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16:55 (금)
‘헛방’만 날린 주민자치회 시범실시 개선 국회 토론회
상태바
‘헛방’만 날린 주민자치회 시범실시 개선 국회 토론회
  • 문효근 기자
  • 승인 2023.04.19 20: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주민도 주민자치도 개선안도 없는 보여주기식 요식행위에 불과

주민자치위원의 의견도 듣지 않는 주민자치 토론회가 어디 있는가”, “시범실시만 10년째 하는 건 무슨 경우냐”, “주민자치 현장 목소리도 듣지 않는 형식적 토론회가 무슨 소용 있나”, “인사말 하고 사진만 찍고 가버리는 국회의원과 행안부 차관은 필요 없다”, “주민자치를 정치적으로 악용하지 마라”, “권역별 토론회, 제대로 된 공청회를 개최해 달라

 

주민자치회 시범실시 토론회에서 나온 주민자치위원들의 성토다. 토론회 당일 제주, 광주, 경남 고성 등에서 먼 길마다 않고 주민자치 실질화를 기대하며 토론회에 참석한 주민자치위원들은 제대로 된 의견조차 내지 못했다.

 

요식행위 비난 받은 토론회

419일 오후 김용판 국회의원(국민의힘)과 이해식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그리고 행정안전부(이하 행안부)가 공동주최하는 주민자치회 시범실시의 문제점과 개선방안토론회가 열렸다.

김용판 의원과 이해식 의원은 이번 토론회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회의 중 주민자치회 시범실시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와 토론회를 실시, 의견 수렴 후 5월에 있을 지방자치법 개정안에 반영시키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난 2월 행안부에서 광역시도에 내려 보낸 주민자치회 시범실시 표준조례 개정안이 읍면동장에게 위원선정 권한을 부여해 주민자치회의 자치권을 침해하는 한편 토론회, 공청회 등 제대로 된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않은 졸속 행정이라는 비난도 이번 토론회 개최에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1시간 30분짜리 토론회에서 국회의원 등 귀빈 인사말로 30분이 채워졌고 그나마 1시간 남짓 진행된 발제와 토론도 전혀 새로울 것 없는 내용들이었다. 현장에 참석한 주민자치위원들이 토론회의 내용과 진행 방식 등에 분노하며 보여주기식 요식행위일 뿐이라고 강하게 비판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공동주최자인 김용판 의원, 이해식 의원, 한창섭 행안부 장관 직무대행(차관)은 기념사진을 찍고 토론회 장을 떠난 후였다. 결국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여야가 대승적인 차원에서 행안부와 공동주최한 이번 토론회는 주민자치회 시범실시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이라는 거창한 명칭이 무색하게 헛방만 제대로 날리고 말았다.

사진=주민자치회 시범실시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자료집 표지
사진=주민자치회 시범실시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자료집 표지

 

시범실시 10년의 평가, 옹색함 금치 못해

주민자치회 시범운영 과정에서의 문제점과 개선방향을 주제로 첫 번째 발제에 나선 김상진 행안부 자치분권제도과장은 시범실시 주민자치회의 문제점으로 지역 여건을 고려하지 않은 운영방식의 획일화 중간지원조직 주도의 운영 위원 선출방식의 문제점 위원의 참여 및 대표성 부재 사전의무교육의 맹점 등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러한 사안은 각종 학술대회에서의 한국주민자치중앙회 주민자치 기획세션, 한국주민자치학회의 주민자치 연구 세미나 등을 통해 이미 수 없이 지적되어온 문제점들이다. 본지에서도 학술 및 정책 기사 등을 통해 시범실시 주민자치회의 대표적인 문제점으로 수차례 거론한 바 있다.

201331개로 시작된 시범실시 주민자치회가 10년 동안 시행되면서 지금은 1,388개까지 무차별적으로 확산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한계점을 분석한 것치곤 옹색하다 못해 낯부끄러운 수준이다. 이런 문제점들을 시범실시 10년 동안 알고도 방치했다면 직무유기이며, 몰라서 지나쳤다면 심각한 무지의 소치로 밖에 의심되지 않는다.

 

이 정도면 행안부는 직무유기

이어서 내놓은 주민자치회의 개선방향은 더 가관이다. 주민 중심으로 내실 있게 주민자치회가 운영되도록 부작용을 줄이고 주민자치회의 역할을 현실화하되 표준조례 개정을 통해 현재 주민자치회 운영상 문제를 지속 개선한다는 것이 행안부의 복안이다.

더불어 지자체가 조례를 통해 지역여건에 맞게 자율적으로 주민자치회를 운영할 수 있도록 복잡한 절차를 간소화하고, 참여하는 주민자치위원의 부담을 경감시켜 주민 지속성과 주민자치회의 활동성을 제고한다는 것이다.

