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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운동, 농촌서 도시로 확산 특이점…주민자치도 적용해볼 만”[연구세미나69-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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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운동, 농촌서 도시로 확산 특이점…주민자치도 적용해볼 만”[연구세미나69-①]
  • 김윤미 기자
  • 승인 2023.06.14 14: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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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회 정갑진 국제새마을운동연구원장 ‘주민자치를 위한 새마을운동의 원형과 추진원리’

새마을운동의 추진원리와 성공사례, 특징에 있어서 주민자치에 적용할 만한 시사점을 도출하는 의미있는 자리가 마련됐다. 한국주민자치학회는 613주민자치를 위한 새마을운동의 원형과 추진원리를 주제로 제69회 주민자치 연구세미나를 서울 인사동 태화빌딩에서 개최했다. 박경하 중앙대 명예교수 겸 향약연구원장이 좌장을 맡은 이번 세미나에서 정갑진 국제새마을운동연구원장이 발제자로, 전영평 대구대 명예교수가 지정 토론자로 나섰다.

정갑진 원장은 서두에서 새마을운동은 정부의 의도적 측면과 주민들의 자발성에 기초한 참여가 합쳐졌다. 추진체계에 있어서는 사람과 조직의 문제가 중요하고 정책 지원의 문제 즉 정부의 역할이 무엇이고 어떻게 했느냐도 중요하다. 또 평가에 있어서 새마을운동이 성공했다면 성공요인 무엇이고, 만약 성공했다면 계속 되어야 할 텐데 왜 점점 침체되어 왔는가 하는 질문이 있을 수 있다. 오늘 발제에서 새마을운동의 현황과 실태 진단 그리고 앞으로 가고자하는 방향에 대해 나름의 생각을 전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요약하면 주민자치 활성화를 위한 새마을운동의 경험리뷰 및 시사점 도출로 발제자는 Q&A 형식으로 새마을운동의 A to Z를 전했다.

먼저 새마을운동이 유명한 이유에 대해 정갑진 원장은 한국경제 고도성장(한강의 기적)의 원동력!(엔진) 정부의 최우선 시책채택 주민자치운동 (하면 된다로 대표되는)정신운동, 4가지를 꼽았다. 그는 새마을운동은 중요한 것’ ‘유명한 것둘 다를 갖췄다. ‘아리랑과 함께 해외에서 한글 고유 단어로 쓰이는 몇 안 되는 용어이며 1970년대는 새마을운동 분위기에서 국가 경영이 이뤄지고 사회가 돌아갔을 정도로 그 영향력이 절대적이었다. 모든 정책의 가장 우선한 정책인 국가 최고 시책이었다. 농가소득이 10년 만에 8.7배가 증가하는데 그 분기점이 새마을운동이었다고 평가했다.

정갑진 원장은 새마을운동의 시대별 특징을 아래 표와 같이 설명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새마을운동이 시작된 1970년 즈음의 경제상황과 농촌실태는 어떠했을까? 발제에 따르면, 1960년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시작되고 도·농간 소득격차가 심화되었으며 이촌향도 현상이 두드러졌다. 당시 인구의 50%가 농촌에 거주하고 있었으며 소규모영농, 낮은 생산성, 식량난, 농가부채의 증가 등으로 어려움은 가중됐다. 당시 농촌의 80%는 초가에 등잔불로 생활하였으며 마을 길이 협소해 우마차 통행가능 지역이 50%에 불과했다. 농촌의 열악한 환경, 무기력이 만연했으며 불만도 팽배했다. 이런 상황에서 새마을운동의 태동 배경과 추진 동기는 절실하고 충만했다.

정갑진 원장은 도농간, 농공간 균형발전(소득, 환경, 의식의 격차해소)의 필요성, 주민들의 자각과 자조협동적 마을개발사례 등장, 농어민소득증대특별사업으로 고소득 독농가 출현, 선 공업화 정책으로 정부의 재정지원능력 신장 등 빈곤극복에 대한 개인적 염원과 농촌근대화의 정책의지가 합치됐다. “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자는 분위기가 확산됐다. 진취적 국민상 정립 및 사회통합으로 국가건설운동 추진이 필요해졌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그는 새마을이전에도 농촌근대화의 필요성과 자조자립정신의 중요성은 꾸준히 강조되어 왔다. 특히 1968년부터 시작된 농어민소득증대 특별사업추진으로 근면, 자조, 협동의 새마을정신이 투철한 농가에서 성공사례가 속출하고 일선 공무원들의 농촌개발에 대한 관심과 지도경험이 축적됐다고 덧붙였다.

