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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사적일 수 없는 싸움 '이니셰린의 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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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사적일 수 없는 싸움 '이니셰린의 밴시'
  • 윤성은 영화평론가
  • 승인 2023.06.20 10: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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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사람들 그리고 영화
Town in Movie

많은 영화의 배경이 마을이다. 영화 주인공들의 삶의 터전 역시 그들이 사는 마을이고 동네이기 때문이다. 스크린 속 인물들은 배경이 되는 마을, 그리고 이웃들과 때로 갈등하고 협력하며 여러 이야기들을 만들어나간다. 그 이야기의 결말은 해피엔딩이 되기도 하고 비극으로 치닫기도 한다. 앞으로 마을, 사람들 그리고 영화에서는 마을과 사람들의 케미스트리, 그들 사이의 교감과 성장, 변화를 다룬 작품들을 소개한다. 그 속에서 주민자치의 바람직한 방향, 때로 반면교사의 깨달음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편집자 주]

 

* 영화의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유사 이래 철학자와 예술가들은 인간을 넘어 인간의 관계성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해왔다. “사람의 가치는 타인과의 관계로서만 측정될 수 있다는 니체의 말처럼, 사회적 동물로서 인간은 타인과 관계를 맺지 않고 살아갈 수 없으며 한 사람의 가치는 그 관계 안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인간관계만큼 우리를 곤란하게 만들고 당황시키며 힘들게 하는 일도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생텍쥐페리는 인간은 상호관계로 묶어지는 매듭이고, 거미줄이며, 그물이다. 이 인간관계만이 유일한 문제이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타인과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에 대한 명언들도 많다. 가령 모든 사람에게 예절 바르게 대하고, 많은 사람에게 붙임성 있게 대하고, 몇 사람과 친밀하게 지내고, 한 사람에게 벗이 되고, 누구에게나 적이 되지 말라는 벤자민 프랭클린의 말은 끊임없이 새로운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야 하는 우리에게 하나의 지침이 되어준다. 또한, “인간은 난로처럼 대해야 한다.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게라는 혜민 스님의 말에서는 경험에서 나온 혜안이 느껴진다. 너무 가까우면 집착하게 되고, 너무 멀면 무관심해지는 것을 경계하고 있는 말이다.

 

인간관계, 사람과 사람이 얽히고설키고 확정되어 더 이상 개인적이지 않은

 

흔히 인간관계는 나와 타인() 사이의 일, 즉 개인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생텍쥐페리의 말처럼 그것은 꽤 오래된 거미줄의 일부일 수도 있고, 거대한 그물이 되기도 한다. 두 세 사람 사이의 얽히고설킨 관계가 확장되면서 하나의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그 관계는 결코 사적인 일이 될 수 없다.

 

그냥 이제 자네가 싫어졌어.”

 

2023년 아카데미 시상식 9개 부문의 후보에 올랐던 이니셰린의 밴시’(The Banshees of Inisherin, 감독 마틴 맥도나. 2022)에서, ‘콜름’(브렌단 글리슨)은 어느 날 갑자기, ‘파우릭’(콜린 파렐)에게 이렇게 말한다. 어제까지만 해도 매일 같이 펍에서 몇 시간씩 수다를 떨던 사람이, 마을 사람들 모두가 인정하는 절친이었던 사람이, 오늘부터 나를 피하는 듯하더니 한다는 소리가 그냥’ ‘이제’ ‘싫어졌어라니. 파우릭은 도저히 콜름의 말을 받아들일 수 없어 패닉 상태에 빠진다.

영화는 한 사람의 일방적인 절교 선언으로 단절된 두 사람의 관계를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과거 그들에게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는 대사로 전달되고 파우릭의 시점에서만 진행되기 때문에 관객들도 콜름의 속내가 궁금하다. 파우릭은 답답한 마음을 해소하기 위해 콜름 곁을 맴돌며 그를 귀찮게 하고, 그의 행동이 만우절 장난이었기만을 바란다. 그러나 달라지는 것은 없다. 아니, 오히려 상황은 악화되어 가기만 한다.

사실, 파우릭은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지만, 아니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지만 콜름은 절교 선언 다음 날 파우릭에게 먼저 다가가 자신의 행동을 사과하고 앞으로 그와 어울리고 싶지 않은 이유를 설명해준다. 인생은 짧은데 더 이상 그와 무의미한 대화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한 친구의 일방적 절교 선언에 의한 두 절친의 단절이 마을에 던진 파장

 

두 사람이 처음으로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는 이 장면에서 카메라는 두 사람을 번갈아 비춰주는데 여기서 두 사람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나이, 풍채, 말하는 방식, 가치관 등 두 사람은 이전까지 친구였다는 것이 의아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닮은 점이 없다. 파우릭은 당나귀 똥에서 뭐가 나왔느니 하는 얘기를 두 시간이나 떠들어대며 즐거워하는 사람이지만, 지적인 콜름은 그가 지루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평온한 상태로 음악을 작곡하고 연주하면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다 죽을 때는 무언가를 남기고 싶은 사람이다. 마을 사람들의 말대로 콜름은 원래 파우릭과 엄청 안 어울리는 한쌍이었지만 진심을 드러내지 않다가 이제부터는 파우릭을 참아주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그러니 콜름의 행동은 사실 그냥도 아니고 이제도 아니다.