실제적이고 구체적이며 현실적인 개선안이 아니라 그야말로 탁상공론일 뿐이라는 날선 지적이 플로어에서 이구동성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주민자치 현장은 물론 학계에서도 이미 알고 있는 시범실시의 문제점을 그럴 듯한 미사여구로 포장해 눈 가리고 아웅하려는 행안부의 꼼수 아닌가. 아니면 형식적인 토론회를 앞세워 주민과 주민자치는 배제하고 행정 권력을 강화하는 목적인 표준조례 개정안을 강행하려는 의도는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서울형 주민자치, 지표상 성과 내세웠지만 관리 미흡은 인정

두 번째 발제는 호종원 서울시 자치팀장이 서울시 주민자치회 시범운영 성과평가를 주제로 진행했다. 호 팀장은 서울연구원 도시경영연구실에서 수행한 연구 결과를 담당 연구원이 부재인 관계로 본인이 대신하게 되었음을 전제하며 발제를 시작했다. 서울시 자치를 담당하는 팀장이 연구용역을 준 연구기관 연구원을 대신하는 기이한 형식의 발제였다. 발제 내용 역시 서울형 주민자치회의 외형적 성과에 치중한 것이었다.

2017년부터 2022년까지 운영된 서울형 주민자치회는 시범실시 후 최초 26개 동에서 현재 261개로 증가했다며, 주민자치회 주도 사업 역시 평균 3.5개로 주민센터 주도 보다 높아졌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러한 수치적 증가는 결국 서울시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 구 자치지원센터, 동 자치지원관 등 소위 중간지원조직 주도로 운영된 결과다. 주민자치의 자치역량이 제고된 것이 아니라 중간지원조직 활동가들의 역량증대에 의한 결과라는 것이다.

물론 획일적인 시범사업과 중간지원조직에 의한 일괄적인 운영으로 양적 확대에만 치중하고 실질적인 관리 체계는 미흡했다는 점은 인정했다. 더불어 주민참여가 저조해 주민 및 지역 대표성이 부재되었다는 점도 인정했다.

서울시는 주민자치회 제도 개편 방안에 대한 연구를 올해 7월까지 추진해 3분기에 서울시 주민자치회 제도 개편 추진계획을 수립한다는 방침이다.

 

토론자들, 주민 주도 주민자치에 한 목소리

토론자로 참석한 김찬동 충남대 자치행정학과 교수는 읍면동 규모가 큰 현실에서 주민자치위원회와 주민자치회에 대한 기본적인 설계가 잘못되었다. 주민분권을 시도나 읍면동이 아닌 근린지역과 주민에게 직접 분권해야 한다라며 사회적서비스를 근린 생활권에 실현시켜야 하며 주민자치 조직에는 총회가 구성되어 주민 스스로 통치하고 스스로 지배 받는 구조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근린생활권 단위에 설치되는 새로운 주민자치회가 필요하다는 주장이었다.

곽현근 대전대 행정학과 교수는 주민자치가 정치적 논리, 진영 논리에 휘둘리고 있다며 행안부 표준조례 역시 이러한 점에 근거해 개정하려는 것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김홍주 대전세종연구원 책임연구위원 역시 주민자치회가 정당 논리에 휘둘리지 말도록 중앙정부 차원에서 명확한 방향을 설정해 줘야한다라며 이를 위해서는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의 운영의 자율화가 필요하며 주민자치회의 자치역량 강화가 전제되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주민자치회가 법제화되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오세범 법무법인 다산 변호사는 주민자치위원회는 주민센터 프로그램을 심의하는 동장 자문기구이지만 주민자치회는 진정한 풀뿌리민주주의 대표기구라며 이번 행안부 표준조례 개정안에서 위원선정위원회 위촉 권한을 동장에게 부여하는 것은 민주성이 결여된 것이니 주민의사가 정확히 반영된 개정안이 필요하다라고 전했다.

이섬숙 여의동 주민자치회장은 중간지원조직과 동 자치지원관이 주민자치회를 좌지우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역마다 상황이 다른데 똑 같은 교육과 동일한 컨설팅을 하는 것도 문제였다. 주민에 의한 자치가 아닌 행정에 의한 관치였다라며 공개추첨으로 위원을 선출하는 것도 주민자치 사업의 연속성을 저해하는 요소다. 행정 편의를 위해 주민자치가 동원되어서는 안 되며, 동장의 주민자치 역량강화 및 제대로 된 협조가 필요한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시범실시 폐단, 행안부 표준조례에서 시작돼

지방자치분권 및 지방행정체제개편에 관한 특별법(이하 지방분권법)에서 주민자치회의 전면실시는 별도 법률로 정하게끔 규정되어 있다. 다만 행안부 장관은 주민자치회의 설치 및 운영에 참고를 위해 주민자치회를 시범적으로 설치 및 운영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런데 시범실시를 하면서 시군구의회에 입법 의무를 전가, 위헌 및 위법적인 내용을 포함하는 표준조례를 전국적으로 배포하는 변칙으로 주민자치회의 시범실시 확대를 추진한 것이다. 결국 문재인 정부 행안부의 표준조례는 참고하기 위한 시범조례 임에도 불구하고 전국 지자체로 확산돼 그대로 답습하는 현실에 이르렀다.