발제에 의하면 새마을운동은은 19704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제창으로 시작됐다. 초기 실험사업으로 1970년 제1차 새마을가꾸기사업이 추진되어 전국 33267개 마을에 마을당 335포대의 시멘트가 무상으로 지원됐다. 투자효과는 약 3배 이상, 50%의 마을에서 성공을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듬해인 1971년에는 제2차 우수마을 우선 지원사업을 실시, 1차년도 사업성과 우수마을 16600개 마을에 마을당 시멘트 500포대, 철근 1톤을 무상으로 추가 지원했다. 우수마을로 선정되지 않은 6100여개 마을에서 자진 참여를 하기도 했다. 투자효과는 9.6배로 크게 확대됐다.

초기 실험사업의 교훈과 대책

초기사업에 대한 평가로 새마을운동 정책지원의 핵심 방향이 정해졌다. 마을의 등급화와 차등지원이었다.

그렇다면 새마을운동의 장기 비전과 목표는 무엇일까? 정갑진 원장은 “1973, 새마을운동은 제1차 장기발전계획을 수립했는데 ‘70년대를 새마을의 연대로 설정, 새마을운동을 농촌근대화 운동으로 전개하는 것이다. 계획기간은 1971~1981년이며 제4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종료 시점과 일치한다. 주요 목표는 마을육성 + 소득증대라는 뚜렷한 아젠더를 제시했다. 모든 마을의 자립마을화, 농가소득 증대(10년간 3.3배 향상 설정, 7년만에 달성)가 그것이다라고 발표했다.

계속해서 정 원장은 새마을운동의 단계별 중점 방향을 아래 표로 제시했다.

 

이어 정부의 지원계획과 시책 방향에 대해 발제자는 정부의 지원은 개발욕구의 자극과 성취동기의 유발을 위한 촉매적 역할이다. 부족한 것을 메워주는 것이 아니라 주민자발성을 이끌어 내기 위한 마중물의 기능인 것이다. 정부는 주민들의 잠재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한 바가지의 물의 역할에 비유되는 펌프의 원리를 활용했으며 주민자부담의 원칙 평가에 의한 보상지원 우수마을 우선지원 마을수준별 차등지원이라는 전략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다음으로 새마을운동의 보다 구체적인 개념과 이념을 살펴보면, 새마을운동의 본질은 개혁운동 + 공동체운동으로 공동체의 혁신을 통해 함께 잘살아보자는 공동체 발전운동이다. 최고의 목표는 잘살기 운동이다. 여기서 잘 사는 것의 의미는 빈곤탈피와 소득의 증대 여유 있고 품위 있는 문화생활 이웃끼리 서로 돕는 살기 좋은 마을 후손들에게 잘 사는 터전 물려주기 등이다. 운동의 성격은 주민 공동의 자력운동 + 정신개혁운동인 셈이다.

새마을운동의 기본정신은 너무도 유명한 근면(개척정신)’ ‘자조(주인정신)’ ‘협동(공동체정신)’이다. 여기서 중요한 이는 정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실천이 요구되는 행령강령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새마을운동은 왜 마을 단위에서 시작됐을까? 정갑진 원장은 마을은 전통적인 자치단위[상호유대와 강한 우리 의식’]로서 규율, 관행, 신앙, 재산, 협동경험 공유-공통욕구 집약이 가능하며 자연적인 친근성, 공동이익, 협동작업의 특성을 보유하고 있다라며 마을이 새마을사업의 계획, 집행, 평가, 보상의 단위로서 민주적 추진방식 즉 토론과 협업, 주민총회가 매우 중요했으며 이를 통해 공동사업이 추진됐다. 또 마을간 경쟁원리를 통해 차별적 지원(자율참여로 사업추진 동력 확보)이 실시되어 자연스럽게 공동체의식의 복원과 주민자발성 유인이 가능해졌다. 이와 같은 공동체의식과 경쟁의식의 유발전략(공동사업용 기초자재의 투입)으로 앞서서 더 많은 정부지원을 받아 잘 사는 마을을 만들어 보자는 식의 동기유발이 이루어졌다고 설명했다.

새마을운동의 특징과 추진원리도 중요하게 언급됐다. 발제자는 마을개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 잘사는 마을을 가꾸려는 주민전체의 의지와 노력으로 정부가 도와준다면 큰 힘이 되겠지만 도와줄 힘도 관심도 없는 정부도 많다. 한국의 새마을운동은 샌드위치형 지역개발의 세계적 모델로 주민자치(BOTTOM UP)와 정부지원(TOP DOWN)의 결합체’”라고 소개했다.