어쨌든 콜름의 변화는 파우릭과의 관계를 단절시켰을 뿐 아니라 마을 사람들에게 급속도로 퍼져나가면서 다른 사람들의 태도도 바꾸어 나간다. 먼저, 파우릭의 여동생 시오반은 두 사람 사이를 되돌려 놓으려다가 콜름의 말에 자극을 받아 이 편협한 인간들로 드글거리고 지루하기까지한 섬을 떠날 결심을 하게 된다. 파우릭은 콜름과 멀어지면서 경찰 아버지에게 가정 폭력을 당하며 살아가는 도미닉과 가까워지고 그 일은 조용한 마을을 뒤집어 놓을 단초를 제공한다.

두 사람의 갈등이 점점 더 커져가면서 마을에는 전에 없던 긴장이 감돈다. 제목의 밴시는 아일랜드 신화에서 죽음을 예고하며 울부짖는 유령을 뜻하는데 영화에서는 검고 긴 망토를 두른 노파가 바로 밴시의 표상이다. 으스스한 아우라를 가진 그녀는 두 주인공을 중심으로 사람들의 관계가 계속 엉켜가자 두 개의 죽음이 닥칠 것이라 예언한다. 이처럼 두 남자의 절교는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심각하다.

그러나 이니셰린의 밴시에서 콜름과 파우릭의 캐릭터나 관계를 개인적 사건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되는 더 중요한 이유는 이 영화 자체가 아일랜드 내전에 관한 우화이기 때문이다. 아일랜드 내전은 1922, 영국-아일랜드 조약을 받아들여 성립된 아일랜드 자유국 국방군과 이를 반대한 조약 반대파(IRA)가 약 1년에 걸쳐 벌였던 전쟁이다.

 

아일랜드 내전에 관한 우화

 

아일랜드 출신인 마틴 맥도나 감독은 전작들에서와 달리 이 영화의 시대적 배경을 1923년으로 특정하고 섬 사람들이 본토에서 포탄 터지는 소리를 듣는 장면을 곳곳에 삽입시킨다. 이니셰린이라는 가상의 섬 주민들은 말 그대로 바다 건너 불구경하듯 왜 전쟁이 벌어졌는지, 누가 옳은 지에는 관심이 없고 시끄러운 포탄 소리가 그치기만을 바라며 각자의 삶을 살고 있다.

이 아름답고 고요한 섬과 전쟁의 폭음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만 같다. 그러나 갑자기 절교를 통보한 콜름이나 계속 그를 괴롭히는 파우릭은 아일랜드 내전의 갈등 양상과 다를 바 없다. 콜름이 극단적인 행동을 하면 할수록 파우릭은 그에게 집착하고 그들의 관계는 결국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를 주장하는 콜름과 사후의 예술보다 현재의 다정함이 중요하다고 외치는 파우릭 사이에서 감독은 어느 한 편에 치우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처음에는 파우릭의 황당함과 억울함에 더 이입하게 만드는 것 같지만 인생을 낭비하고 싶지 않은 예술가의 결심도 잘못된 데는 없어 보인다. 더욱이 파우릭이 관계에 집착하면서 찌질한 행동들로 콜름의 인내심을 시험할 때는 그가 왜 절교를 당했는지 알 것도 같다. 파우릭은 콜름이 자신과 다른 영역에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정말 자기의 신체에 해를 가하는 콜름의 극단적 행동까지 이해 가능한 것은 아니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파우릭과의 싸움에서 이기려 하는 콜름 또한 자신의 신념과 결단 자체에 집착하고 있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자해 또한 자신을 향한 폭력이며 이를 다른 이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 행위 또한 엽기적인 폭력이 될 수 있다. 콜름은 음악을 하기 위해 파우릭과 한 바탕 전쟁을 치르면서 바이올린을 연주할 손가락을 자해하는 모순을 범한다. 그리고 그 이 같은 행위는 결과적으로 파우릭이 가족처럼 아끼는 당나귀 제니를 떠나보내게 만든다. 이쯤 되면 마을에서 가장 다정했던 파우릭도 폭력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

 

예상보다 훨씬 무서운 파국싸움은 멈춰야 한다

 

파우릭은 콜름의 집에 방화를 저지르며 제니의 죽음을 복수하지만, 다음 날 죽지 않고 해변가에 서 있는 콜름을 발견한다. 지칠 대로 지친 콜름은 본토에서 이틀 정도 들리지 않았던 총성처럼, 파우릭과의 전쟁을 멈추기 원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이제 파우릭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 두 사람의 갈등은 조용했던 마을에 밴시가 복선을 깔아준 대로 두 개의 죽음을 불러왔다. 그 두 개의 죽음은 모두 폭력의 결과였고, 방화라는 또 다른 폭력이자 범죄로 이어지기도 했다. 또한, 독기를 품은 파우릭의 말들은 이니셰린이 더욱 시끄러워질 수 있음을 예고하고 있다.

누가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마을을 위해 두 사람이 싸움을 멈춰야 하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대영제국의 마지막 총리를 지낸 토니 블레어는 이렇게 말했다. “화해는 공통점을 찾고 함께 나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사과와 함께 일어난 피해를 복구하는 것이다.” 바로 이니셰린의 두 사람에게 필요한 충고가 아닐까.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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