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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단속해야 할 뒷문은 어디에 '스즈메의 문단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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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단속해야 할 뒷문은 어디에 '스즈메의 문단속'
  • 윤성은 영화평론가
  • 승인 2023.04.21 11: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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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영화의 배경이 마을이다. 영화 주인공들의 삶의 터전 역시 그들이 사는 마을이고 동네이기 때문이다. 스크린 속 인물들은 배경이 되는 마을, 그리고 이웃들과 때로 갈등하고 협력하며 여러 이야기들을 만들어나간다. 그 이야기의 결말은 해피엔딩이 되기도 하고 비극으로 치닫기도 한다. 앞으로 마을, 사람들 그리고 영화에서는 마을과 사람들의 케미스트리, 그들 사이의 교감과 성장, 변화를 다룬 작품들을 소개한다. 그 속에서 주민자치의 바람직한 방향, 때로 반면교사의 깨달음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편집자 주]

 

* 영화의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기세가 무섭다. 중장년층을 겨냥한 더 퍼스트 슬램덩크’(감독 이노우에 다케히코, 이하 슬램덩크’)는 지난 1월에 개봉한 이후 일본 영화 최다 관객수를 넘어서는 기염을 토했고, 4월에는 아이맥스관으로 상영을 확대하면서 이제 더 큰 기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그 사이에 코로나 확산 초기에도 관객을 영화관으로 이끄는 데 성공했던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감독 소토자키 하루오) 시리즈 중 한 편인 귀멸의 칼날: 상현집결, 그리고 도공마을로50만 명 이상을 동원하면서 재미를 봤다. 작년 여름 시장 이후 이렇다 할 화제작이 없었던 한국영화계와는 희비가 엇갈린다.

귀멸의 칼날시리즈와 한 주 차이로 스즈메의 문단속’(Suzume, 감독 신카이 마코토. 이하 스즈메’)도 개봉했는데, 이 작품을 연출한 신카이 마코토는 2016년작 너의 이름은으로 슬램덩크이전까지 일본 영화 최다 관객수 기록을 보유하고 있던 감독이다. 명실공히 미야자키 하야오를 잇는 일본 애니메이터로서 국내에서도 인기가 높다.

 

너의 이름은신카이 마코토, ‘일본 영화 최다 관객수자체 기록 갱신 눈앞

아니나 다를까, ‘스즈메20일 만에 3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올해 개봉한 작품 중에서 300만 명 이상을 동원한 영화는 슬램덩크스즈메가 유일하다. 강제징용 배상 문제 등 우리 국민들의 대일 감정이 좋지 못한 상황인데도 일본의 문화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에 대해서는 대개 거부감이 없어 보인다.

여기에는 몇 년 전, ‘노노 재팬운동에 앞장섰던 젊은 세대들도 포함되어 있다. 기본적으로 문화는 정치적 이해관계와 상관없이 자유롭게 교류되어야 한다는 데 동의하지만 하필 한국영화가 매너리즘에 빠져 있을 때라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일본 문화가 개방되기 시작한 1998년 이후, 최소한 영화계에서 일본이 이만큼 우리를 긴장시킨 적은 없었다. 지금 상영 중인 일본 영화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는 걸까?

스즈메너의 이름은’, ‘날씨의 아이’(2019)에 이은 재난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다. 신카이 마코토는 단편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1999)로 데뷔한 이후 꾸준히 주목할 만한 작품을 내놓다가 재난 3부작이 모두 일본에서 천 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면서 현재 활동하는 최고의 애니메이터로 완전히 입지를 굳히게 되었다.

너의 이름은1200년 주기로 지구에 근접하는 혜성이 한 마을에 떨어져서 초토화가 된 이야기이고, ‘날씨의 아이는 비가 멈추지 않고 계속 내리는 이상기후로 도시가 물에 잠기는 상상에서 시작되며, ‘스즈메는 일본 곳곳에 도사린 지진의 위험과 그것을 막으려는 사람들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간단히 요약하고 보면, 재미보다는 의미가 강조된 교육용 애니메이션의 냄새가 강하다.

그러나 이 작품들은 놀라운 상상력과 흥미로운 서사로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신카이 마코토 특유의 아름다운 작화는 덤으로 느껴질 정도다. 재난 3부작의 피날레를 장식한 스즈메에는 2011311일에 발생했던 동일본 대지진에 대한 트라우마가 강하게 묻어 있다. 이것은 미래에 일어날 법한 일들을 다룬 너의 이름은이나 날씨의 아이와의 차이점이기도 하다.

 

놀라운 상상력과 흥미로운 서사의 재난 3부작피날레

동일본 대지진은 인류 역사상 자연재해로 인한 재산 피해가 가장 컸던 참사로 기록된다. 인명피해도 약 2만 명 정도의 규모였다. 일본은 강진에 대비한 내진 설계가 잘 되어 있는 편이지만 수십 미터 높이의 쓰나미까지 막지는 못했다.

