가 함께 공유하면서 지역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한 것이다. 중앙의 지방정부에 대한 지원은 공유와 경쟁의 원리를 따라 개별 자치단위에 있어서는 정책과 자원에 대한 공유가 극대화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하고, 자치단체 간에는 네트워크의 구성여부-정책적 차이 및 공유의 정도-에 따라 차등적으로 지원해야한다.

 

7. 지방공무원 능력 개선 프로그램 실시

최근 성공적으로 정부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선진국들의 경우 지방정부의 무능과 비효율에 대한 분노의 표출이 정부개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근원이었다는 점에서 우리 지방정부의 능력과 성과 향상은 지방행정개혁의 주요 과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지방행정의 능력은 바로 지방공무원의 능력에 비례하며 지방행정의 발전 또한 지방공무원들의 능력과 역량에 달려 있다.

따라서 지방분권시대에 지방공무원의 능력을 향상시키고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중앙정부 및 상위 정부와의 인력교류를 활성화하고, 지방공무원 인력 향상을 위한 투자와 평가가 실시되어야 한다.

 

8. 정당지배체제의 개혁

지방선거에 대한 정당공천의 과도한 영향으로 인해 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이 소속정당과 공천권을 행사하고 있는 지구당 위원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여 지방자치가 정당 지배적 자치로 변질되고 있다. 더구나 특정정당이 단체장은 물론 지방의회까지 독식함으로써 지방정부를 견제해야 할 지방의회가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정당-시장-의원이라는 강한 연대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현실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지방분권화시대에 걸맞은 풀뿌리 지방자치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자치행정에 대한 정당의 지배체제를 타파하고 지방선거가 비정파적 선거가 되도록 해야 하며 능력 있는 신진인물의 진출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9. 정치성인화 프로그램 시도

지방자치의 주체로서 주민의 의견은 정책결정 전 과정에 적극적으로 반영되어야 하며, 주민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할 수 있는 체계적인 채널이 다양하게 구축되어야 한다. 제도적 차원에서는 주요 정책 사안에 대한 주민 발안과 주민투표가 마련되었으나 실질적으로 작동되는 모습이 나타나야 한다. 그리고 지역주민들이 지역문제에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의사를 표명하기 위해서는 주민의식을 개혁하고 주민의 권리의식을 강화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도 실시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단체장 및 의원의 정치적 포퓰리즘을 극복하기 위해 주민 주도적 행정 감시 체제를 확립할 필요가 있다. 이는 주민들이 정부 의존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주민이 능동적 주체로서 자치권 회복을 위해 행정체제를 감시하고 통제하는 주요수단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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