새마을운동은 농촌만의 운동일까?’라는 질문에 정갑진 원장은 농촌만의 운동은 아니지만 농촌에서 시작하기 좋고 성과를 낼 수 있는 운동이다. 농촌에서 일어난 새마을운동은 도시, 공장, 직장, 학교로 확산되며 잘살기 위한 국민정신운동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라며 통상 사회변화의 물결은 도시에서 농촌사회로 파급되는데 비하여 한국의 근대화정신운동은 거꾸로 농촌에서 도시로 옮아갔다는 점에서도 매우 특이한 현상이라고 하겠다. 주민자치운동도 농촌으로 먼저 접근해 도시로 확산시키는 전략을 연구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고 제시했다.

새마을운동의 단계별 추진 내용에 대해 그는 사업의 단계적·점진적 추진은 동기부여, 참여촉발, 사업의 완성도를 높이는 전략이며, ‘노동협동의 단계에서 시작하여 축적된 경험과 기술, 협동정신을 바탕으로 점차 기술협동의 단계로, 그다음 자본협동의 단계로 발전했다라며 새마을운동은 농촌의 근대화를 제약해온 정부재정의 한계, 정부 내의 각 부처 간의 비협조, 말단행정의 지도능력의 미비, 농민들의 의욕저하 등 여러 가지 요인들을 동시에 제거한 통합적 농촌개발의 성공모형이다. 모든 지역개발문제의 수평적 통합과 다양한 정부정책의 수직적 통합을 꾀한 포괄적인 농촌개발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갑진 원장은 또 법제화와 새마을운동의 관계를 보면, 새마을운동은 근거를 뒷받침하는 기본법이 없는 것이 특징이라는 점을 지적했다.그는 최초의 단독법인 새마을운동 조직육성법’(1980.12.13.)도 민간 새마을추진조직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지 새마을운동의 기본적인 법적장치는 아니다. 새마을업무는 각 부처의 소관별로 개별법에 의거하여 처리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기본적인 추진지침은 있었다. 대표적인 것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필메모 17장에 쓰여진 내용이다(아래 그림 참조)

 

다음으로 새마을운동의 추진체계는 한마디로 민관 협력체계라 할 수 있다. 구체적인 내용은 아래 표에 나와 있다.

리더의 중요성은 새마을운동에서도 특별히 강조된다. 정갑진 원장은 주민단합과 의욕을 북돋워 주민참여를 극대화하는 사람 필요했으며 이는 새마을지도자의 역할이다. 외부전문가 파견의 문제점 즉 재정적 어려움이나 헌신성과 주민신뢰의 문제가 대두 되면서 무보수 마을 내부 지도자의 중요성이 커졌다. 같은 마을 주민으로서 오랫동안 생활 속에서 검증돼 공감과 협력을 이끌어낸다는 면에서도 그렇다. 이들은 마을의 행정관리자가 아닌 마을의 경영자(사업가, 조직운영자), 변혁적 리더로 활약했다고 언급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특히 여성의 참여와 역할도 강조됐다. 여성들의 사업참여가 운동의 성패를 좌우하기도 했다.

새마을 공동재산에 대한 중요성과 조성방법에 대해서도 언급이 됐다. 이는 특히 단합력, 사업지속성을 담보하는데 중요한 장치가 된다고 정 원장은 강조했다.

새마을연수원으로 대표되는 교육의 필요성도 제기됐다. 새마을교육의 특성은 태도 변화를 우선하는 집단 합숙교육’ ‘정신계발 강의’ ‘성공사례’ ‘분임토의등으로 정리됐다.

발제 마무리 단계로 새마을운동의 성공요인과 반성적 측면, 오늘날 실태, 미래지향적 과제 등이 제기 됐다. 성공요인으로는 국민적 자각과 적극적 참여 정부의 적절한 지원과 능동적 역할 효율적인 추진전략의 활용 등이 꼽혔다.

새마을운동의 반성적 측면으로는 행정의 과도한 개입이 부작용 초래 도시민, 부유층, 지식층, 청년층에 대한 효과적인 참여 전략 미흡 과당경쟁과 성과주의로 무리한 결과 초래 외형적인 물량사업에 치중 경향 정부지원시책의 빈번한 시행착오 정치성향 배제의 필요성 등이 제시됐다.

발제에 따르면 오늘날 새마을운동의 성격은 범국민운동지역봉사단체 활동으로, 추진체계는 정부기획+주민참여민간자율운동+정부지원으로, 추진단위는 마을단위읍면동 중심으로, 주체는 주민운동단체운동으로 변화됐다.

정갑진 원장은 글로벌 성과에 있어서는 새마을운동의 해외보급이 양적으로는 늘어나고 있으나 질적 개선이 요구된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새마을운동의 미래지향적 과제로는 지역활성화 운동’ ‘민간사회 안전망운동’ ‘주민자치 분권운동’ ‘통일새마을운동’ ‘지구촌 공영운동등이 언급되며 발제가 마무리됐다.

​​​​​​​사진=문효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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