영화에서 고등학생인 스즈메는 어릴 때 동일본 대지진으로 엄마를 잃고 고향을 떠나 이모와 살아가고 있다. 지진은 스즈메 엄마의 목숨을 앗아갔을 뿐 아니라 스즈메와 이모의 인생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영화는 스즈메가 이모와 함께 살게 된 경위 및 그로 인한 갈등까지 삽입하면서 십수년이 흘렀어도 재난의 자장 아래 살고 있는 일본인들의 삶을 보여준다. 어느 날, 스즈메는 낯선 남자 소타가 마을의 폐허로 가는 것을 보고 뒤를 쫓아갔다가 페허 속에 문 하나가 덜렁 서 있는 것을 발견한다.

스즈메가 호기심에 그 문을 열어 보자 다른 세계, 즉 이승과는 다른 세상이 열리는 신비한 경험을 한다. 스즈메는 나중에 소타에게 그 문은 일본 열도 기저에 도사리고 있는 거대한 재앙의 괴물, ‘미미즈가 나올 수 있는 문이라는 사실을 듣는다. 일본 전역에 있는 이런 문들이 뒷문이 되어 열리지 않도록 문단속을 하는 것이 소타 가문이 대대로 해왔던 일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이런 사람들을 토지시라 부른다.

그러나 아무 것도 모르던 스즈메가 문을 지키고 있던 석상을 들어 올리는 바람에 석상은 다이진이라 불리는 귀여운 고양이가 되어 도망쳐 버리고, 스즈메와 소타는 다이진을 쫓아 여행 아닌 여행을 하게 된다. , 다이진의 저주로 소타는 다리가 하나 없는 유아용 의자가 되어버린 상태다.

묘하게도 다이진이 가는 곳마다 스즈메와 소타는 폐허 속 뒷문이 열린 것을 발견하고 그 문을 닫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이들 덕분에 그 지역은 가까스로 큰 지진을 면하게 되고, 사람들은 일상을 계속한다. 그러나 소타는 이미 다이진 대신 뒷문을 지키는 요석이 되어 저세상에 몸이 묶이게 된 상태다. 스즈메는 소타를 그 곳에서 구해 오기 위해 마지막 여행을 떠난다.

 

동일본 대지진의 트라우마, 재미와 감동으로 풀어내

이 영화의 가장 큰 의의는 동일본 대지진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재미있고 감동적으로 풀어내는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아직 상흔이 깊이 남아있는 역사적 재난을 이처럼 대중적 콘텐츠로 승화시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여기에 일본 애니메이션의 내공과 저력이 있다.

그간 할리우드에서도 한국에서도 상업영화에서 재난을 다루는 방식은 대부분 유사했다. 오락적 효과를 위한 시각적 스펙터클, 재난의 공포가 주는 스릴, 죽음의 위협 속에 피어나는 유대감, 더 끈끈해지는 가족애 등이 이 장르에서 반복되는 관습이요, 레퍼토리다.

그러나 스즈메는 여러 지역을 다니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로드 무비의 구조에 소녀와 의자가 고양이를 쫓아가며 재난을 막는다는 참신한 요소들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마을을 뒤덮는 미미즈의 시뻘건 이미지는 자연재해를 직관적으로 표현함으로써 누구나 쉽게 몰입할 수 있도록 하는 동시에, 끊임없이 삽입되는 소소한 유머 코드와 재치 있는 디테일은 영화를 유쾌하게 만들어준다. 스즈메가 소타에게 한 눈에 반해 목숨까지 건다는 로맨스 한 스푼만 없었다면 훨씬 좋은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문화 콘텐츠는 어떻게 한 사회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치유할 수 있는가

토지시들이 수많은 인명피해를 막기 위해 희생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부분도 감동적이지만 영화에서 여러 번 반복되며 강조되는 장면, 즉 스즈메와 소타가 문을 닫을 때 행하는 주술적인 의례에서도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들은 문을 봉인할 때마다 주문을 외우는데 먼저 폐허가 된 곳에 살았던 주민들의 목소리를 떠올려 본다. ‘안녕하세요’ ‘다녀올게’ ‘다녀오겠습니다등의 일상적 인사가 수없이 들릴 때, 토지시들은 비로소 문을 닫을 수 있다. 이것은 재난의 피해자들을 추모하는 의식이기도 하고, 이처럼 많은 이들의 평범한 일상을 한 번에 앗아가는 재난에 대한 경고로도 들린다. 토지시들은 이 목소리들을 들으며 더 강한 힘으로 뒷문을 닫아낸다.

스즈메의 문단속은 문화 콘텐츠가 어떻게 한 사회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치유해 나갈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예다. 애니메이션 강국으로서 이 분야에 단단한 인프라를 쌓아왔던 일본은 역시 그들이 제일 잘하는 것으로써 스스로를 보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스즈메는 꿈속에서 어린 시절 자신이 엄마를 찾아 헤매고 있을 때, 자신에게 다가와 위로를 건넸던 여성이 엄마가 아니라 바로 자신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어느 국가든, 어느 커뮤니티든 뼈아픈 재난의 상흔들이 있다. 그리고 과학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재난은 다시 불시에 찾아온다. 인재(人災)든 천재(天災)든 재난에는 피해자들이 있고, 유가족들이 나올 것이며, 흉터는 기억보다 오래 갈 것이다. 그것을 위로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좀 더 성숙해진 그 커뮤니티의 구성원들 밖에 없다. 우리에게 열려 있는 뒷문이 있다면 봉인해야 한다. 잘 만든 문화 콘텐츠는 그 좋은 도구가 될 수 있다.

 

사진=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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