이 과정에서 주민의 자치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되었고 그 최접점에 중간지원조직 명패를 건 시민단체가 주민자치를 지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행안부 표준조례는 주민자치회 운영 전반에 대해 세부적 사항까지 월권적이고도 강압적으로 규정해 민주적 자치를 심각하게 왜곡하였다.

그렇다면 주민자치회 시범실시가 내포한 현실적인 문제점과 개선 방향은 어떠한 것일까?

 

지자체장의 설치 아닌 주민 주도의 주민자치회 돼야

시범실시 주민자치회를 주민 아닌 지자체장만이 독단적으로 설치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한 것은 지방분권법 제27조가 밝힌 풀뿌리자치와 민주주의 원칙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다. 결국 설치 단계에서부터 주민의 자발적 참여가 배제되도록 하였다. 주민자치회는 주민 주도로 설치되어야 한다.

 

주민 없이 위원만 있는 기형적 주민자치회, 행정구역 모든 주민이 포함돼야

지방분권법은 주민자치회를 읍면동에 해당 행정구역 주민으로 구성되는것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표준조례는 주민자치회를 한정된 숫자의 위원으로만 구성해 주민 없는 기형적 자치회로 만들어 버렸다. 상위법을 위반한 것이기도 하지만 주민이 직접 선출하지 않은 위원을 주민 대표로 명명하여 대표선출의 원리를 망각한 위헌적 규정이다.

주권자인 지역 주민이 주민자치 결사체에 자발적으로 참여해 지역 문제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기결정권에 대한 명백한 침해다. 특히 표준조례 개정안에 위원선정위원회를 부활시킨 것은 명백하게 주민자치를 파괴시키는 행위다. 읍면동장이 주민자치위원을 뽑는다면 주민자치 하지 말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사전의무교육 헌법상 공무담임권 침해, 폐지가 마땅

위원 선정 과정에서도 지자체장이 인정하는 주민자치교육을 선정 이전에 의무적으로 이수한 신청자만 위원 대상으로 추첨해 선발하는 것은 뜻있는 주민의 주민자치회 참여를 막는 진입 장벽으로 작용했다. 위원 선정 후에 실시해도 되는 교육을 선정 이전부터 의무적으로 강요하는 것은 헌법상 공무담임권 침해다.

 

중간지원조직 폐지 역시 마땅해

주민자치회 설치 및 운영을 시장군수구청장의 판단 아래 중간지원조직이라는 미명을 걸고 시민단체에 위탁할 수 있도록 표준조례로 허용, 주민이 시민단체의 통제를 받는 많은 문제를 지속적으로 야기하였다. 이러한 부당함은 서울시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 폐지를 통해 증명되었다. 주민자치에 있어 중간지원조직 폐지는 마땅하다.

 

읍면동 협치-통리 자치 이중구조로 주민자치회 설계 필요

읍면동에 주민자치회를 설치한 것은 정책 오류다. 한국의 읍면동 대다수가 자치단체에 가까운 큰 규모다. 인구도 무보수 명예직의 비상근 주민자치회가 감당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며, 면적에서도 생활 관계가 형성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주민자치회를 통리 계층에 설치하는 것이 이론이나 현실적으로 가장 적절하고 기존의 행정 보조기능을 주민자치회로 전환하면 주민자치 실질화를 앞당길 수 있다. 이중구조 주민자치회는 지역이나 주민을 대표하는 자치기능, 자치단체와 협력하는 협치기능으로 구분된다. 따라서 자치기능을 통리에 두고, 협치기능을 읍면동에 두는 이중구조로 주민자치회 설계가 가능하다.

 

지역과 사회 여건 따른 다양한 주민자치회 모델 구축해야

단독주택과 상업지역, 아파트단지 등 지역 여건과 환경이 제 각각이다. 그렇다면 지역 마다 차별화된 주민자치회가 있어야 한다. 다양한 주민자치회 모델이 필요하지만 행안부 표준조례는 동일한 모델로 규정하고 있다.

 

한편, 이번 토론회 좌장을 맡은 김필두 공공자치학회장은 플로어에 참석한 주민자치위원들의 거센 항의에 대해 행안부가 이번 토론회를 끝으로 표준조례를 개정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토론회 및 공청회를 실시해 최대한 의견 수렴을 할 예정으로 안다. 주민자치 현장의 목소리에 더욱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라며 토론회를 마무리했다.

행정 위주의 졸속적인 표준조례 개정안을 추진해 비난 받은 행안부가 이번에는 요식행위로 비판 받는 주민자치회 시범실시 개정안 토론회를 개최, 연이은 빈축을 샀다. 다음 행보에 대한 기대감을 행안부 스스로가 떨어뜨리고 있는 건 아닐까.

 

사진=진정희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공공성(公共性)’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연구세미나95]
  • 문산면 주민자치회, 주민 지혜와 협의로 마을 발전 이끈다
  • 제주 금악마을 향약 개정을 통해 보는 주민자치와 성평등의 가치
  • 격동기 지식인은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연구세미나94]
  • 사동 주민자치회, '행복한 끼'로 복지사각지대 해소 나서
  • 남해군 주민자치협의회, 여수 세계 섬 박람회 홍보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